5화(5,170자) · 밟는 법 다섯

만드는 것과 지키는 것

무공은 사람이 아니라 땅에 있다 · 구슬안

밟는 법을 연오가 정리한 것은 같은 해 겨울이다⁠.

정리했다는 말은 적었다는 뜻이 아니다⁠. 연오는 글을 모른다⁠.

말로 정리했다⁠.

말로 정리한 것을 어머니가 외웠다⁠. 어머니도 글을 모른다⁠.

밟는 법은 다섯이다⁠.

하나⁠. 두 시진을 채운다⁠. 한 시진은 안 된다⁠.

둘⁠.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비 오는 날도 한다⁠.

셋⁠. 같은 자리를 밟는다⁠. 넓게 돌면 안 된다⁠. 열 자 네모를 정하고 거기만 한다⁠.

넷⁠. 맨발로 밟는다⁠. 신을 신으면 두 배가 걸린다⁠.

다섯⁠. 한 사람이 밟는다⁠. 여럿이 밟으면 자리가 흩어진다⁠.

다섯 번째가 제일 늦게 알아낸 것이다⁠.

다섯 번째를 알아낸 까닭은 여섯째 집 때문이다⁠.

여섯째 집은 식구가 다섯이다⁠.

다섯이 나눠서 밟았다⁠. 하루에 두 시진을 다섯이 나누니 한 사람에 반 시진도 안 된다⁠.

편하다⁠.

한 달을 그렇게 했는데 안 서늘해졌다⁠.

연오가 가서 봤다⁠.

“⁠…다섯 분이 다 밟으셨습니까⁠?⁠”

“⁠그랬지⁠. 편하게 하려고⁠.⁠”

연오가 말했다⁠.

“⁠한 분이 하셔야 합니다⁠.⁠”

“⁠…왜⁠?⁠”

연오가 대답을 못 했다⁠.

모르니까 못 했다⁠.

그래서 해 봤다⁠.

여섯째 집에서 큰아들 혼자 한 달 밟았다⁠.

서늘해졌다⁠.

연오가 이것을 도갑한테 말했다⁠.

도갑이 물었다⁠.

“⁠…무영곡은 스물이 같이 밟는데⁠.⁠”

연오가 이 말에 멈췄다⁠.

“⁠…스물이요⁠?⁠”

도갑이 말했다⁠.

“⁠마당에서 스물이 같이 밟는다⁠.⁠”

연오가 물었다⁠.

“⁠그럼 그 마당은 어떻게 서늘합니까⁠?⁠”

도갑이 말했다⁠.

“⁠…삼백 해 했으니까⁠.⁠”

연오가 셈을 했다⁠.

한 사람이 한 달이면⁠, 스물이 나눠 하면 얼마나 걸리는가⁠.

다섯이 나눠 하니 한 달로 안 됐다⁠.

스물이면 더 오래 걸린다⁠.

연오가 물었다⁠.

“⁠어르신⁠, 무영곡 마당이 언제부터 서늘했습니까⁠?⁠”

도갑이 말했다⁠.

“⁠내가 들어갔을 때 이미 서늘했다⁠.⁠”

“⁠…그전에는요⁠.⁠”

도갑이 말했다⁠.

“⁠모른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혹시 처음에는 한 사람이 밟지 않았을까요⁠?⁠”

도갑이 이 자리에 섰다⁠.

연오가 말했다⁠.

“⁠한 사람이 한 달 밟아서 만들고⁠, 그다음부터 스물이 지킨 것 아닐까요⁠?⁠”

도갑이 물었다⁠.

“⁠…지키는 건 여럿이 해도 되나⁠.⁠”

연오가 말했다⁠.

“⁠해 봐야 압니다⁠.⁠”

연오가 이것을 제 밭에서 해 봤다⁠.

혼자 한 달 밟아서 만든 자리를⁠, 다음 달부터 어머니와 둘이 나눠 밟았다⁠.

안 없어졌다⁠.

셋이 나눠 밟아도 안 없어졌다⁠.

연오가 알았다⁠.

만드는 것은 하나가 하고 지키는 것은 여럿이 한다⁠.

연오가 이것을 마을에 알렸다⁠.

어머니가 다섯을 외우는 데 이틀이 걸렸다⁠.

연오가 한 줄씩 불러 주면 어머니가 따라 했다⁠.

“⁠하나⁠. 두 시진을 채운다⁠.⁠”

“⁠하나⁠, 두 시진⁠.⁠”

“⁠둘⁠.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둘⁠, 하루도⁠.⁠”

“⁠셋⁠. 같은 자리를 밟는다⁠.⁠”

“⁠셋⁠, 같은 자리⁠.⁠”

“⁠넷⁠. 맨발로 밟는다⁠.⁠”

어머니가 거기서 멈췄다⁠.

“⁠…겨울에도⁠?⁠”

연오가 말했다⁠.

“⁠겨울에도요⁠.⁠”

어머니가 말했다⁠.

“⁠그건 못 외우겠다⁠.⁠”

“⁠…어머니⁠.⁠”

“⁠넷은 빼자⁠.⁠”

연오가 말했다⁠.

“⁠빼면 두 배가 걸립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두 배 걸려도 발은 안 얼지 않냐⁠?⁠”

연오가 이 말에 대꾸를 못 했다⁠.

이튿날 어머니가 마을 여자들한테 다섯을 외워 줬다⁠.

외워 주면서 네 번째에 한마디를 붙였다⁠.

“⁠넷째는 맨발이다⁠. 그런데 겨울에는 신 신어라⁠. 두 달 걸린다⁠.⁠”

연오가 이것을 듣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이 말이 다섯보다 잘 퍼졌다⁠.

알리고 나서 마을이 편해졌다⁠.

밭을 만들 때만 한 사람이 한 달 고생하고⁠, 다음부터는 식구가 나눠 한다⁠.

하루에 두 시진을 넷이 나누면 반 시진이다⁠.

반 시진이면 밥 짓는 사이에 된다⁠.

같은 해 겨울에 마을에서 한 번 일이 있었다⁠.

첫째 집 손자가 연오한테 물었다⁠.

“⁠아저씨⁠, 아저씨 초식 보여 주세요⁠.⁠”

연오가 말했다⁠.

“⁠…나는 안 나온다⁠.⁠”

아이가 웃었다⁠.

“⁠거짓말⁠.⁠”

아이 아버지가 이것을 듣고 왔다⁠.

“⁠…연오야⁠, 진짜냐⁠?⁠”

연오가 말했다⁠.

“⁠진짜입니다⁠.⁠”

마당에 있던 사람이 넷이었다⁠. 넷이 다 연오를 봤다⁠.

둘째 집 어른이 물었다⁠.

“⁠…한 번도 안 나왔냐⁠?⁠”

연오가 말했다⁠.

“⁠한 번도 안 나왔습니다⁠.⁠”

셋째 집 어른이 말했다⁠.

“⁠…그럼 자세를 못 배운 거 아니냐⁠. 도갑 어른한테 배워라⁠.⁠”

연오가 말했다⁠.

“⁠배웠습니다⁠.⁠”

“⁠…얼마나⁠?⁠”

“⁠닷새 배웠습니다⁠.⁠”

도갑이 이때 말했다⁠.

“⁠…내가 가르쳐 봤소⁠. 자세는 됐소⁠.⁠”

마당이 조용해졌다⁠.

첫째 집 어른이 물었다⁠.

“⁠…그럼 왜 안 나오냐⁠?⁠”

연오가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이 마을을 만든 놈이 못 쓴다고⁠?⁠”

셋째 집 어른이 말했다⁠.

“⁠…그거 좀 말이 안 되는데⁠.⁠”

연오가 말했다⁠.

“⁠말이 안 돼도 안 나옵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왔다⁠.

행주를 들고 있었다⁠.

“⁠뭐가 그리 시끄럽냐⁠?⁠”

첫째 집 어른이 말했다⁠.

“⁠…연오가 초식이 안 나온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안 나오면 안 나오는 거지⁠.⁠”

“⁠…아주머니⁠, 그게 아니라⁠.⁠”

어머니가 행주를 걷었다⁠.

“⁠우리 애가 언제 초식 쓴다고 했소⁠?⁠”

마당이 조용해졌다⁠.

어머니가 말했다⁠.

“⁠콩 심는다고 했지⁠.⁠”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한마디 더 했다⁠.

“⁠콩은 나오오⁠.⁠”

마당이 웃었다⁠.

웃는데 연오는 안 웃었다⁠.

이날 밤에 어머니가 연오한테 물었다⁠.

“⁠…신경 쓰이냐⁠?⁠”

연오가 말했다⁠.

“⁠…아닙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네 아비도 안 나왔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 사람도 밟았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 나는 그때 그게 밟아서 뭐가 나오는 건 줄도 몰랐다⁠.⁠”

“⁠…⁠”

“⁠지금 생각하니 그 사람은 알았겠다⁠.⁠”

연오가 물었다⁠.

“⁠…무엇을요⁠?⁠”

어머니가 말했다⁠.

“⁠밟으면 남이 세진다는 걸⁠.⁠”

이듬해 봄에 마을 서른네 집이 다 밟았다⁠.

밭이 서른네 마지기 이어졌다⁠.

무영곡 마당이 두 마지기다⁠.

열일곱 배다⁠.

같은 해 사월에 무영곡에서 사람이 왔다⁠.

문주라고 했다⁠.

옷이 좋았다⁠.

연오가 이 얼굴을 안다⁠.

이태 전에 말뚝 앞에서 웃던 자다⁠.

문주가 마을 어귀에 서서 발을 대 봤다⁠.

신을 신은 채로 댔다⁠.

“⁠…여기가 터구먼⁠.⁠”

연오가 나갔다⁠.

문주가 연오를 봤다⁠.

“⁠…연오냐⁠?⁠”

“⁠예⁠.⁠”

문주가 웃었다⁠.

“⁠네 발이 좋다고 내가 그랬지⁠.⁠”

연오가 말했다⁠.

“⁠그러셨습니다⁠.⁠”

문주가 마을을 둘러봤다⁠.

“⁠…몇 마지기냐⁠?⁠”

연오가 말했다⁠.

“⁠서른넷입니다⁠.⁠”

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마당이 둘이다⁠.⁠”

“⁠…압니다⁠.⁠”

문주가 물었다⁠.

“⁠…어떻게 아냐⁠?⁠”

연오가 말했다⁠.

“⁠가서 재 봤습니다⁠.⁠”

문주가 웃었다⁠.

웃다가 그쳤다⁠.

“⁠연오야⁠.⁠”

“⁠예⁠.⁠”

“⁠이 터 값이 얼마냐⁠?⁠”

연오가 물었다⁠.

“⁠…값이요⁠?⁠”

문주가 말했다⁠.

“⁠사겠다⁠.⁠”

연오가 물었다⁠.

“⁠…무엇을 사시겠습니까⁠?⁠”

문주가 말했다⁠.

“⁠이 터를⁠.⁠”

연오가 말했다⁠.

“⁠터는 밭입니다⁠.⁠”

“⁠…그러니까 밭을 사겠다⁠.⁠”

연오가 말했다⁠.

“⁠밭을 사시면 저희가 어디서 삽니까⁠?⁠”

문주가 말했다⁠.

“⁠다른 데 가서 또 만들면 되지 않느냐⁠?⁠”

연오가 이 자리에 섰다⁠.

맞는 말이다⁠.

만들 수 있으니 또 만들면 된다⁠.

그런데 뭔가 안 맞았다⁠.

어머니가 이때 나왔다⁠.

호미를 들고 있었다⁠.

“⁠여보시오⁠.⁠”

문주가 돌아봤다⁠.

“⁠…뭐요⁠?⁠”

어머니가 물었다⁠.

“⁠얼마 주실 거요⁠.⁠”

문주가 말했다⁠.

“⁠서른네 마지기면 삼백 냥 주겠소⁠.⁠”

어머니가 물었다⁠.

“⁠한 마지기에 아홉 냥이오⁠?⁠”

문주가 말했다⁠.

“⁠그렇소⁠.⁠”

어머니가 말했다⁠.

“⁠밭값이 한 마지기에 스무 냥이오⁠.⁠”

문주가 웃었다⁠.

“⁠그건 그냥 밭값이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럼 터값은 뭐요⁠?⁠”

문주가 말했다⁠.

“⁠…터값은 따로 안 치오⁠. 터는 우리가 지킬 거니까⁠.⁠”

어머니가 호미를 놓았다⁠.

“⁠그러니까 밭값도 반만 주고 터값은 안 주겠다는 말이오⁠?⁠”

문주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건 사는 게 아니라 뺏는 거요⁠.⁠”

문주가 웃었다⁠.

“⁠…아주머니⁠, 말이 세시오⁠.⁠”

어머니가 말했다⁠.

“⁠콩값도 이렇게 치지는 않소⁠.⁠”

문주가 웃음을 거뒀다⁠.

“⁠…아주머니⁠, 그럼 얼마를 받으시겠소⁠?⁠”

어머니가 말했다⁠.

“⁠안 파오⁠.⁠”

“⁠…값을 부르시오⁠.⁠”

어머니가 호미를 집었다⁠.

“⁠값을 부르면 파는 거요⁠.⁠”

문주가 이 말에 멈췄다⁠.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값을 안 부르오⁠. 값을 부르는 순간부터 그건 파는 물건이 되오⁠.⁠”

“⁠…⁠”

“⁠우리 밭은 파는 물건이 아니오⁠.⁠”

문주가 물었다⁠.

“⁠그럼 무엇이오⁠?⁠”

어머니가 말했다⁠.

“⁠먹고사는 데요⁠.⁠”

문주가 마을을 둘러봤다⁠.

“⁠…아주머니⁠, 강호에서는 터에 값이 있소⁠. 아홉 문파가 다 그 값으로 삽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 사람들은 밥을 어디서 먹소⁠?⁠”

문주가 대답을 못 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밥을 남한테 받아먹는 사람들이 값을 매기니 값이 그 모양이지⁠.⁠”

연오가 옆에서 이 말을 들었다⁠.

문주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아주머니 말씀이 무섭소⁠.⁠”

어머니가 말했다⁠.

“⁠무서울 게 뭐 있소⁠. 콩 판 지 삼십 년이오⁠.⁠”

연오가 이때 말했다⁠.

“⁠문주님⁠.⁠”

“⁠…말해라⁠.⁠”

연오가 말했다⁠.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물어라⁠.⁠”

연오가 물었다⁠.

“⁠이 터를 사시면 누가 밟습니까⁠?⁠”

문주가 말했다⁠.

“⁠우리 문하가 밟는다⁠.⁠”

연오가 말했다⁠.

“⁠문하가 백이십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연오가 말했다⁠.

“⁠서른네 마지기를 백이십이 밟으면 한 사람에 한 마지기도 안 됩니다⁠.⁠”

문주가 말했다⁠.

“⁠그러면 편하지 않으냐⁠?⁠”

연오가 말했다⁠.

“⁠여럿이 나눠 밟으면 흩어집니다⁠.⁠”

문주가 이 자리에 섰다⁠.

“⁠…뭐라고 했느냐⁠?⁠”

연오가 말했다⁠.

“⁠한 자리는 한 사람이 밟아야 합니다⁠.⁠”

문주가 물었다⁠.

“⁠…그건 어디서 들었느냐⁠?⁠”

연오가 말했다⁠.

“⁠해 봤습니다⁠.⁠”

문주가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는 스물이 같이 밟는다⁠.⁠”

연오가 말했다⁠.

“⁠지키는 것은 여럿이 해도 됩니다⁠.⁠”

“⁠…⁠”

“⁠만드는 것만 하나가 합니다⁠.⁠”

문주가 물었다⁠.

“⁠…그럼 우리 마당은 누가 만들었느냐⁠?⁠”

연오가 말했다⁠.

“⁠모릅니다⁠.⁠”

“⁠…⁠”

“⁠삼백 해 전 사람이겠지요⁠.⁠”

문주가 이 자리에 서 있었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연오야⁠.⁠”

“⁠예⁠.⁠”

“⁠그 사람 이름을 아는 놈이 우리 문파에 없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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