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160자) · 밟는 법 다섯
만드는 것과 지키는 것
천하제일 농부 · 한도윤
밟는 법을 연오가 정리한 것은 그해 겨울이다.
정리했다는 말은 적었다는 뜻이 아니다. 연오는 글을 모른다.
말로 정리했다.
말로 정리한 것을 어머니가 외웠다. 어머니도 글을 모른다.
밟는 법은 다섯이다.
하나. 두 시진을 채운다. 한 시진은 안 된다.
둘.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비 오는 날도 한다.
셋. 같은 자리를 밟는다. 넓게 돌면 안 된다. 열 자 네모를 정하고 거기만 한다.
넷. 맨발로 밟는다. 신을 신으면 두 배가 걸린다.
다섯. 한 사람이 밟는다. 여럿이 밟으면 자리가 흩어진다.
다섯째가 제일 늦게 알아낸 것이다.
다섯째를 알아낸 까닭은 여섯째 집 때문이다.
여섯째 집은 식구가 다섯이다.
다섯이 나눠서 밟았다. 하루에 두 시진을 다섯이 나누니 한 사람에 반 시진도 안 된다.
편하다.
한 달을 그렇게 했는데 안 서늘해졌다.
연오가 가서 봤다.
“…다섯 분이 다 밟으셨습니까?”
“그랬지. 편하게 하려고.”
연오가 말했다.
“한 분이 하셔야 합니다.”
“…왜?”
연오가 대답을 못 했다.
모르니까 못 했다.
그래서 해 봤다.
여섯째 집에서 큰아들 혼자 한 달 밟았다.
서늘해졌다.
연오가 그것을 도갑한테 말했다.
도갑이 물었다.
“…무영곡은 스물이 같이 밟는데.”
연오가 그 말에 멈췄다.
“…스물이요?”
도갑이 말했다.
“마당에서 스물이 같이 밟는다.”
연오가 물었다.
“그럼 그 마당은 어떻게 서늘합니까?”
도갑이 말했다.
“…삼백 해 했으니까.”
연오가 셈을 했다.
한 사람이 한 달이면, 스물이 나눠 하면 얼마나 걸리는가.
다섯이 나눠 하니 한 달로 안 됐다.
스물이면 더 오래 걸린다.
연오가 물었다.
“어르신, 무영곡 마당이 언제부터 서늘했습니까?”
도갑이 말했다.
“내가 들어갔을 때 이미 서늘했다.”
“…그전에는요.”
도갑이 말했다.
“모른다.”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혹시 처음에는 한 사람이 밟지 않았을까요?”
도갑이 그 자리에 섰다.
연오가 말했다.
“한 사람이 한 달 밟아서 만들고, 그다음부터 스물이 지킨 것 아닐까요?”
도갑이 물었다.
“…지키는 건 여럿이 해도 되나.”
연오가 말했다.
“해 봐야 압니다.”
연오가 그것을 제 밭에서 해 봤다.
혼자 한 달 밟아서 만든 자리를, 그다음 달부터 어머니와 둘이 나눠 밟았다.
안 없어졌다.
셋이 나눠 밟아도 안 없어졌다.
연오가 알았다.
만드는 것은 하나가 하고 지키는 것은 여럿이 한다.
연오가 그것을 마을에 알렸다.
어머니가 다섯을 외우는 데 이틀이 걸렸다.
연오가 한 줄씩 불러 주면 어머니가 따라 했다.
“하나. 두 시진을 채운다.”
“하나, 두 시진.”
“둘.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둘, 하루도.”
“셋. 같은 자리를 밟는다.”
“셋, 같은 자리.”
“넷. 맨발로 밟는다.”
어머니가 거기서 멈췄다.
“…겨울에도?”
연오가 말했다.
“겨울에도요.”
어머니가 말했다.
“그건 못 외우겠다.”
“…어머니.”
“넷은 빼자.”
연오가 말했다.
“빼면 두 배가 걸립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두 배 걸려도 발은 안 얼지 않냐.”
연오가 그 말에 대꾸를 못 했다.
이튿날 어머니가 마을 여자들한테 다섯을 외워 줬다.
외워 주면서 넷째에 한마디를 붙였다.
“넷째는 맨발이다. 그런데 겨울에는 신 신어라. 두 달 걸린다.”
연오가 그것을 듣고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말이 다섯보다 잘 퍼졌다.
알리고 나서 마을이 편해졌다.
밭을 만들 때만 한 사람이 한 달 고생하고, 그다음부터는 식구가 나눠 한다.
하루에 두 시진을 넷이 나누면 반 시진이다.
반 시진이면 밥 짓는 사이에 된다.
그해 겨울에 마을에서 한 번 일이 있었다.
첫째 집 손자가 연오한테 물었다.
“아저씨, 아저씨 초식 보여 주세요.”
연오가 말했다.
“…나는 안 나온다.”
아이가 웃었다.
“거짓말.”
아이 아버지가 그것을 듣고 왔다.
“…연오야, 진짜냐?”
연오가 말했다.
“진짜입니다.”
마당에 있던 사람이 넷이었다. 넷이 다 연오를 봤다.
둘째 집 어른이 물었다.
“…한 번도 안 나왔냐?”
연오가 말했다.
“한 번도 안 나왔습니다.”
셋째 집 어른이 말했다.
“…그럼 자세를 못 배운 거 아니냐. 도갑 어른한테 배워라.”
연오가 말했다.
“배웠습니다.”
“…얼마나?”
“닷새 배웠습니다.”
도갑이 그때 말했다.
“…내가 가르쳐 봤소. 자세는 됐소.”
마당이 조용해졌다.
첫째 집 어른이 물었다.
“…그럼 왜 안 나오냐?”
연오가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이 마을을 만든 놈이 못 쓴다고?”
셋째 집 어른이 말했다.
“…그거 좀 말이 안 되는데.”
연오가 말했다.
“말이 안 돼도 안 나옵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왔다.
행주를 들고 있었다.
“뭐가 그리 시끄럽냐?”
첫째 집 어른이 말했다.
“…연오가 초식이 안 나온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안 나오면 안 나오는 거지.”
“…아주머니, 그게 아니라.”
어머니가 행주를 걷었다.
“우리 애가 언제 초식 쓴다고 했소?”
마당이 조용해졌다.
어머니가 말했다.
“콩 심는다고 했지.”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한마디 더 했다.
“콩은 나오오.”
마당이 웃었다.
웃는데 연오는 안 웃었다.
그날 밤에 어머니가 연오한테 물었다.
“…신경 쓰이냐?”
연오가 말했다.
“…아닙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네 아비도 안 나왔다.”
연오가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 사람도 밟았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 나는 그때 그게 밟아서 뭐가 나오는 건 줄도 몰랐다.”
“…”
“지금 생각하니 그 사람은 알았겠다.”
연오가 물었다.
“…무엇을요?”
어머니가 말했다.
“밟으면 남이 세진다는 걸.”
이듬해 봄에 마을 서른네 집이 다 밟았다.
밭이 서른네 마지기 이어졌다.
무영곡 마당이 두 마지기다.
열일곱 배다.
그해 사월에 무영곡에서 사람이 왔다.
문주라고 했다.
옷이 좋았다.
연오가 그 얼굴을 안다.
이태 전에 말뚝 앞에서 웃던 자다.
문주가 마을 어귀에 서서 발을 대 봤다.
신을 신은 채로 댔다.
“…여기가 터구먼.”
연오가 나갔다.
문주가 연오를 봤다.
“…연오냐.”
“예.”
문주가 웃었다.
“네 발이 좋다고 내가 그랬지.”
연오가 말했다.
“그러셨습니다.”
문주가 마을을 둘러봤다.
“…몇 마지기냐?”
연오가 말했다.
“서른넷입니다.”
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마당이 둘이다.”
“…압니다.”
문주가 물었다.
“…어떻게 아냐?”
연오가 말했다.
“가서 재 봤습니다.”
문주가 웃었다.
웃다가 그쳤다.
“연오야.”
“예.”
“이 터 값이 얼마냐?”
연오가 물었다.
“…값이요?”
문주가 말했다.
“사겠다.”
연오가 물었다.
“…무엇을 사시겠습니까?”
문주가 말했다.
“이 터를.”
연오가 말했다.
“터는 밭입니다.”
“…그러니까 밭을 사겠다.”
연오가 말했다.
“밭을 사시면 저희가 어디서 삽니까?”
문주가 말했다.
“다른 데 가서 또 만들면 되지 않느냐?”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맞는 말이다.
만들 수 있으니 또 만들면 된다.
그런데 뭔가 안 맞았다.
어머니가 그때 나왔다.
호미를 들고 있었다.
“여보시오.”
문주가 돌아봤다.
“…뭐요?”
어머니가 물었다.
“얼마 주실 거요.”
문주가 말했다.
“서른네 마지기면 삼백 냥 주겠소.”
어머니가 물었다.
“한 마지기에 아홉 냥이오?”
문주가 말했다.
“그렇소.”
어머니가 말했다.
“밭값이 한 마지기에 스무 냥이오.”
문주가 웃었다.
“그건 그냥 밭값이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럼 터값은 뭐요?”
문주가 말했다.
“…터값은 따로 안 치오. 터는 우리가 지킬 거니까.”
어머니가 호미를 놓았다.
“그러니까 밭값도 반만 주고 터값은 안 주겠다는 말이오?”
문주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건 사는 게 아니라 뺏는 거요.”
문주가 웃었다.
“…아주머니, 말이 세시오.”
어머니가 말했다.
“콩값도 이렇게 치지는 않소.”
문주가 웃음을 거뒀다.
“…아주머니, 그럼 얼마를 받으시겠소?”
어머니가 말했다.
“안 파오.”
“…값을 부르시오.”
어머니가 호미를 집었다.
“값을 부르면 파는 거요.”
문주가 그 말에 멈췄다.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값을 안 부르오. 값을 부르는 순간부터 그건 파는 물건이 되오.”
“…”
“우리 밭은 파는 물건이 아니오.”
문주가 물었다.
“그럼 무엇이오?”
어머니가 말했다.
“먹고사는 데요.”
문주가 마을을 둘러봤다.
“…아주머니, 강호에서는 터에 값이 있소. 아홉 문파가 다 그 값으로 삽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 사람들은 밥을 어디서 먹소?”
문주가 대답을 못 했다.
어머니가 말했다.
“밥을 남한테 받아먹는 사람들이 값을 매기니 값이 그 모양이지.”
연오가 옆에서 그 말을 들었다.
문주가 한참 있다가 말했다.
“…아주머니 말씀이 무섭소.”
어머니가 말했다.
“무서울 게 뭐 있소. 콩 판 지 삼십 년이오.”
연오가 그때 말했다.
“문주님.”
“…말해라.”
연오가 말했다.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물어라.”
연오가 물었다.
“이 터를 사시면 누가 밟습니까?”
문주가 말했다.
“우리 문하가 밟는다.”
연오가 말했다.
“문하가 백이십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연오가 말했다.
“서른네 마지기를 백이십이 밟으면 한 사람에 한 마지기도 안 됩니다.”
문주가 말했다.
“그러면 편하지 않으냐.”
연오가 말했다.
“여럿이 나눠 밟으면 흩어집니다.”
문주가 그 자리에 섰다.
“…뭐라고 했느냐?”
연오가 말했다.
“한 자리는 한 사람이 밟아야 합니다.”
문주가 물었다.
“…그건 어디서 들었느냐?”
연오가 말했다.
“해 봤습니다.”
문주가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는 스물이 같이 밟는다.”
연오가 말했다.
“지키는 것은 여럿이 해도 됩니다.”
“…”
“만드는 것만 하나가 합니다.”
문주가 물었다.
“…그럼 우리 마당은 누가 만들었느냐?”
연오가 말했다.
“모릅니다.”
“…”
“삼백 해 전 사람이겠지요.”
문주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연오야.”
“예.”
“그 사람 이름을 아는 놈이 우리 문파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