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13자) · 천하제일 농부

나무패 백열둘

무공은 사람이 아니라 땅에 있다 · 구슬안

이듬해 봄에 강호 아홉 터 가운데 넷이 흔들렸다⁠.

흔들렸다는 말은 문하가 빠졌다는 뜻이다⁠.

무영곡에서 스물이 나갔다⁠.

옆 골짜기에서 열넷이 나갔다⁠.

이 옆에서 여덟이 나갔다⁠.

또 이 옆에서 열둘이 나갔다⁠.

나간 사람이 다 연오네 마을로 온 것은 아니다⁠.

제 고향으로 간 사람이 많다⁠.

가서 밟았다⁠.

같은 해 여름에 강호에 새 터가 스물셋 생겼다⁠.

터라고 부르기도 뭣하다⁠. 대개 한 마지기짜리다⁠.

무영곡 마당이 두 마지기다⁠.

한 마지기짜리 스물셋이면 스물세 마지기다⁠.

문파 아홉의 터를 다 합치면 열네 마지기다⁠.

새 터가 더 넓어졌다⁠.

재러 다니는 사람이 생겼다⁠.

도갑이 이 일을 맡았다⁠.

도갑이 나무패를 깎아서 다녔다⁠.

가서 밟은 데 서 보고⁠, 서늘하면 나무패를 하나 놓고 온다⁠.

나무패에는 아무것도 안 적는다⁠. 도갑도 글을 모른다⁠.

대신 패를 깎은 모양이 다르다⁠.

발목까지면 한 번 깎고⁠, 가슴까지면 두 번 깎고⁠, 정수리까지면 세 번 깎는다⁠.

한 해에 놓은 패가 백 하고 열둘이다⁠.

도갑이 이것을 세다가 자루가 모자랐다⁠.

연오가 이것을 보고 말했다⁠.

“⁠어르신⁠, 이제 세지 마십시오⁠.⁠”

도갑이 물었다⁠.

“⁠…왜⁠?⁠”

연오가 말했다⁠.

“⁠세면 누가 많고 적은지가 나옵니다⁠.⁠”

“⁠…나오면⁠.⁠”

연오가 말했다⁠.

“⁠많은 데가 세다고들 할 겁니다⁠.⁠”

도갑이 말했다⁠.

“⁠…센 게 맞잖나⁠.⁠”

연오가 말했다⁠.

“⁠센 게 아니라 밟은 겁니다⁠.⁠”

도갑이 웃었다⁠.

“⁠…그게 그거 아닌가⁠.⁠”

연오가 말했다⁠.

“⁠다릅니다⁠.⁠”

“⁠…⁠”

“⁠센 것은 남이 못 하고 밟은 것은 남도 합니다⁠.⁠”

도갑이 이 자리에 섰다⁠.

연오가 말했다⁠.

“⁠세면 못 하는 걸로 보입니다⁠.⁠”

도갑은 이때부터 안 셌다⁠.

세는 것을 도갑이 그만뒀는데 남이 세기 시작했다⁠.

윤벽이라는 자다⁠.

읍에서 땅을 놓는 사람이다⁠. 서른 해 했다⁠.

윤벽이 같은 해 여름에 마을에 왔다⁠.

와서 연오한테 물었다⁠.

“⁠자네가 연오인가⁠?⁠”

“⁠예⁠.⁠”

“⁠나무패를 깎는 어른이 있다지⁠.⁠”

연오가 말했다⁠.

“⁠…있습니다⁠.⁠”

윤벽이 말했다⁠.

“⁠그 패를 내가 사겠네⁠.⁠”

연오가 물었다⁠.

“⁠…패를요⁠?⁠”

윤벽이 말했다⁠.

“⁠패가 놓인 땅을 사겠다는 말이지⁠.⁠”

연오가 이 자리에 섰다⁠.

윤벽이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 금이 그어져 있었다⁠.

“⁠여기가 남쪽 골짜기네⁠. 패가 셋 놓였다고 들었네⁠.⁠” 윤벽이 짚었다⁠. “⁠한 번 깎은 패가 둘⁠, 두 번 깎은 패가 하나⁠.⁠”

연오가 물었다⁠.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윤벽이 말했다⁠.

“⁠사람을 보내서 봤지⁠.⁠”

“⁠…⁠”

“⁠자네들은 놓고만 오지 세지는 않지 않나⁠. 나는 세네⁠.⁠”

연오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윤벽이 말했다⁠.

“⁠한 번 깎은 패가 놓인 땅은 한 마지기에 스물다섯 냥이네⁠. 두 번은 마흔⁠. 세 번은 예순⁠.⁠”

연오가 말했다⁠.

“⁠밭값이 스무 냥입니다⁠.⁠”

윤벽이 말했다⁠.

“⁠그러니까 터값이 붙은 거지⁠.⁠”

연오가 물었다⁠.

“⁠…그 값은 누가 정했습니까⁠?⁠”

윤벽이 웃었다⁠.

“⁠내가 정했네⁠.⁠”

“⁠…⁠”

“⁠내가 사니까 내가 정하지⁠.⁠”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그 땅은 밟으면 또 생깁니다⁠.⁠”

윤벽이 말했다⁠.

“⁠아네⁠.⁠”

“⁠…아시는데 사십니까⁠?⁠”

윤벽이 종이를 접었다⁠.

“⁠자네는 값이 어디서 오는지 아나⁠?⁠”

연오가 말했다⁠.

“⁠…모릅니다⁠.⁠”

윤벽이 말했다⁠.

“⁠귀한 데서 오지⁠.⁠”

“⁠…⁠”

“⁠그런데 귀한 것이 왜 귀한지를 사람들이 묻기 시작하면 값이 떨어지네⁠.⁠”

연오가 이 말을 들었다⁠.

윤벽이 말했다⁠.

“⁠그러니 안 묻게 해야 하네⁠.⁠”

연오가 물었다⁠.

“⁠…어떻게 안 묻게 합니까⁠?⁠”

윤벽이 말했다⁠.

“⁠값을 붙여 놓으면 안 묻네⁠.⁠”

“⁠…⁠”

“⁠값이 붙은 것은 원래 그런 줄 안다⁠.⁠”

윤벽이 갔다⁠.

가면서 말했다⁠.

“⁠연오⁠, 자네가 하는 일이 나쁘다는 게 아니네⁠. 나는 자네 덕에 서른 해 만에 새 물건을 얻었네⁠.⁠”

연오가 물었다⁠.

“⁠…새 물건이요⁠?⁠”

윤벽이 말했다⁠.

“⁠전에는 땅만 팔았지⁠. 이제는 터를 파네⁠.⁠”

“⁠…⁠”

“⁠땅은 늘지 않는데 터는 느네⁠. 늘어나는 걸 파는 것이 장사로는 제일 좋으이⁠.⁠”

세는 대신 다른 것을 했다⁠.

밟는 법 다섯을 외워서 다녔다⁠.

가는 데마다 외워 줬다⁠.

외워 주고 나무패를 하나 놓고 왔다⁠.

같은 해 가을에 강호에서 제일 넓은 터가 연오네 마을이 됐다⁠.

서른네 마지기다⁠.

문파 아홉을 다 합친 것보다 두 배가 넘는다⁠.

사람들이 연오를 두고 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오 선생⁠」이었다⁠.

연오가 이것을 싫어했다⁠.

다음에 「⁠밟는 이⁠」가 됐다⁠.

이것도 싫어했다⁠.

가을 장터에서 누가 웃으면서 말했다⁠.

“⁠천하제일 농부구먼⁠.⁠”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재미있어했다⁠.

연오가 이것도 싫어했는데 싫어하는 것을 재미있어해서 더 퍼졌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했다⁠.

「⁠천하제일 농부⁠」라는 말이 퍼지고 나서 읍에서 사람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찾아와서 연오를 보고는 대개 실망했다⁠.

하나가 물었다⁠.

“⁠…천하제일 농부가 어느 분이오⁠?⁠”

연오가 말했다⁠.

“⁠접니다⁠.⁠”

이 사람이 연오를 위아래로 봤다⁠.

“⁠…농부시오⁠?⁠”

연오가 말했다⁠.

“⁠농부입니다⁠.⁠”

“⁠…그럼 천하제일은 무엇이오⁠?⁠”

연오가 말했다⁠.

“⁠그건 남들이 붙인 겁니다⁠.⁠”

이 사람이 물었다⁠.

“⁠무공은 얼마나 하시오⁠?⁠”

연오가 말했다⁠.

“⁠안 합니다⁠.⁠”

“⁠…⁠”

“⁠한 번도 안 나왔습니다⁠.⁠”

이 사람이 한참 서 있다가 말했다⁠.

“⁠…그럼 천하제일 농부가 아니라 그냥 농부 아니오⁠?⁠”

연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이 갔다⁠.

어머니가 이것을 보고 말했다⁠.

“⁠…왜 그렇게 말하냐⁠?⁠”

연오가 말했다⁠.

“⁠사실이니까요⁠.⁠”

어머니가 말했다⁠.

“⁠사실을 말하면 콩값이 내린다⁠.⁠”

“⁠…⁠”

“⁠저 사람이 가서 뭐라고 하겠냐⁠. 천하제일 농부는 헛것이더라 하겠지⁠.⁠”

연오가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나 같으면 아무 말 안 한다⁠.⁠”

“⁠…⁠”

“⁠아무 말 안 하면 저희가 알아서 지어낸다⁠.⁠”

“⁠천하제일 농부 어머니다⁠.⁠”

연오가 말했다⁠.

“⁠…어머니⁠.⁠”

“⁠왜⁠?⁠”

“⁠그거 좋은 말 아닙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좋은 말이다⁠. 콩값이 올랐다⁠.⁠”

연오가 이 말에 대꾸를 못 했다⁠.

콩값이 실제로 올랐다⁠.

사람들이 연오네 콩을 사려고 했다⁠.

터에서 난 콩이 다르다는 소문이 돌았다⁠.

연오가 이것을 아니라고 했다⁠.

“⁠콩은 그냥 콩입니다⁠.⁠”

사람들이 안 믿었다⁠.

값을 두 배 주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받았다⁠.

연오가 말했다⁠.

“⁠…어머니⁠, 그건 아닙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주겠다는데 왜 안 받냐⁠?⁠”

연오가 말했다⁠.

“⁠콩이 안 다릅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안 다르다고 말했잖냐⁠.⁠”

“⁠…⁠”

“⁠말했는데 주면 그건 저쪽 일이다⁠.⁠”

연오가 이 말에 또 대꾸를 못 했다⁠.

같은 해 겨울에 처음으로 나쁜 일이 났다⁠.

아랫마을에서 두 집이 싸웠다⁠.

밭둑을 두고 싸웠다⁠.

전에는 밭둑 싸움이 나면 자로 재서 갈랐다⁠.

이번에는 자로 못 갈랐다⁠.

한 집이 밭둑까지 밟았기 때문이다⁠.

밟은 데는 터가 된다⁠.

터가 된 자리를 자로 자르면 반쪽이 된다⁠.

반쪽이 되면 둘 다 못 쓴다⁠.

연오가 불려 갔다⁠.

가서 밟은 데를 대 봤다⁠.

밭둑을 넘어 두 자쯤 서늘했다⁠.

연오가 말했다⁠.

“⁠…두 자입니다⁠.⁠”

밟은 집 어른이 말했다⁠.

“⁠두 자가 뭐 대수요⁠?⁠”

안 밟은 집 어른이 말했다⁠.

“⁠그 두 자가 내 땅이오⁠.⁠”

연오가 이 자리에 섰다⁠.

밟은 집 어른이 말했다⁠.

“⁠연오 선생이 판을 내시오⁠.⁠”

연오가 말했다⁠.

“⁠…제가 낼 판이 없습니다⁠.⁠”

안 밟은 집 어른이 말했다⁠.

“⁠선생이 밟으라고 해서 밟은 거 아니오⁠.⁠”

연오가 이 말에 아무 대답도 못 했다⁠.

맞는 말이다⁠.

연오가 밟으라고 했다⁠.

밟으면 터가 된다고 했다⁠.

터가 되면 어떻게 나누는지는 말 안 했다⁠.

연오가 이날 밤에 어머니한테 말했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물었다⁠.

“⁠뭘⁠?⁠”

“⁠밟으면 터가 된다고만 하고 나누는 법을 안 정했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나누는 법을 네가 왜 정하냐⁠?⁠”

연오가 말했다⁠.

“⁠…제가 시작했으니까요⁠.⁠”

어머니가 호미를 놓았다⁠.

“⁠연오야⁠.⁠”

“⁠예⁠.⁠”

“⁠콩 심는 법은 누가 정했냐⁠?⁠”

연오가 말했다⁠.

“⁠…모릅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밭둑 나누는 법은 누가 정했냐⁠?⁠”

연오가 말했다⁠.

“⁠…모릅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다들 하다 보니 정해졌다⁠.⁠”

“⁠…⁠”

“⁠네가 다 정하려 들면 그게 문파다⁠.⁠”

연오가 이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마을에서 정하라고 해라⁠.⁠”

마을이 사흘 동안 모였다⁠.

사흘째에 정했다⁠.

정한 것이 이렇다⁠.

밟은 자리가 남의 땅에 넘어가면 이 두 자는 두 집이 같이 쓴다⁠.

같이 쓴다는 말은 둘 다 거기서 초식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대신 밟는 것은 밟은 집이 한다⁠.

안 밟은 집은 콩을 한 말 낸다⁠.

정하고 나서 둘째 집 어른이 물었다⁠.

“⁠…그런데 연오야⁠.⁠”

“⁠예⁠.⁠”

“⁠읍에서 온 그 양반은 어쩌냐⁠?⁠”

마당이 조용해졌다⁠.

첫째 집 어른이 물었다⁠.

“⁠…무슨 양반이오⁠?⁠”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땅 놓는 윤가요⁠. 우리 밭을 한 마지기에 마흔 냥 쳐 주겠다고 합디다⁠.⁠”

마당이 웅성거렸다⁠.

밭값이 스무 냥이다⁠. 두 배다⁠.

셋째 집 어른이 물었다⁠.

“⁠…우리한테도 왔소⁠?⁠”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안 왔소⁠? 나한테는 왔소⁠.⁠”

넷째 집 어른이 말했다⁠.

“⁠나한테도 왔소⁠.⁠”

여섯이 왔다고 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첫째 집 어른이 물었다⁠.

“⁠…팔 거요⁠?⁠”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마흔이면 팔지⁠.⁠”

“⁠…팔고 어디 가시오⁠?⁠”

둘째 집 어른이 대답을 못 했다⁠.

연오가 말했다⁠.

“⁠파시면 됩니다⁠.⁠”

마당이 연오를 봤다⁠.

연오가 말했다⁠.

“⁠파시고 다른 데 가서 또 만드시면 됩니다⁠.⁠”

둘째 집 어른이 물었다⁠.

“⁠…그래도 되냐⁠?⁠”

연오가 말했다⁠.

“⁠됩니다⁠. 한 달이면 됩니다⁠.⁠”

“⁠…⁠”

“⁠다만 하나만 생각하십시오⁠.⁠”

둘째 집 어른이 물었다⁠.

“⁠뭐냐⁠?⁠”

연오가 말했다⁠.

“⁠파신 다음에 그 양반이 그 밭을 누구한테 밟게 하겠습니까⁠?⁠”

마당이 조용해졌다⁠.

연오가 말했다⁠.

“⁠그 양반은 안 밟습니다⁠.⁠”

연오가 이것을 듣고 말했다⁠.

“⁠…괜찮은 판입니다⁠.⁠”

첫째 집 어른이 말했다⁠.

“⁠네가 안 정해서 더 잘됐다⁠.⁠”

마을이 웃었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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