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06자) · 천하제일 농부
나무패 백열둘
천하제일 농부 · 한도윤
이듬해 봄에 강호 아홉 터 가운데 넷이 흔들렸다.
흔들렸다는 말은 문하가 빠졌다는 뜻이다.
무영곡에서 스물이 나갔다.
옆 골짜기에서 열넷이 나갔다.
그 옆에서 여덟이 나갔다.
또 그 옆에서 열둘이 나갔다.
나간 사람이 다 연오네 마을로 온 것은 아니다.
제 고향으로 간 사람이 많다.
가서 밟았다.
그해 여름에 강호에 새 터가 스물셋 생겼다.
터라고 부르기도 뭣하다. 대개 한 마지기짜리다.
무영곡 마당이 두 마지기다.
한 마지기짜리 스물셋이면 스물세 마지기다.
문파 아홉의 터를 다 합치면 열네 마지기다.
새 터가 더 넓어졌다.
재러 다니는 사람이 생겼다.
도갑이 그 일을 맡았다.
도갑이 나무패를 깎아서 다녔다.
가서 밟은 데 서 보고, 서늘하면 나무패를 하나 놓고 온다.
나무패에는 아무것도 안 적는다. 도갑도 글을 모른다.
대신 패를 깎은 모양이 다르다.
발목까지면 한 번 깎고, 가슴까지면 두 번 깎고, 정수리까지면 세 번 깎는다.
한 해에 놓은 패가 백 하고 열둘이다.
도갑이 그것을 세다가 자루가 모자랐다.
연오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어르신, 이제 세지 마십시오.”
도갑이 물었다.
“…왜?”
연오가 말했다.
“세면 누가 많고 적은지가 나옵니다.”
“…나오면.”
연오가 말했다.
“많은 데가 세다고들 할 겁니다.”
도갑이 말했다.
“…센 게 맞잖나.”
연오가 말했다.
“센 게 아니라 밟은 겁니다.”
도갑이 웃었다.
“…그게 그거 아닌가.”
연오가 말했다.
“다릅니다.”
“…”
“센 것은 남이 못 하고 밟은 것은 남도 합니다.”
도갑이 그 자리에 섰다.
연오가 말했다.
“세면 못 하는 걸로 보입니다.”
도갑이 그 뒤로 안 셌다.
세는 것을 도갑이 그만뒀는데 남이 세기 시작했다.
윤벽이라는 자다.
읍에서 땅을 놓는 사람이다. 서른 해 했다.
윤벽이 그해 여름에 마을에 왔다.
와서 연오한테 물었다.
“자네가 연오인가?”
“예.”
“나무패를 깎는 어른이 있다지.”
연오가 말했다.
“…있습니다.”
윤벽이 말했다.
“그 패를 내가 사겠네.”
연오가 물었다.
“…패를요?”
윤벽이 말했다.
“패가 놓인 땅을 사겠다는 말이지.”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윤벽이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 금이 그어져 있었다.
“여기가 남쪽 골짜기네. 패가 셋 놓였다고 들었네.” 윤벽이 짚었다. “한 번 깎은 패가 둘, 두 번 깎은 패가 하나.”
연오가 물었다.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윤벽이 말했다.
“사람을 보내서 봤지.”
“…”
“자네들은 놓고만 오지 세지는 않지 않나. 나는 세네.”
연오가 아무 말도 안 했다.
윤벽이 말했다.
“한 번 깎은 패가 놓인 땅은 한 마지기에 스물다섯 냥이네. 두 번은 마흔. 세 번은 예순.”
연오가 말했다.
“밭값이 스무 냥입니다.”
윤벽이 말했다.
“그러니까 터값이 붙은 거지.”
연오가 물었다.
“…그 값은 누가 정했습니까?”
윤벽이 웃었다.
“내가 정했네.”
“…”
“내가 사니까 내가 정하지.”
연오가 말했다.
“어르신, 그 땅은 밟으면 또 생깁니다.”
윤벽이 말했다.
“아네.”
“…아시는데 사십니까?”
윤벽이 종이를 접었다.
“자네는 값이 어디서 오는지 아나?”
연오가 말했다.
“…모릅니다.”
윤벽이 말했다.
“귀한 데서 오지.”
“…”
“그런데 귀한 것이 왜 귀한지를 사람들이 묻기 시작하면 값이 떨어지네.”
연오가 그 말을 들었다.
윤벽이 말했다.
“그러니 안 묻게 해야 하네.”
연오가 물었다.
“…어떻게 안 묻게 합니까?”
윤벽이 말했다.
“값을 붙여 놓으면 안 묻네.”
“…”
“값이 붙은 것은 원래 그런 줄 안다.”
윤벽이 갔다.
가면서 말했다.
“연오, 자네가 하는 일이 나쁘다는 게 아니네. 나는 자네 덕에 서른 해 만에 새 물건을 얻었네.”
연오가 물었다.
“…새 물건이요?”
윤벽이 말했다.
“전에는 땅만 팔았지. 이제는 터를 파네.”
“…”
“땅은 늘지 않는데 터는 느네. 늘어나는 걸 파는 것이 장사로는 제일 좋으이.”
세는 대신 다른 것을 했다.
밟는 법 다섯을 외워서 다녔다.
가는 데마다 외워 줬다.
외워 주고 나무패를 하나 놓고 왔다.
그해 가을에 강호에서 제일 넓은 터가 연오네 마을이 됐다.
서른네 마지기다.
문파 아홉을 다 합친 것보다 두 배가 넘는다.
사람들이 연오를 두고 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오 선생」이었다.
연오가 그것을 싫어했다.
그다음에 「밟는 이」가 됐다.
그것도 싫어했다.
가을 장터에서 누가 웃으면서 말했다.
“천하제일 농부구먼.”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재미있어했다.
연오가 그것도 싫어했는데 싫어하는 것을 재미있어해서 더 퍼졌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했다.
「천하제일 농부」라는 말이 퍼지고 나서 읍에서 사람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찾아와서 연오를 보고는 대개 실망했다.
하나가 물었다.
“…천하제일 농부가 어느 분이오?”
연오가 말했다.
“접니다.”
그 사람이 연오를 위아래로 봤다.
“…농부시오?”
연오가 말했다.
“농부입니다.”
“…그럼 천하제일은 무엇이오?”
연오가 말했다.
“그건 남들이 붙인 겁니다.”
그 사람이 물었다.
“무공은 얼마나 하시오?”
연오가 말했다.
“안 합니다.”
“…”
“한 번도 안 나왔습니다.”
그 사람이 한참 서 있다가 말했다.
“…그럼 천하제일 농부가 아니라 그냥 농부 아니오?”
연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갔다.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왜 그렇게 말하냐?”
연오가 말했다.
“사실이니까요.”
어머니가 말했다.
“사실을 말하면 콩값이 내린다.”
“…”
“저 사람이 가서 뭐라고 하겠냐. 천하제일 농부는 헛것이더라 하겠지.”
연오가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어머니가 말했다.
“나 같으면 아무 말 안 한다.”
“…”
“아무 말 안 하면 저희가 알아서 지어낸다.”
“천하제일 농부 어머니다.”
연오가 말했다.
“…어머니.”
“왜?”
“그거 좋은 말 아닙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좋은 말이다. 콩값이 올랐다.”
연오가 그 말에 대꾸를 못 했다.
콩값이 실제로 올랐다.
사람들이 연오네 콩을 사려고 했다.
터에서 난 콩이 다르다는 소문이 돌았다.
연오가 그것을 아니라고 했다.
“콩은 그냥 콩입니다.”
사람들이 안 믿었다.
값을 두 배 주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받았다.
연오가 말했다.
“…어머니, 그건 아닙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주겠다는데 왜 안 받냐?”
연오가 말했다.
“콩이 안 다릅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안 다르다고 말했잖냐.”
“…”
“말했는데 주면 그건 저쪽 일이다.”
연오가 그 말에 또 대꾸를 못 했다.
그해 겨울에 처음으로 나쁜 일이 났다.
아랫마을에서 두 집이 싸웠다.
밭둑을 두고 싸웠다.
전에는 밭둑 싸움이 나면 자로 재서 갈랐다.
이번에는 자로 못 갈랐다.
한 집이 밭둑까지 밟았기 때문이다.
밟은 데는 터가 된다.
터가 된 자리를 자로 자르면 반쪽이 된다.
반쪽이 되면 둘 다 못 쓴다.
연오가 불려 갔다.
가서 밟은 데를 대 봤다.
밭둑을 넘어 두 자쯤 서늘했다.
연오가 말했다.
“…두 자입니다.”
밟은 집 어른이 말했다.
“두 자가 뭐 대수요?”
안 밟은 집 어른이 말했다.
“그 두 자가 내 땅이오.”
연오가 그 자리에 섰다.
밟은 집 어른이 말했다.
“연오 선생이 판을 내시오.”
연오가 말했다.
“…제가 낼 판이 없습니다.”
안 밟은 집 어른이 말했다.
“선생이 밟으라고 해서 밟은 거 아니오.”
연오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못 했다.
맞는 말이다.
연오가 밟으라고 했다.
밟으면 터가 된다고 했다.
터가 되면 어떻게 나누는지는 말 안 했다.
연오가 그날 밤에 어머니한테 말했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물었다.
“뭘?”
“밟으면 터가 된다고만 하고 나누는 법을 안 정했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나누는 법을 네가 왜 정하냐?”
연오가 말했다.
“…제가 시작했으니까요.”
어머니가 호미를 놓았다.
“연오야.”
“예.”
“콩 심는 법은 누가 정했냐.”
연오가 말했다.
“…모릅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밭둑 나누는 법은 누가 정했냐.”
연오가 말했다.
“…모릅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다들 하다 보니 정해졌다.”
“…”
“네가 다 정하려 들면 그게 문파다.”
연오가 그 자리에 앉았다.
어머니가 말했다.
“마을에서 정하라고 해라.”
마을이 사흘 동안 모였다.
사흘째에 정했다.
정한 것이 이렇다.
밟은 자리가 남의 땅에 넘어가면 그 두 자는 두 집이 같이 쓴다.
같이 쓴다는 말은 둘 다 거기서 초식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대신 밟는 것은 밟은 집이 한다.
안 밟은 집은 콩을 한 말 낸다.
정하고 나서 둘째 집 어른이 물었다.
“…그런데 연오야.”
“예.”
“읍에서 온 그 양반은 어쩌냐?”
마당이 조용해졌다.
첫째 집 어른이 물었다.
“…무슨 양반이오?”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땅 놓는 윤가요. 우리 밭을 한 마지기에 마흔 냥 쳐 주겠다고 합디다.”
마당이 웅성거렸다.
밭값이 스무 냥이다. 두 배다.
셋째 집 어른이 물었다.
“…우리한테도 왔소?”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안 왔소? 나한테는 왔소.”
넷째 집 어른이 말했다.
“나한테도 왔소.”
여섯이 왔다고 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첫째 집 어른이 물었다.
“…팔 거요?”
둘째 집 어른이 말했다.
“마흔이면 팔지.”
“…팔고 어디 가시오?”
둘째 집 어른이 대답을 못 했다.
연오가 말했다.
“파시면 됩니다.”
마당이 연오를 봤다.
연오가 말했다.
“파시고 다른 데 가서 또 만드시면 됩니다.”
둘째 집 어른이 물었다.
“…그래도 되냐?”
연오가 말했다.
“됩니다. 한 달이면 됩니다.”
“…”
“다만 하나만 생각하십시오.”
둘째 집 어른이 물었다.
“뭐냐?”
연오가 말했다.
“파신 다음에 그 양반이 그 밭을 누구한테 밟게 하겠습니까?”
마당이 조용해졌다.
연오가 말했다.
“그 양반은 안 밟습니다.”
연오가 그것을 듣고 말했다.
“…괜찮은 판입니다.”
첫째 집 어른이 말했다.
“네가 안 정해서 더 잘됐다.”
마을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