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64자)

마을 회관 부엌

워홀 호주 농장에서 만난 재벌 3세 · 연채온

마리바 외곽의 고물상은 망고 농장 서너 개를 합친 만큼 넓었다⁠. 녹슨 트랙터와 냉장고 문짝과 함석판이 키 높이로 쌓여 있었고⁠, 한낮의 햇볕을 받은 쇠붙이에서 뜨거운 녹 냄새가 피어올랐다⁠. 주홍은 휴대전화에 그린 설계도를 들고 쇠붙이 더미 사이를 뛰어다녔다⁠. 아치가 버터를 데리고 뒤를 따랐다⁠. 아치가 따라나선 것은 주홍이 용접을 할 줄 모른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거요⁠, 영감님⁠. 이 함석이요⁠. 검게 칠하면 햇볕을 다 먹어요⁠.⁠”

“⁠검은 칠은 내가 한다⁠. 너는 그 손으로 칠하면 칠보다 개미가 먼저 붙는다⁠.⁠”

아치는 주홍을 개미라고 불렀다⁠. 녹색 개미를 하도 먹어서 붙은 이름이었다⁠. 주홍은 비누 다음 별명이 개미라서 다행이라고 했다⁠. 먹는 이름이 씻는 이름보다 낫다는 것이 주홍의 계산이었다⁠.

건조기는 사흘 만에 완성되었다⁠. 세운 것이 아니라 눕힌 기계였다⁠. 검게 칠한 함석판 열 장을 비스듬히 이어 붙여 햇볕으로 공기를 데우고⁠, 데운 공기를 고물상에서 오 달러에 사 온 선풍기 네 대로 나무 상자 속에 밀어 넣는 기계였다⁠. 상자 안에는 방충망을 씌운 선반이 열두 단 들어갔다⁠. 아치가 용접을 하고⁠, 주홍이 온도계를 달고⁠, 버터가 그늘에서 잤다⁠. 다 만든 날 오후⁠, 주홍은 온도계가 58도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영감님⁠, 58도요⁠! 계산이랑 딱 맞아요⁠!⁠”

“⁠계산 맞는 거 처음 보냐⁠?⁠”

“⁠처음은 아닌데요⁠, 계산 맞은 게 사람한테 칭찬받는 건 처음이에요⁠.⁠”

아치는 대답 대신 주홍의 등을 손바닥으로 한 번 쳤다⁠. 주홍은 앞으로 휘청거리다가 웃었다⁠. 이 주 만에 진짜로 웃는 웃음이었다⁠. 웃다가 갑자기 멈추고 휴대전화를 꺼내 메일함을 한 번 보았다⁠. 아치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

마리바 마을 회관은 큰길 끝의 하얀 목조 건물이었다⁠. 지붕이 높았고⁠, 벽에는 백 년 전 마을 사진과 해마다 열린 농산물 품평회 상장이 붙어 있었다⁠. 회관 뒤편 부엌은 식품을 만들어 팔아도 되는 허가가 난 곳이었다⁠. 마을 여자들이 잼과 과자를 만들어 장날에 팔던 부엌이었다⁠.

부엌 열쇠는 레 할머니가 가지고 있었다⁠. 사십 년 전 베트남에서 건너와 마리바에 망고 농장을 일군 사람이었다⁠. 키가 솔래 어깨까지밖에 오지 않았는데 목소리는 회관 전체를 울렸다⁠. 레 할머니는 솔래가 내민 말린 망고를 한 조각 씹고⁠, 눈을 감고⁠, 한참 씹다가 열쇠를 내밀었다⁠.

“⁠우리 엄마가 고향에서 이렇게 말렸어⁠. 지붕 위에서⁠. 비 오면 다 걷어 들이고⁠.⁠”

“⁠빌려 주시는 거예요⁠?⁠”

“⁠빌려 주는 대신 나도 넣어 줘⁠. 우리 집 나무도 한국 사람들이 맡아 주면 좋겠어⁠. 이백 그루밖에 안 되지만⁠.⁠”

솔래는 열쇠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에 레 할머니는 전화를 네 통 걸었다⁠. 다음 날 아침 회관 부엌에는 레 할머니네를 포함해 이웃 농장 다섯 곳의 주인들이 와 있었다⁠. 다들 나이가 예순을 넘었고⁠, 다들 은행 편지를 받고 있었다⁠. 한 사람은 손녀를 데려왔고⁠, 한 사람은 자기 농장 망고를 한 상자씩 들고 왔다⁠. 솔래는 망고 상자마다 꼭지에 코를 대 보았다⁠. 집집마다 냄새가 조금씩 달랐다⁠. 레 할머니네 망고에서는 꿀 냄새가 짙었고⁠, 언덕 위 농장 망고에서는 송진 냄새가 셌다⁠.

부엌은 하루 만에 공장이 되었다⁠. 마을 여자들과 피커들이 긴 탁자에 늘어앉아 망고 껍질을 벗기고 씨를 발라냈다⁠. 대만 커플은 칼질이 가장 빨랐고⁠, 프랑스 청년은 망고를 똑같은 두께로 써는 데에 집착했다⁠. 써는 동안 프랑스 말로 혼잣말을 했는데⁠, 레 할머니는 혼잣말이 기도라고 했고 프랑스 청년은 욕이라고 했다⁠. 썬 망고는 주홍의 건조기로 실려 갔다⁠. 회관 전체에서 단내가 났다⁠. 지나가던 동네 아이들이 창문에 코를 붙였다⁠.

*

솔래는 부엌 구석에서 노트북을 열고 맡은 사람들에게 안내문을 썼다⁠. 「⁠생망고를 보내 드릴 검역 시설이 이번 철에 모두 찼습니다⁠. 대신 내 나무에서 딴 망고를 말린 망고와 냉동 망고로 보내 드립니다⁠. 원하시면 전액 돌려 드립니다⁠.⁠」 보내기 단추를 누르기 전에 세 번 지웠다가 다시 썼다⁠. 전 직장 동기가 가공식품 수입 신고를 맡아 주기로 했다⁠. 회사에서 수입 과자를 담당하던 동기였다⁠. 「⁠선배 퇴사 기념수에서 나온 걸로 퇴사 기념 과자 만드는 거죠⁠? 이건 안 도우면 사람 아님⁠」

안내문을 보내고 한 시간 동안⁠, 돈을 돌려 달라는 사람은 열한 명이었다⁠. 나머지는 댓글을 달았다⁠.

「⁠말린 게 더 좋아요 오래 먹으니까⁠」「⁠유기농 말린 망고면 아기 간식 되겠네요⁠」「⁠저는 생망고보다 사정이 더 궁금해요 무슨 일이에요⁠?⁠」「⁠라이브에서 검역 시설 얘기 해 주세요⁠」

엄마의 메시지는 조금 늦게 왔다⁠.

「⁠딸 영숙이가 이가 안 좋은데 말린 건 질기냐 질기면 영숙이 거는 냉동으로 해라 순자는 이가 좋다⁠」

솔래는 밤에 회관 부엌에서 라이브를 켰다⁠. 탁자 위에는 썰다 만 망고가 산처럼 쌓였고⁠, 레 할머니가 카메라 앞에서 칼을 들고 손을 흔들었다⁠. 솔래는 숨기지 않고 말했다⁠. 생망고가 왜 못 가는지⁠, 검역 시설 석 달이 왜 다 찼는지⁠. 운해라는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댓글이 먼저 알았다⁠.

「⁠석 달 통째로⁠? 그거 운해 아니에요⁠? 운해 수입 망고 상자에 그 시설 이름 찍혀 있던데⁠」「⁠대기업이 작은 농장 길 막는 거네⁠」「⁠불매 각⁠」「⁠운해 라면 끊습니다 오늘부터⁠」「⁠저는 못 끊어요 운해 라면 맛있어요 대신 나무 하나 더 맡을게요⁠」

마지막 댓글에 솔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옆에서 칼질하던 주홍이 화면을 넘겨다보다가 웃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솔래는 주홍이 운해 라면을 좋아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

라이브가 끝난 뒤 솔래는 농장으로 돌아왔다⁠. 부엌 창으로 아치와 도티가 보였다⁠. 두 사람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식탁에 마주 앉아 있었다⁠. 도티가 은행 앱을 보여 주었고⁠, 아치는 돋보기를 쓰고 오래 들여다보았다⁠. 아치가 무어라 짧게 말했다⁠. 버터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한 말이었다⁠. 도티가 고개를 끄덕이고 찻잔을 두 개 꺼냈다⁠.

솔래는 영숙 이모의 나무 옆에 ‘⁠냉동⁠’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레 할머니네 이백 그루와 이웃 농장 네 곳의 나무를 새로 열었다⁠. 펜로즈 농장의 구백 그루에 이웃 다섯 농장의 나무를 더하자 맡길 나무가 이천 그루를 넘었다⁠. 솔래는 숫자를 보다가 창밖을 보았다⁠. 회관 앞 큰길로 운해의 흰 사륜구동차가 천천히 지나갔다⁠.

*

오후 세 시⁠, 부엌 방충망 문이 거칠게 열렸다⁠. 마흔 중반의 키 큰 남자가 들어왔다⁠. 작업복 가슴에 운해의 붉은 구름 무늬가 박혀 있었다⁠. 길 건너 개빈이었다⁠. 지난달 농장을 운해에 팔고⁠, 지금은 운해의 관리인으로 자기 땅이었던 농장을 돌보는 사람이었다⁠. 탁자에 앉아 있던 이웃 농장 주인들이 손을 멈췄다⁠. 개빈은 농장 주인들을 하나하나 보다가 솔래 앞으로 왔다⁠.

“⁠너지⁠? 한국 아가씨⁠.⁠”

“⁠연솔래예요⁠.⁠”

“⁠이름은 됐고⁠.⁠” 개빈은 탁자 위의 말린 망고를 한 줌 집어 들었다가 도로 내려놓았다⁠. “⁠여기 계신 분들⁠, 다 은행 편지 받는 분들이야⁠. 운해가 우리 집 땅을 제값 주고 샀어⁠. 빚 다 갚았고⁠, 마누라 병원비도 냈어⁠. 나는 지금 월급 받아⁠. 이분들도 그렇게 될 수 있어⁠. 근데 네가 와서 바람을 넣잖아⁠.⁠”

“⁠바람이 아니라 망고를 팔고 있어요⁠.⁠”

“⁠말린 망고 몇 봉지로 사십만 달러를 갚아⁠? 이분들 빚이 다 합쳐서 얼만지 알아⁠?⁠”

솔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몰랐다⁠. 개빈은 고개를 숙여 솔래와 눈을 맞췄다⁠.

“⁠너 여든여덟 날 채우러 왔지⁠? 다 채우면 너는 떠나⁠. 2월에 브리즈번 가고⁠, 시드니 가고⁠, 한국 가겠지⁠. 그때 운해가 이 동네에서 손 떼면 누가 남아⁠? 이분들이 남아⁠. 나도 남아⁠. 운해가 펜로즈네를 못 사고 철수하면⁠, 내 월급은 누가 줘⁠?⁠”

부엌이 조용했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났다⁠. 레 할머니가 칼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개빈⁠, 네 땅이었잖아⁠. 네 아버지가 심은 나무에 지금 운해가 뭘 뿌리는지 알아⁠?⁠”

“⁠압니다⁠, 레 아주머니⁠. 제가 뿌리니까요⁠.⁠” 개빈은 레 할머니에게는 존댓말을 썼다⁠. “⁠냄새 좋다고 빚이 사라지면 저도 안 팔았어요⁠.⁠”

개빈은 솔래에게 다시 몸을 돌렸다⁠.

“⁠하나만 묻자⁠. 1월 31일 지나면 너는 어디 있을 거냐⁠?⁠”

솔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비자 앱의 숫자가 떠올랐다⁠. 여든여덟 날 가운데 마흔여섯 날⁠. 남은 마흔두 날은 1월 말에 끝났다⁠. 끝나면 솔래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솔래는 정하지 않았다⁠.

“⁠여기 있을 거예요⁠.⁠”

“⁠거짓말 하지 마⁠. 너도 모르잖아⁠.⁠”

개빈은 방충망 문을 밀고 나갔다⁠. 문이 스프링 소리를 내며 닫혔다⁠. 한 이웃 농장 주인이 망고를 쥔 채 오래 앉아 있다가⁠, 손녀의 손을 잡고 조용히 일어났다⁠. 다섯 농장이 네 농장이 되었다⁠. 솔래는 떠나는 농장 주인의 망고 상자를 들어 트럭까지 날라 주었다⁠. 트럭이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손을 흔드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밤 열 시⁠, 건조기 옆 작업등 아래에서 무건이 망고를 썰고 있었다⁠. 회관 부엌은 문을 닫았고⁠, 마저 썰어야 할 망고 열 상자를 농장으로 실어 온 참이었다⁠. 솔래가 칼을 들고 맞은편에 앉았다⁠. 무건의 손은 이 주 전과 달랐다⁠. 왼손 검지에 칼에 베인 자리가 두 줄 있었고⁠, 손톱 밑이 망고 물로 노랗게 물들었고⁠, 손바닥에는 터진 물집이 굳어 가고 있었다⁠.

“⁠이제 비누 아니네요⁠.⁠”

“⁠영감님은 아직 비누라고 부르십니다⁠.⁠”

“⁠영감님 눈에는 아직 하얀가 봐요⁠.⁠”

솔래는 건조기에서 꺼낸 망고 한 조각을 무건의 입에 넣어 주었다⁠. 무건이 씹다가 눈을 감았다⁠. 작업등 불빛에 날벌레가 모여들었다⁠. 솔래는 낮에 개빈이 한 질문을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대신 무건에게 물었다⁠.

“⁠무건 씨는 1월 31일 지나면 어디 있을 거예요⁠?⁠”

무건이 칼을 내려놓았다⁠. 대답하려는 순간 건조기에서 삐 소리가 났다⁠. 주홍이 달아 놓은 온도 경보였다⁠. 버터가 짖으며 뛰어갔고⁠, 잠옷 바람의 주홍이 손전등을 들고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62도요⁠! 망고가 육포 돼요⁠!⁠”

주홍이 선풍기를 하나 더 켜는 동안 무건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솔래도 다시 묻지 않았다⁠. 둘은 남은 망고를 말없이 썰었다⁠. 칼이 도마에 닿는 소리가 번갈아 났다⁠. 무건의 칼질은 솔래보다 반 박자 늦었고⁠, 솔래는 일부러 속도를 늦춰 소리를 맞췄다⁠. 열 상자가 다 비었을 때 자정이 넘어 있었다⁠. 무건은 마지막 망고 씨를 손에 쥐고 일어나다가 솔래에게 내밀었다⁠. 씨에 붙은 살이 제일 달다고⁠, 오늘 레 할머니에게 배운 말이었다⁠. 솔래는 씨를 받아 들고 무건이 계단을 오르는 소리를 들었다⁠.

이튿날 아침⁠, 회관 정문에 전단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운해의 붉은 구름 무늬 아래 영어와 한국어로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운해식품 마리바 마을 설명회 — 12월 23일 저녁 일곱 시⁠, 마리바 마을 회관⁠. 마을의 내일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바비큐 무료⁠」

주홍이 전단 앞에서 오래 서 있다가 중얼거렸다⁠.

“⁠무료래요⁠.⁠”

솔래는 전단을 떼지 않았다⁠. 떼어 봐야 내일 또 붙을 것이었다⁠. 대신 휴대전화로 전단을 찍어 무건에게 보냈다⁠. 답장은 한참 뒤에 왔다⁠. 「⁠갈게요⁠.⁠」 무건의 메시지에는 늘 마침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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