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94자)

쌀 한 말

기루 문지기가 된 소림 땡중 · 류청산

아이 열넷이 하루에 먹는 미음은 쌀 두 되였다⁠. 기녀 열둘과 부엌 식구 다섯이 먹는 밥이 쌀 일곱 되⁠. 홍월루에는 쌀이 사흘 치 남아 있었다⁠. 국숫집 밀가루는 진작 떨어졌고⁠, 두부 장수 과부는 콩이 떨어지기 전에 두부 값을 반만 받겠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이 고마워서 오히려 셈이 더 무거워졌다⁠.

혜각이 바리때를 들고 대문을 나섰다⁠. 얼굴 반이 아직 보랏빛으로 부어 있었다⁠. 오른눈은 실처럼 가늘게만 떠졌다⁠. 대문 계단 아래 앉아 있던 혜명이 혜각을 올려다봤다⁠.

“⁠어디 가느냐⁠?⁠”

“⁠탁발이요⁠.⁠”

“⁠그 얼굴로⁠?⁠”

“⁠이 얼굴이라 잘 나올 겁니다⁠.⁠”

나는 혜각을 따라 나섰다⁠. 행수가 문지기 탁발을 따라다니는 꼴을 운하 거리 사람들이 다 봤다⁠. 내가 이날 따라나선 까닭은 하나였다⁠. 혜각이 무엇을 얻어 오는지 셈을 해야 했다⁠.

*

첫 집은 고깃간이었다⁠. 혜각은 고깃간 문 앞에 서서 합장했다⁠.

“⁠나무아미타불⁠. 고기 시주 받습니다⁠.⁠”

고깃간 주인이 칼을 든 채로 굳었다⁠. 중이 고기를 달라는 소리는 처음 들었을 것이다⁠. 혜각은 부은 얼굴로 웃었다⁠. 웃으니 더 무서웠다⁠.

“⁠아이들 미음에 뼈 국물을 내려고요⁠. 살은 안 주셔도 됩니다⁠. 뼈만⁠.⁠”

주인은 한참 혜각의 얼굴을 보다가 돼지 등뼈 한 꾸러미를 연잎에 싸서 바리때 위에 얹었다⁠. 그리고 우리가 몇 걸음 가지 않았을 때 다시 불러 세우더니 비계 한 덩이를 더 얹었다⁠.

“⁠그건 스님 몫이오⁠. 얼굴이 그래 가지고는⁠.⁠”

혜각이 깊이 합장했다⁠. 비계를 받을 때 혜각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을 나는 봤다⁠.

두 번째 집은 술집이었다⁠. 혜각은 거기서도 합장했다⁠. 공양주를 받는다고 했다⁠. 술집 주인이 바가지로 물을 끼얹었다⁠. 혜각은 젖은 채로 세 번째 집으로 갔다⁠. 비단 가게였다⁠. 첫날 밤 대문 앞에서 아내가 보낸 사람이냐고 묻고 돌아갔던 이 비단 가게 주인이 짜투리 천을 한 아름 안고 나왔다⁠.

“⁠애들 겨울옷이나 지으시오⁠. 그리고 행수⁠.⁠”

“⁠네⁠.⁠”

“⁠우리 집에도 하나 보내시오⁠. 여자애로⁠. 우리 마누라가 딸 하나 키워 보는 게 소원이었소⁠.⁠”

나는 이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를 하나 맡기는 일과 아이를 하나 주는 일은 말이 비슷했다⁠. 내가 망설이는 것을 보고 비단 가게 주인이 손을 저었다⁠.

“⁠사겠다는 게 아니오⁠. 겨울 동안만⁠. 봄 되면 행수가 데려가시오⁠. 쌀값은 내가 대겠소⁠.⁠”

그래서 이날부터 아이들이 운하 거리로 흩어졌다⁠. 비단 가게에 하나⁠, 국숫집 할멈한테 둘⁠, 두부 장수 과부한테 하나⁠, 고깃간에 하나⁠. 고깃간 주인은 사내아이를 달라고 했는데 칼질을 가르칠 생각이었다고 했다⁠. 나는 칼질은 봄까지 미루라고 했다⁠. 집집에 보낼 때마다 나는 이 집 부엌을 들여다봤다⁠. 쌀독이 얼마나 찼는지⁠, 아궁이에 불이 있는지⁠, 이 집 사람이 밥을 어떻게 먹는지⁠. 고깃간 주인은 밥을 국에 말아 세 숟갈에 먹었다⁠. 이 사람은 배고픈 걸 오래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이도 굶기지 않을 것이었다⁠.

아이들 이름은 묻지 않았다⁠. 다들 이름이 있었지만 나는 별명으로 불렀다⁠. 주근깨⁠, 맨발이⁠, 콧물이⁠, 짝눈이⁠. 다락에서 연홍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가장 작은 아이는 노래라고 불렀다⁠. 이름을 알면 정이 들고⁠, 정이 들면 셈이 흐려진다⁠.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비단 가게 짜투리 천으로는 연홍과 금란이 아이들 겨울 저고리를 지었다⁠. 대청 술상을 밀어 놓고 바닥에 천을 펼쳐⁠, 손님 받을 시간까지 바늘을 놀렸다⁠. 혜각이 실 감는 일을 맡았다⁠. 두 팔을 벌리고 앉아 실타래를 걸고 있으면 금란이 이 실을 풀어 감았는데⁠, 혜각의 팔이 자꾸 내려갔다⁠. 졸아서였다⁠.

“⁠스님⁠, 팔⁠.⁠”

“⁠나무아미타불⁠.⁠”

“⁠그거 하면 팔이 올라가요⁠?⁠”

혜각의 팔이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내려갔다⁠. 금란이 실 끝으로 혜각의 콧구멍을 간질였다⁠. 혜각이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실타래가 대청 저쪽까지 굴러갔고⁠, 아이 셋이 이걸 쫓아 뛰었다⁠. 연홍은 웃느라 바늘에 손가락을 찔렀다⁠. 손가락을 입에 물고 혜각을 흘겨보았는데⁠, 혜각은 이 눈을 피해 실타래를 주우러 갔다⁠. 나는 이 둘을 보다가⁠, 바늘을 쥔 연홍의 손끝이 혜각의 소매 쪽으로 자꾸 기울어지는 것을 셈 안에 넣어 두었다⁠.

*

탁발에서 얻은 것은 뼈 한 꾸러미와 비계 한 덩이⁠, 천 한 아름⁠, 그리고 동전 마흔세 닢이었다⁠. 겨울을 나려면 쌀이 있어야 했다⁠. 나는 열여덟 해 동안 모은 돈 가운데 남은 것을 전대에 넣고⁠, 거리에서 가장 큰 쌀가게로 갔다⁠. 사흘 전 혜각이 이 앞에서 한 시진 염불을 외던 이 가게였다⁠.

가게 안에 반여혁이 앉아 있었다⁠.

계산대 앞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쌀가게 주인이 따라 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부채는 접어서 무릎 위에 놓았다⁠. 반여혁은 나를 보고 반갑게 웃었다⁠.

“⁠금 행수⁠, 쌀 사러 오셨소⁠?⁠”

“⁠방주님도 쌀 사러 오셨나 봐요⁠.⁠”

“⁠나는 다 샀소⁠.⁠”

쌀가게 주인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천장까지 쌓인 쌀가마에 붉은 끈이 둘러져 있었다⁠. 임자가 있다는 표시였다⁠.

“⁠다는 아니겠지요⁠. 저 구석에 몇 가마 남았는데⁠.⁠”

“⁠그것도 지금 살 참이었소⁠.⁠” 반여혁이 쌀가게 주인을 봤다⁠. “⁠주인장⁠, 저 구석 것까지 시세 두 배로 치겠소⁠.⁠”

나는 전대를 계산대 위에 풀었다⁠. 은 스무 냥과 동전 꾸러미⁠.

“⁠나는 세 배요⁠. 한 가마만⁠.⁠”

“⁠네 배⁠.⁠” 반여혁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다섯 배⁠.⁠”

“⁠열 배⁠.⁠”

나는 전대를 내려다봤다⁠. 은 스무 냥으로는 쌀 한 가마를 열 배로 살 수 없었다⁠. 반여혁이 웃었다⁠. 웃을 때 쌀가게 안에 묵은 쌀겨 냄새가 한층 진해지는 것 같았다⁠.

혜각이 가게 문간에 서 있었다⁠. 계산대가 아니라 가게 안쪽 쌀가마들을 보고 있었다⁠. 붉은 끈이 둘린 가마 하나의 아랫단⁠, 터진 자루 귀퉁이를⁠. 거기 둥근 무늬가 불에 지져져 있었다⁠. 이 무늬를 오래 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품에 손을 넣었다⁠. 비단에 싼 것이 손에 닿았다⁠. 꺼내서 계산대 위에 풀었다⁠.

금비녀였다⁠. 머리 쪽에 매화 한 송이를 새긴⁠, 손가락 한 뼘 길이의 비녀⁠. 열여덟 해 동안 한 번도 꽂지 않아서 금빛이 처음 산 날 그대로였다⁠.

“⁠가마로는 안 사요⁠. 한 말만⁠. 이걸로⁠.⁠”

쌀가게 주인이 비녀를 보고 나를 봤다⁠. 주인은 이 가게에서 전당도 잡았다⁠. 이 비녀가 쌀 한 말 값의 몇 곱인지 주인은 알았다⁠. 주인의 손이 비녀 쪽으로 갔다가 반여혁 쪽을 보고 멈췄다⁠.

반여혁은 비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매화 꽃잎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더니 쌀가게 주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팔아도 좋소⁠, 주인장⁠. 쌀 한 말 정도야⁠.⁠” 반여혁이 부채를 폈다⁠. “⁠그 비녀는 내가 사겠소⁠. 주인장이 행수한테 쳐준 값의 두 배로⁠.⁠”

쌀가게 주인이 쌀 한 말을 됫박으로 퍼서 자루에 담았다⁠. 됫박이 쌀을 긁는 소리가 길었다⁠. 나는 비녀가 계산대 위에서 반여혁의 손으로 건너가는 것을 봤다⁠. 반여혁은 비녀를 소매에 넣지 않았다⁠. 부채 살 사이에 끼워 두고⁠, 부채를 접었다⁠.

혜각이 쌀자루를 어깨에 졌다⁠. 반 자루도 안 되는 쌀이 혜각의 어깨 위에서 아주 작아 보였다⁠.

*

돌아오는 길에 혜각이 물었다⁠. 이 비녀가 무엇이었냐고⁠. 나는 대답하지 않으려다⁠, 쌀자루 무게에 맞춰 혜각의 걸음이 느려지는 것을 보고 말했다⁠.

“⁠스무 해 전에도 기근이 들었어⁠. 북쪽에⁠. 우리 집에서 남동생이 팔려 갔어⁠. 여덟 살이었고⁠, 쌀 한 말 반 받았어⁠. 키가 작아서⁠.⁠”

혜각의 걸음이 멈췄다⁠. 주근깨의 오빠가 한 말 반에 팔렸다는 이야기를⁠, 혜각도 다락에서 들었다⁠.

“⁠나는 그다음 해 소주에 와서 기루 부엌일부터 했어⁠. 스물두 살에 비파를 배웠고⁠. 처음 번 돈으로 저걸 샀어⁠. 동생 찾으면 머리에 꽂고 만나려고⁠. 누나가 잘 산다고 보여 주려고⁠. 그런데 못 찾았어⁠. 열여덟 해 동안 운하로 오는 배마다 물어봤는데⁠.⁠”

“⁠그래서 한 번도 안 꽂으셨습니까⁠?⁠”

“⁠찾으면 꽂으려고 산 거니까⁠.⁠”

혜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염불도 하지 않았다⁠. 쌀자루를 다른 쪽 어깨로 옮겨 지고 다시 걸었다⁠. 다리를 건널 때⁠, 말했다⁠.

“⁠쌀 한 말이면 다락의 애들 닷새를 먹입니다⁠. 미음으로 끓이면 이레⁠.⁠”

“⁠알아⁠.⁠”

“⁠한 말 반이면 열흘이고요⁠.⁠”

나는 혜각의 등을 한 대 쳤다⁠. 쌀자루가 출렁였다⁠. 혜각은 이후로 비녀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

대문에 와 보니 혜명 곁에 맨발이가 앉아 있었다⁠. 혜명과 똑같이 등을 꼿꼿이 세우고⁠, 손에 염주 대신 삼봉이 준 마른 대추를 꿴 실을 감고⁠, 눈을 감고 있었다⁠. 혜명은 이 아이를 쫓지 않았다⁠. 아이가 자세가 무너지면 손가락 하나로 등을 툭 쳐서 다시 세웠다⁠.

“⁠스님⁠, 저 아이 데려가시게요⁠?⁠” 내가 물었다⁠.

“⁠소림은 아이를 사지 않소⁠.⁠”

“⁠안 사고 데려가시면요⁠?⁠”

혜명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추 실을 감은 맨발이 손이 혜명의 무릎 위에 얹혀 있었는데⁠, 이 손을 치우지 않았다⁠.

이날 저녁 삼봉이 고깃간 등뼈로 국물을 냈다⁠. 뼈를 한 번 데쳐 핏물을 버리고⁠, 다시 찬물에 넣어 반나절을 고았다⁠.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자 거기에 쌀 한 줌을 넣어 미음을 쑤었다⁠. 아이들이 이 미음을 받아 들고 냄새부터 맡았다⁠. 고기 냄새였다⁠. 몇 달 만에 맡는 냄새였을 것이다⁠. 콧물이가 한 숟갈 먹고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혜각이 열을 세지 않아도 아이들은 한 숟갈씩 천천히 먹었다⁠. 이제는 아무도 빼앗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숟가락이었다⁠.

비계 한 덩이는 삼봉이 몰래 구워 혜각에게 주었다⁠. 혜각은 부엌 구석에서 이것을 먹으려다 문간의 혜명을 봤다⁠. 구운 비계를 반으로 갈라 하나를 연잎에 싸서 들고 대문으로 나갔다⁠. 혜명 앞에 쪼그려 앉아 연잎을 내밀었다⁠.

“⁠사형⁠, 열다섯 해 전 고기요⁠. 비계 붙은 걸로⁠.⁠”

혜명이 연잎을 내려다봤다⁠. 한참을 내려다봤다⁠.

“⁠나는 계율을 지킨다⁠.⁠”

“⁠압니다⁠. 그러니 냄새만 맡으십시오⁠. 빚은 그걸로 갚은 걸로 치겠습니다⁠.⁠”

혜명은 연잎을 받지 않았다⁠. 혜각은 이것을 혜명 무릎 옆 돌바닥에 두고 들어왔다⁠. 밤에 내가 대문을 닫으러 나갔을 때 연잎은 이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펼쳐진 채로⁠, 비어 있었다⁠. 맨발이 입가에 기름이 묻어 있었다⁠. 혜명은 눈을 감고 있었다⁠.

*

이경 무렵 대문 앞에 짐꾼들이 왔다⁠. 다섯이었다⁠. 맨 앞에 곰배팔이 섰다⁠. 굽은 팔에 짐 지는 작대기를 걸치고 있었다⁠.

“⁠춘복이 나오라 해⁠.⁠”

혜각이 나갔다⁠. 부은 얼굴이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곰배팔이 이 얼굴을 보고 혀를 찼다⁠.

“⁠은향이라는 아이가 우리 쪽에 말을 넣었다⁠. 나흘 뒤에 북쪽에서 내려오는 배가 조운 나루에 닿는다고⁠. 짐 내리는 건 우리다⁠. 그 배 짐칸에 뭐가 실렸는지⁠, 우리가 모를 줄 알았나 보지⁠.⁠”

“⁠그래서요⁠?⁠”

곰배팔이 뒤의 짐꾼들을 돌아봤다⁠. 다들 굵은 팔을 팔짱 끼고 서 있었다⁠. 이 가운데 하나는 외눈이었다⁠. 쌀뜨물을 뒤집어쓰고 다리 쪽으로 걸어가던 이 외눈이 삼협방 옷을 벗고 짐꾼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배는 우리 손으로 안 내린다⁠.⁠” 곰배팔이 말했다⁠. “⁠열여섯 해 전에 우리는 삯 석 달 치를 못 받고도 짐을 졌다⁠. 이번엔 안 진다⁠. 네가 그날 나 대신 친 주먹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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