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28자)
열아홉 살의 주먹
기루 문지기가 된 소림 땡중 · 류청산
아이는 운하 거리 남쪽 끝, 버드나무 아래 공동묘지에 묻었다. 국숫집 할멈이 관을 짤 판자를 내주었다. 할멈 영감이 생전에 국수 판을 짜려고 사 둔 판자였는데, 아이 하나 누울 관을 짜고도 반이 남았다. 혜각이 이 판자에 못을 박았다. 못 하나에 망치를 세 번씩 내리쳤다. 다 박고 나서 관 뚜껑을 손바닥으로 한 번 쓸었다.
아이 이름은 아무도 몰랐다. 소금 창고에서 이 옆에 앉아 있던 계집아이도 몰랐다. 배에서 처음 만났고, 이 아이는 처음부터 기침만 했다고 했다. 무덤 앞에 세운 나무 막대에는 아무것도 새기지 않았다. 혜각은 이번에는 경을 외지 않았다. 어젯밤에 다 외웠다고 했다.
홍월루 다락은 아이 열넷이 눕기에 좁았다. 다락에 일곱, 연홍 방에 넷, 금란 방에 셋. 금란은 제 방에 아이가 들어오자 화장품 상자부터 장롱 위로 올렸다. 그리고 이날 밤 아이 셋을 이불 위에 앉혀 놓고 손뼉 치기 놀이를 가르치다가 나한테 들켰다. 상 위에는 손님이 금란에게 준 약과 한 접시가 비어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애들이 너무 기가 죽어서요. 손뼉 치면 손이 따뜻해지잖아요.”
“약과는?”
“제 거예요. 손님이 저 먹으라고 준 거.”
금란이 아이들 쪽으로 돌아앉아 다시 손을 내밀었다. 셋이 박자를 놓쳐 서로 손바닥을 엇갈려 치고는 깔깔 웃었다. 소금 창고에서 나온 뒤로 처음 듣는 웃음이었다. 나는 금란을 혼내려다 말았다.
*
이날 밤 나는 삼봉 침상 밑에서 검은 술을 꺼냈다. 삼봉이 석 달을 노려 내기로 땄다는 술이었다. 뒷문 앞 이불 위에서 삼봉이 신음을 했는데, 나는 못 들은 척했다.
혜각은 다 탄 부엌 문턱에 앉아 있었다. 이마의 찢어진 자리에 국숫집 할멈이 준 고약이 붙어 있었다. 나는 이 옆에 앉아 마개를 땄다. 검은 술에서 탄 보리와 감초 냄새가 났다. 한 잔을 따라 내밀었다. 혜각은 이 잔을 받아 들고 오래 냄새만 맡았다.
“스님, 이야기해.”
“무슨 이야기요?”
“어젯밤 그 사람이 한 이야기. 나는 내 집 문지기가 누군지는 알아야겠어. 밥 한 끼 값이라도.”
혜각은 술을 마셨다. 그리고 잔을 내려놓고 운하 쪽을 봤다. 탄 서까래 사이로 별이 보였다.
“열아홉에 저는 서쪽 물목 짐꾼이었습니다. 아비는 모르고, 어미는 제가 열두 살 때 배에서 빨래하다 물에 빠졌고요. 그때 짐꾼들 위에 반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삯을 반장이 받아서 나눠 줬는데, 그해 봄에 석 달을 안 나눠 줬어요. 짐꾼들이 굶었습니다.”
혜각은 잔을 다시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그날 밤 늙은 짐꾼 하나가 반장한테 삯을 달라고 했습니다. 반장이 그 사람 팔을 잡고 나루 기둥에 대고 꺾었어요. 뼈가 바깥으로 꺾였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듣고 반장을 쳤습니다. 한 번요. 주먹으로 턱을.”
혜각이 제 오른손을 펴서 내려다봤다. 솥뚜껑만 한 손이었다. 손등에 소금 튼 자국이 희미하게 있었다. 반여혁이 대청에서 짚어 낸 이 자국이었다.
“반장이 뒤로 넘어가서 나루 끝 배 사이로 떨어졌습니다. 그 밤에 배가 아주 많이 붙어 있었어요. 뱃전과 뱃전 사이로 떨어져서, 물에 들어가니 깜깜했습니다. 저는 뛰어들어서 찾았습니다. 뱃바닥 밑을 손으로 더듬으면서요. 숨이 차서 올라왔다가 다시 들어가고. 못 찾았습니다. 날이 밝고 나서 배 하나를 밀어내니 그 밑에 떠 있었어요.”
나는 술잔을 쥔 채로 있었다. 술이 손바닥 열에 데워지고 있었다.
“팔이 꺾인 늙은 짐꾼이 저더러 도망가라고 했습니다. 반장 뒤에 뱃사람 방회가 있으니 잡히면 너는 운하에 거꾸로 꽂힌다고. 저는 그 밤에 숭산 가는 소금배에 몰래 탔습니다. 소림 산문 앞에서 사흘을 굶고 앉아 있었더니 머리를 깎아 줬어요.”
“그래서 사람을 물에 던지고 다시 건지는구나.”
“그래서 던지면 건집니다.” 혜각이 말했다. 첫날 밤 대문 앞에서 혜각은 이걸 순서라고 했다. 당시에는 우스갯소리로 들렸다. “그날 저는 순서를 못 지켰습니다.”
나는 혜각을 위로하지 않았다.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은 이 반장의 식구뿐이었다. 대신 혜각의 빈 잔에 검은 술을 다시 따랐다. 뒷문 앞에서 삼봉이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는 소리가 났다.
“스님, 그 술 마셔. 영감이 석 달 노린 거래.”
혜각은 마셨다. 삼봉이 이불 속에서 한 번 더 신음했다.
*
이튿날 한낮, 대문 앞에 사내 하나가 왔다. 서른대여섯, 왼쪽 눈이 하얗게 멀어 있었다. 삼협방 뱃사람 옷을 입었고, 등 뒤 길 건너 처마 밑에 삼협방 사내 셋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운하 거리 사람들은 이 사내를 외눈이라고 불렀다. 이 외눈이 대문 계단 아래에서 소리쳤다.
“마춘복! 나와!”
혜명은 여전히 문턱에서 반 걸음 떨어진 돌바닥에 앉아 있었다. 눈을 뜨고 외눈을 봤다. 외눈은 혜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혜각이 계단을 내려갔다. 외눈 앞에 섰다.
“제가 마춘복입니다.”
“우리 형 이름 알아?”
혜각은 이 이름을 말했다.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외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가 그 이름 입에 담지 마.”
외눈의 주먹이 혜각의 얼굴로 들어갔다. 혜각은 손 하나 올리지 않았다.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가 돌아왔다. 두 번째 주먹이 배로 들어갔다. 혜각의 허리가 반으로 접혔다가 펴졌다. 세 번째, 네 번째. 혜각은 손을 소매 속에 넣은 채로 서 있었다.
거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부엌 뒷문에서 삼봉이 뛰어나왔다. 나는 삼봉이 말리러 나온 줄 알았다. 삼봉은 구경꾼들 앞에 서서 손바닥을 펴 들었다.
“자, 걸어! 땡중이 몇 대에 쓰러지나! 열 대 전이면 하나에 둘, 스무 대 넘기면 하나에 다섯!”
“영감!”
내가 소리쳤을 때는 이미 금란이 동전 세 닢을 삼봉 손바닥에 올려놓은 뒤였다. 스무 대 넘긴다에 걸었다. 비단 가게 주인이 열 대 전에 걸었다가, 혜각의 얼굴을 한 번 더 보더니 스무 대로 옮겼다.
열한 대째에 혜각이 무릎을 꿇었다. 쓰러지지는 않았다. 무릎을 꿇은 채 허리를 세웠다. 외눈의 주먹이 혜각의 광대뼈를 쳤고, 혜각의 입술이 터졌고, 피가 승복 앞섶에 떨어졌다. 열다섯 대째에 외눈의 손등이 터졌다. 제 주먹이 깨졌다. 외눈은 피 나는 주먹으로 계속 쳤다. 이제는 치는 사람이 더 많이 울고 있었다.
“쳐! 쳐 봐! 우리 형 친 것처럼 한 번 쳐 보라고!”
“그날 한 번 쳤습니다.” 혜각의 목소리가 입안의 피 때문에 뭉개졌다. “다시는 안 칩니다.”
스무 대째가 들어가려 할 때, 나는 부엌에서 들고 나온 구정물 통을 외눈의 머리 위에 엎었다. 설거지하고 남은 물이었다. 두부 국 건더기와 쌀뜨물이 외눈의 머리에서 어깨로 흘러내렸다. 외눈이 주먹을 든 채로 굳었다. 구경꾼들이 한 걸음씩 물러났다.
“우리 집 문 앞에서 피 흘리면 청소는 누가 하는데?”
외눈이 나를 노려봤다. 하나 남은 눈이 쌀뜨물에 젖어 깜박였다. 삼봉이 손바닥의 동전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판이 무효라고.
이때 구경꾼들 사이에서 누가 나왔다. 왼팔이 팔꿈치에서 바깥으로 굽은 늙은 짐꾼이었다. 짐꾼들은 이 짐꾼을 곰배팔이라고 불렀다. 곰배팔은 외눈 앞에 서서 굽은 팔을 들어 보였다. 팔꿈치가 잘못 붙어서 팔이 활처럼 휘어 있었다.
“이거 네 형이 꺾은 거다.” 곰배팔이 말했다. “열여섯 해 전 그 밤에. 석 달 치 삯을 달랬다고. 이놈은 그걸 보고 네 형을 쳤다.”
외눈의 입이 벌어졌다. 외눈은 곰배팔의 팔을 보고, 무릎 꿇은 혜각을 보고, 제 터진 주먹을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 외눈은 돌아섰다. 길 건너 처마 밑의 삼협방 사내들 쪽으로 가지 않고, 다리 쪽으로 혼자 걸어갔다. 머리에서 쌀뜨물이 뚝뚝 떨어졌다.
혜명이 그제야 일어섰다. 무릎 꿇은 혜각 앞으로 와서 내려다봤다. 혜각의 얼굴은 반이 부어올라 있었다.
“그래서 안 쳤구나. 산에서 십육 년 동안 대련할 때마다.”
“사형은 이제 아셨습니까?”
“이제 알았다.” 혜명이 손을 내밀었다. 혜각이 이 손을 잡고 일어섰다. 혜명은 혜각을 일으켜 세우고는 손을 놓고, 다시 문턱 반 걸음 앞으로 돌아가 앉았다. “그래도 첫눈은 첫눈이다.”
삼봉은 이날 판돈을 다 돌려주었다. 금란만 끝까지 받지 않았다. 스무 대를 다 못 채웠어도 땡중은 안 쓰러졌으니 자기가 이긴 거라고 우겼다.
*
이날 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혜각이 맞는 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 물 먹은 솜을 방망이로 치는 것 같은 소리. 부엌 뒷문으로 나가 돌계단 위에 섰다. 삼봉은 뒷문 앞 이불 속에서 코를 골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문이 되겠다던 사내가.
뒷나루에 사람이 있었다. 나루 끝에 쪼그려 앉아 물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물 위에 작은 배가 하나 붙어 있었고, 배에 탄 사내가 뭔가를 묻고 있었다. 나루 위의 사람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작았다. 은향이었다.
나는 돌계단을 내려갔다. 판자가 내 발밑에서 삐걱했다. 배가 먼저 알아챘다. 노가 물을 한 번 크게 밀어 배가 어둠 속으로 빠져나갔다. 은향이 돌아섰다. 등잔 없이도 이 아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게 보였다.
“누구야?”
은향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이 아이의 손목을 잡았다. 가늘었다. 스무 살 손목이 그렇게 가는 줄 몰랐다.
“삼봉 영감이 삼협방 노름판에 간 거. 영감이 노름 좋아한다고 일러 준 것도 너지? 다락에 애들 있는 것도.”
은향의 무릎이 꺾였다. 이 아이는 나루 판자 위에 주저앉아 울었다. 소리를 안 내고 울었다. 그렇게 우는 법은 어디서 배우는지 나는 안다. 소리를 내면 맞는 데서 배운다.
은향의 남동생이 두 달 전에 팔렸다고 했다. 고향 마을에 거간이 왔을 때, 은향이 홍월루에서 보내던 돈으로는 쌀 두 말을 못 샀다. 동생은 열두 살이었다. 삼협방 사람이 은향을 찾아와, 홍월루 일을 일러 주면 동생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동생은 아직 소주 어딘가의 창고에 있다고 했다.
“어느 창고?”
“몰라요. 안 가르쳐 줘요. 일러 줄 때마다 동생이 아직 살아 있다고만 해요.”
나는 은향의 손목을 놓았다. 셈을 했다. 이 아이를 내보내면 홍월루 안의 눈 하나가 준다. 이 아이를 두면 반여혁의 눈 하나가 그대로 있다. 이 아이를 내보내면, 이 아이는 동생을 찾을 끈이 없다.
“오늘 저 배에 뭐라고 했어?”
“스님이 많이 다쳤다고요.” 은향이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저 사람이 말해 줬어요. 닷새 뒤에 북쪽에서 큰 배가 내려온대요. 조운 나루로. 나라 곡식배가 닿는 그 나루요. 이번엔 애들이 아주 많대요.”
나는 나루 위에 은향과 나란히 앉았다. 운하 물이 말뚝에 부딪혀 찰랑댔다. 한참 뒤에 내가 말했다.
“너는 내일도 그 배에 일러. 다만 이제부터는 내가 일러 주는 것만.”
은향이 고개를 들었다. 눈물에 젖은 얼굴이 무슨 말인지 몰라 멍했다. 나는 이 아이 치맛자락에 묻은 나루 판자의 물기를 털어 주었다.
“동생은 우리가 찾아. 너는 그동안 저쪽이 너를 계속 믿게만 해. 할 수 있지?”
은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끄덕이고, 다시 한 번 끄덕였다. 집 앞쪽 대문 옆 문간방에서 혜각이 돌아눕는 소리가 났다. 부은 얼굴을 베개에 대면 아플 텐데, 끙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