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37자)

소금 창고

기루 문지기가 된 소림 땡중 · 류청산

서쪽 물목은 냄새부터 짰다⁠. 소주 성 서문 밖에서 운하가 세 갈래로 갈리는 자리⁠, 물이 넓게 고였다가 다시 나뉘는 이 언저리에 창고들이 등을 맞대고 앉아 있었다⁠. 맨 바깥 줄이 소금 창고였다⁠. 바닷가에서 배로 올라온 소금이 거기서 자루째 쌓였다가 다시 배로 북쪽에 올라갔다⁠. 바람이 창고 쪽에서 불어오면 입술에 하얀 가루가 앉았고⁠, 혀를 대면 짰다⁠. 늦가을 밤인데도 공기가 혀끝을 쏘았다⁠.

혜각은 거룻배를 창고 뒤 갈대숲에 대고 기다렸다⁠. 나는 혼자 창고 앞 나루로 걸어갔다⁠. 한 손에 매실주⁠, 한 손에 고량주⁠.

창고지기는 쉰쯤 된 홀아비였다⁠. 홍월루에 오면 늘 여아홍을 한 잔 시켜 놓고 반 시진을 홀짝였고⁠, 술값을 낼 때는 동전을 한 닢씩 세면서 손을 떨었다⁠. 창고 문 앞 화로 곁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벌떡 일어섰다⁠.

“⁠금 행수가 여긴 웬일이오⁠?⁠”

“⁠우리 부엌이 탄 거 들었죠⁠? 술이 다 깨져서 남은 걸 단골들한테 돌리러 다녀요⁠. 버리기 아까워서⁠.⁠”

“⁠오늘은 안 되오⁠. 오늘은 창고에 짐이 들어 있어서⁠.⁠”

“⁠짐이야 소금이지⁠. 소금이 도망가요⁠?⁠”

창고지기가 웃다가 말았다⁠. 나는 창고지기의 화로 곁에 앉아 매실주 마개를 땄다⁠. 새콤한 냄새가 짠 공기 사이로 번졌다⁠. 창고지기의 코가 움직였다⁠.

“⁠내기 하나 해요⁠.⁠” 내가 말했다⁠. “⁠한 잔씩 번갈아 마시고⁠, 먼저 잔 내려놓는 사람이 지는 거⁠. 내가 지면 이 고량주도 두고 가고⁠, 아저씨가 지면 다음에 우리 집에서 외상 한 번 갚아요⁠.⁠”

“⁠행수가 술로 나를 이기겠다고⁠?⁠”

“⁠나는 열여덟 해 동안 남이 마시는 걸 보기만 했어요⁠. 오늘은 한번 마셔 보려고⁠.⁠”

거짓말이었다⁠. 나는 열여덟 해 동안 손님들이 따라 주는 술을 다 받아 마셨다⁠. 손님은 기루 여자가 취하는 걸 보려고 술을 따르고⁠, 기루 여자는 손님이 먼저 취하는 걸 보려고 받는다⁠. 이 내기는 늘 여자가 이긴다⁠. 손님은 이걸 열 번 지고도 모른다⁠.

창고지기는 매실주 일곱 잔과 고량주 다섯 잔에서 잔을 내려놓았다⁠. 정확히는 잔을 쥔 채로 화로 옆에 모로 누웠다⁠. 나는 창고지기의 허리춤에서 열쇠 꾸러미를 풀었다⁠. 마지막 잔이 내 목을 넘어갈 때 혀가 얼얼했는데⁠, 이게 소주 탓인지 짠 바람 탓인지는 모르겠다⁠.

갈대숲 쪽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혜각이 소리 없이 나왔다⁠. 쓰러진 창고지기를 내려다보고 나를 봤다⁠.

“⁠행수님⁠, 이 사람 일곱 잔 마셨습니까⁠?⁠”

“⁠매실주 일곱에 고량주 다섯⁠.⁠”

“⁠행수님은요⁠?⁠”

“⁠같이⁠.⁠”

혜각이 합장했다⁠. 내게 하는 합장 가운데 가장 깊은 합장이었다⁠.

*

창고 문은 안에서 빗장이 하나 더 걸려 있었다⁠. 혜각이 문틈에 손을 넣어 빗장을 들어 올렸다⁠. 문이 열리자 소금 냄새가 벽처럼 밀려 나왔고⁠, 이 냄새 뒤에서 다른 냄새가 났다⁠. 오줌과 땀과 오래 씻지 못한 몸의 냄새⁠.

등잔을 들고 들어갔다⁠. 소금 자루가 사람 키 두 배로 쌓인 사이로 통로가 하나 나 있었고⁠, 발밑에서 흘린 소금이 서걱서걱 밟혔다⁠. 자루를 열두 줄쯤 지나자 통로 끝에 빈자리가 나왔고⁠, 거기 아이들이 있었다⁠. 한 줄로 앉아 있었다⁠. 새끼줄 하나가 아이들 오른 손목을 차례로 감고 지나가 맨 끝에서 기둥에 묶여 있었다⁠. 다락의 세 아이 손목에 있던 자국이 거기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등잔 불빛이 닿자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맞을 때 하는 자세였다⁠.

혜각이 무릎을 꿇었다⁠. 등잔을 제 얼굴 가까이 들어 아이들에게 얼굴을 보여 주었다⁠. 밤송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과 둥근 코⁠.

“⁠문지기다⁠. 오늘 문 열어 주러 왔다⁠.⁠”

아이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혜각의 승복 냄새를 맡더니 말했다⁠.

“⁠스님인데 왜 고기 냄새 나요⁠?⁠”

“⁠아까 저녁에 몰래 먹었다⁠. 너희도 나가면 먹을 수 있다⁠. 몰래⁠.⁠”

아이 서넛이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숨이 터지는 소리였다⁠. 혜각은 새끼줄 매듭을 손가락으로 풀기 시작했다⁠. 젖은 새끼줄은 단단하게 조여 있었다⁠. 이로 매듭을 물어 당겼다⁠. 소금이 밴 새끼줄을 이로 물 때마다 혜각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나는 머리에서 은비녀를 뽑아 다른 쪽 매듭을 쑤셨다⁠. 손목에서 줄이 풀린 자리마다 살갗이 벗겨져 있었고⁠, 거기 소금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줄이 풀릴 때 울지 않았다⁠. 소금이 상처에 닿을 때 울었다⁠.

열둘이었다⁠. 열하나가 움직였다⁠.

맨 끝⁠, 기둥 바로 옆에 앉은 아이가 움직이지 않았다⁠. 일고여덟 살 된 사내아이였다⁠. 앞 아이 등에 이마를 대고 앉은 채였다⁠. 혜각이 이 아이의 손목에서 줄을 풀었다⁠. 손목이 혜각의 손바닥 위에서 굽혀지지 않았다⁠. 차가웠다⁠.

옆에 앉아 있던 계집아이가 말했다⁠. 이 애는 어젯밤부터 말을 안 했어요⁠. 기침을 많이 했어요⁠. 배에서부터⁠.

혜각은 이 아이를 안아서 내렸다⁠. 소금 자루 위에 제 겉옷을 벗어 깔고⁠, 이 위에 눕혔다⁠. 아이 눈이 반쯤 떠 있었다⁠. 혜각은 엄지로 아이 눈꺼풀을 내렸다⁠. 한 번에 내려가지 않아서 두 번 쓸었다⁠.

그리고 경을 외기 시작했다⁠.

나는 혜각이 염불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손님을 맞을 때⁠, 취객을 내보낼 때⁠, 거짓말할 때⁠, 쌀가게 앞에서 빈 바리때 자리에 대고⁠. 이날 밤의 경은 이 어느 것과도 달랐다⁠. 소리가 낮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중간에 틀리지 않았다⁠. ‘⁠이 새끼⁠’ 같은 말은 한 번도 섞이지 않았다⁠. 죽은 이를 보내는 경이라고 했는데⁠, 나는 이 뜻을 하나도 몰랐다⁠. 다만 혜각이 이 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외는 동안 아이 열하나가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는 것만 안다⁠. 소금 자루 사이에서 등잔불이 흔들렸고⁠, 경 소리가 소금에 먹혀 멀리 가지 않았다⁠.

경이 끝나자 혜각은 겉옷으로 아이를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살아 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 아이도 같이 간다⁠. 한 사람도 두고 안 간다⁠.⁠”

나는 아이들 얼굴을 하나씩 봤다⁠. 주근깨를 닮은 사내아이가 있는지⁠. 버들목에서 왔다는 아이가 둘 있었다⁠. 키 작은 사내아이를 아느냐고 물었다⁠. 한 말 반에 팔린⁠, 주근깨 있는 누나가 있는 아이⁠. 한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애는 먼저 떠난 배에 탔다고 했다⁠. 남쪽으로⁠. 열흘도 더 됐다고 했다⁠.

*

창고를 나오는데 통로 입구에 사내 넷이 서 있었다⁠. 창고 뒤 숙소에서 자던 삼협방 사람들이었다⁠. 창고지기가 화로 옆에서 코를 고는 소리에 깨지 않았다가⁠, 아이들이 통로를 지나는 발소리에 깼다⁠.

혜각은 죽은 아이를 내게 안겼다⁠. 가벼웠다⁠. 겉옷에 싸인 몸이 내 팔 안에서 소금 자루보다 가벼웠다⁠. 나는 이 무게를 오래 잊지 못했다⁠.

통로가 좁아서 사내들은 한 번에 하나씩밖에 못 들어왔다⁠. 혜각은 통로 한가운데 섰다⁠. 첫 사내가 칼을 뽑기도 전에 옆에 쌓인 소금 자루 하나를 끌어내려 사내에게 안겼다⁠. 사람만 한 자루였다⁠. 사내가 자루를 안고 뒤로 넘어지면서 뒷사람 둘을 깔았다⁠. 네 번째가 이 위로 넘어오며 몽둥이를 휘둘렀고⁠, 혜각은 몽둥이를 이마로 받았다⁠. 쿵 소리가 났다⁠. 이마가 찢어져 피가 눈썹으로 흘렀다⁠. 혜각은 이 사내의 손목을 잡아 비틀어 몽둥이를 빼앗고⁠, 이 몽둥이를 반으로 꺾어 통로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무아미타불⁠. 소금 자루 밑에서 나오지 마십시오⁠. 거기가 제일 안전합니다⁠.⁠”

사내들은 정말로 나오지 않았다⁠.

창고 문간에서 화로 옆에 누운 창고지기가 눈을 반쯤 떴다⁠. 아이들이 줄지어 제 다리 옆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도 이게 무엇인지 몰랐다⁠. 나를 올려다보며 혀 꼬인 소리로 물었다⁠.

“⁠행수⁠, 내가 졌소⁠?⁠”

“⁠졌어요⁠. 외상 한 번 갚으세요⁠.⁠”

“⁠그러니까 내가 진 거면⁠, 내가 갚는 거요⁠, 행수가 갚는 거요⁠?⁠”

“⁠아저씨가요⁠.⁠”

“⁠그거 이상한데⁠.⁠” 창고지기는 한참 생각하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이상한데 맞는 것 같소⁠.⁠”

혜각이 남은 고량주 한 병을 창고지기 품에 안겨 주었다⁠. 깨시면 해장하시라고 했다⁠. 창고지기는 눈을 감은 채 병을 끌어안고 웃었다⁠. 나중에 들으니 이튿날 삼협방에 매를 맞고 창고 일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이 사람이 홍월루에 외상을 갚으러 온 것은 같은 해 겨울이 다 가서였다⁠.

*

창고 앞 나루에 나오자 등불이 있었다⁠. 아까는 없던 등불이었다⁠. 스물이 넘었다⁠. 물결 세 줄이 그려진 등이 나루를 반달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었고⁠, 이 한가운데 반여혁이 서 있었다⁠. 부채를 펴서 가슴 앞에 들고⁠. 쇠갈고리가 부목 댄 손을 품에 넣은 채 이 옆에 있었다⁠.

아이들이 내 치맛자락 뒤로 몰려들었다⁠. 열하나가 한꺼번에 매달리니 치마가 뒤로 당겨져 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 혜각이 이 앞으로 나섰다⁠. 이마에서 흐른 피가 턱까지 내려와 있었다⁠.

“⁠금 행수⁠.⁠” 반여혁이 웃었다⁠. “⁠술로 우리 창고지기를 눕혔다고 들었소⁠. 그 사람 술 약한 거야 운하 사람 다 아는데⁠, 행수가 그걸 써먹을 줄은 몰랐소⁠.⁠”

“⁠방주님 술은 약한가요⁠?⁠”

“⁠나는 술에 안 취하오⁠. 술값에 취하지⁠.⁠”

이때 둑 위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 보니 둑 위에 그림자들이 늘어서 있었다⁠. 밤일 하던 짐꾼들이었다⁠. 서쪽 물목은 밤에도 배가 닿았고⁠, 짐꾼들은 등불도 없이 어둠 속에서 짐을 졌다⁠. 누군가 창고 쪽에서 아이들 소리가 난다고 했을 것이다⁠. 짐꾼들이 하나둘 짐을 내려놓고 둑 위로 올라와 서 있었다⁠. 손에 짐 지는 작대기를 든 채로⁠. 열이 넘었다⁠. 이 가운데 왼팔이 바깥으로 굽은 늙은 짐꾼이 있었다⁠. 장에서 돌아오던 날 다리 아래에서 혜각을 춘복이라 부르던 이 사람이었다⁠.

반여혁이 둑 위를 올려다봤다⁠. 부채를 한 칸 접었다⁠.

“⁠이 아이들 값으로 쌀 스물네 말이 나갔소⁠.⁠” 반여혁은 혜각을 보고 말했다⁠. “⁠스님⁠, 그 쌀은 누가 갚으시오⁠?⁠”

“⁠제가 갚겠습니다⁠. 염불로⁠.⁠”

“⁠염불로 쌀이 나오오⁠?⁠”

“⁠오늘 밤엔 아이가 나왔지요⁠.⁠”

반여혁이 웃었다⁠. 혜각이 내게 안긴 겉옷 꾸러미를 봤다⁠. 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아는 얼굴이었다⁠. 이 얼굴에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았다⁠.

“⁠가져가시오⁠. 어차피 다시 사면 되오⁠. 올해 북쪽엔 아이가 많소⁠. 쌀은 적고⁠.⁠”

반여혁은 등불들에게 손짓했다⁠. 반달 모양으로 둘러섰던 등불이 한쪽을 열었다⁠. 우리가 거룻배로 갈 길이었다⁠.

혜각이 아이들을 앞세워 이 길로 걸었다⁠. 나는 꾸러미를 안고 뒤를 따랐다⁠. 반여혁 곁을 지나칠 때 혜각을 불렀다⁠. 낮은 목소리였는데⁠, 둑 위의 짐꾼들까지 다 들릴 만큼 또렷했다⁠.

“⁠마춘복⁠.⁠”

혜각이 걸음을 멈췄다⁠.

“⁠열여섯 해 전 늦봄⁠, 이 나루에서 짐꾼 반장 하나가 물에 빠져 죽었소⁠. 열아홉 먹은 짐꾼 놈이 주먹 한 번으로 쳐서 빠뜨렸지⁠. 그놈은 그 밤에 사라졌소⁠. 숭산으로 갔다는 소문이 있었고⁠.⁠” 반여혁이 부채를 다 접었다⁠. “⁠그 반장 자리를 이튿날 내가 받았소⁠. 그게 내 첫 나루였지⁠. 자네 덕분이오⁠. 인사가 늦었소⁠.⁠”

둑 위의 짐꾼들이 웅성거렸다⁠. 굽은 팔의 늙은 짐꾼만 소리를 내지 않았다⁠.

혜각은 돌아보지 않았다⁠. 등을 반여혁에게 둔 채로 서 있었다⁠. 이마에서 흐른 피가 턱 끝에 맺혀 나루 판자에 한 방울 떨어졌다⁠. 이 자리에서 손을 모았다가⁠, 모으지 못하고 다시 풀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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