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52자)

사형이 왔다

기루 문지기가 된 소림 땡중 · 류청산

혜각은 왼팔에 감은 천을 승복 소매로 덮고 대문으로 나왔다⁠. 돌계단 위에서 아래에 선 사내를 내려다봤고⁠, 사내는 삿갓을 벗어 옆구리에 끼고 혜각을 올려다봤다⁠. 둘 사이에 계단 다섯 칸이 있었다⁠. 나는 대문 기둥 뒤에서 두 사람을 번갈아 봤는데⁠, 둘 다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침묵이 길어지는 동안 운하 거리에서 아침 장을 보러 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걸음을 멈췄다⁠.

기루 대문 앞에 중이 둘이었다⁠. 하나는 피 묻은 승복에 머리가 밤송이였고⁠, 하나는 머리가 달걀처럼 반들반들하고 승복에 주름 하나 없었다⁠.

“⁠사제⁠.⁠”

“⁠파문된 몸입니다⁠. 사제라 부르지 마십시오⁠, 사형⁠.⁠”

“⁠사형이라 부르지 마라⁠, 그럼⁠.⁠”

혜각이 입을 다물었다⁠. 혜명은 서른여덟이라고 했다⁠. 혜각보다 세 살 위인데 열 살은 위로 보였다⁠. 볼이 패고 눈가에 주름이 깊었다⁠. 늘 무언가를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방장 스님 명이다⁠. 산 아래 소문이 운하를 타고 올라왔다⁠. 소림 승려들이 맨주먹으로 익히는 나한권을 쓰는 땡중이 소주 기루 대문에서 사람을 운하에 던진다고⁠. 산으로 돌아가자⁠. 승려의 잘못을 따지는 계율원에서 벌을 받고⁠, 남은 생은 옛 스님들의 탑이 늘어선 탑림 앞에서 벽을 보고 앉아라⁠.⁠”

“⁠안 갑니다⁠.⁠”

“⁠그럴 줄 알았다⁠.⁠”

혜명이 삿갓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계단 아래에서 두 손을 모았다가⁠, 왼발을 반 걸음 내디뎠다⁠. 구경꾼들이 뒤로 물러섰다⁠. 혜각이 한숨을 쉬고 계단을 내려갔다⁠. 대문 문턱을 넘어⁠, 길바닥으로⁠.

*

나는 무공을 모른다⁠. 홍월루 대청에서 손님들이 칼 자랑을 하면 이 칼 값을 셈할 줄은 알아도⁠, 칼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이날 아침 홍월루 대문 앞에서 본 것은 몰라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은 춤을 추고 있었다⁠.

혜명의 주먹이 들어가면 혜각의 팔이 같은 길로 나와 받았다⁠. 혜명의 발이 무릎을 노리면 혜각의 무릎이 이미 거기서 반 뼘 빠져 있었다⁠. 같은 산에서 같은 새벽에 같은 마당을 수천 번 돈 사람들의 몸이었다⁠. 소리만 달랐다⁠. 혜명이 칠 때는 바람 소리가 났고⁠, 혜각이 막을 때는 둔한 소리가 났다⁠. 젖은 이불을 두들기는 소리⁠.

혜각은 한 번도 치지 않았다⁠. 막고⁠, 흘리고⁠, 물러섰다⁠.

열 수쯤 지났을 때 나는 이상한 것을 봤다⁠. 혜명의 주먹이 혜각의 왼팔 쪽으로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피가 밴 소매 쪽이었다⁠. 혜명은 거기를 비워 두고⁠, 거기만 빼고 다 쳤다⁠.

마지막 수에 혜명의 손바닥이 혜각의 가슴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혜각은 막지 않았다⁠. 손바닥이 승복에 닿기 한 치 앞에서 멈췄다⁠. 바람만 와서 혜각의 승복 앞섶이 펄럭였다⁠.

“⁠왜 안 치느냐⁠?⁠”

“⁠칠 데가 없습니다⁠.⁠” 혜각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사형은 어디를 쳐도 반듯해서요⁠. 반듯한 데를 치면 제 손이 아픕니다⁠.⁠”

구경꾼 가운데서 누가 웃었다⁠. 혜명은 웃지 않았다⁠. 손바닥을 거두고 삿갓을 주워 들었다⁠.

“⁠첫눈이 오는 날⁠, 해 질 때까지다⁠. 그때까지 나를 따라 산으로 가자⁠.⁠”

“⁠안 가면요⁠?⁠”

혜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홍월루 대문 앞⁠, 문턱에서 반 걸음 떨어진 돌바닥에 삿갓을 깔고 앉았다⁠. 등을 꼿꼿이 세우고⁠, 염주를 손에 감았다⁠. 이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이 없는 얼굴이었다⁠.

*

이날 운하 거리에는 홍월루가 절이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손님들은 대문 앞에서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계단 위에서 합장하는 혜각에게⁠, 한 번은 계단 아래에서 눈을 감고 앉은 혜명에게⁠. 소금 거간은 혜명 앞에 동전을 놓고 들어갔다가⁠, 나올 때 이 동전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도로 집어 갔다⁠. 비단 가게 주인은 아예 혜명에게 아내 병이 낫게 빌어 달라고 했다⁠. 혜명은 눈을 뜨지 않고 빌어 주었다⁠.

금란이 대청에서 술상을 닦다가 투덜댔다⁠.

“⁠행수님⁠, 문 앞에 스님이 둘이면 손님이 반이 돼요⁠. 이러다 우리도 머리 깎아야 돼요⁠.⁠”

“⁠너는 깎으면 이쁠 거야⁠.⁠”

“⁠그럼 행수님이 먼저 깎으세요⁠.⁠”

나는 차를 한 주전자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혜명은 차를 받지 않았다⁠. 기루의 찻잔으로는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내가 우물에서 길어 온 맹물은 표주박째 받아 마셨다⁠. 물을 다 마시고 나서 처음으로 내 얼굴을 봤다⁠.

“⁠행수께서 저놈을 들였소⁠?⁠”

“⁠밥 한 끼 값으로요⁠.⁠”

“⁠저놈은 밥 한 끼에 제 목숨을 거는 놈이오⁠.⁠” 혜명이 표주박을 돌려주었다⁠. “⁠늘 그랬소⁠.⁠”

나는 이 옆 돌계단에 앉았다⁠. 행수는 원래 남의 이야기를 공짜로 듣지 않는다⁠. 그런데 이날은 혜명이 먼저 말을 꺼냈다⁠. 혜각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였다⁠.

*

혜각이 소림에서 쫓겨난 것은 같은 해 봄이었다고 했다⁠.

북쪽에 가뭄이 들기 시작한 봄이었다⁠. 혜각은 마을을 돌며 밥을 비는 탁발을 나갔다가 운하 위쪽 어느 마을에 들었다⁠. 마을 어귀 집에서 상이 났는데⁠, 굶어 죽은 아이의 상이었다⁠. 아이 아비가 탁발승을 붙잡고 경을 읽어 달라 했다⁠. 혜각은 밤새 경을 읽었다⁠. 새벽이 되자 아비가 마지막 남은 닭을 잡아 삶고⁠, 아이 혼례 때 쓰려고 묻어 둔 술 한 단지를 꺼내 왔다⁠. 스님께 드릴 것이 이것밖에 없다고 했다⁠.

혜각은 이 닭을 먹고 이 술을 마셨다⁠. 아비와 마주 앉아⁠, 아비가 먹는 만큼 먹고 아비가 마시는 만큼 마셨다⁠. 아비가 울면 같이 울고⁠, 아비가 노래하면 같이 불렀다⁠. 날이 밝을 때까지⁠.

이 자리를 지나가던 순례객이 산에 올라와 말했다⁠. 소림 승려가 상갓집에서 닭을 뜯고 술에 취해 노래를 하더라고⁠. 방장 스님이 혜각을 불러 물었다⁠. 이 일을 뉘우치느냐고⁠.

“⁠다시 가도 먹겠습니다⁠.⁠” 혜각은 그렇게 대답했다고 했다⁠. “⁠그 집에 그것밖에 없었으니까요⁠.⁠”

나는 이 대목에서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혜명이 덧붙였다⁠.

“⁠그 일만이면 방장 스님도 넘어가셨을 거요⁠. 계율원에 저놈 이름으로 올라온 일이 그전에 이미 마흔일곱 번이었소⁠. 고기가 열일곱 번⁠, 술이 스물아홉 번⁠, 그리고 한 번은 방장 스님 약술이었소⁠.⁠”

“⁠방장 스님 약술은 어떻게 됐는데요⁠?⁠”

“⁠다 마셨소⁠. 그리고 그 단지에 맹물을 채워 두었소⁠.⁠”

나는 결국 웃었다⁠. 계단 위에서 혜각이 우리 쪽을 돌아봤다⁠. 혜명은 다시 눈을 감았다⁠. 웃음이 다 가라앉은 뒤에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열다섯 해 전 겨울에 나는 산에서 다리가 부러졌소⁠. 눈이 무릎까지 쌓인 날이었지⁠. 저놈이 나를 업고 산 아래까지 내려왔소⁠. 반나절을⁠. 내려오는 내내 고기 이야기를 했소⁠. 산 아래 내려가면 돼지고기 사 주겠다고⁠, 비계 붙은 걸로 사 주겠다고⁠. 나는 고기 생각에 다리가 덜 아팠소⁠.⁠”

“⁠그래서 사 줬어요⁠?⁠”

“⁠아니⁠. 그날 저놈은 계율원에 불려 가서 고기 이야기로 또 벌을 받았소⁠.⁠” 혜명이 염주 한 알을 넘겼다⁠. “⁠그래서 나는 저놈한테 고기 한 근을 빚졌소⁠. 열다섯 해째⁠.⁠”

혜명은 이 이야기를 이날 다시는 하지 않았다⁠.

*

해가 기울 무렵 반여혁이 지나갔다⁠. 가마를 타고 지나가다 홍월루 앞에서 가마를 세웠다⁠. 가마 문을 반만 열고 부채로 햇빛을 가리며 대문 앞을 내다봤다⁠. 계단 위의 혜각과 계단 아래의 혜명을 차례로⁠.

“⁠이거 참 귀한 구경이오⁠. 소림 스님이 둘이나⁠.⁠”

혜명은 눈을 뜨지 않았다⁠. 반여혁은 가마에서 내리지 않고 혜명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스님⁠, 저 땡중을 산으로 데려가시려거든 말씀만 하시오⁠. 삼협방 배를 내드리겠소⁠. 숭산 아래 나루까지 노 젓는 놈 넷을 붙여서⁠. 뱃삯은 안 받겠소⁠.⁠”

혜명이 그제야 눈을 떴다⁠. 가마 쪽을 한참 봤다⁠. 반여혁의 부채⁠, 부채에 댄 쇠살⁠, 가마꾼 넷의 허리에 찬 몽둥이⁠.

“⁠시주는 누구시오⁠?⁠”

“⁠운하에서 배를 부리는 사람이오⁠.⁠”

“⁠소림 일은 소림이 하오⁠. 배는 필요 없소⁠.⁠”

“⁠그러시오⁠? 아쉽군⁠. 저 땡중이 산으로 가 주면 이 거리가 조용해질 텐데⁠.⁠” 반여혁이 부채를 반쯤 폈다⁠. “⁠스님⁠, 저자가 이 거리에서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는 아시오⁠?⁠”

“⁠모르오⁠. 알 생각도 없소⁠.⁠”

“⁠모르는 게 소림의 도리라면 그것도 좋지요⁠.⁠”

반여혁이 가마 문을 닫았다⁠. 가마가 떠나는 동안 혜명은 뒤를 보고 있었다⁠. 계단 위에서 혜각이 합장한 손을 풀었다⁠. 엄지가 하얗게 눌려 있었다⁠.

나는 혜명에게 다시 물을 떠다 주었다⁠. 혜명은 표주박을 받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저 시주는 웃을 때 눈이 안 웃는구려⁠.⁠”

“⁠스님⁠, 알 생각도 없다고 하시더니요⁠.⁠”

“⁠알 생각은 없소⁠. 그래도 보이는 건 보이오⁠.⁠”

*

다음 날 해 질 녘⁠, 나는 다락에서 아이들을 한 번 더 들여다봤다⁠. 쌍도객 말로는 소금 창고에 있는 아이가 열둘이나 열셋이었다⁠. 주근깨가 다락 창틈으로 서쪽을 보고 있었다⁠. 오빠가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나는 아이에게 하지 않았다⁠. 혜각이 하지 말라고 했다⁠. 없으면 다시 처음부터 기다려야 하니까⁠.

서쪽 물목 소금 창고를 지키는 창고지기는 홍월루 단골이었다⁠. 여아홍을 좋아해서 우리 집에 오면 꼭 한 잔은 이걸로 마셨다⁠. 이 여아홍이 다 깨졌다⁠. 나는 삼봉 방을 뒤졌다⁠. 삼봉이 내기로 따서 숨겨 둔 술이 침상 밑에 다섯 병 있었다⁠. 셋은 고량주⁠, 하나는 매실주⁠, 하나는 뭔지 모를 검은 술이었다⁠. 나는 매실주와 검은 술을 챙겼다⁠. 삼봉이 뒷문 앞 이불 위에서 이걸 보고 신음을 했다⁠.

“⁠행수님⁠, 그 검은 건 내가 석 달을 노린 거요⁠.⁠”

“⁠노름 금지라고 했지⁠?⁠”

“⁠노름으로 딴 게 아니오⁠. 내기로 딴 거요⁠.⁠”

“⁠그게 뭐가 달라⁠?⁠”

“⁠내기는 기술이고 노름은 운이오⁠.⁠”

혜각이 검은 술 병마개를 열어 냄새를 맡더니 삼봉에게 도로 쥐여 주었다⁠. 이건 창고지기한테 아깝다고 했다⁠. 대신 고량주를 한 병 더 챙겼다⁠.

우리는 뒷나루에서 삼봉의 작은 거룻배를 탔다⁠. 혜각이 노를 잡았다⁠. 왼팔을 감은 천이 피로 다시 젖어 있었는데⁠, 이 팔로도 노를 잘 저었다⁠. 물을 밀어내는 손목이 짐꾼의 손목이었다⁠.

떠나기 전에 혜각이 대문으로 한 번 갔다⁠. 나는 부엌 뒷문 틈으로 보았다⁠. 대문 계단을 내려가 혜명 앞에 섰다⁠. 혜명은 눈을 감은 채였다⁠.

“⁠사형⁠, 오늘 밤 이 문 좀 봐 주십시오⁠.⁠”

“⁠나는 기루 문을 지키러 온 사람이 아니다⁠.⁠”

“⁠압니다⁠.⁠”

“⁠네가 어디 가는지도 묻지 않겠다⁠. 계율 밖의 일은 내가 셈하지 못한다⁠.⁠”

“⁠그것도 압니다⁠.⁠”

혜각은 혜명 앞에 합장하고 돌아왔다⁠. 혜명은 끝내 눈을 뜨지 않았다⁠.

거룻배가 뒷나루를 떠나 운하로 나섰다⁠. 홍월루가 물 위에서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다락 창에 불빛 하나가 비쳤다⁠. 연홍이 아이들 곁에 켜 둔 등잔이었다⁠. 배가 운하 굽이를 돌 때 홍월루 앞 거리가 잠깐 보였다⁠. 붉은 등 둘 아래⁠, 문턱에서 반 걸음 떨어진 돌바닥 위에 잿빛 그림자 하나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앉아 있네요⁠.⁠” 내가 말했다⁠.

혜각은 그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노를 한 번 더 깊게 밀었다⁠.

“⁠저 양반은 한번 앉으면 안 일어납니다⁠. 열다섯 해 전에도 그랬어요⁠. 다리가 부러졌는데 혼자 일어나겠다고⁠, 업히기 싫다고 눈밭에 한 시진을 앉아 있었습니다⁠.⁠”

혜각이 노를 저을 때마다 물이 뱃전을 핥는 소리가 났다⁠. 서쪽 물목까지는 반 시진 거리였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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