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54자)

삼경의 부엌

기루 문지기가 된 소림 땡중 · 류청산

나는 삼봉을 때리지 않았다⁠. 때릴 시간이 없었다⁠.

“⁠영감⁠, 일어나⁠. 열쇠 받아 간 놈들이 언제 온대⁠?⁠”

“⁠그런 말은 안 했소⁠. 그냥 판이 끝나고 웃으면서 열쇠를 품에 넣었소⁠.⁠”

“⁠그럼 오늘 밤이야⁠.⁠”

삼경까지 한 시진도 남지 않았다⁠. 열쇠장이를 부를 시간도⁠, 뒷문을 새로 달 시간도 없었다⁠. 혜각은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부엌으로 가서 쌀독을 뒷문 앞으로 굴렸다⁠. 바닥이 드러난 빈 독이었다⁠. 이 위에 밀가루 자루를 얹고⁠, 다시 이 위에 장독 뚜껑을 올렸다⁠. 문을 열면 쌀독이 넘어지면서 장독 뚜껑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게 돼 있었다⁠.

“⁠이게 막는 거요⁠?⁠” 삼봉이 물었다⁠.

“⁠아니요⁠. 우는 겁니다⁠. 문이 열리면 울게⁠.⁠”

혜각은 부엌 한가운데 서서 둘러봤다⁠. 아궁이 둘⁠, 솥 셋⁠, 식칼이 걸린 벽⁠, 천장에 매단 마른 고추 다발⁠, 구석에 쌓인 술단지들⁠. 반여혁이 반만 마시고 간 여아홍 두 단지도 거기 있었다⁠. 벽에서 식칼을 하나씩 떼어 삼봉에게 안겼다⁠.

“⁠이거 다 이층으로 가져가십시오⁠.⁠”

“⁠이걸로 싸우라고⁠?⁠”

“⁠아니요⁠. 저놈들이 집어 들지 못하게요⁠.⁠”

그리고 혜각은 큰 솥의 무쇠 뚜껑을 들었다⁠. 손잡이를 쥐고 두어 번 흔들어 무게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락에는 연홍이 올라갔다⁠. 아이 셋은 이불 사이에 누웠고⁠, 연홍은 비파 대신 빈손으로 다락 사다리 위에 앉았다⁠. 기녀들은 이층 방마다 문을 걸었다⁠. 금란이 요강을 들고 계단 맨 위에 섰다⁠. 요강에 뭐가 들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하녀 은향이 내게 물을 길어 둘까 물었다⁠. 스무 살⁠, 대문 일을 거드는 아이였다⁠. 나는 큰 물동이 셋을 다 채워 두라고 했다⁠. 은향은 고개를 숙이고 우물로 갔다⁠.

*

삼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운하 건너 망루에서 울렸다⁠. 세 번째 북이 끝나기 전에 장독 뚜껑이 깨졌다⁠.

부엌 등잔 하나만 켜 두었었다⁠. 나는 부엌과 대청 사이 문틈에 서 있었다⁠. 뒷문이 안으로 밀리면서 쌀독이 넘어갔고⁠, 밀가루 자루가 터져 하얀 가루가 부엌에 확 퍼졌다⁠. 이 가루 속으로 사내들이 들어왔다⁠. 여섯이었다⁠. 몽둥이를 든 다섯⁠, 그리고 맨 마지막에 칼 두 자루를 등에 엇갈려 멘 사내 하나⁠.

떠돌이 칼잡이였다⁠. 강호를 돌며 돈 받고 칼을 빌려주는 무리 가운데 하나로⁠, 칼을 두 자루 쓴다고 해서 쌍도객이라고 불렸다⁠. 삼협방이 이번에는 뱃사람이 아니라 칼을 사 온 거였다⁠.

혜각이 밀가루 속에서 솥뚜껑을 들었다⁠.

첫 몽둥이가 솥뚜껑에 맞았다⁠. 종 치는 소리가 났다⁠. 혜각은 뚜껑을 옆으로 비틀어 몽둥이를 미끄러뜨렸고⁠, 이 사내가 앞으로 쏠리는 순간 무릎 옆을 발바닥으로 밀었다⁠. 무릎이 안쪽으로 꺾였다⁠. 사내가 주저앉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혜각은 솥뚜껑으로 하나를 막고 남은 손으로 다른 하나의 팔꿈치를 잡아 거꾸로 꺾었다⁠. 소리가 짧았다⁠. 비명은 길었다⁠.

네 번째가 아궁이 옆 물동이 쪽으로 밀렸다⁠. 혜각이 이 사내 허리를 안아 물동이에 거꾸로 꽂았다⁠. 사내의 다리가 물동이 밖에서 허우적댔다⁠. 혜각은 셋을 세고 뽑아냈다⁠. 사내가 물을 뿜으며 바닥에 굴렀다⁠.

“⁠나무아미타불⁠, 정신 차리셨으면 그대로 누워 계십시오⁠.⁠”

이때 칼이 왔다⁠.

쌍도객의 칼은 소리가 없었다⁠. 첫 칼이 등잔을 베었다⁠. 기름 접시가 두 쪽 나서 바닥에 떨어졌고⁠, 불붙은 기름이 밀가루 위로 흘렀다⁠. 두 번째 칼이 혜각의 왼팔 위쪽을 스쳤다⁠. 승복 소매가 갈라지고⁠, 이 아래 살이 한 뼘 벌어졌다⁠. 피가 밀가루 위에 떨어져 붉은 반죽이 됐다⁠.

불이 마른 고추 다발에 옮겨붙었다⁠. 매운 연기가 부엌에 찼다⁠. 나는 문틈에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기침을 하며 소매로 코를 막았는데⁠, 코 안쪽이 고춧가루를 들이부은 것처럼 타올랐다⁠. 연기 사이로 혜각의 그림자와 쌍도객의 그림자가 보였다⁠. 칼 두 자루가 번갈아 들어가고⁠, 솥뚜껑이 번갈아 받았다⁠. 쇠와 쇠가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쌍도객이 크게 휘둘렀다⁠. 혜각이 막지 않고 뒤로 빠졌고⁠, 칼이 구석의 술단지들을 쓸었다⁠. 단지 셋이 한꺼번에 깨졌다⁠. 반여혁이 반만 마시고 간 여아홍이었다⁠. 노란 술이 바닥으로 쏟아져 불붙은 기름 쪽으로 흘러갔다⁠. 불이 술에 닿자 쉿 소리를 내며 주춤했다⁠. 부엌에 술 끓는 냄새가 확 퍼졌다⁠. 대추와 오래된 나무 냄새⁠. 스무 해 묵은 단지가 아니라 열여섯 해 묵은 단지라던 이 냄새⁠.

혜각이 이 순간 들어갔다⁠. 솥뚜껑을 쌍도객의 얼굴로 던지고⁠, 쌍도객이 이것을 칼로 쳐 내는 동안 몸을 낮춰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오른손이 쌍도객의 오른 손목을⁠, 왼손이 왼 손목을 잡았다⁠. 벌어진 왼팔에서 피가 손목을 타고 흘렀는데도 이 손이 놓지 않았다⁠. 이마로 쌍도객의 코를 받았다⁠. 쌍도객의 고개가 젖혀졌고⁠, 칼 두 자루가 차례로 바닥에 떨어졌다⁠. 혜각은 사내를 돌려세워 우물 두레박 줄로 두 팔을 등 뒤에 묶었다⁠.

남은 하나가 사다리를 찾아 대청 쪽으로 뛰었다⁠. 이층 계단 맨 위에서 금란이 요강을 엎었다⁠. 이 사내는 계단 중간에서 미끄러져 대청 바닥까지 굴렀다⁠. 금란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집은 신발 벗고 올라오는 데예요⁠.⁠”

*

불은 은향이 길어 둔 물동이 셋과 기녀들이 줄지어 나른 물로 껐다⁠. 옆집 비단 가게 사람들과 국숫집 할멈까지 물통을 들고 왔다⁠. 운하 거리에서 불은 한 집 일이 아니다⁠. 불이 다 꺼졌을 때 부엌 서까래 둘이 검게 탔고⁠, 아궁이 하나가 무너졌고⁠, 바닥은 밀가루와 술과 재와 피가 엉긴 진흙이었다⁠. 술단지는 하나도 성한 게 없었다⁠.

혜각은 부엌 문턱에 앉아 삼봉이 왼팔을 감아 주는 것을 내려다봤다⁠. 삼봉은 상처를 술로 씻으려다 남은 술이 없다는 걸 알고 울상이 됐다⁠.

“⁠스님⁠, 고량주로 씻으면 좀 아프오⁠. 수수로 빚은 독한 거라⁠.⁠”

“⁠고량주가 어디 있습니까⁠?⁠”

“⁠내 방에⁠. 내기에 따 둔 거⁠.⁠”

“⁠그건 마시는 겁니다⁠.⁠”

삼봉은 제 방에서 고량주를 가져와 상처에 부었다⁠. 혜각은 이를 악물고 숨을 들이쉬었는데⁠, 고량주 냄새가 부엌에 퍼지자 이 숨을 끝까지 들이쉬었다⁠. 아까운 냄새를 다 먹으려는 사람 같았다⁠.

나는 다락에 올라갔다⁠. 사다리 위에 연홍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다락 안에서 노랫소리가 아주 작게 들렸다⁠. 버들목에서 물길로 하루 더 올라간다는 연홍의 마을에서⁠, 아이들 재울 때 부르던 노래라고 했다⁠. 가락이 단순해서 넷을 넘지 않는 음으로 같은 줄을 되풀이했다⁠. 연홍은 아래에서 칼 소리가 날 때마다 이 노래를 조금씩 더 크게 불렀고⁠, 불이 났을 때는 박자를 늦췄다고 했다⁠.

다락 안을 들여다보니 사내아이와 주근깨는 자고 있었다⁠. 가장 작은 아이는 눈을 뜨고 있었다⁠. 이 아이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다⁠. 소리가 아주 작아서 처음에는 숨소리인 줄 알았다⁠. 연홍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가사는 없이 가락만⁠, 넷을 넘지 않는 음으로⁠.

배에서 처음부터 말을 안 했다던 아이였다⁠. 연홍이 나를 돌아봤다⁠.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나는 사다리를 도로 내려왔다⁠. 다락 위에서 노래가 다 끝날 때까지 사다리 아래에 서 있었다⁠.

*

사경 무렵⁠, 나는 뒷문을 다시 닫으러 갔다⁠. 뒷문 빗장 옆에 은향이 서 있었다⁠. 한 손이 빗장에 걸려 있었다⁠.

“⁠거기서 뭐 해⁠?⁠”

은향이 화들짝 손을 뗐다⁠. 물동이를 더 채우려고 우물에 가려 했다고 했다⁠. 우물은 부엌 안에 있었다⁠. 뒷문 밖이 아니라⁠.

나는 이 말을 이날 밤에는 따지지 않았다⁠. 다 탄 부엌 앞에서 하녀 하나를 붙잡고 따질 기운이 없었다⁠. 은향은 고개를 숙이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 아이가 계단을 오르는 동안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는 것만 기억해 두었다⁠.

*

불 냄새가 조금 가라앉을 무렵 나는 탄 부엌 한가운데 서서 셈을 했다⁠. 서까래 둘⁠, 아궁이 하나⁠, 여아홍 두 단지와 황주 일곱 단지⁠, 국숫집에서 얻어 온 밀가루 반 자루⁠, 그리고 부엌을 다시 세우는 동안 손님을 못 받을 날들⁠. 깨진 단지 조각 하나를 주워 바닥에 고인 술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봤다⁠. 재가 섞인 술은 쓴맛이 먼저 오고 단맛이 한참 뒤에 왔다⁠.

혜각이 왼팔을 감싸 쥐고 문턱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스님 하나 들이고 나흘 만에 부엌이 탔어⁠. 밥 한 끼 값치고는 비싸⁠.⁠”

“⁠그럼 내보내십시오⁠.⁠” 혜각이 말했다⁠. “⁠오늘 내보내시면 오늘 저녁부터 다시 뱃길이 열릴 겁니다⁠. 반여혁이 그렇게 말했잖습니까⁠. 다락에 있는 것만 넘기면⁠.⁠”

나는 손가락에 묻은 술을 치마에 닦았다⁠. 혜각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문턱에서 일어나 부엌 바닥의 재를 빗자루로 쓸기 시작했다⁠. 한 팔로⁠, 천천히⁠. 나는 이 비질 소리를 들으며 셈을 다시 했다⁠. 두 번을 해도 답이 같았다⁠. 그래서 세 번째는 하지 않았다⁠.

대신 삼봉을 불렀다⁠. 삼봉은 내가 부르기도 전에 무릎을 꿇었다⁠.

“⁠영감은 오늘부터 한 달 동안 뒷문 앞에서 자⁠. 열쇠 대신 영감이 문이야⁠. 그리고 노름 금지⁠.⁠”

“⁠한 달이요⁠? 행수님⁠, 내기하겠소⁠? 내가 한 달 못 참는다에 걸면⁠…⁠…⁠.⁠”

“⁠영감⁠.⁠”

“⁠아니⁠, 그러니까⁠, 참는다에 걸겠단 말이오⁠.⁠”

삼봉은 이날부터 정말로 뒷문 앞에 이불을 깔았다⁠. 그리고 이틀 만에⁠, 뒷문 앞에서 자는 사람이 노름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금란과 내기를 걸었다⁠.

*

오경이 되어 마당에 묶인 쌍도객 앞에 혜각이 쪼그려 앉았다⁠. 다른 다섯은 삼봉과 짐꾼 몇이 날이 새기 전에 운하 거리 밖으로 업어다 버렸다⁠. 쌍도객만 남겨 두었다⁠. 서른 남짓한 사내였는데⁠, 코가 부어 숨을 입으로 쉬었다⁠.

“⁠죽여라⁠.⁠”

“⁠안 죽입니다⁠.⁠”

“⁠그럼 관아에 넘기든지⁠.⁠”

“⁠관아는 저보다 더 안 죽이고 더 오래 데리고 있습니다⁠. 그쪽이 더 무섭지요⁠.⁠”

혜각은 삼봉을 불렀다⁠. 삼봉이 무너지지 않은 아궁이에 남은 밀가루를 털어 수제비를 한 그릇 끓여 왔다⁠. 탄 냄새가 조금 배어 있었다⁠. 혜각이 그릇을 쌍도객 코앞에 들고 김을 불었다⁠. 쌍도객의 목울대가 한 번 움직였다⁠.

“⁠삼협방이 얼마 줬습니까⁠?⁠”

“⁠은 열 냥⁠. 선금 두 냥⁠.⁠”

“⁠밥은요⁠?⁠”

쌍도객은 대답하지 않았다⁠. 혜각이 숟가락으로 수제비 한 조각을 떠서 쌍도객 입에 넣어 주었다⁠. 쌍도객은 뜨거워서 입을 벌린 채 씹었다⁠. 두 번째 숟갈을 받으면서 눈을 감았다⁠. 이틀을 굶은 사람이었다⁠.

세 번째 숟갈을 받고 나서 쌍도객이 말했다⁠.

“⁠아이들은 서쪽 물목 소금 창고에 있다⁠. 모레 동트기 전에 배가 남쪽으로 떠난다⁠. 열둘인가⁠, 열셋인가⁠.⁠”

혜각은 숟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그릇이 빌 때까지 다 먹였다⁠. 그리고 쌍도객의 입가를 제 소매로 닦아 주었다⁠.

해가 뜨자 대문을 열었다⁠. 다 탄 부엌 냄새가 거리로 빠져나가도록⁠. 대문을 활짝 열고 돌아서는데 은향이 나를 불렀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작았다⁠.

“⁠행수님⁠, 대문 앞에 스님이 또 한 분 계세요⁠.⁠”

대문 앞 돌계단 아래⁠, 잿빛 승복에 삿갓을 쓴 사내가 서 있었다⁠. 마른 몸이 대나무처럼 곧았다⁠. 사내는 홍월루 붉은 등을 올려다보고⁠, 다 탄 부엌 냄새를 한 번 들이쉬고⁠, 문턱에서 반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섰다⁠. 이 이상은 다가오지 않았다⁠.

“⁠이 집 문지기를 찾아왔소⁠. 소림의 혜명이라 전해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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