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00자)
두부만 사흘
기루 문지기가 된 소림 땡중 · 류청산
첫날은 쌀배가 오지 않았다. 두 번째 날은 술배가 북쪽 물목에서 뱃머리를 돌렸다. 숯배 사공은 홍월루 뒷나루까지 와서 짐을 내리려다, 물목 쪽 둑에 선 사내 둘을 보더니 숯 한 짐을 물에 빠뜨리고 도로 저어 갔다. 숯이 물을 먹고 가라앉으면서 뽀글뽀글 거품을 냈다. 삼봉이 나루 끝에 서서 이 거품이 다 꺼질 때까지 욕을 했다.
반여혁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홍월루 부엌은 사흘이면 식을 판이었다.
다만 두부는 배로 오지 않았다. 운하 거리 끝 골목에 두부 장수 과부가 있었는데, 이 집 콩은 수레에 실려 뭍길로 왔고, 이 과부는 삼협방 사람이 지나가면 간수를 길바닥에 뿌렸다. 삼봉이 이 집 두부를 지게로 다섯 판 지고 왔다.
그래서 사흘 동안 홍월루 상에는 두부만 올랐다. 구운 두부, 두부 국, 두부 무침, 기름에 지진 두부를 다시 간장에 조린 두부. 삼봉은 두부 한 가지로 일곱 가지 상을 만들어 냈고, 일곱 가지 다 두부 맛이었다.
손님들이 투덜댔다. 소금 거간이 젓가락으로 두부를 들어 보이며 고기는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술을 따랐다. 그러자 대문에서 혜각이 큰 소리로 외쳤다.
“오늘 홍월루는 소림 사찰상입니다! 숭산 소림에서 스님들이 드시는 바로 그 상입니다! 한 번 드시면 십 년 젊어지고, 두 번 드시면 업장이 녹습니다!”
손님들이 웃었다. 혜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상이 나갈 때마다 대청 문간에 서서 이름을 붙였다. 구운 두부는 소림을 연 조사님이 벽만 보고 아홉 해를 앉아 계시는 동안 드신 면벽구이, 두부 국은 나한 열여덟이 나눠 먹은 나한탕, 간장에 조린 두부는 절을 다스리는 방장 스님이 몰래 드시다 들킨 방장조림이었다. 소금 거간이 방장조림을 먹다 말고 물었다.
“방장 스님이 두부를 왜 몰래 드시오?”
“고기 맛이 나서요.”
소금 거간이 두부를 다시 씹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 맛이 난다고 했다. 삼봉이 부엌에서 이 소리를 듣고 국자를 떨어뜨렸다. 이 조림에는 돼지기름이 한 숟갈 들어가 있었다. 홍월루에 마지막 남은 돼지기름이었다.
그런데 이튿날 저녁, 대문 앞에 처음 보는 손님이 셋 서 있었다. 소림 사찰상을 먹으러 왔다고 했다. 사흘째에는 일곱이었다. 그중 하나는 진짜로 업장이 녹았는지 두부를 먹다 울었다. 금란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행수님, 저 땡중 저거 장사꾼이에요.”
“알아. 그래서 무서운 거야.”
그래도 쌀은 줄었다. 아이 셋과 기녀 열둘과 부엌 식구 다섯이 하루에 먹는 쌀이 한 말 가까이 됐다. 두부로 배를 채워도 아이들 미음은 쌀로 끓여야 했다. 세 번째 날 아침, 쌀독 바닥에 바가지가 닿는 소리가 났다. 마른 나무를 긁는 소리였다.
*
나는 혜각을 데리고 운하 거리 장에 나갔다. 장은 거리 남쪽, 다리 셋이 모이는 둑 위에 섰는데, 같은 해 가을 장은 반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을 팔았다. 솥, 이불, 혼례 때 쓴 비단, 놋숟가락.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길가에 보따리를 펼쳐 놓고 앉아 있었다. 혜각은 이 사이를 지나며 합장을 하지 않았다. 손을 소매 속에 넣고 걸었다.
거리에서 가장 큰 쌀가게는 문이 열려 있었다. 쌀가마가 천장까지 쌓여 있었고, 가게 안에서 묵은 쌀겨 냄새와 쥐똥 냄새가 같이 났다. 쌀가게 주인은 나를 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주판을 튕겼다. 홍월루 단골이었다. 열 해 동안 다달이 우리 집에 쌀을 댄 사람이었다.
“오늘은 쌀이 없습니다, 행수님.”
“천장까지 쌓인 건 뭔데요?”
“다 임자가 있는 쌀입니다.”
이때 쌀가마 뒤에서 사내 하나가 나왔다. 오른손에 부목을 대고 천으로 칭칭 감은 사내였다. 왼손에 새 쇠갈고리를 들고 있었다. 첫날 밤 대문 앞에서 운하에 빠졌던 바로 이 사내였다. 삼협방에서 북쪽 나루를 맡은 우두머리로, 운하 거리 사람들은 이 사내를 쇠갈고리라고 불렀다.
“어이, 땡중.” 쇠갈고리가 갈고리로 문턱을 툭 쳤다. “내 손목값부터 내놔야 쌀을 팔든 말든 하지.”
혜각은 쇠갈고리의 부목을 한참 들여다봤다.
“그거 누가 대 줬습니까?”
“뭐?”
“뼈가 틀어진 채로 붙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평생 갈고리를 왼손으로 쥐셔야 할 겁니다.”
쇠갈고리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혜각이 이 사람의 오른팔을 잡았다. 부목을 감은 천을 두 번 풀고, 손목 위아래를 엄지로 짚고, 한 번 당겼다. 쇠갈고리가 가게가 떠나가게 비명을 질렀다. 쌀가게 주인이 주판을 떨어뜨렸다. 혜각은 천을 다시 감고 부목을 반듯하게 대 매듭을 지었다.
“이제 바로 붙을 겁니다. 이레 동안 갈고리 쥐지 마십시오.”
쇠갈고리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손목을 내려다봤다. 손가락을 하나씩 움직여 보더니 얼굴이 이상해졌다. 아픈 데가 덜 아픈 얼굴이었다.
“이걸로 손목값은 됐습니까?”
“됐기는 뭐가 돼.” 쇠갈고리가 왼손의 갈고리를 고쳐 쥐었다. “방주님 말씀이다. 홍월루에는 쌀 한 톨도 안 판다. 운하 거리에서 홍월루에 쌀 파는 놈은 다음 날 제 가게 쌀을 다 운하에 쏟는다.”
쌀가게 주인이 고개를 더 숙였다. 나는 혜각의 소매를 당겼다. 돌아가자는 뜻이었다. 혜각은 움직이지 않았다.
혜각은 쌀가게 문 앞 길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품에서 중이 밥을 얻는 나무 그릇, 이 빠진 바리때를 꺼내 무릎 앞에 놓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염불을 시작했다. 큰 소리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 집 쌀 한 톨에 농부의 땀이 일곱 근이요, 이 집 쌀 한 가마에 굶는 아이 열이 삽니다. 나무아미타불.”
쇠갈고리가 갈고리로 바리때를 걷어찼다. 바리때가 굴러가 길 건너 국숫집 문턱에 맞고 멈췄다. 혜각은 눈을 뜨지 않고 손을 뻗어 허공에 바리때가 있던 자리를 짚었다. 그리고 계속 외웠다. 빈자리에 대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장꾼들이, 다음에는 짐꾼들이, 다음에는 북쪽에서 내려와 길가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땡중이 쌀가게 앞에서 빈 바리때 자리에 염불을 왼다는 소문이 다리 셋을 건너는 데 일각이 걸리지 않았다. 쇠갈고리는 사람이 늘수록 갈고리를 휘두를 데를 잃었다. 둘러싼 사람들 가운데 반은 혜각이 뱃길 값을 받아 간 집 사람이었다.
한 시진이 지났다. 혜각의 목소리는 갈라졌는데 그치지 않았다. 쌀가게 주인은 주판을 들고 가게 안쪽으로 숨었다. 쇠갈고리가 혜각의 머리 위에 침을 뱉고 사람들을 헤치고 나갔다. 사람들이 길을 비켜 줬는데, 비켜 주는 모양이 마치 썩은 생선 수레를 비켜 주는 것 같았다.
국숫집 할멈이 바리때를 주워 왔다. 일흔이 넘어 허리가 반으로 접힌 노인이었다. 바리때를 혜각 무릎 앞에 놓고 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해 지면 우리 집 뒷문으로 와. 쌀은 없고 밀가루가 한 자루 있어.”
*
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리 하나를 건너는데, 둑 아래 짐 부리는 나루에서 늙은 짐꾼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왼팔이 팔꿈치에서 바깥으로 굽은 사내였다. 이 사람은 혜각을 한참 올려다보다가 소리쳤다.
“춘복이! 너 마춘복이 아니냐?”
혜각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합장을 하고, 다리 위에서 그쪽으로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늙은 짐꾼은 둑 아래에서 계속 혜각을 올려다봤다. 혜각은 다리를 다 건너고 나서야 소매에서 손을 뺐다. 손바닥이 땀에 젖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건 내가 열여덟 해 동안 제일 잘해 온 일이었다.
*
해가 지고 국숫집 뒷문으로 갔다. 골목은 국수 삶는 김과 젖은 밀가루 냄새로 축축했다. 할멈은 쪽문을 반만 열고 자루를 밀어 냈다. 밀가루가 반쯤 찬 삼베 자루였는데, 혜각이 이것을 받아 한쪽 어깨에 얹었다. 허리를 반쯤 숙여 자루를 받고, 무게가 어깨에 앉는 순간 무릎을 펴는 동작이 한 번에 이어졌다. 할멈이 쪽문 틈으로 이 모양을 보고 혀를 찼다.
“짐 지는 폼이 중이 아니라 짐꾼이네.”
“절에서 쌀을 많이 날랐습니다.”
“절 쌀은 그렇게 안 져. 그건 나루에서 배운 거야.” 할멈은 내게 눈을 돌렸다. “값은 됐어. 삼협방 놈들이 열 해 동안 우리 국수를 공짜로 처먹었으니, 그 외상에서 한 자루 뺀 걸로 치지.”
“삼협방 사람들이 알면요?”
“알면 뭐? 일흔셋 먹은 할미 국숫집을 운하에 쏟아? 쏟으라 그래. 국수는 물에 넣어야 익어.”
골목 어귀에서 사내 둘이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쇠갈고리를 따라다니던 얼굴들이었다. 혜각은 자루를 고쳐 메고 그쪽으로 합장했다. 사내들이 침을 뱉고 돌아섰다. 이 침이 할멈네 쪽문 앞에 떨어졌다는 것을, 나는 이때 눈여겨보지 않았다.
*
국숫집 밀가루로 삼봉이 수제비를 끓였다. 아이들 몫은 밀가루를 묽게 풀어 미음처럼 했다. 저녁에 다락에 수제비 그릇을 올려 주다가 나는 주근깨의 소매가 이상하게 뻣뻣한 것을 봤다. 소맷부리가 누렇게 굳어 있었다.
“이게 뭐야?”
주근깨가 소매를 등 뒤로 감췄다. 나는 아이의 팔을 잡아 소매를 뒤집었다. 소매 안쪽에 천을 덧대 꿰맨 주머니가 있었고, 이 안에 미음이 말라붙어 있었다. 사흘 동안 아이는 미음을 반만 먹고 반을 소매에 부어 두었다.
“오빠 주려고요.” 주근깨가 말했다. “오빠 만나면.”
나는 소매를 뒤집은 채로 손을 놓지 못했다. 말라붙은 미음에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아이가 내 손에서 제 소매를 도로 빼 갔다. 그러고는 수제비 그릇을 들어 국물을 반만 마셨다. 나머지 반을 어디에 부으려는지 소매를 걷는 아이의 손을, 이번에는 연홍이 잡았다.
“오빠 몫은 언니가 따로 맡아 둘게. 약속. 너는 다 먹어.”
연홍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주근깨는 이 손가락을 오래 보다가 걸었다. 그리고 국물을 다 마셨다.
*
이날 밤 혜각과 연홍이 지붕에 올라가 앉아 있었다. 내 방 창에서 보였다. 문지기 술 한 병을 둘이 나눠 마시고 있었다. 연홍이 뭐라고 하자 혜각이 웃었고, 혜각이 뭐라고 하자 연홍이 혜각의 어깨를 비파 채로 때렸다. 나는 창을 닫으려다 말았다. 행수는 원래 남의 창을 보는 사람이다.
연홍의 목소리가 밤바람에 실려 왔다.
“스님은 왜 중이 됐어요?”
“밥 줘서요.”
“거짓말.”
“나무아미타불.”
“거짓말할 때마다 그거 하는 거 다 알아요.”
혜각은 대답하지 않았다. 둘은 한참 운하 쪽을 보고 앉아 있었다. 이윽고 연홍이 술병을 기울여 마지막 한 모금을 혜각 잔에 따랐다.
“우리 마을도 내가 여덟 살 때 애들을 팔았어요. 버들목에서 물길로 하루 더 올라가는 데.” 연홍은 빈 병을 지붕 기와 위에 굴렸다. “나는 그때 못생겨서 안 팔렸대요. 거간이 나를 보고 쌀 반 말도 아깝다고 했대.”
“그 거간 눈이 삐었네요.”
“그렇죠? 그래서 스무 살에 제 발로 소주에 왔어요. 그 거간 찾아서 눈 삔 거 확인시켜 주려고.”
혜각이 웃었다. 이번에는 나무아미타불을 하지 않았다.
삼경이 가까울 무렵, 누가 내 방 문을 긁었다. 열어 보니 삼봉이었다. 얼굴이 술에 젖어 있었는데 눈은 멀쩡했다. 삼봉은 문간에 무릎을 꿇었다. 쉰 살 먹은 사내가 그렇게 빨리 무릎을 꿇는 건 처음 봤다.
“행수님, 내가 쌀값을 따 오려고 했소. 진짜요. 삼협방 뱃사람들 노는 판에 가서, 크게 한 판만.”
“그래서?”
“다 잃었소. 그리고, 뒷문 열쇠도.”
“뭐?”
삼봉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걸 게 없어서. 그놈들이 그거면 받아 준다고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