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41자)
뒷나루 밑
기루 문지기가 된 소림 땡중 · 류청산
나는 거짓말을 했다.
“처음이야.”
혜각은 내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운하 위로 배 그림자가 다 빠져나간 뒤에도 한참 물을 보고 서 있었다. 맨발 아래 나루 판자가 젖어서 검게 번들거렸다. 이윽고 말했다.
“배가 말뚝 사이를 지날 때 첨벙 소리가 세 번 났습니다. 물고기는 그렇게 안 뜁니다.”
“그럼 뭐가 뛰었는데?”
혜각은 대답하지 않고 나루 끝에 쪼그려 앉았다. 귀를 물 쪽으로 기울였다. 나도 따라 귀를 기울였는데 들리는 건 물이 말뚝에 부딪혀 찰랑대는 소리뿐이었다. 혜각은 이 소리 사이에서 다른 것을 듣고 있었다. 이를 딱딱 부딪는 소리였다는 걸 나는 나중에 알았다.
동이 틀 무렵 혜각이 물에 들어갔다. 승복을 벗어 나루에 개어 두고 속옷 바람으로 들어갔는데, 늦가을 새벽 운하는 숨을 들이쉬기만 해도 이가 시렸다. 물이 혜각의 가슴까지 왔다. 말뚝을 하나씩 짚으며 나루 밑으로 들어갔고, 판자 사이로 혜각의 머리통이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행수님, 이불.”
나는 이불을 가지러 뛰었다. 이층 계단을 두 칸씩 오르면서 이불을 왜 가지러 가는지 생각했고, 다시 내려오면서 알았다. 혜각이 나루 밑에서 처음 끌어낸 것은 사내아이였다. 일곱 살쯤 됐을까. 신발이 없었고, 입술이 가지 빛이었다. 두 번째는 열한두 살쯤 된 계집아이였는데, 볼에 주근깨가 깨알처럼 박혀 있었고, 혜각의 팔을 할퀴며 버둥댔다. 세 번째로 나온 아이는 가장 작았다. 이 아이는 울지도 버둥대지도 않고 혜각의 목에 매달려 있었다. 나루 밑 말뚝 사이 판자 아래, 사람 하나가 웅크려 들어갈 틈이 있었다. 세 아이는 거기서 서로 껴안고 밤을 났다.
*
부엌 아궁이 앞에 아이 셋을 앉히고 이불을 덮었다. 삼봉이 잠옷 바람으로 내려와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솥에 불을 넣었다. 나는 찬밥을 세 그릇 퍼서 아이들 앞에 놓았다.
이게 잘못이었다. 맨발의 사내아이가 그릇을 받자마자 얼굴을 묻고 밥을 퍼 넣었다. 씹지도 않았다. 주근깨는 사내아이를 한 번 보고, 제 그릇을 보고, 저도 그렇게 먹었다. 가장 작은 아이만 그릇을 두 손으로 안고 가만히 있었다. 열 숟갈도 안 돼 사내아이가 몸을 꺾더니 먹은 것을 다 쏟았다. 바닥에 쏟아진 밥알이 거의 그대로였다.
내가 그릇을 빼앗으려 하자 사내아이가 그릇을 끌어안고 울었다. 빼앗기는 줄 알았던 거다.
혜각이 아궁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젖은 몸에 승복만 걸쳐서 김이 났다. 사내아이의 그릇에 손대지 않고, 제 손가락 하나를 아이 눈앞에 세웠다.
“한 숟갈 먹고, 내가 열 셀 동안 기다린다. 그러면 안 뺏는다. 약속하면 고개 끄덕여.”
아이가 끄덕였다. 혜각이 셌다. 하나, 둘, 셋. 열까지 세는 동안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폈고, 아이는 이 손가락을 노려봤다. 열이 되자 한 숟갈. 다시 하나부터.
“이게 뭐요, 스님, 무슨 수행이오?” 삼봉이 솥 앞에서 물었다.
“굶은 배는 갑자기 차면 놀랍니다. 북쪽 마을에서는 나라가 굶는 사람들한테 내리는 구휼미를 받은 날 죽는 사람이 굶은 날보다 많았어요.”
“북쪽 마을엔 언제 가 봤소?”
혜각은 열을 셌다.
삼봉이 쌀 한 줌을 물 한 솥에 넣고 미음을 끓였다. 쌀알이 다 풀어지고 국물이 뿌옇게 흐려질 때까지 주걱을 놓지 않았다. 소금을 손끝으로 한 꼬집 넣고 맛을 보더니 한 꼬집 덜어 냈다. 이 미음을 맛보니 쌀 냄새만 겨우 나는 맹물이었다. 아이들은 이것을 한 그릇씩 다 먹었다. 혜각이 셌고, 아이들이 기다렸고, 한 숟갈씩.
“내기하겠소?” 삼봉이 나를 보지 않고 말했다. “저 꼬맹이가 열 세기 전에 숟가락 드는 데 동전 다섯.”
“영감, 이 판국에 그게 나와?”
“이 판국이니까 나오지.”
사내아이는 열을 다 기다렸다. 삼봉은 동전 다섯 닢을 사내아이 손에 쥐여 주었다. 아이는 동전을 들여다보다가 입에 넣으려 했고, 혜각이 이것을 빼서 아이 앞섶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
아이들의 손목에 새끼줄 자국이 있었다. 셋 다 같은 자리, 오른쪽 손목뼈 위였다. 한 줄로 묶어 끌고 다닌 자국이었다. 살갗이 벗겨진 자리가 물에 불어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나는 이것을 오래 보지 못했다.
주근깨가 말을 했다. 버들목이라는 마을에서 왔다고 했다. 운하 북쪽, 갈대가 많은 물가 마을이었다. 여름에 비가 안 와서 벼가 다 말랐고, 가을에 거간이 배를 타고 왔다. 거간이 마을 타작마당에 쌀 두 말을 내려놓으면 집에서 아이 하나가 배에 올랐다.
“우리 아버지는 두 말 받았어요.” 주근깨는 미음 그릇 바닥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우리 오빠는 한 말 반 받았어요. 키가 작아서.”
“오빠는 어디 있어?”
“다른 배요. 우리보다 먼저 갔어요.”
주근깨는 사내아이를 턱으로 가리켰다. 이 아이는 다른 마을 아이였고, 배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가장 작은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주근깨는 이 아이가 처음부터 말을 안 했다고 했다. 이 아이는 혜각의 승복 소매 끝을 쥐고 놓지 않았는데, 혜각이 일어나 솥에 물을 부으러 가면 소매에 끌려 같이 일어났다.
기녀들이 하나둘 부엌에 내려왔다. 금란이 팔짱을 끼고 문간에 섰다.
“행수님, 우리가 언제부터 고아원이에요?”
“오늘부터.”
“애들 먹일 쌀은요? 안 그래도 쌀값이 세 배인데.”
“네 방 화장품 값에서 빼.”
금란이 입을 다물었다가, 제 방으로 올라가더니 꿀을 탄 대추차 한 사발을 들고 내려왔다. 아이들 앞에 내려놓고는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다시 올라갔다.
아이들은 다락에 숨겼다. 비파와 철 지난 이불을 쌓아 두는 다락이었는데, 이불 사이에 셋이 들어가 누우니 꼭 맞았다. 연홍이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이불을 다시 쌓았다. 가장 작은 아이에게 비파 줄 하나를 퉁겨 보였고, 아이는 소리가 날 때마다 눈을 깜박였다.
*
한낮에 나는 저녁에 줄 술 한 병을 미리 들고 대문으로 나갔다. 혜각은 어젯밤 주운 쇠갈고리를 대문 빗장 옆에 끈으로 묶어 달고 있었다. 녹이 슨 갈고리 끝이 햇빛에 붉게 번들거렸다.
“그건 왜 거기 달아?”
“주인이 찾으러 오면 돌려드리려고요. 문에 걸어 두면 잃어버릴 일이 없습니다.”
혜각은 술병을 받아 마개를 뽑고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병 주둥이를 들여다봤다.
“물 탔네요.”
“문지기 술이야. 원래 그래.”
혜각이 한 모금 더 마셨다. 물 탄 술도 술이라는 얼굴이었다. 나는 대문 기둥에 등을 대고 물었다. 아이들을 관아에 맡기면 어떻겠느냐고. 도둑 잡는 포졸들을 거느리고 운하 거리를 맡은 관아 포두가 사흘에 한 번 홍월루에서 외상술을 마시니, 이 사람에게 말하면 될 거라고.
“관아가 길 잃은 아이를 어디 맡기는지 아십니까?”
“어디 맡기는데?”
“주인 찾아 줍니다.” 혜각이 술병 마개를 도로 끼웠다. “아이 값을 치른 사람이 주인이지요.”
“그럼 스님이 데려가.”
“저는 밥 한 끼 값 문지기입니다. 애들은 행수님 집 다락에 있고요.”
나는 이 말이 얄미워서 술병을 도로 빼앗았다. 혜각은 빼앗긴 병을 아쉽게 바라보다가, 대문 앞을 지나는 손님에게 합장했다. 손님이 움찔해서 길 건너편으로 비켜 갔다.
*
반여혁은 오후에 왔다. 이번에는 손님으로 왔다. 혼자였고, 대문 앞에서 혜각에게 동전 한 닢을 던졌다.
“스님, 시주요.”
혜각은 동전을 받아 들고 들여다보더니 합장했다.
“고맙습니다. 쌀 사겠습니다.”
“무슨 쌀을?”
“그냥 쌀이요. 요즘 쌀이 귀해서.”
반여혁은 대청 한가운데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여아홍을 시켰다. 딸이 태어나면 땅에 묻었다가 시집가는 날 꺼낸다는 노란 술이었다. 홍월루에는 스무 해 묵은 것이 세 단지 남아 있었다. 나는 직접 단지를 열었다. 진흙 마개를 깨자 대추와 오래된 나무의 냄새가 대청에 퍼졌다.
반여혁은 첫 잔을 입에 머금고 한참 있다가 삼켰다.
“스무 해가 아니라 열여섯 해로군. 단지 바닥에 새 술을 섞었소.”
맞았다. 이 단지는 내가 넘겨받았을 때 이미 반이 비어 있었다. 나는 웃었다.
“방주님 혀는 속일 수가 없네요.”
“사람 혀는 다 속일 수 있소. 내가 남의 술을 많이 마셔 봤을 뿐이지.” 반여혁은 잔을 내려놓고 부채를 한 칸 폈다. “어젯밤 우리 배에서 물건 셋이 떨어졌소. 이 집 나루 밑으로 흘러들어 왔을 거요.”
“물건이요? 오늘 아침 나루 밑엔 떠내려온 오리 한 마리밖에 없던데요.”
“그 물건은 울기도 하오.”
“오리도 웁니다, 방주님.”
반여혁이 웃었다. 혜각은 대청 문간에 서 있었다. 대문을 비워 두고 들어와서는 기둥에 기대 손을 모으고 있었는데, 반여혁이 웃을 때마다 모은 손의 엄지가 조금씩 움직였다.
“금 행수, 셈 빠른 사람끼리 돌려 말하지 맙시다.” 반여혁이 잔에 술을 다시 채웠다. 제 손으로 채웠다. “물건 셋을 돌려주시오. 그리고 밤마다 뒷나루를 내게 빌려주시오. 그러면 다달이 내던 뱃길 값은 없던 일로 하겠소. 오히려 내가 다달이 열 냥을 내지.”
“싫다면요?”
“그럼 홍월루로 오는 배는 운하 세 물목 어디서도 못 들어오오.” 반여혁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쌀배, 술배, 숯배, 생선배. 이 집 부엌이 사흘이면 식을 거요.”
나는 계산했다. 열여덟 해 동안 해 온 대로, 쌀 몇 섬과 숯 몇 짐과 기녀 열둘의 밥과 손님상의 술을. 다달이 열 냥이면 홍월루는 겨울을 편하게 난다. 나루를 밤에만 빌려주면 된다. 지금까지 두 해 동안 못 들은 척한 소리를 앞으로도 못 들은 척하기만 하면 된다.
다락 쪽에서 비파 줄 하나가 퉁 울렸다. 아주 작게.
반여혁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봤다. 나는 술병을 들어 반여혁의 잔에 술을 따랐다. 잔이 넘치도록 따랐다. 노란 술이 잔을 넘어 상 위로 흘렀고, 반여혁의 소매 끝을 적셨다.
“어머나, 손이 미끄러졌네. 우리 집 문지기도 미끄러지고 저도 미끄러지고, 이 동네가 원래 미끄럽나 봐요.”
반여혁이 젖은 소매를 내려다봤다. 부채를 접었다. 그리고 잔을 들어 넘친 술을 다 마셨다. 상 위에 흐른 것까지 손가락으로 찍어 혀에 댔다.
“이 술은 반만 마시겠소. 나머지는 사흘 뒤에 와서 마시지.” 반여혁이 일어섰다. “그때 행수가 웃고 있으면 내가 한 잔 따르겠소. 안 웃고 있으면 행수가 따르시오.”
반여혁은 문간에서 혜각 앞을 지나며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 사이가 한 뼘이었다.
“스님 손목 굵기를 보니 뱃짐 꽤나 지셨겠소.”
“절에서 물을 많이 길었습니다.”
“숭산 물은 짠가 보오. 스님 손등에 소금 튼 자국이 있소.”
혜각은 합장했다. 반여혁은 웃으며 나갔다. 대문 밖에서 부채를 펴는 소리가 났다. 쇠살이 한 칸씩 맞물리는 소리였다.
*
이날 밤, 나는 다락에 올라갔다. 이불 사이에서 사내아이와 작은 아이는 자고 있었다. 주근깨만 눈을 뜨고 있었다. 다락 지붕 틈으로 운하의 물 냄새가 들어왔다. 비린 갈대 냄새였다.
주근깨가 이불 밖으로 손을 내밀어 내 치맛자락을 잡았다. 손목의 새끼줄 자국이 등잔불에 붉었다.
“아줌마, 다음 배도 이 밑으로 지나가요?”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아이의 손을 이불 안으로 넣어 주었다. 다락 사다리 아래에서 혜각이 대문으로 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맨발이 아니었다. 이날 밤 처음으로 짚신 끈을 단단히 매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