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669자)

밥 한 끼 값

기루 문지기가 된 소림 땡중 · 류청산

사람은 먹는 걸 보면 안다⁠. 나는 홍월루에서 열여덟 해 동안 술상을 봤고⁠, 그동안 손님 얼굴보다 젓가락을 먼저 보는 버릇이 들었다⁠. 생선 살을 뼈째 뒤집는 사람은 셈이 급하고⁠, 술잔을 다 비우기 전에 다음 잔을 부르는 사람은 외상이 길다⁠. 고기 기름이 식어 하얗게 굳을 때까지 손을 안 대는 사람은 대개 남의 돈으로 온 사람이다⁠.

같은 해 늦가을⁠, 홍월루 부엌 뒷문 앞에서 돼지고기에 합장하는 중을 봤을 때도 나는 젓가락부터 봤다⁠.

“⁠나무아미타불⁠. 돼지 시주님⁠, 극락에 가시거든 다음 생엔 콩으로 나십시오⁠. 그래야 제가 덜 미안합니다⁠.⁠”

중은 그렇게 말하고 삼겹살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덩치는 쌀가마 둘을 포개 놓은 것 같았고⁠, 잿빛 승복은 무릎이 다 해져 속살이 보였다⁠. 머리는 깎은 지 오래돼 밤송이처럼 까칠하게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먹는 모양이 이상하게 깨끗했다⁠. 비계를 떼어 내지 않았고⁠, 뼈에 붙은 살은 이로 긁어 먹었고⁠, 마지막에는 밥 한 숟갈로 그릇 바닥의 기름을 닦아 냈다⁠. 굶어 본 사람이 먹는 법이었다⁠. 굶어 본 사람 가운데서도 남의 밥을 얻어먹어 본 사람이 먹는 법이었다⁠.

“⁠삼봉 영감⁠.⁠”

내가 부르자 주방장 삼봉이 화들짝 놀라 고기 접시를 등 뒤로 감췄다⁠. 쉰 살에 배가 앞치마를 밀어내는 사내였는데⁠, 남의 눈을 피할 때만 몸이 날랬다⁠.

“⁠행수님⁠, 이건 그러니까⁠, 손님이 남긴 거요⁠.⁠”

“⁠손님이 남긴 고기를 왜 화로에 다시 굽고 있어⁠?⁠”

“⁠식으면 맛이 없잖소⁠.⁠”

중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내게 합장했다⁠. 손바닥이 솥뚜껑만 했다⁠.

“⁠혜각이라 합니다⁠. 숭산 소림에서 왔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소림에서 쫓겨나 왔습니다⁠.⁠”

“⁠왜 쫓겨났는데⁠?⁠”

“⁠술하고 고기요⁠.⁠” 혜각은 빈 그릇을 내려다봤다⁠. “⁠둘 다 맛있어서⁠.⁠”

삼봉이 웃음을 참다 사레가 들려 화로 쪽으로 돌아섰다⁠. 나는 웃지 않았다⁠. 같은 해 강남에는 북쪽에서 기근이 내려와 있었다⁠. 운하 위로 올라오는 쌀배가 반으로 줄었고⁠, 쌀값은 봄의 세 배였다⁠. 홍월루 부엌에서 고기 한 근이 나가면 나는 이 값을 밤새 머릿속에서 굴렸다⁠.

“⁠밥값은 있어⁠?⁠”

“⁠없습니다⁠.⁠”

“⁠그럼 몸으로 내⁠.⁠”

혜각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동그래졌다가 귀까지 빨개졌다⁠. 삼봉이 이번에는 정말로 화로 앞에 주저앉아 웃었다⁠.

“⁠대문 말이야⁠, 대문⁠.⁠” 나는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우리 문지기가 여드레 전에 그만뒀어⁠. 하루 두 끼⁠, 저녁에 술 한 병⁠. 문 앞에서 사고 안 나게 서 있기만 하면 돼⁠.⁠”

“⁠고기는요⁠?⁠”

“⁠삼봉 영감이 몰래 주는 건 내가 모르는 일이고⁠.⁠”

혜각은 다시 합장했다⁠. 이번에는 삼봉 쪽으로였다⁠.

*

여드레 전에 그만둔 문지기는 그만둔 게 아니었다⁠. 쉰 넘은 홀아비였는데⁠, 밤늦게 뒷나루에 나갔다가 갈비뼈 세 대가 부러진 채 돌계단에서 발견됐다⁠. 홀아비는 미끄러졌다고 했다⁠. 운하 거리에서 미끄러졌다는 말은 삼협방 사람을 봤다는 말이다⁠. 운하 세 물목을 쥐고 배마다 뱃길 값을 받는 뱃사람 방회⁠, 삼협방은 같은 해 가을 들어 홍월루 뒷나루를 사겠다고 세 번 사람을 보냈고⁠, 나는 세 번 다 웃으면서 돌려보냈다⁠.

이날 저녁⁠, 홍월루 대문에 붉은 등 두 개가 걸리고 혜각이 이 사이에 섰다⁠. 문지기 옷이 몸에 맞지 않아 승복 위에 허리띠만 둘렀다⁠. 첫 손님은 비단 가게 주인이었다⁠. 이 사람은 대문 앞에서 덩치 큰 중을 보더니 걸음을 멈췄다⁠.

“⁠어서 오십시오⁠, 시주님⁠.⁠” 혜각이 합장했다⁠. “⁠오늘 극락은 이층입니다⁠.⁠”

비단 가게 주인은 뒤를 한 번 돌아보더니⁠, 아내가 보낸 사람이냐고 물었다⁠. 혜각이 아니라고 하자 그래도 오늘은 안 되겠다며 돌아갔다⁠. 두 번째 손님은 소금 흥정을 붙여 주고 구전을 받는 소금 거간이었는데⁠, 혜각이 문을 열어 주며 “⁠나무관세음보살⁠” 하자 문턱에서 두 번 절을 하고 들어갔다⁠. 세 번째 손님은 아예 동전 한 닢을 혜각의 손바닥에 놓고 갔다⁠. 혜각은 이 동전을 보시함이 없어 품에 넣었다⁠.

기녀 금란이 이층 난간에 기대 나를 불렀다⁠.

“⁠행수님⁠, 손님들이 자꾸 우리더러 절에서 왔냐고 물어요⁠. 아까 어떤 양반은 나한테 향을 사르냐고 했다고요⁠.⁠”

“⁠그래서 뭐라고 했어⁠?⁠”

“⁠사른다고 했지요⁠. 한 대에 은 한 닢⁠.⁠”

연홍은 이층 창가에서 비파를 무릎에 얹은 채 대문 쪽을 보고 있었다⁠. 스물넷⁠, 홍월루에서 노래가 제일 비싼 아이였다⁠. 혜각이 합장할 때마다 줄 하나를 퉁겼는데⁠, 이게 꼭 목탁 소리 같아서 손님들이 웃었다⁠.

해 지고 첫 북이 울리는 초경 무렵⁠, 삼봉이 대문으로 저녁상을 내왔다⁠. 밥 한 그릇에 무 장아찌⁠, 그리고 밥 밑에 숨긴 돼지 수육 다섯 점이었다⁠. 혜각이 그릇을 받아 드는데 길 건너 처마 밑에서 여자 하나가 일어섰다⁠.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이었다⁠. 이 가을 운하 거리 처마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씩 앉아 있었다⁠. 볼이 안으로 말려 들어가 광대뼈가 등불에 번들거렸다⁠.

혜각은 젓가락으로 밥 위의 장아찌를 걷어 내고⁠, 밥 밑의 수육을 한 점씩 집어 제 입에 넣었다⁠. 다섯 점을 다 먹고 나서 남은 밥과 장아찌를 그릇째 여자에게 건넸다⁠. 나는 기가 막혀 대문 기둥에 기댔다⁠.

“⁠스님⁠, 보통은 거꾸로 하지 않나⁠?⁠”

“⁠굶은 속에 비계 들어가면 밤새 토합니다⁠.⁠” 혜각은 입가의 기름을 소매로 닦았다⁠. “⁠밥은 시주님 몫이고 고기는 제 업보지요⁠.⁠”

여자는 그릇을 품에 안고 처마 밑으로 돌아가 앉아⁠, 밥알을 한 알씩 세듯 천천히 먹었다⁠. 혜각은 그쪽을 다시 보지 않았다⁠. 이날 밤 밥 한 숟갈 없이 고기 다섯 점으로 대문을 지켰다⁠.

이경이 지나 사고가 났다⁠. 소금 상인의 아들이 연홍 방에서 술을 쏟고 상을 엎었다⁠. 연홍이 노래를 하나 더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사내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연홍의 손목을 잡아끌었고⁠, 연홍은 계단 난간을 붙잡았다⁠. 내가 계단 아래로 가기도 전에 혜각이 먼저 와 있었다⁠.

“⁠시주님⁠.⁠”

“⁠꺼져⁠, 중놈아⁠.⁠”

“⁠색즉시공이라 했습니다⁠.⁠” 혜각은 사내의 허리띠를 한 손으로 쥐었다⁠. “⁠시주님 몸도 공이니 가벼울 겁니다⁠.⁠”

그리고 들었다⁠. 정말로 가벼운 것처럼⁠, 짐 부리는 사람이 쌀자루를 어깨에 얹듯 사내를 들어 어깨에 걸었다⁠. 사내의 다리가 허공에서 버둥댔다⁠. 혜각은 불경 가운데 가장 짧다는 반야심경을 처음부터 외면서 계단을 내려가고⁠, 대청을 지나고⁠, 대문을 나가 길바닥에 사내를 내려놓았다⁠. 경이 끝날 때까지 사내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다 외고 나서 혜각이 합장하자 사내는 신발 한 짝을 두고 뛰었다⁠.

연홍이 손목을 문지르며 계단을 내려왔다⁠.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스님⁠, 그거 어디까지가 불경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요⁠.⁠”

“⁠중간에 ‘⁠이 새끼⁠’ 한 것도요⁠?⁠”

혜각이 헛기침을 했다⁠. 처음으로 틀린 경을 들킨 밤이었다⁠.

*

삼경이 가까울 무렵⁠, 대문 앞 길에 등불 다섯이 줄지어 왔다⁠. 등마다 물결 세 줄이 그려져 있었다⁠. 삼협방의 표였다⁠. 앞장선 사내는 등불을 들지 않았다⁠. 마흔쯤⁠, 목이 길고 얼굴이 희었으며⁠, 검은 비단 옷소매에서 손을 꺼낼 때마다 쥔 부채가 등불을 받아 번쩍였다⁠. 쇠로 살을 댄 부채였다⁠.

삼협방 방주 반여혁이었다⁠. 나는 반여혁을 세 번 만났다⁠. 세 번 다 반여혁은 웃었고⁠, 세 번 다 웃음이 끝나기 전에 사람을 하나씩 다치게 했다⁠.

“⁠금 행수⁠.⁠” 반여혁이 부채를 한 칸 폈다⁠. “⁠늦은 밤에 미안하오⁠. 오늘은 뒷나루만 잠깐 보러 왔소⁠.⁠”

“⁠뒷나루는 낮에 보셔도 그대로입니다⁠, 방주님⁠.⁠”

“⁠낮에 보는 것과 밤에 보는 것이 다르오⁠. 내가 쓰려는 게 밤이라서⁠.⁠”

반여혁이 한 걸음 대문 쪽으로 왔다⁠. 혜각이 이 앞에 섰다⁠. 두 사람의 키는 비슷했는데⁠, 혜각이 옆으로 반 뼘씩 더 넓었다⁠. 반여혁은 혜각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다가 해진 무릎에서 눈을 멈췄다⁠.

“⁠중이 기루 문을 지키다니⁠. 부처님이 웃으시겠소⁠.⁠”

“⁠부처님은 원래 잘 웃으십니다⁠.⁠” 혜각이 합장했다⁠. “⁠오늘 저희 집은 술 드시러 오는 분만 받습니다⁠. 나루 보러 오시는 분은 내일 해 뜬 뒤에 오십시오⁠.⁠”

“⁠이 집 문지기는 미끄러져서 그만뒀다고 들었소⁠. 자네도 발밑을 조심하시오⁠.⁠”

반여혁 뒤에서 덩치 하나가 나왔다⁠. 허리에 뱃짐 끄는 쇠갈고리를 차고 있던 사내였다⁠. 이 사람은 갈고리를 빼 들고 혜각의 어깨를 향해 내리찍었다⁠. 등불 다섯이 동시에 흔들렸다⁠.

나는 다음을 다 보지 못했다⁠. 혜각의 왼팔이 올라가 갈고리 자루를 팔뚝으로 받았고⁠, 오른손이 사내의 손목을 감아 쥐었다⁠. 뼈가 꺾이는 소리가 짧게 났다⁠. 갈고리가 돌바닥에 떨어져 두 번 튀었다⁠. 혜각은 사내의 허리띠를 잡아 몸을 한 바퀴 돌렸고⁠, 사내는 대문 옆 난간을 넘어 운하로 떨어졌다⁠. 늦가을 운하의 물이 길바닥까지 튀어 올라 내 치맛자락을 적셨다⁠. 차가웠다⁠.

사내는 손목이 꺾여 헤엄을 치지 못했다⁠. 물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가 가라앉고⁠, 다시 내밀었다⁠. 삼협방 사내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반여혁이 부채를 한 칸 더 폈다⁠.

혜각이 난간 아래 돌계단으로 내려갔다⁠. 맨 아래 계단에 무릎을 꿇고 팔을 물속에 끝까지 집어넣더니⁠, 사내의 뒷덜미를 잡아 끌어올렸다⁠. 사내는 계단에 엎어져 물을 토했다⁠. 혜각은 이 등을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

“⁠물에 빠진 사람은 건져야지요⁠. 던진 놈이 건지는 게 순서입니다⁠.⁠”

반여혁이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를 내서 웃었다⁠. 부채를 접어 손바닥에 탁 치더니 나를 봤다⁠.

“⁠금 행수⁠, 좋은 문지기를 들였소⁠. 그런데 문이란 건 원래 열리게 돼 있소⁠. 막는 놈이 얼마나 버티는지 보는 게 내 낙이오⁠.⁠”

반여혁은 돌아서서 등불들을 데리고 갔다⁠. 물에 젖은 사내는 다른 사내 둘의 어깨에 걸려 끌려갔다⁠. 돌바닥에 떨어진 쇠갈고리만 남았다⁠. 혜각이 이것을 주워 들고 한참 들여다보다가⁠, 대문 옆 물통에 꽂았다⁠.

“⁠스님⁠, 저 사람이 누군지 알아⁠?⁠”

“⁠압니다⁠.⁠” 혜각이 젖은 소매를 짰다⁠. 물이 돌바닥에 똑똑 떨어졌다⁠. “⁠운하 사람치고 삼협방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스님은 숭산에서 왔다며⁠.⁠”

혜각은 대답 대신 내게 합장했다⁠. 이 합장이 아까 손님들에게 하던 것과 달랐다⁠. 손이 조금 늦게 모였다⁠.

*

자정이 넘어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부엌에 내려갔다⁠. 손님상에서 물린 황주⁠, 누런 빛이 도는 곡식 술이 반 병 선반에 있었다⁠. 한 모금 마셔 보니 식은 술 특유의 쇠 맛이 혀끝에 남았다⁠. 반여혁이 대문 앞에서 웃을 때 나던 냄새가 그런 맛이었다⁠.

홍월루 뒤쪽은 운하로 바로 내려간다⁠. 부엌 뒷문을 열면 돌계단이 열두 칸⁠, 이 아래 판자를 깐 작은 나루가 있고⁠, 나루 밑으로는 말뚝이 줄지어 물에 박혀 있다⁠. 밤이면 이 아래로 배가 지나간다⁠. 두 해 전부터 그랬다⁠. 노 젓는 소리를 죽인 배가 한 달에 서너 번⁠, 삼경 무렵 홍월루 밑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갔다⁠. 나는 이 배가 지나가는 밤마다 삼협방에 낸 뱃길 값을 떠올렸다⁠. 다달이 은 다섯 냥⁠. 이 값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는 약속이 들어 있었다⁠.

이날 밤에도 노 소리가 났다⁠. 물을 가르는 소리가 낮고 느렸다⁠. 그리고 이 아래에서 다른 소리가 났다⁠.

아이 우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고양이인 줄 알았다⁠. 두 번째에 사람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고⁠, 세 번째 소리는 중간에 끊겼다⁠. 누가 손바닥으로 입을 막은 것처럼 툭 끊겼다⁠.

나는 술병을 내려놓았다⁠. 손에 쥔 병이 선반 모서리에 부딪혀 짧게 울렸다⁠. 뒷문 빗장을 열고 돌계단 위에 섰다⁠.

혜각이 이미 나루에 서 있었다⁠. 맨발이었다⁠. 승복 자락이 젖어 다리에 붙어 있었고⁠, 운하 쪽을 향해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배 그림자가 나루 밑 말뚝 사이를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혜각이 내 쪽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행수님⁠, 이 소리 오늘 처음 들으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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