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383자)

화방

기루 문지기가 된 소림 땡중 · 류청산

버들목에서 돌아온 것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홍월루 뒷나루에 배를 대자 돌계단 위에 연홍이 서 있었다⁠. 밤새 거기 서 있었는지 머리에 서리가 앉아 있었다⁠. 혜각의 등부터 봤다⁠. 승복 등판에 피가 다시 배어 나와 있었다⁠.

“⁠쌀 지셨죠⁠?⁠”

“⁠한 가마요⁠.⁠”

“⁠거짓말⁠. 다섯 가마는 지셨겠지⁠.⁠”

혜각이 나무아미타불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연홍이 혜각의 소매를 잡고 문간방으로 끌고 갔다⁠. 거간은 외눈과 짐꾼들이 짐꾼 숙소로 데려갔다⁠.

대청에 들어서니 술상 위에 접힌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은향이 새벽에 대문 틈에서 주웠다고 했다⁠. 펴 보니 두 줄이었다⁠. 오늘 한낮⁠, 서쪽 물목 앞 화방에서 기다리겠소⁠. 동생 이야기를 마저 합시다⁠.

“⁠가지 마십시오⁠.⁠” 혜각이 문간방에서 소리쳤다⁠. 등에 연홍이 고약을 바르는 중이라 목소리가 떨렸다⁠. “⁠오늘 밤이 본창고입니다⁠. 그 사람이 행수님을 부르는 건 오늘이라서 부르는 겁니다⁠.⁠”

“⁠알아⁠.⁠”

“⁠그런데 가십니까⁠?⁠”

“⁠스무 해 동안 아무도 내 동생 이야기를 안 했어⁠. 처음 한 사람이 저 사람이야⁠.⁠” 나는 종이를 접어 소매에 넣었다⁠. “⁠그리고 내가 화방에 앉아 있으면 저 사람도 화방에 앉아 있어야지⁠. 스님이 오늘 밤 할 일을 저 사람이 낮에 못 보게⁠.⁠”

혜각은 더 말하지 않았다⁠. 연홍이 혜각의 등을 손바닥으로 철썩 쳤다⁠. 고약이 잘 붙으라고 친 것이라 했다⁠.

금란이 내 방에 분첩을 들고 따라 들어왔다⁠. 행수님이 화방에 이 얼굴로 가면 홍월루 망신이라고 했다⁠. 버들목에서 하룻밤 배를 타고 와서 내 얼굴은 바람에 터서 허옇게 일어나 있었다⁠. 금란은 내 볼에 분을 두드리고 입술에 연지를 찍었다⁠. 그리고 쪽 진 머리를 들여다보더니 혀를 찼다⁠.

“⁠비녀가 없네요⁠. 은비녀는요⁠?⁠”

“⁠소금 창고에서 새끼줄 쑤시다 휘었어⁠.⁠”

금란이 제 머리에서 나무 비녀를 뽑아 내 머리에 꽂았다⁠. 싸구려 대추나무 비녀였다⁠. 손님한테 받은 은비녀는 다 전당포에 있다고 했다⁠. 나는 거울을 보지 않았다⁠. 볼에서 분 냄새가 났다⁠. 열여덟 해 동안 남의 볼에서만 맡던 냄새였다⁠.

*

화방은 물 위의 기루였다⁠. 부자들이 술과 기녀를 싣고 운하를 천천히 노니는 놀잇배⁠. 반여혁의 화방은 이층이었다⁠. 처마마다 붉은 등이 달렸고⁠, 뱃전에 옻칠한 난간이 둘러져 있었다⁠. 서쪽 물목 앞 넓은 물 위에 닻을 내리고 떠 있었다⁠. 거기서는 소금 창고와 삼협방 본창고와 조운 창고가 한눈에 보였다⁠.

삼봉이 나를 태워 거룻배를 저었다⁠. 노를 잡겠다고 우긴 것은 삼봉이었다⁠. 버들목 배에서 멀미를 그렇게 하고도⁠. 화방에는 부엌이 있다고 들었다며⁠, 물 위에서 고기를 굽는 부엌을 한 번은 봐야 죽을 수 있다고 했다⁠.

화방에 오르자 삼협방 사내가 삼봉을 부엌 쪽으로 데려갔다⁠. 나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반여혁이 화로 곁에 앉아 있었다⁠. 화로 위에서 술 주전자가 데워지고 있었고⁠, 맞은편 병풍 앞에서 다른 기루의 기녀가 비파를 뜯고 있었다⁠. 내가 아는 아이였다⁠. 이 아이가 나를 보고 눈을 내리깔았다⁠.

“⁠금 행수⁠, 앉으시오⁠.⁠”

나는 앉았다⁠. 반여혁이 손수 술을 따랐다⁠. 잔에서 김이 올랐다⁠. 냄새를 맡았다⁠. 대추와 오래된 나무⁠. 여아홍이었다⁠. 홍월루 부엌에서 쌍도객의 칼에 깨진 것과 같은 해에 담근 술⁠.

“⁠우리 집 여아홍은 다 깨졌는데요⁠.⁠”

“⁠그래서 내 것을 가져왔소⁠. 반만 마시고 간 술을 마저 마시겠다고 하지 않았소⁠?⁠”

나는 잔을 들었다⁠. 한 모금 머금고 혀 위에서 굴렸다⁠. 열여섯 해⁠. 이번에는 섞지 않은 술이었다⁠.

“⁠새 술은 안 섞으셨네요⁠.⁠”

“⁠나는 남의 술에만 섞소⁠.⁠”

아래층 부엌에서 삼봉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이 생선은 사흘 됐소⁠, 아가미를 보시오⁠, 내기하겠소⁠? 화방 숙수가 뭐라고 대꾸했고⁠,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 반여혁이 웃었다⁠. 나도 웃을 뻔했다⁠. 웃음 대신 술을 삼켰다⁠.

*

반여혁이 부채를 폈다⁠. 부채 살 사이에 매화 비녀가 끼워져 있었다⁠. 비녀를 뽑아 술상 위에 놓았다⁠. 내 쪽으로⁠.

“⁠스무 해 전 늦가을이었소⁠. 나는 그해 짐꾼 반장 밑에서 배 밑창을 치웠지⁠. 북쪽에서 아이 실은 배가 오면 밑창에 내려가 똥오줌을 퍼냈소⁠. 그해 배들은 아이를 가득 실어 왔소⁠. 행수 고향 쪽에서도⁠.⁠”

반여혁은 내 고향 마을 이름을 댔다⁠. 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잔 바닥이 상에 닿는 소리가 너무 컸다⁠.

“⁠그 배에 한 말 반짜리 사내아이가 있었소⁠. 다른 아이들은 울었는데 그 아이는 울지 않았소⁠. 울지 않는 대신 배 밑창 판자 틈으로 손가락을 넣어 물을 만졌지⁠. 물이 차다고⁠, 누나가 물 차가우면 손 넣지 말라고 했다고⁠.⁠” 반여혁이 잔을 들었다⁠. “⁠왼손 등에 화상 자국이 있었소⁠. 엄지손가락만 한⁠.⁠”

나는 숨을 멈춘 채였다⁠.

동생 왼손 등의 화상은 일곱 살 겨울에 화로를 엎어서 생겼다⁠. 내가 이 손을 찬물에 담가 주었다⁠. 물이 차가우면 손 넣지 말라고 한 것은 뒤였다⁠. 데인 손을 너무 오래 찬물에 넣어 두면 덧난다고⁠. 이 말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둘뿐이었다⁠. 나와 동생⁠.

“⁠그 아이를 어디로 팔았는지⁠, 나는 아오⁠. 누가 샀고 지금 어디 사는지도 찾을 수 있소⁠. 삼협방 배는 스무 해 동안 같은 물길을 다녔으니까⁠.⁠” 반여혁이 비녀를 손가락으로 내 쪽으로 한 뼘 더 밀었다⁠. “⁠홍월루를 넘기시오⁠. 땡중은 관아에 다시 넘기시오⁠. 그리고 소주를 떠나시오⁠. 그러면 내가 행수 동생 있는 데까지 배를 내드리지⁠. 이 비녀 꽂고 가시오⁠. 찾으면 꽂으려고 산 거라면서⁠.⁠”

화로에서 숯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비파 뜯던 아이가 손을 멈췄다⁠. 반여혁이 이 아이에게 손짓하자 아이는 다시 줄을 뜯었다⁠. 아무 노래도 아닌 소리였다⁠.

나는 비녀를 집었다⁠. 금이 차가웠다⁠. 열여덟 해 동안 한 번도 머리 기름이 닿지 않은 금⁠. 나는 이것을 오래 보지 않았다⁠. 손을 들어 금란의 대추나무 비녀를 뽑고⁠, 이 자리에 금비녀를 꽂았다⁠. 쪽 진 머리 한가운데⁠, 비녀가 들어갈 자리에⁠. 처음이라 한 번에 안 들어갔다⁠. 두 번째에 들어갔다⁠. 머리가 조금 당겼다⁠.

반여혁이 웃었다⁠. 이긴 사람의 웃음이었다⁠.

“⁠잘 어울리오⁠.⁠”

“⁠고마워요⁠. 꽂아 보니 무겁네요⁠.⁠” 나는 일어섰다⁠. 치마를 털었다⁠. “⁠방주님⁠, 그 아이 이야기 고마워요⁠. 덕분에 알았어요⁠. 내 동생은 스무 해 전에 방주님 배 밑창에 있었어요⁠. 그리고 오늘 밤 방주님 본창고에⁠, 내 동생 같은 애가 마흔 명 있어요⁠. 이 비녀는 그 애들 찾으면 꽂으려고 했던 걸로 칠게요⁠. 오늘 꽂았으니까 오늘 찾아야겠네요⁠.⁠”

반여혁의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부채가 펴지지 않았다⁠. 반여혁은 접힌 부채로 술상을 두 번 두드렸다⁠.

“⁠행수⁠. 창밖을 보시오⁠.⁠”

*

나는 화방 이층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쪽 물목 너머 삼협방 본창고 수문이 열려 있었다⁠. 배 한 척이 수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물결 세 줄을 그린 돛을 반쯤 올리고⁠. 배가 물에 깊이 잠겨 있었다⁠. 짐이 많은 배였다⁠.

“⁠첫 배는 밤을 기다리지 않소⁠. 행수가 내 술을 마시는 동안 떠나는 거요⁠.⁠” 반여혁이 잔을 비웠다⁠. “⁠거간이 버들목에서 무엇을 불었는지 나는 아침에 다 들었소⁠. 땡중이 오늘 밤 온다는 것도⁠. 그러니 밤에 갈 배를 낮에 보내는 거지⁠.⁠”

나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치맛자락이 계단 모서리에 걸려 찢어졌다⁠. 아래층 부엌에서 삼봉이 생선 접시를 든 채로 화방 숙수와 마주 서 있었다⁠. 내가 소리치자 삼봉이 접시를 숙수에게 안기고 뛰어나왔다⁠. 거룻배로 뛰어내렸다⁠. 삼봉이 노를 잡았다⁠.

물 위에서 보니 둑길에 사람이 달리고 있었다⁠. 둘이었다⁠. 앞에 승복 입은 덩치 큰 사내가⁠, 뒤에 치마 입은 작은 여자가⁠. 혜각과 은향이었다⁠. 홍월루에서 서쪽 물목까지 둑길로 반 시진이었는데⁠, 둘은 이 길을 달려와 있었다⁠. 연홍이 대문에서 화방을 지켜보다가 첫 배가 수문을 나오는 것을 보고 알렸을 것이다⁠.

배는 운하 한가운데로 나가고 있었다⁠. 돛이 바람을 받았다⁠. 혜각이 둑 끝에서 물로 뛰어들려 했다⁠. 이 순간 운하 아래쪽에서 다른 배들이 나타났다⁠. 셋이었다⁠. 누런 깃발을 단 배들⁠. 조운 관청의 배였다⁠. 이 배들이 삼협방 배를 가운데 두고 앞뒤로 붙었다⁠. 관청 배 뱃머리에 활을 든 관병이 서 있었다⁠.

혜각이 둑 끝에서 멈췄다⁠. 물에 뛰어들면 관청 배 셋 사이를 헤엄쳐야 했다⁠. 활이 혜각을 겨누고 있었다⁠.

은향은 멈추지 않았다⁠. 둑길 끝까지 달려가 물가 갈대밭으로 들어갔다⁠. 무릎까지 물에 잠겼다⁠. 허리까지⁠. 혜각이 뒤에서 이 아이 팔을 잡았다⁠. 은향이 이 손을 뿌리치며 배 쪽으로 이름을 불렀다⁠. 동생 이름이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은향은 이 이름을 세 번 불렀다⁠. 세 번째는 목이 갈라져서 소리가 반만 나왔다⁠.

배 밑창에서 대답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물소리와 바람 소리와 관청 배의 노 소리 때문에⁠. 다만 은향이 네 번째로 이름을 부르려다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를 들으려는 얼굴이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얼굴이 됐다⁠.

삼협방 배는 관청 배들에 둘러싸여 운하 아래쪽 수문을 빠져나갔다⁠. 수문지기들이 배를 세우지 않았다⁠. 관청 깃발이 있었으니까⁠. 수문이 닫히는 소리가 물을 타고 둑까지 왔다⁠. 나무와 쇠가 맞물리는 둔한 소리⁠.

*

내가 탄 거룻배가 둑에 닿았을 때 은향은 갈대밭에 주저앉아 있었다⁠. 허리까지 물에 잠긴 채로⁠. 혜각이 이 아이를 안아 둑 위로 올렸다⁠. 은향의 치마에서 물이 줄줄 흘렀다⁠. 늦가을 운하 물이었다⁠. 은향의 입술이 가지 빛이었다⁠. 첫날 새벽 홍월루 나루 밑에서 건진 맨발이의 입술 빛이었다⁠.

나는 은향 곁에 앉았다⁠. 이 아이는 울지 않았다⁠. 소리 내서 울지도 않고⁠, 소리 없이 울지도 않았다⁠. 수문 쪽을 보고만 있었다⁠.

“⁠행수님⁠.⁠” 은향이 말했다⁠. “⁠동생이 아까 저 배에서 저 봤을까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거짓말을 하려면 할 수 있었다⁠. 열여덟 해 동안 제일 잘해 온 일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에게는 할 수 없었다⁠. 나는 머리의 비녀를 뽑았다⁠. 매화 비녀를 은향의 손에 쥐여 주었다⁠.

“⁠네가 꽂아⁠. 찾으면⁠.⁠”

은향이 비녀를 내려다봤다⁠. 손이 떨려서 비녀가 손바닥 위에서 흔들렸다⁠.

혜각은 우리 곁에 서 있었다⁠. 수문 쪽을 보지 않았다⁠. 둑 너머⁠, 삼협방 본창고를 보고 있었다⁠. 수문은 닫혔지만 본창고에는 아직 배가 한 척 남아 있었다⁠. 밤에 떠날 배⁠. 거간 말로는 다섯 마을 아이들이 마흔이 넘는다고 했다⁠. 첫 배에 몇이 탔는지 우리는 몰랐다⁠. 남은 배에 몇이 남았는지도⁠.

혜각이 젖은 승복 소매를 짰다⁠. 물이 둑길 흙에 떨어졌다⁠. 손목의 염주를 한 번 고쳐 감았다⁠. 백다섯 알⁠. 그리고 본창고 쪽으로 걸어갔다⁠. 혼자서⁠. 걸음이 빠르지 않았다⁠. 달려서 늦은 사람이 이번에는 걸어서 가는 걸음이었다⁠.

“⁠스님⁠!⁠” 내가 불렀다⁠. “⁠해 지려면 아직 멀었어⁠.⁠”

혜각이 걸으면서 대답했다⁠.

“⁠그러니까 지금 갑니다⁠. 문 앞에 서 있으려고요⁠. 저 사람들이 이번 배도 해 지기 전에 띄울지 모르니까요⁠.⁠”

화방 쪽에서 비파 소리가 났다⁠. 아까 이 아이가 다시 줄을 뜯고 있었다⁠. 이번에는 노래였다⁠. 이별하는 낭군을 부르는 노래⁠. 반여혁이 시킨 노래일 것이다⁠. 화방 이층 창에 서서 둑 쪽을 보고 있었다⁠. 부채를 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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