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5,318자)

버들목

기루 문지기가 된 소림 땡중 · 류청산

쌀 열 가마는 운하 거리에서 사지 못했다⁠. 거리의 쌀은 반여혁이 다 샀다⁠. 두부 장수 과부가 콩을 대는 뭍길 수레꾼에게 말을 넣어 성 밖 농가에서 쌀을 구해 왔다⁠. 값은 시세의 세 배였다⁠. 별실 술상 위에 반여혁이 두고 간 은 꾸러미가 이 값의 반을 냈고⁠, 나머지 반은 홍월루 안방 궤짝 바닥에서 나왔다⁠. 궤짝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었을 때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열여덟 해 만이었다⁠.

배는 외눈이 저었다⁠. 짐꾼들이 쓰는 너른 거룻배에 쌀 열 가마를 싣고⁠, 혜각과 나와 삼봉이 탔다⁠. 혜각의 등은 아직 다 아물지 않아서 노를 잡을 수 없었다⁠. 외눈은 노를 저으면서 한 번도 혜각을 보지 않았고⁠, 혜각도 외눈의 등만 보고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쌀가마가 쌓여 있었다⁠.

삼봉은 배에 오른 지 반 시진 만에 뱃전에 매달려 토했다⁠. 운하 거리에서 쉰 해를 산 사람이 배멀미를 했다⁠. 평생 뭍에서 고기만 구웠다고 했다⁠.

“⁠나무아미타불⁠.⁠”

삼봉이 토할 때마다 혜각이 염불을 했다⁠. 세 번째에 삼봉이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스님⁠, 그거 하지 마시오⁠! 그거 들으면 내가 죽는 것 같소⁠!⁠”

“⁠영감님 속이 극락 가는 중입니다⁠.⁠”

외눈의 노 젓는 손이 한 번 멈칫했다⁠. 웃음을 참느라 어깨가 한 번 들썩였다⁠. 이날 배 위에서 외눈이 웃을 뻔한 것은 이 한 번이었다⁠.

*

운하를 따라 하루를 올라가자 물빛이 바뀌었다⁠. 소주 근처의 운하는 탁해도 배가 가득했는데⁠, 북쪽으로 갈수록 물은 맑아지고 배는 줄었다⁠. 둑 너머로 논이 보였다⁠. 벼가 서서 말라 있었다⁠. 거두지도 못한 채 누렇게 서서 바람에 서걱거렸다⁠. 둑길 가의 나무들은 허리 높이까지 하얬다⁠. 껍질이 벗겨진 자리였다⁠. 사람 손이 닿는 높이까지만 하얬고⁠, 이 위는 원래 껍질이 붙어 있었다⁠.

버들목은 이름처럼 갈대와 버드나무가 많은 물가 마을이었다⁠. 집이 서른 채쯤 됐는데 연기가 오르는 굴뚝이 셋이었다⁠. 나루에 배를 대자 아이 둘이 둑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다가 달아났다⁠. 배가 닿으면 아이가 떠나는 마을이었다⁠.

마을 어귀 첫 집에서 여자 하나가 솥을 걸어 놓고 뭔가를 끓이고 있었다⁠. 혜각이 합장하자 여자는 국자로 솥을 저으며 우리를 봤다⁠. 솥 안에서 끈적한 것이 끓고 있었다⁠. 여자가 사발에 한 국자를 떠서 내밀었다⁠. 손님이 오면 먹을 것을 내미는 건 굶는 마을에서도 그대로였다⁠.

나는 이것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느릅나무 껍질을 벗겨 말려 빻아서 끓인 죽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아무 맛이 없었다⁠. 다음에 미끈거리는 것이 혀에 감겼고⁠, 마지막에 떫고 쓴 나무 맛이 목구멍 안쪽에 남았다⁠. 아무리 삼켜도 이 맛이 내려가지 않았다⁠. 열여덟 해 동안 남이 먹는 걸 보고 사람을 재 온 내가⁠, 이 사발 앞에서는 아무도 잴 수 없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다 같은 것을 먹고 있었다⁠.

혜각은 사발을 받아 끝까지 비웠다⁠. 그리고 여자에게 합장했다⁠. 다른 날보다 오래⁠.

*

타작마당에 쌀가마를 부렸다⁠. 외눈과 혜각이 한 가마씩 져서 날랐다⁠. 혜각은 등이 터지는데도 쌀을 졌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나왔다⁠. 다들 볼이 안으로 말려 있었고⁠, 다들 쌀가마에서 눈을 떼지 못했는데 아무도 먼저 손을 대지 않았다⁠. 손을 대면 무엇을 내놓아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마을 촌장이 나왔다⁠. 예순쯤 된 노인이었다⁠. 쌀가마를 보고⁠, 혜각을 보고⁠, 나를 보고 물었다⁠. 무엇을 바꾸러 왔느냐고⁠.

“⁠아무것도 안 바꿔요⁠. 그냥 쌀이에요⁠.⁠”

촌장은 이 말을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믿을 이유가 없었다⁠.

이때 나루 쪽에서 배가 닿았다⁠. 뱃전에 물결 세 줄이 그려진 배였다⁠. 배에서 사내 셋이 내렸다⁠. 맨 앞에 선 사내는 마흔 줄의 깡마른 사내였는데⁠, 손에 대나무 회초리를 쥐고 있었다⁠. 삼협방 거간이었다⁠. 뒤의 두 사내가 쌀자루를 하나씩 지고 있었다⁠. 거간은 타작마당까지 와서 우리 쌀가마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뭐요⁠?⁠”

“⁠쌀이요⁠.⁠” 혜각이 말했다⁠.

“⁠누구 쌀⁠?⁠”

“⁠이 마을 쌀⁠.⁠”

거간이 웃었다⁠. 제 사내들에게 쌀자루를 내려놓게 했다⁠. 타작마당 한가운데⁠. 쌀 두 말이 든 자루 둘이었다⁠. 그리고 회초리로 자루를 툭 치며 마을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이번에도 한 집에 하나요⁠. 큰 놈은 두 말⁠, 작은 놈은 한 말 반⁠. 쌀 열 가마로 겨울을 날 셈이오⁠? 이 마을 서른 집에 열 가마면 한 집에 석 달 치도 안 되오⁠. 나는 봄까지 오오⁠. 봄까지 이 배가 몇 번 오는지 세어 보시오⁠.⁠”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몇은 우리 쌀가마를 보고⁠, 몇은 거간의 자루를 봤다⁠. 촌장이 땅을 봤다⁠. 거간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열 가마로는 석 달도 못 버틴다⁠. 나는 이 셈을 이미 배 위에서 했다⁠.

혜각이 거간의 쌀자루 앞으로 갔다⁠. 자루를 두 손으로 들어 뒤집었다⁠. 자루 바닥이 위로 올라왔다⁠. 둥근 표가 거기 있었다⁠. 불로 지져 검게 탄 표⁠.

“⁠촌장님⁠, 이 표 아십니까⁠?⁠”

촌장이 다가와서 들여다봤다⁠. 고개를 저었다⁠.

“⁠봄에 관아에서 사람이 와서 말했을 겁니다⁠. 나라에서 굶는 마을에 쌀을 풀 거라고⁠. 그 쌀이 왔습니까⁠?⁠”

촌장이 고개를 들었다⁠. 마을 사람들도 고개를 들었다⁠. 이 물음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오지 않았다는 대답이었다⁠.

“⁠이 표가 그 쌀입니다⁠.⁠” 혜각이 자루 바닥을 손바닥으로 쳤다⁠. “⁠나라가 여러분한테 거저 내린 쌀입니다⁠. 저 사람이 그 쌀을 들고 와서 여러분 아이와 바꿔 갑니다⁠. 여러분 쌀로 여러분 아이를 삽니다⁠.⁠”

타작마당이 조용해졌다⁠. 거간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거간은 회초리를 쥔 채 뒷걸음질 쳤다⁠.

“⁠이 땡중이 무슨 헛소리를⁠…⁠…⁠”

마을 사내 하나가 거간의 멱살을 잡았다⁠. 이 사내의 손목이 내 손목보다 가늘었다⁠. 두 번째 사내가⁠, 세 번째 사내가 달려들었다⁠. 굶은 사람들의 힘이었다⁠. 거간의 두 사내는 쌀자루를 버리고 배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거간을 끌고 타작마당 옆 연못으로 갔다⁠. 갈대가 둘러선 얕은 연못이었는데 바닥에 진흙이 깊었다⁠. 사내들이 거간을 거꾸로 처박았다⁠.

혜각이 연못으로 들어갔다⁠. 사내들을 밀치지 않았다⁠. 사내들 사이로 팔을 넣어 거간의 발목을 잡고 끌어냈다⁠. 거간이 진흙을 토하며 연못가에 굴렀다⁠. 마을 사내 하나가 혜각에게 소리쳤다⁠. 왜 건지느냐고⁠. 이 사람 때문에 우리 아이가 팔려 갔다고⁠.

“⁠압니다⁠. 그래서 건집니다⁠. 이 사람이 죽으면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이 없어집니다⁠.⁠”

혜각은 거간의 등을 두 번 두드렸다⁠. 그리고 물었다⁠. 거간은 혜각의 젖은 손이 제 뒷덜미에 얹혀 있는 동안 다 말했다⁠. 다섯 마을에서 모은 아이들이 지금 소주 서쪽 물목의 삼협방 본창고에 있다고⁠. 마흔이 넘는다고⁠. 내일 밤 배 두 척에 나눠 남쪽으로 떠난다고⁠. 항주로⁠, 그리고 더 남쪽의 큰 부잣집들로⁠.

나는 거간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은향이 말한 동생의 생김새를 댔다⁠. 열두 살⁠, 두 달 전에 소주 남쪽 마을에서 사 온 사내아이⁠, 오른 귓불에 콩알만 한 점이 있는 아이⁠. 거간은 진흙 묻은 눈을 끔벅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귓불에 점 있는 놈은 일을 잘해서 기억한다고 했다⁠. 본창고에 있다고⁠. 이 아이는 남쪽 큰 집에 부엌 종으로 이미 값이 정해져서⁠, 첫 배에 탄다고⁠.

*

해가 지기 전에 쌀가마를 풀었다⁠. 촌장이 집집의 식구 수를 셌고⁠, 외눈과 삼봉이 됫박으로 나눴다⁠. 거간이 두고 간 쌀자루 둘도 같이 나눴다⁠. 나라가 이 마을에 내린 쌀이었다⁠.

삼봉이 타작마당 가에 마을에서 제일 큰 솥을 걸었다⁠. 배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돼 멀미가 다 나은 얼굴이었다⁠. 쌀 한 됫박을 물 한 솥에 넣고⁠, 주걱으로 저으며 한참을 끓였다⁠. 처음 홍월루 부엌에서 아이 셋에게 끓여 주던 이 미음이었다⁠. 쌀알이 풀어지는 냄새가 타작마당에 퍼지자 집집에서 사람들이 사발을 들고 나왔다⁠. 둑 위에서 달아났던 아이 둘이 맨 먼저 왔다⁠.

“⁠한 숟갈 먹고 열 셉니다⁠.⁠” 혜각이 솥 앞에서 손가락을 세웠다⁠. “⁠안 세면 체합니다⁠. 체하면 오늘 쌀 아깝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혜각의 손가락을 보며 열을 셌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서른 집 사람들이 타작마당에 둘러앉아 한 숟갈 먹고 열을 세는 소리가 해 질 녘 갈대밭까지 갔다⁠. 촌장이 셈을 놓쳐 다섯에서 숟가락을 들었다가⁠, 옆의 아이에게 손등을 맞았다⁠.

삼봉이 촌장에게 내기를 걸었다⁠. 영감님이 오늘 두 그릇을 못 넘긴다에⁠. 촌장은 걸 것이 없다며 버드나무 지팡이를 걸었다⁠. 세 번째 그릇을 비우고 촌장이 이겼다⁠. 삼봉은 지팡이 대신 제 허리춤의 부싯돌 주머니를 내주었다⁠. 촌장은 이 주머니를 받아 들고 한참 웃었다⁠. 이날 버들목에서 처음 들은 웃음이었다⁠.

쌀을 받으러 온 사람들 가운데 사내 하나가 끝까지 줄 맨 뒤에 서 있었다⁠. 서른 남짓⁠, 볼이 말라 광대뼈가 튀어나왔고⁠, 왼 볼에 주근깨가 깨알처럼 박혀 있었다⁠. 나는 됫박을 삼봉에게 넘기고 이 사내에게 갔다⁠.

“⁠딸 하나⁠, 아들 하나 팔았죠⁠? 딸은 두 말⁠, 아들은 한 말 반⁠.⁠”

사내가 나를 봤다⁠. 대답하지 않았다⁠. 손에 쥔 빈 자루를 접었다 폈다 했다⁠.

“⁠딸은 소주에 있어요⁠. 살아 있어요⁠.⁠”

사내의 손이 멈췄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밥을 너무 빨리 먹다가 토했어요⁠. 지금은 한 숟갈 먹고 열까지 세면서 먹어요⁠. 사흘 동안 미음을 반만 먹고 반은 소매에 모았어요⁠. 오빠 주려고요⁠.⁠”

사내가 무릎을 꿇었다⁠. 타작마당 맨바닥에⁠.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 마을 사람들은 다 소리를 내지 않고 울었다⁠. 나는 사내를 일으키지 않았다⁠. 위로하지도 않았다⁠. 위로하러 온 게 아니었다⁠.

삼봉이 됫박 하나 분량의 쌀을 따로 자루에 담아 왔다⁠. 나는 이것을 사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건 파는 값 아니에요⁠. 그냥 쌀이에요⁠. 받으시는 대신 아무것도 안 내주셔도 돼요⁠.⁠”

사내가 쌀자루를 보고 나를 봤다⁠. 사내는 쌀자루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물었다⁠. 아들은 어디 있느냐고⁠.

“⁠남쪽이요⁠.⁠” 내가 말했다⁠. “⁠아직 몰라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말을 하는 동안 내 입에서 느릅나무 껍질 죽 맛이 다시 올라왔다⁠.

*

배를 띄울 때 혜각이 타작마당 쪽을 돌아봤다⁠. 집 서른 채 가운데 굴뚝 연기가 열 군데에서 오르고 있었다⁠. 반나절 전에는 셋이었다⁠.

거간은 배 밑창에 묶여 있었다⁠. 마을에 두면 마을 사람들이 죽일 것 같았다⁠. 외눈이 노를 저으며 처음으로 혜각에게 말을 걸었다⁠.

“⁠춘복아⁠, 저 쌀 열 가마 석 달도 못 간다⁠.⁠”

“⁠압니다⁠.⁠”

“⁠석 달 뒤엔 저 거간 같은 놈이 또 온다⁠.⁠”

“⁠그것도 압니다⁠.⁠”

“⁠그럼 뭐 하러 왔냐⁠?⁠”

혜각이 노을이 지는 물 위를 봤다⁠.

“⁠오늘 밤 굴뚝 열 개는 연기가 납니다⁠. 내일은 본창고를 엽니다⁠. 그다음은 그다음에 셉니다⁠.⁠”

외눈이 노를 한 번 크게 밀었다⁠. 노가 물을 가르는 소리가 갈대숲까지 번졌고⁠, 배가 물살을 탔다⁠. 소주까지 하룻밤 거리였다⁠. 배 밑창에서 거간이 몸을 뒤척였고⁠, 삼봉이 다시 뱃전에 매달렸다⁠. 혜각은 이번에는 염불을 하지 않았다⁠. 삼봉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 번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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