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494자)

첫눈

기루 문지기가 된 소림 땡중 · 류청산

첫눈은 그칠 줄 몰랐다⁠. 운하 거리의 기와지붕들이 오전 사이에 하얗게 덮였고⁠, 운하 물 위에 떨어진 눈은 닿자마자 사라졌다⁠. 물 위에만 눈이 쌓이지 않아서 운하가 거리 한가운데를 검은 띠처럼 지나갔다⁠.

곰배팔은 짐꾼들이 묻었다⁠. 버드나무 아래 공동묘지⁠, 소금 창고에서 나온 아이가 묻힌 자리에서 열 걸음 떨어진 곳이었다⁠. 짐꾼 마흔이 짐 지는 작대기로 언 땅을 깼다⁠. 작대기 끝이 언 흙에 박힐 때마다 둔한 소리가 났다⁠. 관은 국숫집 할멈네 판자의 나머지로 짰다⁠. 아이 하나 누울 관을 짜고 남은 판자였는데⁠, 다 큰 사내 하나를 눕히기엔 짧았다⁠. 그래서 곰배팔은 무릎을 조금 굽힌 채 누웠다⁠. 짐꾼들은 이게 영감이 짐 지던 자세라고 했다⁠.

혜각은 무덤 앞에 쪼그려 앉아 손으로 흙을 덮었다⁠. 염불은 하지 않았다⁠. 외눈이 이 옆에서 흙을 덮었다⁠. 둘은 서로 보지 않았다⁠.

조운 나루에서 데려온 스물셋은 홍월루에 다 들어가지 못했다⁠. 운하 거리가 이 아이들을 받았다⁠. 나는 아침부터 집집을 돌았다⁠. 비단 가게에서 하나를 더 받겠다고 했다⁠. 두부 장수 과부는 둘을 받았다⁠. 술집 주인이 와서 하나를 달라고 했다⁠. 탁발 나온 혜각에게 바가지로 물을 끼얹었던 이 술집이었다⁠. 술집 주인은 내 눈을 피하며⁠, 이 땡중이 밤새 짐꾼들 사이에 서서 쇠뇌 쏜 놈을 감싸는 걸 제 처남이 봤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었더니 물 끼얹은 게 마음에 걸린다고⁠. 나는 술집에 사내아이 하나를 보냈다⁠. 술은 봄까지 가르치지 말라고 했다⁠.

이날 오전에만 운하 거리 열아홉 집에 아이가 들어갔다⁠. 집집 처마 밑에서 아이들이 눈을 받아먹고 있었다⁠. 혀를 내밀어 눈송이를 받는 아이들이⁠, 다리 셋이 모이는 거리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띄엄띄엄 서 있었다⁠. 나는 이 아이들을 하나씩 셌다⁠. 셈이 늘어날수록 손가락이 차가워졌다⁠. 반여혁이 아이 하나를 찾으러 오면 이제 집 한 채가 아니라 거리 전체를 뒤져야 했다⁠. 그건 거리 전체가 다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

혜명은 홍월루 대문 앞⁠, 늘 앉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삿갓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눈을 털지 않았다⁠. 혜각이 묘지에서 돌아와 계단을 오르려 하자 혜명이 눈을 떴다⁠.

“⁠첫눈이다⁠.⁠”

“⁠압니다⁠.⁠”

“⁠해 질 때까지다⁠.⁠”

“⁠그것도 압니다⁠.⁠”

혜각은 계단 맨 아래 칸에 앉았다⁠. 혜명과 어깨 높이가 같아졌다⁠. 둘은 나란히 앉아 눈 내리는 거리를 봤다⁠. 처마 밑에서 눈을 받아먹는 아이들을⁠.

“⁠사형⁠, 어제 다리 위에서 다 보셨습니까⁠?⁠”

“⁠봤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혜명은 이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에 감은 염주를 한 알 넘겼다⁠. 그리고 또 한 알⁠. 염주를 넘기는 손이 평소보다 빨랐다⁠.

점심 전에 삼봉이 혜각을 부엌으로 불렀다⁠. 반쯤 다시 세운 아궁이에 석쇠를 얹고⁠, 어디서 구했는지 돼지 목살 한 덩이를 굽고 있었다⁠. 기름이 숯에 떨어져 치익 소리를 낼 때마다 연기가 탄 서까래 사이로 올라갔다⁠. 고기 냄새가 대문까지 나갔을 것이다⁠. 혜명이 이 냄새를 맡았을지도 모른다⁠.

“⁠영감님⁠, 이 고기는 어디서 났습니까⁠?⁠”

“⁠묻지 마시오⁠. 훔친 건 아니오⁠. 반은 외상이고 반은 내기요⁠.⁠”

혜각은 고기 앞에 합장하고 먹었다⁠. 첫날 부엌 뒷문에서 먹던 순서 그대로였다⁠. 비계 붙은 쪽부터⁠, 뼈는 맨 나중에⁠, 그리고 접시는 밥으로⁠. 삼봉은 이 모양을 팔짱 끼고 지켜보다가 내게 속삭였다⁠.

“⁠행수님⁠, 한 판 하겠소⁠? 해 질 녘에 저 땡중이 사형 따라 산으로 간다에 동전 스물⁠.⁠”

“⁠안 간다에 걸면⁠?⁠”

“⁠그럼 판이 안 서오⁠. 다들 안 간다에 걸었으니까⁠.⁠”

나는 혜각에게 해 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혜각은 접시를 핥듯이 닦은 밥을 입에 넣고 한참 씹었다⁠.

“⁠해 지기 전에 생각하겠습니다⁠. 고기 먹을 땐 생각을 안 합니다⁠. 고기한테 실례라서⁠.⁠”

*

해가 하늘 한가운데 오기 전에 이들이 왔다⁠. 눈길에 발자국을 줄지어 찍으며⁠. 앞에 선 것은 반여혁이 아니었다⁠. 관아의 검은 옷에 붉은 띠를 두른 사내였다⁠. 운하 거리를 맡은 포두였다⁠. 뒤에 포졸 여덟이 쇠사슬을 들고 따랐고⁠, 맨 뒤에 반여혁이 우산을 쓰고 걸어왔다⁠. 기름 먹인 종이 우산 위로 눈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포두는 대문 계단 아래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헛기침을 했다⁠. 사흘에 한 번 홍월루 대청 구석에서 황주를 마시고 외상을 달고 가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홍월루 대문 앞에 포졸을 데리고 선 것은 처음이었다⁠.

“⁠금 행수⁠. 관아 일이오⁠.⁠”

“⁠포두님⁠, 오늘은 술 드시러 오신 게 아니고요⁠?⁠”

“⁠관아 일이라 하지 않았소⁠.⁠” 포두가 반여혁 쪽을 힐끗 봤다⁠. “⁠소주 지부 나리의 명이오⁠. 열여섯 해 전 서쪽 물목에서 사람을 쳐 죽이고 달아난 마춘복이 이 집에 있다는 고변이 들어왔소⁠. 그리고 이 집과 운하 거리에 삼협방이 값을 치르고 산 종들이 숨어 있다는 고변도⁠. 종은 임자에게 돌려줘야 하오⁠. 그게 법이오⁠.⁠”

소주 지부는 소주 성과 이 둘레 고을을 다스리는 관리였다⁠. 운하 거리 사람이 이 이름을 기루 대문 앞에서 듣는 일은 열여덟 해 동안 한 번도 없었다⁠.

“⁠종이요⁠? 우리 집엔 기녀랑 부엌 식구밖에 없는데요⁠.⁠”

“⁠아이들 말이오⁠.⁠”

“⁠포두님⁠, 아이를 누가 팔았는데요⁠?⁠”

포두가 입을 다물었다⁠. 반여혁이 우산을 조금 기울였다⁠. 반여혁의 얼굴이 눈 사이로 드러났다⁠. 웃고 있었다⁠.

“⁠애비가 팔았소⁠, 행수⁠. 쌀 두 말에⁠. 팔고 산 것은 흥정이오⁠. 흥정한 물건을 남이 가져가면 그건 도둑질이고⁠.⁠”

나는 포두를 봤다⁠. 반여혁을 보지 않고 포두만 봤다⁠.

“⁠포두님⁠. 지난 석 달 동안 우리 집에서 외상을 스물일곱 번 다셨어요⁠. 은으로 열한 냥 하고 동전 칠십 닢⁠. 그중에 아홉 번은 이층 연홍이 방에서 노래 듣고 다신 거예요⁠. 사모님은 그 노래를 무슨 노래로 알고 계세요⁠?⁠”

포졸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가 꺾였다⁠. 포두의 얼굴이 눈보다 하얘졌다가 붉어졌다⁠.

“⁠행수⁠, 그건 지금 상관없는 이야기요⁠.⁠”

“⁠상관있죠⁠. 아이들 찾으려면 운하 거리 열아홉 집을 다 뒤지셔야 하는데⁠, 그 열아홉 집 가운데 포두님한테 외상 안 깔린 집이 몇 집인지 아세요⁠? 집집마다 문 열 때마다 외상 이야기가 나올 텐데⁠. 그것도 지부 나리께 같이 고하실 거예요⁠?⁠”

포두가 이마의 눈을 손등으로 닦았다⁠. 녹은 눈인지 땀인지 모를 것이 손등에 묻었다⁠.

*

포졸 넷이 대문 계단으로 올라섰다⁠. 그런데 계단 아래 혜명이 앉아 있었다⁠. 포졸들은 혜명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계단 위에 혜각이 서 있었다⁠. 중이 둘이었다⁠. 포졸 하나가 포두를 돌아봤다⁠.

“⁠나리⁠, 어느 쪽입니까⁠?⁠”

“⁠덩치 큰 쪽⁠.⁠”

포졸들이 둘을 번갈아 봤다⁠. 계단 아래 혜명은 앉아 있어서 덩치를 알 수 없었다⁠. 포졸 하나가 혜명의 어깨를 짚었다⁠.

“⁠스님⁠, 일어나 보시오⁠.⁠”

“⁠나는 마춘복이 아니오⁠.⁠”

“⁠그럼 비켜 주시오⁠.⁠”

“⁠나는 이 자리에 아흐레를 앉아 있었소⁠. 비킬 이유를 대시오⁠.⁠”

“⁠관아 일이오⁠.⁠”

“⁠관아 일은 관아 문 앞에서 하시오⁠. 여기는 기루 문 앞이오⁠.⁠” 혜명이 눈을 감았다⁠. “⁠나는 소림의 중이오⁠. 소림의 중은 나라 일에 앉지도 서지도 않소⁠. 그러니 비키지도 않소⁠.⁠”

포졸이 혜명의 팔을 잡아당겼다⁠. 혜명은 꿈쩍하지 않았다⁠. 앉은 그대로 돌처럼 무거웠다⁠. 둘이 더 달라붙었다⁠. 셋이 잡아당겨도 혜명의 엉덩이는 돌바닥에서 한 치도 뜨지 않았다⁠. 포졸 하나가 미끄러져 눈밭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구경꾼들이 웃었다⁠. 처마 밑의 아이들도 웃었다⁠.

반여혁이 우산을 접었다⁠.

“⁠소림 스님⁠, 나라 일에 앉지도 서지도 않는다 하시니⁠, 그럼 지금 앉아 계신 건 무엇이오⁠?⁠”

“⁠기루 문 앞에 앉아 있소⁠. 이건 나라 일이 아니오⁠.⁠”

반여혁의 웃음이 처음으로 반쯤 멈췄다⁠. 반여혁은 혜명을 오래 봤다⁠. 그리고 다시 웃었다⁠. 이번에는 혜각을 보고⁠.

“⁠마춘복⁠. 사형 뒤에 숨을 텐가⁠?⁠”

*

혜각이 계단을 내려왔다⁠. 한 칸씩⁠. 혜명의 옆을 지나쳐 맨 아래 칸까지⁠. 포졸들이 혜명을 놓고 물러섰다⁠.

“⁠포두님⁠, 저 가겠습니다⁠.⁠”

“⁠스님⁠!⁠” 내가 소리쳤다⁠.

혜각이 나를 돌아보지 않고 포두에게 말했다⁠.

“⁠다만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저를 데려가시는 대신 아이들 일은 포두님 선에서 하지 마시고⁠, 지부 나리께서 직접 보시게 해 주십시오⁠. 삼협방이 아이를 산 값으로 치른 쌀 두 말을 나리께서 직접 보시게요⁠. 그 쌀자루를요⁠.⁠”

“⁠쌀자루가 왜⁠?⁠”

“⁠보시면 압니다⁠.⁠”

포두는 반여혁을 힐끗 보았다⁠. 반여혁의 부채가 접힌 채로 손바닥을 한 번 쳤다⁠. 포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혜각을 데려가는 것으로 오늘 일을 끝내는 편이 그에게도 나았다⁠. 외상 이야기가 열아홉 집에서 나오는 것보다⁠.

포졸 하나가 쇠사슬을 들고 다가왔다⁠. 혜각이 두 손을 모아 내밀었다⁠. 합장하는 손 그대로⁠. 쇠사슬이 이 손목에 감겼다⁠. 백다섯 알 염주 위로⁠.

혜명이 눈을 떴다⁠.

“⁠해 질 때까지라 했다⁠.⁠”

“⁠압니다⁠, 사형⁠.⁠”

“⁠너는 해가 지기 전에 다른 문으로 가는구나⁠.⁠”

“⁠이 문은 행수님이 지키실 겁니다⁠.⁠”

혜명이 일어섰다⁠. 아흐레 만에 처음으로 이 자리에서⁠. 삿갓에 쌓인 눈이 한꺼번에 미끄러져 떨어졌다⁠. 혜각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포졸들 뒤에 섰다⁠. 따라가겠다는 얼굴이었다⁠. 포두가 뭐라고 하려다 그만두었다⁠.

*

연홍이 대문에서 뛰어나왔다⁠. 혜각 앞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술병 하나를 혜각의 소매 속에 밀어 넣었다⁠. 포졸이 이것을 보고 손을 뻗었다⁠. 포두가 이 포졸의 손을 쳐 내렸다⁠.

“⁠못 봤다⁠.⁠”

포두가 그렇게 말하고 앞장섰다⁠. 나는 이 사람 외상에서 열한 냥 가운데 한 냥은 빼 주기로 이 자리에서 셈했다⁠.

혜각이 포졸들 사이에서 걸어갔다⁠. 거리 한가운데 눈길로⁠. 이때 처마 밑의 아이들이 하나둘 나왔다⁠. 비단 가게에서⁠, 국숫집에서⁠, 두부 집에서⁠, 술집에서⁠, 고깃간에서⁠. 아이들은 처마 밑에서 나와 길가에 줄지어 섰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들 오른손을 왼 손목에 대고 있었다⁠. 새끼줄 자국이 있던 자리였다⁠. 줄에 묶여 다니던 아이들이 줄 없이 나란히 서서 쇠사슬에 묶인 땡중이 지나가는 것을 봤다⁠.

맨발이가 줄에서 튀어나왔다⁠. 혜명이 감아 준 대추 실을 손에 쥐고⁠. 아이는 혜각의 승복 자락을 잡고 대추 실을 혜명의 쇠사슬 위에 감았다⁠. 혜각의 걸음이 멎었다⁠. 포졸들도 멈췄다⁠. 아무도 아이를 떼어 내지 않았다⁠.

“⁠스님⁠, 몰래 드세요⁠.⁠”

혜각은 고개를 숙여 손목의 대추를 봤다⁠. 그리고 웃었다⁠. 부은 얼굴이 다 가라앉지 않아서 웃는 얼굴이 비뚤었다⁠.

“⁠몰래 먹으마⁠.⁠”

노래가 줄 끝에서 가락을 흥얼거렸다⁠. 연홍이 다락에서 부르던 이 가락이었다⁠. 이 소리가 눈 내리는 거리에서 아주 작게 울렸다⁠. 혜각은 이 소리가 들리는 동안 걸었고⁠, 거리 끝 다리를 건너 소주 성 쪽으로 사라졌다⁠. 혜명이 뒤를 따라 사라졌다⁠.

반여혁이 마지막으로 남았다⁠. 우산을 다시 펴고 나를 올려다봤다⁠.

“⁠금 행수⁠, 문지기가 없어졌구려⁠. 이 집 문은 이제 누가 지키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 대문 앞에 섰다⁠. 혜각이 서 있던 자리에⁠. 대문 빗장 옆에 매달린 쇠갈고리 위에 눈이 쌓여 있었다⁠. 나는 이 눈을 손바닥으로 털었다⁠. 쇠가 손바닥에 달라붙도록 차가웠다⁠.

반여혁이 웃으며 돌아섰다⁠. 나는 거리 끝에서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대문 앞에서 비키지 않았다⁠.

11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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