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93자)

보름

가짜 무당과 신당 고양이 · 문들레

보름날 해는 바다로 떨어졌다⁠. 꼭대기 공터에 하얀 천막이 셋 쳐졌다⁠. 천막 기둥마다 줄 전구가 감겨 있었고⁠, 회화나무 아래에는 사람 키만 한 스피커 두 대가 놓였다⁠. 깜이는 대학원생 품에서 이동장 쇠그물 사이로 공터를 보았다⁠. 사람이 많았다⁠. 사람 냄새가 많으면 고양이 코는 오히려 둔해진다⁠. 깜이는 코 대신 눈을 썼다⁠.

플라스틱 의자 쉰 개가 당집을 향해 줄지어 놓였다⁠. 꼭대기 노인들이 앞줄을 채웠고⁠, 아래 동네 사람들이 뒷줄을 채웠다⁠. 천막 하나에는 상인회 사람들이 상자째 가져온 월병을 쌓아 놓았다⁠. 명찰 단 구청 직원 둘이 서류판을 들고 천막 사이를 오갔다⁠. 공터 가장자리에서 셀카봉을 든 젊은 남자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떠들었다⁠. 생방송이라고 했다⁠.

“⁠Live from the hill⁠! 오늘 그 고양이가 옵니다⁠, 여러분⁠. 귀신 보는 신당 고양이요⁠!⁠”

셀카봉 남자가 앞줄 할아버지에게 사진기를 들이밀었다⁠.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셀카봉을 툭 밀어냈다⁠.

“⁠치워⁠. 오늘 남의 집 제삿날이다⁠. 제삿날에 사진 찍는 놈이 어딨어⁠.⁠”

셀카봉 남자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두 걸음 물러났다⁠. 화면 속 댓글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당집 앞에 굿상이 차려졌다⁠. 붉은 천 위에 커다란 돼지머리가 웃고 있었고⁠, 돼지머리 옆에 북어 다섯 마리가 나란히 누웠다⁠. 떡과 과일과 술잔이 줄을 맞췄다⁠. 맨 끝에 하얀 보자기가 놓였다⁠. 길베였다⁠.

대학원생이 이동장 문을 열고 깜이에게 가슴줄을 채웠다⁠. 깜이는 가슴줄을 처음 매 보았다⁠. 몸통을 조이는 끈은 고양이에게 모욕이다⁠. 깜이는 끈을 맨 채 굿상 모서리의 방석에 엎드렸다⁠. 엎드리자마자 등을 핥아 대학원생 손 냄새를 지웠다⁠. 대학원생은 끈 끝을 장구 다리에 묶었다⁠.

“⁠미안해⁠. 오늘만이야⁠.⁠”

회화나무 둥치 뒤에서 삼색이가 깜이를 보고 있었다⁠. 삼색이는 꼬리를 감고 귀를 반쯤 눕혔다⁠. 당집 돌계단에는 젖은 남자 다섯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바다를 보고 있었다⁠. 신당에서 따라온 막내도 오늘은 계단 끝에 앉아 있었다⁠. 다섯이 모두 젖어 있었다⁠. 깜이 수염이 바다 쪽으로 쏠렸다⁠.

천막 뒤에서 춘심이 무복을 갈아입고 있었다⁠. 대학원생이 춘심의 등 뒤에서 쾌자 끈을 묶었다⁠. 조합장이 천막 자락을 들추고 들어와 흰 봉투를 내밀었다⁠.

“⁠나머지입니다⁠. 미리 드리죠⁠.⁠”

“⁠끝나고 받겠습니다⁠.⁠”

“⁠끝나고 마음이 바뀌실까 봐 미리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끝나고 받겠다고요⁠.⁠”

조합장이 봉투를 거두지 않고 한참 들고 서 있었다⁠. 춘심은 봉투를 보지 않고 갓끈을 고쳐 맸다⁠. 조합장이 봉투를 도로 점퍼 안주머니에 넣고 나갔다⁠. 대학원생이 쾌자 끈을 꽉 당겼다⁠. 춘심이 숨을 헉 들이켰다⁠.

“⁠너 지금 나 죽이려고 묶냐⁠?⁠”

“⁠어머님이 묶으라고 하셨잖아요⁠. 방울에 감기면 신령님도 못 푼다고요⁠.⁠”

“⁠그건 네 머리 얘기였어⁠.⁠”

대학원생은 그제야 제 머리를 만졌다⁠. 긴 머리가 등에 풀어져 있었다⁠. 춘심이 대학원생의 머리채를 한 손에 모아 쥐고 고무줄로 질끈 묶어 주었다⁠. 깜이는 천막 바닥에서 둘의 발을 보았다⁠. 춘심의 엄지발가락이 까딱거렸다⁠. 사냥 전의 발이었다⁠. 무엇을 사냥할지는 깜이도 몰랐다⁠.

*

조합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양복이 아니라 점퍼 차림이었다⁠. 등에는 아무것도 업혀 있지 않았다⁠.

“⁠어르신들⁠. 바람 찬데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조합 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이 언덕에 떠도는 넋들 좋은 데 가시라고⁠, 옥선녀 신당 모시고 굿 한번 크게 올리려고 왔습니다⁠.⁠”

앞줄 노인들이 서로를 보았다⁠.

“⁠지난겨울 아랫집 할아버지 일⁠, 다들 아시죠⁠. 올겨울엔 그런 일 없게 하고 싶습니다⁠. 아랫동네 아파트 들어가시면 겨울에도 따뜻합니다⁠. 계단 없습니다⁠. 병원 가까워요⁠.⁠”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가 손뼉을 쳤다⁠. 뒷줄 몇 사람이 따라 쳤다⁠. 앞줄 할머니 하나가 소리쳤다⁠.

“⁠우리 손주 방이 없어⁠. 아파트 가면 방 셋이라며⁠?⁠”

“⁠셋입니다⁠, 어르신⁠.⁠”

박수가 조금 커졌다⁠. 앞줄 가운데에 앉아 있던 새우젓 할머니가 일어섰다⁠. 수건을 벗어 손에 쥐고 있었다⁠. 박수가 멎었다⁠.

“⁠방 셋에 우리 영감 자리는 있냐⁠.⁠”

“⁠어르신⁠…⁠.⁠”

“⁠네 아비가 태풍 온다는 걸 알고 배를 내보냈다⁠. 다섯이 나가서 다섯이 안 왔다⁠. 그 굿을 옥선녀 신당이 했고⁠, 오늘 또 옥선녀 신당이 한다⁠. 똑같은 굿을 두 번 하는 데가 어딨냐⁠.⁠”

공터가 조용해졌다⁠. 셀카봉 남자가 사진기를 할머니에게 돌렸다⁠. 구청 직원이 서류판을 가슴에 붙였다⁠. 조합장이 마이크를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압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했습니다⁠.⁠”

웅성거림이 의자 줄을 타고 뒤로 번졌다⁠. 구청 직원 하나가 조합장 곁으로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조합장님⁠, 동의서는 굿 끝나고 바로 받으시는 거죠⁠? 오늘 넘겨야 법 바뀐 거 적용됩니다⁠.⁠” 조합장은 고개만 끄덕였다⁠. 조합장은 마이크를 놓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이 굿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 일을 제 손으로 끝내려고요⁠. 언덕을 비우고⁠, 넋들 보내 드리고⁠, 어르신들은 따뜻한 데로 가시고요⁠. 그게 아버지가 못 한 일입니다⁠.⁠”

당집 계단에서 젖은 남자 다섯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바다를 보던 얼굴 다섯이 조합장에게 향했다⁠. 깜이 귀에 물소리가 커졌다⁠. 비 오는 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

징이 울렸다⁠. 스피커에서 나온 징 소리였다⁠. 장구는 스피커가 아니었다⁠. 대학원생이 장구 앞에 앉아 채를 쥐었다⁠. 덩⁠, 기덕⁠, 덩⁠, 기덕⁠. 박자가 맞았다⁠. 신당 마당에서 깜이가 수십 번 채를 쳐서 방해했던 장구였다⁠. 깜이는 방석 위에서 장구채 끝을 쳐다보았다⁠. 끈이 짧아서 닿지 않았다⁠.

춘심이 굿상 앞으로 나왔다⁠. 붉은 치마와 남색 쾌자⁠, 오색 소매⁠. 머리에 붉은 갓을 썼다⁠. 쉰을 넘긴 손목에서 놋방울이 울렸다⁠. 짤랑⁠, 짤랑⁠. 춘심이 돌기 시작했다⁠. 오색 소매가 줄 전구 불빛을 받아 둥글게 펼쳐졌다⁠. 노인들이 숨을 죽였다⁠.

젖은 남자 다섯이 계단에서 일어섰다⁠.

하나씩 굿상으로 걸어왔다⁠. 장화 바닥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다섯이 굿상을 빙 둘러 섰다⁠. 굿상 위 촛불이 모두 바다 쪽으로 누웠다⁠. 회화나무 가지가 바람도 없이 흔들렸다⁠. 앞줄 노인들이 어깨를 움츠리고 옷깃을 여몄다⁠. 구청 직원 하나가 서류판으로 팔뚝을 문질렀다⁠. 셀카봉 남자가 화면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춥네요⁠, 여러분⁠. 와⁠, 진짜 춥다⁠.⁠”

장구 받침대 옆에 대학원생의 열화상 카메라가 세워져 있었다⁠. 대학원생이 채를 놀리며 곁눈으로 화면을 보았다⁠. 깜이는 화면이 푸르게 물드는 것을 보았다⁠. 굿상 둘레에 파란 사람 모양 다섯이 서 있었다⁠. 대학원생의 채가 한 박자 늦었다가 곧 다시 박자를 찾았다⁠. 대학원생은 장구를 멈추지 않았다⁠.

앞줄의 새우젓 할머니가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할머니가 코를 킁킁거렸다⁠. 깜이도 맡았다⁠. 공터 가득한 사람 냄새 사이로 바닷물 냄새가 아주 옅게 흘렀다⁠. 할머니의 새우젓 냄새와 같은 냄새였다⁠.

“⁠영감⁠, 왔소⁠?⁠”

할머니가 아무도 없는 굿상을 향해 물었다⁠. 막내가 할머니를 돌아보았다⁠. 할머니는 막내를 보지 못하고 막내 옆 허공을 보았다⁠. 둘 사이가 한 뼘이었다⁠.

깜이는 젖은 남자들 사이로 굿상을 보았다⁠. 북어 다섯 마리가 촛불에 번들거렸다⁠. 사흘 동안 사료만 먹었다⁠. 깜이는 가슴줄 끝을 이빨로 물어 장구 다리에서 당겼다⁠. 대학원생이 매듭을 대충 묶었다⁠. 끈이 풀렸다⁠. 깜이는 굿상 위로 소리 없이 올라가 북어 한 마리를 물었다⁠.

“⁠어⁠? 어어⁠? 고양이가 생선을⁠! The cat took the fish⁠!⁠”

셀카봉 남자의 목소리가 공터에 울렸다⁠. 의자 줄에서 웃음이 터졌다⁠. 앞줄 노인들까지 웃었다⁠. 춘심은 도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방울을 높이 들었다⁠.

“⁠넋들이 배가 고프시단다⁠! 마흔 해를 굶으셨단다⁠!⁠”

웃음이 더 커졌다⁠. 새우젓 할머니도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깜이는 북어를 물고 굿상 모서리에 앉았다⁠. 젖은 남자 하나가 깜이 앞에 쪼그려 앉아 북어를 보았다⁠. 막내였다⁠. 깜이는 북어를 놓지 않았다⁠.

*

장구가 빨라졌다⁠. 춘심이 돌다가 굿상 앞에서 딱 멈췄다⁠. 방울을 쥔 손이 가슴 앞에서 멈췄다⁠. 공수를 내릴 자리였다⁠. 공터가 다시 조용해졌다⁠. 춘심이 무복 소매 안으로 손을 넣었다⁠.

깜이는 춘심의 소매를 보았다⁠. 소매 안에서 종이 냄새와 북어 가루 냄새가 동시에 났다⁠. 춘심의 손이 종이를 잡았다⁠. 접힌 종이가 소매 밖으로 반쯤 나왔다⁠.

깜이는 물고 있던 북어를 내려놓았다⁠.

굿상을 가로질렀다⁠. 돼지머리 옆을 지나고⁠, 떡 접시를 넘고⁠, 굿상 앞자락을 내려가 앞줄로 걸어갔다⁠. 의자 사이를 지나 맨 앞 가운데⁠, 조합장 앞에서 멈췄다⁠. 깜이는 조합장의 구두 앞에 엉덩이를 대고 똑바로 앉았다⁠. 꼬리를 앞발에 감았다⁠. 샛노란 눈으로 조합장의 어깨 너머를 보았다⁠.

공터의 모든 사람이 깜이가 앉은 자리가 무슨 뜻인지 알았다⁠. 영상으로⁠, 소문으로⁠, 계단에 줄을 서서⁠. 깜이가 앞에 와서 앉은 사람⁠.

“⁠조합장이다⁠.⁠”

“⁠조합장한테 붙었어⁠.⁠”

수군거림이 뒷줄부터 밀려왔다⁠. 셀카봉이 조합장 얼굴로 다가왔다⁠. 조합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막내가 굿상에서 걸어와 조합장 등 뒤에 섰다⁠. 젖은 이마를 조합장의 목덜미에 댔다⁠. 남은 넷도 따라와 조합장 뒤에 나란히 섰다⁠. 다섯이 모두 조합장의 등을 보고 있었다⁠. 조합장이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손끝이 떨렸다⁠.

“⁠…약속대로 하시오⁠.⁠”

조합장이 춘심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깜이에게도 들렸다⁠.

춘심은 소매에서 반쯤 꺼낸 종이를 쥔 채 조합장을 보았다⁠. 사냥할 때의 눈이었다⁠. 조합장의 눈에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조합장은 제가 우는 줄 몰랐다⁠. 손으로 닦지 않았고⁠, 턱 끝에서 떨어지는 대로 두었다⁠. 젖은 남자들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과 같은 박자였다⁠. 춘심의 시선이 조합장의 젖은 턱에서 깜이에게로⁠, 깜이에게서 조합장의 등 뒤 빈 허공으로 갔다⁠. 춘심에게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허공이었다⁠.

장구가 멈췄다⁠. 대학원생이 채를 든 채 공터 입구를 돌아보고 있었다⁠.

*

전조등 불빛이 꼭대기 골목을 올라왔다⁠. 하얀 승합차였다⁠. 차 옆구리에 요양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승합차가 공터 입구에 멈추자 뒷문이 열리고 경사판이 내려왔다⁠. 요양보호사가 휠체어를 밀고 내려왔다⁠. 휠체어 위에 담요를 덮은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선생님⁠, 제가 낮에 불렀어요⁠. 사무장님한테 빌었어요⁠.⁠”

요양보호사가 휠체어 손잡이를 꼭 쥐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삼십 분이에요⁠. 사무장님이 딱 삼십 분이랬어요⁠.⁠”

대학원생이 장구 앞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춘심은 대답하지 못했다⁠. 손에 쥔 종이가 소매 밖으로 다 빠져나와 있었다⁠.

휠체어가 의자 줄 사이로 들어왔다⁠. 노인들이 일어나 길을 비켰다⁠. 앞줄 노인 하나가 휠체어를 알아보고 입을 막았다⁠.

“⁠옥선녀 신당 만신이 오셨다⁠.⁠”

어머니가 굿상 앞에서 휠체어를 멈추게 했다⁠. 깜이를 내려다보았다⁠.

“⁠깜아⁠.⁠”

어머니의 눈이 깜이를 지나 조합장 등 뒤로 갔다⁠. 젖은 남자 다섯이 한꺼번에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어머니가 다섯을 차례로 보았다⁠. 하나씩⁠, 천천히⁠, 얼굴을 다 확인하듯이⁠.

“⁠왔구나⁠, 다들⁠. 오래 기다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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