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444자)

길을 가른다

가짜 무당과 신당 고양이 · 문들레

어머니는 휠체어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요양보호사가 부축하려 하자 어머니가 손을 저었다⁠. 어머니가 춘심을 불렀다⁠. 춘심이 휠체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무복 치마가 흙 위에 넓게 퍼졌다⁠.

“⁠방울 줘 봐라⁠.⁠”

춘심이 방울을 내밀었다⁠. 어머니가 방울을 받아 한 번 흔들었다⁠. 짤랑⁠. 손목에 힘이 없어서 소리가 작았다⁠. 어머니가 방울을 춘심의 손에 도로 쥐여 주었다⁠.

“⁠나는 못 한다⁠. 내 입은 한 번 거짓말한 입이다⁠. 니가 해라⁠.⁠”

“⁠엄마⁠, 나는 아무것도 안 보여⁠.⁠”

“⁠너는 얼굴을 보잖냐⁠. 사람 얼굴은 내가 너만큼 못 봤다⁠.⁠”

어머니가 깜이를 내려다보았다⁠. 깜이는 아직 조합장 앞에 앉아 있었다⁠.

“⁠깜이가 보고⁠, 니가 읽어라⁠. 그러면 된다⁠.⁠”

깜이는 제 이름을 듣고 귀를 세웠다⁠. 어머니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깜이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어머니는 고양이 말을 할 줄 알았다⁠. 제단 밑에서 깜이를 꺼내던 날부터 알았다⁠.

*

춘심이 일어섰다⁠. 무복 소매를 털자 소매 안에서 두 가지가 굿상 위로 떨어졌다⁠. 네모나게 접힌 종이와 작은 깡통⁠. 깡통 뚜껑이 굴러 떨어지며 북어 가루가 굿상에 쏟아졌다⁠. 깜이의 코가 저절로 굿상 쪽으로 돌아갔다⁠. 깜이는 엉덩이를 들썩였다가 도로 앉았다⁠. 지금은 북어 먹을 때가 아니었다⁠. 앞줄 노인 몇이 깜이의 엉덩이를 보고 웃음을 참았다⁠.

춘심은 종이를 펴지 않았다⁠. 마이크도 잡지 않았다⁠. 굿상 앞에 서서 맨 목소리로 말했다⁠. 신령을 받을 때의 큰 목소리가 아니었다⁠. 부엌에서 소주를 마실 때의 목소리였다⁠.

“⁠저는 신기가 없습니다⁠. 오늘 공수는 신령님 말씀이 아니고 제 말입니다⁠. 듣기 싫으신 분은 내려가셔도 됩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셀카봉 남자도 화면을 내렸다⁠.

춘심이 조합장을 보았다⁠. 깜이가 앉아 있는 자리를 보았다⁠. 다음에 새우젓 할머니의 갈라진 손등을 보았다⁠. 사냥할 때와 같은 순서로⁠, 사냥할 때보다 느리게⁠.

“⁠마흔 해 전 가을⁠, 배를 내보낸 사람이 있었습니다⁠. 태풍이 온다는 걸 알고 내보냈습니다⁠. 우리 엄마는 굿 전날 밤에 그 사람 봉투를 받고⁠, 굿날 용왕님 핑계를 댔습니다⁠. 사람 원망하지 말라고요⁠.⁠”

어머니가 휠체어에서 고개를 숙였다⁠. 춘심은 어머니를 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는 그 봉투로 교복을 입었습니다⁠. 오늘 그 사람 아들이 똑같은 봉투를 들고 왔고⁠, 저는 받았습니다⁠. 우리 엄마 요양원비 석 달 치가 그 돈입니다⁠. 그 돈은 갚겠습니다⁠. 달마다 갚겠습니다⁠.⁠”

춘심이 굿상 위의 종이를 집어 조합장 앞에 내려놓았다⁠. 깜이 앞이기도 했다⁠. 깜이는 종이 냄새를 맡았다⁠. 조합장의 차 방향제와 춘심의 소매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건 조합장님 말씀이니까 조합장님이 하세요⁠. 하실 거면요⁠.⁠”

*

조합장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젖은 남자 다섯이 조합장의 등 뒤에 서 있었다⁠. 막내의 이마가 아직 조합장의 목덜미에 닿아 있었다⁠. 조합장이 종이를 집었다⁠. 깜이는 조합장의 손을 보았다⁠. 엄지손톱이 살까지 뜯겨 있었다⁠. 손이 종이를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었다⁠. 접힌 종이가 조합장의 주먹 안으로 들어갔다⁠.

조합장이 일어나 의자 줄을 향해 돌아섰다⁠.

“⁠아버지가 배를 내보냈습니다⁠. 보험금으로 아래 땅을 샀고⁠, 그 땅에 제가 아파트를 지으려고 합니다⁠.⁠”

조합장은 마이크 없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오늘 동의서는 안 받겠습니다⁠.⁠”

구청 직원이 서류판을 든 채 한 걸음 다가왔다⁠.

“⁠조합장님⁠, 오늘 넘기셔야 바뀐 법이⁠…⁠.⁠”

“⁠늦어지면 늦어지는 겁니다⁠.⁠”

조합장이 새우젓 할머니 앞으로 걸어갔다⁠. 할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점퍼 무릎이 흙에 닿았다⁠.

“⁠당집하고 회화나무는 정비 구역에서 빼겠습니다⁠. 넋 다섯을 모실 비석도 세우겠습니다⁠. 설명회는 겨울 지나고 다시 열고⁠, 그때 다시 정해 주십시오⁠.⁠”

할머니가 조합장을 내려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팡이 짚은 할아버지가 뒷줄에서 소리쳤다⁠.

“⁠그럼 나는 언제 가⁠? 우리 집사람 무릎은 겨울 안 기다려 준다⁠!⁠”

“⁠어르신 댁부터 보일러 고쳐 드리겠습니다⁠. 이번 주 안에요⁠. 꼭대기 남은 집 전부요⁠. 조합 돈으로요⁠.⁠”

“⁠보일러 고친다고 계단이 없어지냐⁠?⁠”

“⁠…계단은 제가 업어 드리겠습니다⁠.⁠”

공터에 웃음이 터졌다⁠. 할아버지도 웃었다⁠. 할머니만 웃지 않았다⁠. 할머니가 손을 내밀어 조합장의 어깨를 짚었다⁠. 막내의 손이 얹혀 있던 자리였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짚었다⁠. 깜이는 둘의 손이 한 자리에 겹치는 것을 보았다⁠.

“⁠일어나라⁠. 무릎 버린다⁠.⁠”

*

어머니가 휠체어에서 길베를 가리켰다⁠. 대학원생이 보자기를 풀었다⁠. 하얀 무명천이 한쪽 끝은 당집 맨 아래 계단에⁠, 다른 끝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공터 끝에 닿았다⁠. 노인들이 일어나 천 양옆으로 늘어섰다⁠. 천 가장자리를 손으로 들어 팽팽하게 잡았다⁠. 대학원생이 장구를 다시 쳤다⁠. 덩⁠, 기덕⁠, 덩⁠, 기덕⁠.

“⁠영감 이름 불러 보세요⁠.⁠”

춘심이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가 바다를 보고 이름 하나를 불렀다⁠. 깜이가 처음 듣는 소리였다⁠. 막내가 조합장의 등에서 이마를 뗐다⁠. 노인들이 차례로 이름을 불렀다⁠. 깜이는 모르는 소리 넷을 더 들었다⁠. 소리가 하나 날 때마다 젖은 남자 하나가 조합장 뒤에서 떨어져 나와 천의 머리 쪽⁠, 당집 계단 앞에 섰다⁠.

춘심이 천 앞에 섰다⁠. 몸을 천에 대고 밀었다⁠. 천이 팽팽하게 휘었다⁠. 갈라지지 않았다⁠. 춘심이 한 번 더 밀었다⁠. 무명천은 마흔 해 전과 같이 질겼다⁠. 춘심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손 말고 몸으로 가르는 거다⁠. 마음 다 내려놓고⁠.⁠”

어머니가 휠체어에서 말했다⁠. 춘심이 숨을 내쉬었다⁠. 깜이는 조합장 앞에서 일어났다⁠. 천의 머리 쪽으로 걸어가 천 위로 뛰어올랐다⁠. 노인들이 들고 있는 천은 흔들리는 다리 같았다⁠. 깜이는 천 위에서 네 발을 벌리고 중심을 잡았다⁠. 앞발 발톱이 무명 올 사이로 들어갔다⁠. 깜이는 걸었다⁠. 한 걸음마다 발톱이 올을 찢었다⁠. 찌익⁠. 깜이 발밑에서 천이 벌어졌다⁠.

춘심이 깜이가 낸 틈에 몸을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천이 갈라졌다⁠. 찌이익⁠, 길게⁠. 춘심은 천 사이를 걸었다⁠. 깜이가 앞서고 춘심이 뒤를 따랐다⁠. 천이 둘로 벌어지며 바다 쪽으로 길이 났다⁠. 대학원생의 장구 소리가 빨라졌다⁠. 노인들이 갈라진 천의 양쪽을 높이 들었다⁠.

젖은 남자 넷이 갈라진 천 사이로 걸어 내려갔다⁠. 장화에서 물이 떨어졌다⁠. 떨어지는 물이 점점 줄었다⁠. 공터 끝에 이르자 넷은 더 젖지 않았다⁠. 바다 쪽 어둠으로 걸어 들어갔다⁠. 깜이는 천 끝에서 멈춰 넷의 등이 어둠에 섞이는 것을 보았다⁠.

막내가 마지막이었다⁠. 막내는 천 길을 내려오다 깜이 앞에서 멈췄다⁠. 쪼그려 앉아 깜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깜이 코끝에 닿기 전에 없어졌다⁠.

막내가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깜이는 숨을 멈췄다⁠. 마흔 해 젖은 손님이 처음으로 인사를 했다⁠. 깜이도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막내가 일어나 새우젓 할머니를 한 번 돌아보았다⁠. 할머니는 바다만 보고 있었다⁠. 막내가 어둠으로 걸어 들어갔다⁠. 깜이의 털에서 마지막 물기가 빠져나갔다⁠. 털이 마르자 새까만 긴 털이 바닷바람에 가볍게 일어났다⁠.

조합장이 목덜미에서 손을 내렸다⁠. 고개를 들고 무언가를 듣는 얼굴을 했다⁠. 깜이 귀에도 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바람 소리와 장구 소리와⁠, 아래 차이나타운에서 올라오는 관광버스 소리만 들렸다⁠.

*

굿상이 치워지고 의자가 접혔다⁠. 새우젓 할머니가 춘심에게 누런 봉투를 내밀었다⁠. 얇은 봉투였다⁠.

“⁠꼭대기 열한 집이 모은 거다⁠. 굿값이다⁠. 진짜 굿값⁠.⁠”

“⁠어르신⁠, 저 신기 없다고 했잖아요⁠.⁠”

“⁠알아⁠. 다 들었다⁠. 그래도 길은 갈랐잖냐⁠.⁠”

할머니가 새우젓 독 하나를 깜이 앞에 내려놓았다⁠. 작은 독이었다⁠.

“⁠이건 니 거다⁠. 이제 영감 거 안 뺏어 먹어도 된다⁠.⁠”

요양원 승합차의 경사판이 다시 내려왔다⁠. 휠체어가 차에 오르기 전에 어머니가 깜이를 보았다⁠.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춘심이 어머니의 담요를 여며 주었다⁠. 어머니가 춘심의 손을 잡았다⁠.

“⁠누구세요⁠?⁠”

“⁠딸이요⁠.⁠”

“⁠우리 딸은 무당이에요⁠.⁠”

승합차 문이 닫혔다⁠. 조합장이 춘심 곁으로 왔다⁠. 주먹 안의 종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약정서는 없던 일로 하죠⁠. 열흘 안에 비우실 필요도 없습니다⁠. 철거는 아직 멀었어요⁠. 월세는⁠… 내실 수 있을 때 내십시오⁠.⁠”

“⁠요양원비는 갚을게요⁠.⁠”

“⁠그러십시오⁠. 달마다 받겠습니다⁠.⁠”

조합장이 계단을 내려갔다⁠. 등에는 아무도 업혀 있지 않았다⁠. 대학원생이 장구를 등에 지고 깜이의 가슴줄을 풀었다⁠. 춘심이 굿상 위에 쏟아진 북어 가루를 손으로 쓸어 깡통에 담았다⁠. 뚜껑을 닫아 회화나무 아래 쓰레기 봉지에 넣었다⁠. 삼색이가 봉지에 다가가 냄새를 맡더니 깜이를 돌아보며 꼬리를 세웠다⁠.

*

내려오는 계단에서 셋은 나란히 걸었다⁠. 계단 폭이 셋이 걷기에는 좁아서 춘심이 자꾸 대학원생 어깨에 부딪혔다⁠. 깜이는 둘 사이에서 이동장 없이 걸었다⁠. 가슴줄은 대학원생 배낭에 매달려 흔들렸다⁠.

“⁠학교는 어떻게 할 거야⁠?⁠”

“⁠다른 교수님 찾아볼게요⁠. 주제는 바꾸고요⁠.⁠”

“⁠뭘로⁠?⁠”

“⁠얼굴 읽는 무당이요⁠. 녹음 말고⁠, 선생님 허락받고요⁠.⁠”

“⁠허락 안 해⁠.⁠”

“⁠그럼 장구 연습만 할게요⁠.⁠”

“⁠장구는 늘었더라⁠.⁠”

대학원생이 계단에서 걸음을 멈췄다⁠. 춘심은 멈추지 않았다⁠. 세 칸 아래에서 춘심이 뒤도 안 돌아보고 말했다⁠.

“⁠신딸 할 거면 내림굿은 없어⁠. 우리 집은 신이 안 내려⁠. 밥은 싱겁게 하고⁠.⁠”

“⁠…네⁠.⁠”

“⁠머리는 묶고⁠.⁠”

대학원생이 긴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 웃었다⁠. 깜이는 대학원생의 발목에 볼을 비볐다⁠. 늙은 고양이 냄새 위에 깜이 냄새가 묻었다⁠. 담요의 주인이 싫어하지 않을 만큼만 묻혔다⁠. 신당 대문 옆 붉은 동그라미는 그대로 있었다⁠. 깜이는 동그라미 앞을 그냥 지나쳤다⁠. 수컷 냄새는 이제 나지 않았다⁠. 칠 냄새만 났다⁠.

*

이튿날 아침 다섯 시⁠, 제단 밑이 먼저 밝아졌다⁠. 깜이는 붉은 방석 위에서 눈을 떴다⁠. 방석은 말라 있었다⁠. 가운데에 하얀 소금 자국이 둥글게 남아 있었다⁠. 마른 바닷물이 남긴 자국이었다⁠. 깜이는 소금 자국 위에 앞발을 올리고 꾹꾹 눌렀다⁠. 왼발⁠, 오른발⁠, 왼발⁠. 방석이 따뜻했다⁠. 신당 방은 사람 눈에는 아직 캄캄했다⁠. 깜이 눈에는 다 보였다⁠. 무신도 속 장군은 오늘도 눈을 부릅떴고⁠, 문지방 앞에는 나방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방석 위에 깜이 말고 앉은 손님은 없었다⁠. 깜이는 방석 가장자리까지 꼼꼼히 냄새를 맡았다⁠. 바닷물 냄새는 소금 자국에만 아주 조금 남아 있었다⁠. 깜이는 소금 자국을 한 번 핥았다⁠. 짰다⁠.

계단에서 무릎이 딱 소리를 냈다⁠. 춘심이 촛대에 불을 붙이고 청수를 갈았다⁠. 북어를 제단 한가운데 놓고⁠, 꼬리를 손으로 뚝 끊어 제단 밑 깜이 앞에 떨어뜨렸다⁠.

“⁠이건 네 거⁠. 장군님 거 말고⁠.⁠”

깜이는 북어 꼬리를 물고 천 밖을 내다보았다⁠. 대문 밖 계단에 첫 손님이 올라오고 있었다⁠. 마루에서 대학원생이 긴 머리를 묶으며 장구를 끌어당겼다⁠. 춘심이 무릎을 꿇고 앉아 손님의 신발부터 보았다⁠. 깜이는 손님의 등을 보았다⁠. 아무도 업혀 있지 않았다⁠. 깜이는 꼬리를 씹으며 방석에 몸을 말았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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