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53자)
지붕 위
가짜 무당과 신당 고양이 · 문들레
대학원생의 방은 동인천역 뒤 골목 삼층에 있었다. 문을 열자 라면 수프 냄새와 책 먼지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깜이는 이동장 문이 열려도 나가지 않았다. 남의 영역에서는 먼저 냄새부터 읽는다. 깜이는 이동장 안에 엎드려 방을 하나하나 맡았다.
책상 밑에 낡은 담요가 개켜져 있었다. 담요에서 늙은 고양이 냄새가 진하게 났다. 대학원생의 옷 솔기에서 맡던 냄새의 주인이었다. 담요 옆에 빈 밥그릇이 하나 엎어져 있었다. 그릇 바닥에 먼지가 앉아 있었다.
“우리 할머니 고양이 거야. 할머니라고 불렀어. 열아홉 살까지 살았어. 지난봄에 갔어.”
대학원생이 밥그릇을 뒤집어 씻고, 금빛 참치 깡통을 따서 담았다. 깜이는 이동장에서 반만 나와 참치를 먹었다. 대학원생이 바닥에 앉아 깜이가 먹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도 너처럼 빈 데를 봤어. 벽 모서리 같은 데. 엄마는 벌레 보는 거라고 했는데, 나는 할머니가 뭘 보는지 알고 싶었어. 그래서 민속학 한 거야. 웃기지?”
깜이는 참치 기름을 핥았다. 대학원생이 웃었다. 긴 머리를 풀어 침대에 던지듯 누웠다.
대학원생이 전화기를 들어 춘심에게 걸었다. 신호가 오래 갔다.
“선생님, 깜이 밥 먹었어요. 참치요.”
“금빛 깡통?”
“네.”
“비싼 거 먹이지 마. 버릇 나빠져.”
“선생님이 넣어 주신 거잖아요.”
전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깜이는 춘심의 숨소리를 알아들었다. 귀를 세우고 전화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학원생이 전화기를 깜이 귀에 대 주었다.
“…깜이야?”
깜이는 전화기에 볼을 비볐다. 차가운 유리였다. 냄새가 묻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춘심이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전화가 끊겼다.
“내일모레가 보름이야. 너 신당 가면 선생님 한 번 더 봐.”
대학원생은 금방 잠들었다. 잠든 사람의 숨은 길고 고르다. 깜이는 방 안을 세 바퀴 돌았다. 늙은 고양이의 담요 위에 올라가 볼을 비볐다가 내려왔다. 남의 담요였다. 창문이 한 뼘 열려 있었고, 방충망이 바람에 덜컥거렸다. 깜이는 방충망 모서리에 앞발을 넣었다. 헐거웠다. 머리를 비스듬히 넣고 어깨로 밀자 방충망이 틀에서 빠졌다.
*
삼층 창틀 아래에 옆 건물 지붕이 있었다. 깜이는 지붕으로 뛰어내렸다. 슬레이트가 쿵 울렸다. 아래 골목에서 개가 짖었다.
밤의 도시는 냄새로 길을 낸다. 바다 냄새는 서쪽에서 왔다. 짜장 냄새는 바다 냄새 바로 앞에 있었다. 깜이는 둘을 겹쳐 놓고 냄새 나는 곳으로 걸었다. 동인천 시장 지붕은 파란 비닐 천막이 끝없이 이어진 길이었다. 천막 위를 걸으면 발이 푹푹 빠졌다. 천막 아래에서 생선 비린내와 참기름 냄새가 올라왔다. 깜이는 생선 냄새 앞에서 세 번 멈췄다가 세 번 다시 걸었다.
시장 끝에서 언덕이 시작되었다. 큰 나무들이 빽빽한 공원이었다. 깜이는 공원 돌계단을 올랐다. 낙엽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나뭇가지 위에서 까치가 깍깍 울며 깜이를 쫓아왔다. 깜이는 까치를 무시했다. 까치는 깜이 머리 위를 세 번 스치고 지나갔다. 깜이가 돌아보면 까치는 가지 끝으로 달아났고, 깜이가 다시 걸으면 또 쫓아왔다. 새들은 고양이가 저를 안 볼 때만 용감하다. 깜이는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까치는 공원 끝까지 혼자 시끄럽게 떠들다가 제풀에 지쳐 돌아갔다. 공원 꼭대기에서 바다가 보였다. 바다 앞에 붉은 등이 줄지어 있었다. 차이나타운이었다. 붉은 등 너머 어두운 언덕 중턱에 대나무 깃발 하나가 바람에 흔들렸다. 신당 대문 앞 깃발이었다.
차이나타운 뒷골목으로 내려서자 고양이 냄새가 짙어졌다. 쓰레기통 위, 실외기 위, 담장 위에 고양이들이 앉아 있었다. 얼룩 고양이 하나가 골목 한가운데로 내려와 길을 막았다. 군만두를 훔치던 날 한쪽 눈을 떴던 얼룩 고양이였다. 얼룩 고양이 뒤에 고양이 여섯이 꼬리를 낮게 깔고 섰다.
깜이는 걸음을 멈췄다. 귀를 앞으로 세우고, 꼬리를 낮추고, 털은 부풀리지 않았다. 싸우러 온 고양이가 아니라는 몸짓이었다. 얼룩 고양이가 낮게 그르렁거렸다. 깜이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얼룩 고양이가 한참 깜이를 보았다. 군만두 냄새를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만두를 물던 날 깜이는 남의 영역에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얼룩 고양이가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쓰레기통 위로 돌아갔다. 고양이 여섯이 길을 텄다.
골목 끝 술집 앞에서 관광객 둘이 깜이를 보고 소리쳤다.
“신당 고양이다! 영상에 나온 그 고양이!”
전화기 불빛이 번쩍였다. 깜이는 불빛을 피해 담장으로 뛰어올라 언덕 계단을 달렸다. 하늘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신당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새 현수막이 펄럭였다. 「언덕의 넋을 달래는 위령굿 — 보름 저녁 여섯 시, 꼭대기 당집 앞」 현수막 아래에 구청 이름과 상인회 이름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현수막 끈에서 조합장의 차 방향제 냄새가 났다. 깜이는 현수막 끈 기둥에 볼을 비비고 지나갔다. 오줌은 아껴 두었다.
*
신당 담장을 넘었을 때 신당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촛불이 아니라 형광등이었다. 춘심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 앞에서 공수를 내릴 때의 큰 목소리였다.
깜이는 마루 밑으로 기어가 방문 틈으로 안을 보았다. 춘심이 무복을 입고 제단 앞에 서 있었다. 상자에서 다시 꺼낸 놋거울, 명두가 제단 위에 세워져 있었다. 방구석 방석에 조합장이 앉아 있었다. 조합장 무릎 위에 종이 한 장이 펼쳐져 있었다. 굿상에 올릴 음식 목록이었다. 조합장은 등에 아무것도 업고 있지 않았다. 젖은 남자는 제단 밑 방석 위에 있었다.
“아까 그건 너무 담담했어요. 노인들은 무당 목소리가 떨려야 신령님이 오신 줄 압니다. 좀 더 떨리게 해 주시죠.”
“떨리는 건 돈 다 받고 나서요.”
“요양원에 석 달 치 넣었습니다.”
“그럼 석 달 치만큼만 떨게요.”
조합장이 헛웃음을 웃었다. 조합장이 음식 목록에 볼펜으로 무언가를 고쳐 적었다.
“돼지머리는 큰 걸로 하죠. 북어는 몇 마리나 올립니까?”
“다섯이요. 넋이 다섯이니까.”
조합장의 볼펜이 멈췄다. 조합장은 춘심을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목록을 보았다. 「북어 다섯」 깜이는 문틈에서 북어라는 소리를 듣고 수염을 세웠다. 다섯이 얼마나 많은지는 몰라도 하나보다 많은 것은 알았다.
“한 번 더 해 보시죠. 처음부터요.”
춘심이 방울을 흔들었다. 짤랑, 짤랑. 춘심이 눈을 감고 소매에서 공수 문구를 꺼내 들었다.
“용왕님이 데려가셨으니,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
젖은 남자가 일어났다.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던 물이 쏟아졌다. 어깨에서, 앞치마에서, 장화 속에서. 깜이 눈에는 방석 위로 바닷물이 폭포처럼 내리쏟는 것이 보였다. 촛대 두 개의 불이 한꺼번에 꺼졌다. 형광등이 껌벅였다. 제단 위 명두에서 쩍 소리가 났다. 놋거울 한가운데로 금이 갔다.
조합장이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이 소리…. 이 소리 안 들리세요? 물소리요!”
춘심이 눈을 떴다. 춘심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조합장이 귀를 막고 웅크리는 것만 보였다. 젖은 남자가 춘심 앞으로 걸어갔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이 춘심의 입을 향해 올라갔다. 막으려는 손인지 무엇을 넣으려는 손인지 깜이는 알 수 없었다.
깜이는 방문을 머리로 밀고 뛰어들었다. 새까만 긴 털이 문지방을 넘으며 두 배로 부풀었다. 깜이는 춘심과 젖은 남자 사이에 내려앉아 젖은 남자를 향해 하악 소리를 냈다. 젖은 남자가 손을 거두었다. 한 걸음 물러섰다. 형광등이 다시 켜졌다.
*
“깜이? 너 어떻게….”
춘심이 무릎을 꿇고 깜이를 안으려 했다. 깜이는 춘심의 팔 아래로 빠져나갔다. 춘심이 깜이의 목덜미를 잡았다. 마당에 내놓으려는 손이었다. 첫날 조합장이 왔을 때와 같은 손이었다.
깜이는 몸을 비틀어 춘심의 손등을 할퀴었다. 다섯 해 동안 한 번도 한 적 없는 일이었다. 춘심의 손등에 붉은 줄 세 개가 그어졌다. 춘심이 손을 놓았다.
깜이는 제단 천 밑으로 들어갔다. 젖은 남자가 방석으로 돌아와 앉아 있었다. 깜이는 방석에 올라 젖은 남자의 무릎 위에 몸을 말았다. 차가웠다. 털 사이사이로 얼음물이 스몄다. 깜이는 내려오지 않았다. 이 방석은 깜이 자리였다. 깜이 자리에 앉은 손님이 있으면, 같이 앉는 수밖에 없었다.
춘심이 피 맺힌 손등을 입에 대고 제단 밑을 들여다보았다. 춘심의 눈에는 빈 방석 위에 웅크린 깜이만 보였다. 깜이의 털이 축축하게 젖어 붙어 있었다.
“너는 끝까지 내 굿값을 쫓는구나.”
춘심이 웃으려다 울었다. 조합장이 귀에서 손을 떼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조합장이 제단 밑의 깜이를 오래 보았다.
“고양이, 굿날 꼭 데려오세요. 이놈이 보는 걸 저도 좀 봐야겠습니다.”
*
대문이 벌컥 열렸다. 대학원생이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머리가 다 풀어져 있었고 신발 끈이 하나 풀려 있었다.
“깜이 여기 왔어요? 방충망이….”
대학원생이 제단 밑의 깜이를 보고 주저앉았다. 다음에 조합장을 보았다. 조합장 손에 들린 음식 목록과, 춘심 소매에서 비어져 나온 공수 문구를 보았다. 대학원생이 일어섰다.
“조합장님. 그 말 읽으시면 저 넋들이 마흔 해 더 젖어요.”
“학생 기계로 보이는 게 넋입니까, 방바닥 습기입니까?”
“지금 조합장님 귀에 들리신 게 습기예요?”
조합장의 입이 다물어졌다. 조합장은 음식 목록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마당으로 나가며 대학원생 옆에서 멈췄다.
“학생. 꼭대기에 다음 겨울에도 노인들이 남아 있으면, 그때도 저 방들이 습기라고 할 겁니까? 저는 이 언덕에서 사람이 하나 더 얼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 굿은 보름날입니다.”
조합장이 계단을 내려갔다. 이번에는 등에 아무도 업히지 않았다. 깜이는 방석 위에서 조합장의 발소리를 끝까지 들었다.
*
해가 뜨자 춘심이 제단 위 보자기를 내렸다. 길베가 무릎 위에 하얗게 펼쳐졌다. 금 간 명두가 길베를 비추었다. 대학원생이 춘심 옆에 앉아 춘심의 손등에 연고를 발랐다.
“얘 다시 데려가.”
“또 나올 거예요. 방충망을 어깨로 밀었어요. 시장 지붕 넘고 공원 넘어서 왔을 거예요. 얘 영역이 여기예요.”
“영역 같은 소리. 열흘 뒤면 여기 빈집이야.”
“그러니까요.”
대학원생이 연고 뚜껑을 닫으며 제단 밑을 보았다. 깜이는 아직 젖은 남자의 무릎 위에 있었다. 대학원생이 배낭에서 열화상 카메라를 꺼내려다 도로 넣었다. 꺼내지 않아도 알았다. 춘심이 대학원생의 손을 따라 제단 밑을 보았다. 젖어서 털이 납작하게 붙은 깜이가 노란 눈만 뜨고 둘을 보고 있었다.
“너도 보여? 기계 없이?”
“아니요. 깜이 털이 젖은 것만 보여요.”
“나도.”
둘은 한참 젖은 고양이만 보았다.
“보름날 이거 들고 간다.”
“가르실 거예요?”
“몰라.”
춘심이 무릎 위의 공수 문구를 집어 네모나게 접었다. 무복 소매 안에 넣었다. 소매 안에는 북어 가루 깡통이 먼저 들어 있었다. 깜이는 방석 위에서 소매 냄새를 맡았다. 북어 냄새와 종이 냄새가 한데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