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387자)

군만두

가짜 무당과 신당 고양이 · 문들레

손님이 끊긴 지 나흘째⁠, 금빛 참치 깡통이 바닥났다⁠.

과자 깡통도 가벼워졌다⁠. 춘심은 부엌에서 라면을 끓였다⁠. 하루에 두 번 끓였다⁠. 깜이 밥그릇에는 바삭한 사료가 담겼다⁠. 동물병원 냄새가 나는 사료였다⁠. 깜이는 사료를 코로 밀어 그릇 밖으로 다 쏟아 냈다⁠. 춘심은 쏟아진 사료를 손으로 쓸어 담아 그릇에 도로 넣었다⁠.

“⁠없어⁠. 이제 그거밖에 없어⁠.⁠”

없어는 알아들었다⁠. 깜이는 그릇 앞에 오래 앉아 있다가 담장으로 올라갔다⁠.

차이나타운 뒷골목은 중국집 뒷문이 줄지어 열리는 골목이다⁠. 점심때가 되면 뒷문마다 기름 냄새와 고기 냄새가 쏟아져 나온다⁠. 깜이는 골목 고양이들이 낮잠 자는 시각을 기다렸다가 지붕을 타고 내려갔다⁠. 세 번째 뒷문 앞에 쟁반이 놓여 있었다⁠. 쟁반 위에 갓 구운 군만두가 김을 올리고 있었다⁠.

깜이는 군만두 하나를 물었다⁠. 뜨거웠다⁠. 입천장이 데었는데도 놓지 않았다⁠. 골목 끝 쓰레기통 위에서 낮잠 자던 얼룩 고양이가 한쪽 눈을 떴다⁠. 깜이는 꼬리를 낮게 깔고 얼룩 고양이에게서 눈을 피했다⁠. 남의 영역에서 먹이를 물 때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고양이의 예의다⁠. 얼룩 고양이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야⁠! 이 검은 놈⁠!⁠”

흰 모자를 쓴 주방장이 국자를 들고 뛰어나왔다⁠. 깜이는 군만두를 문 채 쓰레기통을 밟고⁠, 에어컨 실외기를 밟고⁠,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국자가 실외기를 때렸다⁠. 땡⁠, 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지붕 위에서 돌아보니 주방장이 국자를 든 채 웃고 있었다⁠.

“⁠너 그 신당 고양이지⁠? 텔레비전 나온 놈⁠! 그래⁠, 가져가라⁠. 영물한테 만두 하나 바쳤다⁠!⁠”

깜이는 지붕과 담장을 건너 신당 마루까지 군만두를 물고 왔다⁠. 춘심이 마루 끝에 앉아 불어 터진 라면을 먹고 있었다⁠. 깜이는 춘심의 발 앞에 군만두를 내려놓았다⁠. 입천장이 쓰라렸다⁠. 깜이는 군만두를 앞발로 춘심 쪽으로 한 번 더 밀었다⁠.

춘심이 젓가락을 멈추고 군만두를 내려다보았다⁠.

“⁠너 지금⁠… 나 먹여 살리냐⁠?⁠”

고양이는 사냥 못 하는 무리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 늙은 고양이에게⁠, 새끼에게⁠, 다친 고양이에게⁠. 깜이는 오래전부터 춘심이 손님을 사냥한다고 생각했다⁠. 사냥이면 사냥감이 다쳐서 가야 한다⁠. 손님들은 춘심에게 붙잡혔다가 가벼워진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털조끼 남자는 따뜻한 땀 냄새를 풍기며 갔고⁠, 운동화 여자는 귤을 들고 다시 왔다⁠. 사냥감은 다시 오지 않는다⁠. 깜이는 군만두 앞에 앉아서야 알았다⁠. 춘심이 손님들에게 한 일은 사냥보다 핥아 주기에 가까웠다⁠. 고양이가 무리의 털을 핥아 엉킨 데를 풀어 주는 일이었다⁠.

춘심이 군만두를 반으로 갈라 반을 먹었다⁠. 나머지 반을 깜이 앞에 놓았다⁠. 깜이는 만두 속 고기만 골라 먹었다⁠. 춘심이 웃다가 라면 그릇에 눈물을 떨어뜨렸다⁠. 깜이는 춘심의 손등을 한 번 핥았다⁠. 짰다⁠. 라면 국물 맛이었다⁠.

*

저녁에 대학원생이 마당 감나무 앞에 전화기를 세웠다⁠. 받침대 위에서 전화기 화면이 빛났다⁠. 대학원생은 긴 머리를 뒤로 묶고 화면 앞에 앉았다⁠. 춘심은 부엌에 있었다⁠. 깜이는 감나무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신당 계정 운영하는 학생입니다⁠. 녹음 이야기를 드리려고 켰어요⁠.⁠”

화면 속에 작은 글자들이 빠르게 올라갔다⁠. 대학원생이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학회에 나온 녹음⁠, 제가 몰래 녹음한 거예요⁠. 선생님은 녹음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제가 어겼어요⁠. 그리고 맞아요⁠. 선생님은 신기가 없으세요⁠. 손님 얼굴을 읽으세요⁠. 본인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부엌에서 그릇 놓는 소리가 멈췄다⁠.

“⁠근데 이것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난주에 털조끼 입고 오신 분이 메시지를 보내셨어요⁠. 어머님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밤에 잠을 주무셨대요⁠. 첫 주에 오신 분은 다음 주부터 새 직장에 나가세요⁠. 그분들 우신 거⁠, 거짓말 아니에요⁠. 저는 이 녹음으로 논문 안 씁니다⁠. 제 전화기에 있던 원본도 지금 지울게요⁠.⁠”

대학원생이 화면 앞에서 음성 파일을 눌러 지웠다⁠. 배낭 끈에 꽂혀 있던 조합장의 명함을 빼서 반으로 찢었다⁠. 방송을 끄자마자 전화기가 울렸다⁠. 대학원생은 화면을 보고 받지 않았다⁠. 다시 울렸다⁠. 받았다⁠.

“⁠네⁠, 교수님⁠. 네⁠. 알아요⁠. 네⁠. 그럼 다른 교수님 찾아볼게요⁠. 네⁠.⁠”

전화를 끊은 대학원생의 손이 덜덜 떨렸다⁠. 부엌 미닫이가 열렸다⁠. 춘심이 행주를 든 채 서 있었다⁠.

“⁠누가 너더러 내 편 들래⁠?⁠”

“⁠편드는 거 아니에요⁠.⁠”

“⁠네 박사는⁠. 지도교수가 너 버렸잖아⁠. 다섯 해 공부한 거 다 날렸잖아⁠.⁠”

“⁠선생님 말씀 듣고 운 사람들 거⁠, 그건 진짜잖아요⁠. 진짜를 가짜로 쓰는 논문은 안 쓰고 싶어요⁠.⁠”

“⁠진짜 같은 소리 하네⁠.⁠”

춘심이 행주를 대학원생에게 던졌다⁠. 행주가 대학원생 머리에 얹혔다⁠. 대학원생은 행주를 머리에 얹은 채 웃었다⁠. 춘심은 웃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미닫이를 닫지 않았다⁠.

방송이 끝나고 계정에 메시지가 몇 개 들어왔다⁠. 대학원생이 소리 내어 읽었다⁠. 다시 가도 되느냐는 메시지가 둘⁠, 사기꾼이라는 메시지가 열⁠. 춘심은 부엌에서 끝까지 들었다⁠.

*

이튿날 아침 춘심은 이동장을 들고 언덕 아래 조합 사무실로 갔다⁠. 조합장이 고양이도 데려오라고 했다⁠. 사무실은 빈터에 놓인 컨테이너였다⁠. 안에는 전기난로가 웅웅 돌았고⁠, 벽에 언덕 지도가 붙어 있었다⁠. 지도 위 집들에 붉은 동그라미가 빽빽했다⁠. 꼭대기에만 동그라미 없는 집이 몇 채 남아 있었다⁠.

조합장이 책상 위에 종이 두 장을 올려놓았다⁠. 젖은 남자는 조합장 의자 뒤에 서 있었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져 종이 위로 번졌다⁠. 종이는 젖지 않았다⁠.

“⁠이게 약정서고⁠, 이게 공수 문구입니다⁠. 이대로만 해 주시면 됩니다⁠.⁠”

춘심이 문구를 소리 내어 읽었다⁠.

“⁠「⁠용왕님이 데려가셨으니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 넋들은 이제 언덕을 떠나 좋은 데로 가신다⁠.⁠」⁠”

“⁠어머님이 그때 하신 말씀이랑 거의 같게 했습니다⁠. 노인들 귀에 익은 말이 잘 들어가요⁠.⁠”

깜이는 이동장 안에서 춘심의 손을 보았다⁠. 종이를 쥔 손가락 끝이 하얬다⁠.

“⁠요양원비는 제가 요양원에 바로 넣겠습니다⁠. 석 달 치 미리⁠. 월세는 없던 일로 하고⁠, 이삿짐 차도 조합에서 부르죠⁠. 굿 끝나고 열흘 안에 비워 주시면 됩니다⁠.⁠”

“⁠고양이는 빼 주세요⁠.⁠”

“⁠안 됩니다⁠. 영물이 꼭대기에서 얌전해야 노인들이 도장을 찍어요⁠.⁠”

“⁠얘가 얌전할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그때 그 굿에서 어머님은 얌전하셨잖습니까⁠?⁠”

춘심의 숨이 멈췄다⁠. 전기난로만 웅웅거렸다⁠. 춘심은 약정서 맨 아래 칸에 도장을 꾹 눌렀다⁠. 깜이는 이동장 안에서 등을 둥글게 말았다⁠. 젖은 남자가 조합장 의자 뒤에서 춘심의 도장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으로 젖은 남자의 입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깜이만 입 모양을 보았다⁠.

*

조합 사무실에서 돌아온 날 오후⁠, 대문 밖에서 새우젓 냄새가 났다⁠. 깜이는 이동장에서 풀려나자마자 대문으로 달려갔다⁠. 수건 쓴 할머니가 서 있었다⁠. 할머니 뒤에 꼭대기 노인 둘이 따라와 있었다⁠.

“⁠도장 찍었다며⁠.⁠”

춘심이 마루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조합 사무실 컨테이너 문이 얇아요⁠, 어르신⁠. 다 들리셨겠네요⁠.⁠”

“⁠옥선녀 신당 딸이 선주 아들 공수를 읽는다고⁠, 아래 동네까지 다 안다⁠.⁠”

“⁠엄마 요양원 들어가야 해요⁠. 금요일이면 퇴소예요⁠.⁠”

“⁠우리 영감은 마흔 해를 젖어 있다⁠.⁠”

할머니가 마당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할머니의 신발에 꼭대기 흙이 묻어 있었다⁠. 깜이는 할머니와 춘심 사이에 앉았다⁠. 둘 다 깜이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네 어미 요양원은 따뜻하냐⁠?⁠”

“⁠…따뜻해요⁠.⁠”

“⁠우리 영감 있는 데는 차다⁠.⁠”

할머니가 품에서 종지 하나를 꺼내 마루 끝에 내려놓았다⁠. 새우젓이 담겨 있었다⁠. 깜이 몫이었다⁠. 할머니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따라온 노인 하나가 춘심에게 고개를 숙이고 할머니를 부축했다⁠. 셋이 계단을 오르는 동안 춘심은 마루에서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깜이는 종지의 새우젓을 핥다가 멈췄다⁠. 짠맛이 혀끝에 오래 남았다⁠.

밤에 춘심이 요양원에 영상 통화를 걸었다⁠. 사무장이 먼저 화면에 나와 석 달 치가 들어왔다고 했다⁠. 사무장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부드러웠다⁠. 화면이 어머니에게 넘어갔다⁠.

“⁠엄마⁠.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엄마 거기 계속 있어⁠.⁠”

“⁠깜이 밥 줬냐⁠.⁠”

“⁠줬어⁠. 금빛 깡통으로⁠.⁠”

“⁠거짓말하면 입이 마른다⁠.⁠”

어머니가 화면을 끊었다⁠. 춘심이 혀로 입술을 핥았다⁠. 깜이는 춘심의 무릎에 올라가 몸을 말았다⁠. 춘심의 무릎이 오늘따라 차가웠다⁠.

*

짐 싸는 데 사흘이 걸렸다⁠. 새집은 요양원 근처의 반지하 방이었다⁠. 집주인이 짐승은 안 된다고 했다⁠. 춘심은 대학원생에게 짐승 이야기를 한 번만 했다⁠.

마루에 상자가 쌓였다⁠. 깜이는 상자가 열릴 때마다 들어갔다⁠. 냄비 상자에도⁠, 이불 상자에도⁠, 무복 상자에도 들어갔다⁠. 대학원생이 깜이를 꺼내면 깜이는 옆 상자로 들어갔다⁠. 춘심이 상자 뚜껑을 덮다가 깜이 머리를 덮었다⁠.

“⁠너 자꾸 그러면 너도 부친다⁠.⁠”

“⁠택배로요⁠?⁠”

“⁠착불로⁠.⁠”

대학원생이 웃다가 테이프를 엉뚱한 데 붙였다⁠. 무복 상자 뚜껑에 깜이 꼬리가 붙었다⁠. 깜이가 상자째 끌고 마루를 가로질렀다⁠. 춘심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뒷방의 무구도 상자에 들어갔다⁠. 방울⁠, 부채⁠, 놋거울⁠. 길베만은 상자에 넣지 않았다⁠. 춘심이 길베를 보자기에 싸서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제단 밑 방석에는 젖은 남자가 다시 앉아 있었다⁠. 춘심은 방석을 상자에 넣으려고 손을 뻗었다가 거두었다⁠.

“⁠이건 두고 가⁠. 엄마가 깜이한테 깔아 준 거야⁠.⁠”

대학원생이 제단 위 보자기를 보았다⁠.

“⁠길베는 왜 따로 두세요⁠?⁠”

“⁠굿날 상에 올려야지⁠. 진오귀굿에 길베가 없으면 꼭대기 노인들이 가짜인 줄 알아⁠.⁠”

“⁠가르실 거예요⁠?⁠”

“⁠가르는 척은 해야지⁠. 척은 내 전문이야⁠.⁠”

춘심이 테이프를 쭉 뜯어 상자 위에 붙였다⁠. 테이프 뜯는 소리가 길었다⁠. 깜이는 소리에 놀라 상자에서 튀어나왔다가⁠, 춘심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음 상자를 접는 것을 보고 새 상자에 다시 들어갔다⁠. 춘심이 상자 속 깜이를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는 뚜껑을 덮지 않았다⁠.

*

보름 사흘 전 저녁⁠, 춘심이 이동장을 대학원생에게 건넸다⁠. 깜이는 이동장 안에 있었다⁠. 금빛 참치 깡통 하나를 따서 넣어 준 직후였다⁠. 깜이는 또 속았다⁠.

“⁠보름날까지 데리고 있어⁠. 굿날 데리고 와⁠. 굿 끝나면 네가 가져⁠.⁠”

“⁠선생님⁠.⁠”

“⁠너 고양이 키웠잖아⁠. 냄새로 알아⁠. 얘도 알고⁠.⁠”

대학원생이 이동장을 받아 들었다⁠. 깜이는 쇠그물에 몸을 부딪쳤다⁠. 이동장이 기울었다⁠. 춘심이 쇠그물 사이로 손가락 하나를 넣었다⁠. 어머니가 요양원에서 한 것과 같은 손짓이었다⁠. 깜이는 손가락을 물었다⁠. 세게 물지는 않았다⁠.

“⁠밥 잘 먹어⁠. 깜이⁠.⁠”

대학원생이 이동장을 안고 대문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며 깜이는 쇠그물 너머로 신당을 보았다⁠. 춘심이 대문 안에서 문을 닫았다⁠. 닫히기 전 문틈으로 제단이 보였다⁠. 제단 밑 방석 위에 젖은 남자 혼자 앉아 있었다⁠. 깜이 자리였다⁠. 깜이는 쇠그물에 얼굴을 대고 길게 울었다⁠. 대문은 열리지 않았다⁠.

7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군만두 · 가짜 무당과 신당 고양이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