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64자)

거짓 공수

가짜 무당과 신당 고양이 · 문들레

이동장은 아침 일곱 시부터 마루에 나와 있었다⁠. 깜이는 이동장을 보자마자 마루 밑으로 들어갔다⁠. 이동장이 나오는 날은 동물병원에 가는 날이고⁠, 동물병원에서는 엉덩이에 차가운 막대를 꽂는다⁠.

“⁠깜이⁠, 엄마 보러 가자⁠. 병원 아니야⁠.⁠”

춘심이 마루 밑에 대고 북어를 흔들었다⁠. 깜이는 꿈쩍하지 않았다⁠. 대학원생이 엎드려 마루 밑을 들여다보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깜이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깜이가 눈을 감은 사이 춘심이 빗자루 자루를 들이밀었다⁠. 깜이는 반대편으로 튀어 나가 감나무로 올라갔다⁠. 감나무 가지 끝에서 새까만 긴 털이 사방으로 부풀었다⁠.

“⁠저 봐⁠, 저 봐⁠. 두 배가 됐어⁠. 아가씨가 눈 깜박하니까 내가 찌르는 줄 알았잖아⁠.⁠”

“⁠선생님이 찌르셨잖아요⁠.⁠”

둘이 감나무 밑에서 삼십 분을 다퉜다⁠. 깜이를 끌어 내린 것은 결국 금빛 참치 깡통 따는 소리였다⁠. 깜이는 참치를 반쯤 먹다가 이동장 문이 등 뒤에서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속은 것을 알았을 때는 늦었다⁠. 깜이는 이동장 안에서 몸을 돌려 춘심에게 엉덩이를 보였다⁠. 고양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욕이었다⁠.

*

요양원 가는 버스는 차이나타운 앞에서 탄다⁠. 깜이는 이동장 쇠그물에 얼굴을 붙이고 버스 안을 보았다⁠. 바닥은 흔들렸고⁠, 손잡이들은 일제히 한 방향으로 기울었다가 돌아왔다⁠. 고양이에게 버스는 거대한 상자가 통째로 달리는 일이다⁠. 깜이는 네 발에 힘을 주고 엎드렸다⁠.

춘심은 무릎에 보자기 하나를 얹고 있었다⁠. 보자기 속에 길베가 개켜져 있었다⁠. 옆자리의 대학원생이 이동장을 안았다⁠. 맞은편 좌석에 중국인 관광객 둘이 앉아 깜이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마오⁠. 마오⁠.⁠”

깜이는 대답 대신 하품을 했다⁠. 관광객들이 깔깔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대학원생이 작게 웃었다⁠.

“⁠얘⁠, 중국어도 알아들어요⁠.⁠”

“⁠밥 주는 말만 알아들어⁠.⁠”

젖은 남자도 버스에 타고 있었다⁠. 신당 대문을 나설 때부터 장화 뒤꿈치를 끌며 따라왔고⁠, 지금은 이동장 바로 옆 빈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창밖으로 바다가 지나갔다⁠. 젖은 남자가 바다 쪽 창에 이마를 댔다⁠. 유리에 김이 서리지 않았다⁠.

다음 정류장에서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가 올라와 젖은 남자의 자리에 털썩 앉았다⁠. 깜이는 쇠그물에 코를 박았다⁠. 아주머니가 젖은 남자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운전석에 대고 소리쳤다⁠.

“⁠기사님⁠, 에어컨 좀 꺼 주세요⁠! 시월에 무슨 에어컨이에요⁠!⁠”

“⁠에어컨 안 켰어요⁠!⁠”

아주머니가 일어나 다른 자리로 옮겼다⁠. 젖은 남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창에 이마를 대고 있었다⁠. 깜이는 꼬리 끝으로 쇠그물을 탁탁 쳤다⁠. 앉으려면 먼저 냄새를 맡아 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사람은 남의 자리에 앉기 전에 냄새를 맡지 않는다⁠.

*

요양원 현관에서 소독약 냄새가 밀려왔다⁠. 소독약 아래에 미음 냄새가 깔려 있었고⁠, 미음 아래에 오래 누운 사람들의 냄새가 있었다⁠. 깜이는 이동장 안에서 몸을 낮췄다⁠.

사무실 앞에서 안경 쓴 사무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장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고⁠, 등 뒤 게시판에는 커다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내년도 본인 부담금 조정 안내⁠」

“⁠보호자님⁠, 이번 달까지 두 달 치 남으셨어요⁠. 이달 말일이 넘으면 퇴소 절차로 들어가요⁠.⁠”

“⁠지난주에 한 달 치 보냈잖아요⁠.⁠”

“⁠감사하죠⁠. 근데 두 달이 남았어요⁠. 대기하시는 분이 열넷이에요⁠. 원장님이 이번엔 봐 드릴 수 없다고 하셨어요⁠.⁠”

춘심이 지갑에서 봉투를 꺼냈다⁠. 깜이 점으로 모은 돈이었다⁠. 사무장이 봉투를 세어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보름 치예요⁠.⁠”

“⁠보름 지나면 나머지 다 넣을게요⁠. 큰 굿이 있어요⁠. 천 단위로요⁠.⁠”

“⁠보호자님⁠, 지난번에도 큰 굿 있다고 하셨어요⁠.⁠”

“⁠이번엔 진짜예요⁠. 집주인이 직접 맡긴 굿이에요⁠.⁠”

사무장이 춘심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춘심이 손님을 읽을 때와 같은 눈이었다⁠. 깜이는 둘 사이에서 이동장 쇠그물을 앞발로 긁었다⁠. 사무장의 시선이 이동장으로 내려왔다⁠.

“⁠…고양이는 원래 안 돼요⁠.⁠”

“⁠엄마가 보고 싶어 하세요⁠. 영상 통화 할 때마다 얘 밥 줬냐고 물으세요⁠. 저한텐 누구냐고 묻고요⁠.⁠”

사무장이 안경을 벗어 닦았다⁠. 다시 썼을 때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삼십 분이에요⁠. 이동장 밖으로는 내놓지 마시고요⁠.⁠”

*

휴게실을 지나갈 때 텔레비전에서 깜이가 나왔다⁠. 저녁 뉴스의 문화 꼭지였다⁠. 「⁠한국 무속 영상⁠, 해외에서 수천만 조회⁠」 화면 속에서 깜이가 털을 부풀리고 미닫이를 밀고 뛰어들었다⁠. 휴게실 노인들이 화면과 이동장을 번갈아 보았다⁠.

“⁠저놈이다⁠. 테레비 나온 놈이 저기 있다⁠!⁠”

휠체어 탄 할아버지가 손가락을 들었다⁠. 노인들이 이동장 쪽으로 몰려왔다⁠. 깜이는 이동장 구석으로 몸을 붙였다⁠. 할아버지 하나가 쇠그물에 대고 큰 소리로 물었다⁠.

“⁠야⁠, 고양이야⁠. 나한테도 뭐 붙었냐⁠?⁠”

깜이는 할아버지의 등 뒤를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파스 냄새와 박하사탕 냄새만 났다⁠. 깜이는 하품을 했다⁠.

“⁠하품한다⁠. 나는 괜찮단다⁠!⁠”

할아버지가 손뼉을 쳤다⁠. 노인들이 차례로 이동장 앞에 등을 들이밀었다⁠. 깜이는 하품을 다섯 번 했다⁠. 사무장이 복도 끝에서 시계를 가리켰다⁠. 춘심이 노인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이동장을 들어 올렸다⁠. 다섯 번째 하품을 받은 할머니가 춘심의 소매를 붙잡았다⁠.

“⁠아가씨네 고양이는 좋겠다⁠. 보는 게 많아서⁠.⁠”

*

어머니는 창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무릎에 담요를 덮었고⁠, 손등에 링거 자국이 퍼렇게 남아 있었다⁠. 깜이는 쇠그물 사이로 어머니의 냄새를 맡았다⁠. 소독약 위에 아주 오래된 향냄새가 남아 있었다⁠. 신당 뒷방에서 나던 냄새와 같았다⁠. 몸을 씻기고 옷을 바꿔 입혀도 지워지지 않는 냄새였다⁠.

어머니가 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깜아⁠.⁠”

깜이는 귀를 세웠다⁠. 이 목소리를 안다⁠. 제단 밑에서 젖도 못 뗀 깜이를 꺼내 품에 넣던 목소리였다⁠. 깜이는 쇠그물에 볼을 문질렀다⁠. 어머니가 손가락 하나를 쇠그물 사이로 넣었다⁠. 깜이는 손가락 끝을 핥았다⁠. 짰다⁠.

“⁠밥 먹었냐⁠.⁠”

“⁠먹었어⁠, 엄마⁠. 금빛 깡통 참치 먹어⁠.⁠”

“⁠누구세요⁠?⁠”

“⁠딸이요⁠. 춘심이⁠.⁠”

“⁠우리 딸은 고등학생이에요⁠.⁠”

대학원생이 웃음을 삼키다가 사레가 들렸다⁠. 춘심이 대학원생의 등을 두드려 주며 같이 웃었다⁠. 웃는데 춘심의 손이 떨렸다⁠.

대학원생이 휠체어 옆에 쪼그려 앉았다⁠. 긴 머리가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어머님⁠, 저는 민속학 공부하는 학생이에요⁠.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신령님 말씀은 어떻게 들으셨어요⁠?⁠”

어머니가 대학원생의 머리카락을 한 줌 쥐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길다⁠. 굿할 때 묶어라⁠. 방울에 감기면 신령님도 못 푼다⁠.⁠”

“⁠…네⁠.⁠”

“⁠말씀은 배꼽으로 들어⁠. 귀로 들으면 내 말이 섞여⁠.⁠”

대학원생이 받아 적을 데를 찾다가 손바닥에 볼펜으로 무언가를 썼다⁠. 춘심이 대학원생의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코웃음을 쳤다⁠. 「⁠배꼽⁠」 두 글자만 크게 적혀 있었다⁠.

어머니의 눈이 깜이를 지나 문 앞으로 갔다⁠. 젖은 남자가 문틀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어머니가 한참 젖은 남자를 보았다⁠. 깜이도 젖은 남자를 보았다⁠. 방 안에서 둘만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막내 선원이구나⁠. 아직도 젖었냐⁠.⁠”

춘심의 웃음이 멎었다⁠.

“⁠엄마⁠. 누구 얘기야⁠? 엄마⁠, 보여⁠?⁠”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고 젖은 남자에게 손짓을 했다⁠. 이리 오라는 손짓이었다⁠. 젖은 남자가 문틀에서 떨어져 휠체어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었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져 어머니의 털신 위로 번졌다⁠. 털신은 젖지 않았다⁠. 깜이 귀에만 물소리가 들렸다⁠.

*

춘심이 깜이를 대학원생에게 맡기며 복도에서 잠깐 바람을 쐬라고 했다⁠. 요양보호사가 고양이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기 때문이다⁠. 대학원생은 이동장을 안고 복도 끝 창가로 갔다⁠. 전화기가 울렸다⁠. 대학원생이 화면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네⁠, 교수님⁠.⁠”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버스에서 들은 관광객 말소리보다 알아듣기 쉬웠다⁠. 낮고 느리고⁠, 끝이 단단했다⁠.

“⁠다음 주 학회 발표 말이야⁠. 자네가 처음 주에 보낸 음성 메모⁠, 그걸 쓰자고⁠. 무당이 손님 신발이며 손톱을 읽는 법을 직접 설명하는 대목⁠. 그게 핵심이야⁠.⁠”

“⁠교수님⁠, 그건 제가 녹음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듣기 전에⁠… 아니요⁠, 그 전에도 허락 안 받은 거예요⁠. 지워 주세요⁠.⁠”

“⁠익명으로 쓴다니까⁠. 무당 이름도 신당 이름도 안 나가⁠.⁠”

“⁠고양이 영상이 퍼져서 다 알아요⁠. 들으면 누군지 바로 알아요⁠.⁠”

“⁠학위 받고 싶으면 자료를 버리지 마⁠.⁠”

전화가 끊겼다⁠. 대학원생이 창틀에 이마를 댔다⁠. 깜이는 이동장 안에서 대학원생의 손목에 코를 댔다⁠. 손목에서 늙은 고양이 냄새와 함께 겁날 때의 식은땀 냄새가 났다⁠. 깜이는 쇠그물 사이로 혀를 내밀어 땀을 핥았다⁠. 대학원생이 깜이를 보고 웃으려다 말았다⁠.

“⁠너한테도 미안하다⁠, 깜아⁠.⁠”

*

방으로 돌아오니 춘심이 보자기를 풀어 길베를 어머니의 무릎 위에 펼쳐 놓고 있었다⁠. 하얀 무명천이 담요를 덮고 휠체어 바퀴까지 흘러내렸다⁠. 어머니가 두 손으로 천을 쓰다듬었다⁠. 손이 천 위를 오가다가 한 군데에서 멈췄다⁠. 손톱으로 천을 쥐었다⁠. 실이 당겨졌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이게 왜 여기 왔냐⁠?⁠”

“⁠엄마 고리짝에 있었어⁠. 엄마⁠, 이거 왜 안 갈랐어⁠?⁠”

어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깜이는 어머니의 눈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다⁠. 흐리게 떠다니던 눈동자가 한 자리에 멈췄다⁠. 춘심의 얼굴에 멈췄다⁠.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딸을 알아보는 눈이었다⁠.

“⁠춘심아⁠.⁠”

“⁠응⁠, 엄마⁠.⁠”

“⁠선주가 굿 전날 밤에 왔다⁠. 봉투를 두 개 들고⁠. 두툼했어⁠. 공수만 바꿔 달라고 했어⁠.⁠”

젖은 남자가 휠체어 앞에서 고개를 들었다⁠. 물이 턱 끝에서 뚝뚝 떨어졌다⁠.

“⁠굿날 밤에 막내 선원이 내 몸에 들어왔다⁠. 다섯이 다 들어왔어⁠. 다들 한목소리로 그랬어⁠. 배를 내보낸 사람이 있다고⁠. 태풍 온다는 걸 알고 내보냈다고⁠.⁠”

어머니의 손이 길베를 꽉 쥐었다⁠.

“⁠나는 입을 열고 다른 말을 했다⁠. 용왕님이 데려가셨다⁠. 사람 원망 말아라⁠. 다들 울었다⁠. 다들 내 말을 믿었어⁠. 사십 년을 믿었지⁠.⁠”

“⁠엄마⁠…⁠.⁠”

“⁠그 봉투로 니 고등학교 등록금을 냈다⁠. 신당 집 전셋돈도 넣었고⁠. 너는 교복 입고 학교 갔고⁠.⁠”

춘심이 휠체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젖은 남자와 나란히였다⁠. 춘심은 젖은 남자를 못 보았지만⁠, 두 사람의 어깨가 거의 닿아 있었다⁠.

“⁠굿 끝에 이걸 가르려고 섰는데 손이 안 움직였다⁠. 거짓말한 입으로는 길이 안 갈라져⁠. 그래서 개켜서 넣었다⁠. 그 뒤로는 큰 굿을 못 했어⁠. 넋이 안 들어왔다⁠.⁠”

창밖에서 해가 졌다⁠. 방 안이 붉어졌다⁠. 깜이는 쇠그물 사이로 어머니의 입을 보았다⁠. 입술이 마르고 갈라져 있었다⁠. 어머니가 숨을 한 번 길게 쉬고 춘심의 손을 잡았다⁠.

“⁠내가 거짓 공수를 했다⁠. 니 등록금 받고⁠.⁠”

젖은 남자가 어머니의 털신 위에 이마를 댔다⁠. 물이 털신 위로 번졌고⁠, 번진 물은 이번에도 털신을 적시지 않았다⁠. 깜이만 젖은 털신을 끝까지 보았다⁠.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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