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38자)

꼭대기 당집

가짜 무당과 신당 고양이 · 문들레

젖은 남자는 밤이 깊으면 방석을 비웠다⁠.

깜이는 이레째 되는 밤에야 젖은 남자가 어디로 가는지 따라가 보기로 했다⁠. 젖은 남자는 대문을 지나지 않고 담장을 지나 골목 계단으로 나갔다⁠. 소리 없이⁠, 한 칸씩⁠, 언덕 위로⁠. 깜이는 담장을 타고 넘어 젖은 남자의 장화 뒤를 일곱 걸음쯤 떨어져 따라갔다⁠. 꼬리를 밟히지 않을 만큼의 거리였다⁠.

신당 위로 올라갈수록 골목이 좁아졌다⁠. 집들은 낮아지고⁠, 지붕은 파란 방수천으로 덮였고⁠, 창문에는 불 대신 신문지가 붙어 있었다⁠. 담벼락마다 붉은 동그라미가 있었다⁠. 깜이는 동그라미 하나 앞에서 멈춰 코를 댔다⁠. 시큼한 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언덕에 덩치 큰 수컷이 돌아다니며 영역 표시를 해 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깜이는 돌아서서 꼬리를 바르르 떨며 동그라미 위에 제 오줌을 뿌렸다⁠. 이제 이 담은 깜이의 것이었다⁠. 깜이는 만족해서 다음 동그라미로 갔다⁠. 동그라미는 끝이 없었다⁠. 오줌은 금방 떨어졌다⁠.

중턱의 부서진 평상 위에서 삼색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삼색이의 영역이었다⁠. 삼색이가 귀를 반쯤 눕혔다⁠. 깜이는 걸음을 멈추고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삼색이가 한참 깜이를 보다가 같은 인사를 돌려주었다⁠. 깜이가 평상에 올라 볼을 비비자 삼색이는 피하지 않았다⁠. 삼색이가 먼저 평상에서 내려가 앞장섰다⁠.

꼭대기에는 늙은 회화나무가 있었다⁠. 가지가 바다 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나무 아래 작은 기와집이 앉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신령을 모시는 당집이었다⁠. 당집 앞 돌계단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멀리 항구의 크레인이 붉은 불을 깜박였고⁠, 북성포구 쪽 갯벌이 달빛에 번들거렸다⁠.

당집 계단에 젖은 남자가 다섯 앉아 있었다⁠.

다들 비닐 앞치마를 입고 고무장화를 신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바다를 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졌고⁠, 떨어진 물은 돌계단에 닿기 전에 없어졌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깜이의 수염이 한꺼번에 뒤로 젖혀졌다⁠. 공기가 우물 바닥처럼 찼다⁠. 삼색이는 회화나무 뒤에 몸을 반쯤 숨기고 꼬리를 감았다⁠. 삼색이도 보는 고양이였다⁠. 언덕 고양이들은 이 계단에 오래 앉지 않는다는 것을 깜이는 삼색이의 꼬리로 알았다⁠.

신당에서 온 젖은 남자는 계단에 앉지 않았다⁠. 당집 옆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 낮은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대문 옆에 새우젓 독이 여럿 놓여 있었다⁠. 독 냄새가 골목을 꽉 채웠다⁠. 젖은 남자는 독 사이에 앉아 대문만 보고 있었다⁠.

대문이 삐걱 열렸다⁠. 수건을 쓴 할머니가 밥그릇 하나와 종지 하나를 들고 나왔다⁠. 깜이를 신당에서 노려보았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젖은 남자의 몸을 지나 당집 계단으로 걸어가⁠, 맨 아래 칸에 밥그릇과 종지를 내려놓았다⁠. 종지에 새우젓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는 손을 모으고 바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바람이 차요⁠. 밥 식기 전에 자셔요⁠.⁠”

할머니가 돌아서자 깜이는 계단으로 내려가 종지에 코를 박았다⁠. 짰다⁠. 짜고 좋았다⁠. 할머니가 발소리를 듣고 돌아보았다⁠.

“⁠아이고⁠, 이놈⁠. 옥선녀 신당 검은 놈이구나⁠. 니가 먹으면 우리 영감이 굶어⁠.⁠”

할머니는 깜이를 쫓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가더니 종지를 하나 더 들고 나와 깜이 앞에 놓았다⁠.

“⁠이건 니 거다⁠. 그건 영감 거고⁠.⁠”

깜이는 제 종지를 핥았다⁠. 젖은 남자가 독 사이에서 할머니의 등을 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대문을 닫을 때까지 보고 있었다⁠.

*

이튿날 낮⁠, 깜이는 대학원생 품에 안긴 이동장 안에서 같은 계단을 올랐다⁠. 이동장 앞면의 쇠그물 사이로 골목이 흔들렸다⁠. 앞에는 조합장이⁠, 옆에는 무복 대신 평상복을 입은 춘심이 걸었다⁠. 조합장은 굿 자리를 미리 보러 가자고 했다⁠. 고양이도 데려오라고 했다⁠.

“⁠영물이 당집 앞에서 얌전히 있는지만 보죠⁠.⁠”

당집 앞 공터에 노인들이 하나둘 나와 있었다⁠. 조합장이 서류 가방에서 커다란 그림을 꺼내 회화나무 둥치에 기대 세웠다⁠. 언덕 아래에 들어설 높은 아파트 그림이었다⁠.

“⁠어르신들⁠, 지난겨울 아랫집 할아버지 일 다 아시잖습니까⁠. 보일러 터진 방에서 혼자 계시다 그렇게 되셨어요⁠. 저 아파트로 가시면 겨울에 반팔 입고 사십니다⁠. 임대료는 조합이 반을 댑니다⁠.⁠”

노인 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하나가 손을 들었다⁠.

“⁠나는 갈란다⁠. 우리 집사람 무릎으론 이 계단 더 못 내려가⁠.⁠”

“⁠감사합니다⁠, 어르신⁠.⁠”

조합장이 고개를 숙였다⁠. 노인들 뒤에서 수건 쓴 할머니가 나섰다⁠. 할머니는 조합장 바로 앞까지 걸어가 섰다⁠. 조합장보다 머리 하나가 작았다⁠.

“⁠우리 영감 넋이 아직 바다에 있는데⁠, 나더러 어딜 가라고⁠?⁠”

“⁠어르신⁠, 그 일은 마흔 해 전 일입니다⁠.⁠”

“⁠네 아비가 배를 내보낸 일이지⁠.⁠”

공터가 조용해졌다⁠. 조합장의 턱이 굳었다⁠.

“⁠아버지 일은 아버지 일입니다⁠. 저는 이 언덕 사람들 따뜻한 데서 겨울 나게 해 드리려는 겁니다⁠.⁠”

“⁠따뜻한 데서 우리 영감 제사는 누가 지내⁠.⁠”

“⁠위령굿을 크게 해 드린다니까요⁠. 옥선녀 신당에서⁠.⁠”

조합장이 춘심을 가리켰다⁠. 노인들의 눈이 한꺼번에 춘심에게 몰렸다⁠. 춘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깜이는 쇠그물 사이로 당집 계단을 보고 있었다⁠. 젖은 남자 다섯이 낮에도 앉아 있었다⁠. 조합장이 할머니에게 목소리를 높이자 다섯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바다를 보던 얼굴들이 조합장을 향했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깜이 귀에만 빗소리처럼 커졌다⁠.

깜이는 이동장 안에서 털을 있는 대로 부풀렸다⁠. 이동장이 꽉 찼다⁠. 깜이는 길게 울었다⁠. 쇠그물이 덜그럭거렸고⁠, 대학원생의 팔에서 이동장이 들썩였다⁠. 노인들이 뒤로 물러섰다⁠. 할머니만 물러서지 않았다⁠.

“⁠봐라⁠. 영물이 운다⁠.⁠”

조합장이 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마 선생님⁠. 굿 날까지 고양이 입 다물게 하십시오⁠. 아니면 고양이 없이 공수를 더 세게 하시든가⁠.⁠”

*

조합장이 내려간 뒤⁠, 대학원생은 이동장을 당집 마루에 내려놓고 할머니 곁에 앉았다⁠. 녹음기는 꺼내지 않았다⁠. 할머니는 대학원생이 묻기도 전에 이야기를 꺼냈다⁠.

“⁠마흔 해 전 가을이야⁠. 새우잡이 배가 나갔어⁠. 태풍이 온다고 라디오에서 그러는데 선주가 내보냈어⁠. 새우 철이 끝나 간다고⁠. 우리 영감이 막내로 탔지⁠. 스물여덟이었어⁠. 다섯이 나가서 다섯이 안 왔어⁠.⁠”

“⁠선주가 조합장님 아버지세요⁠?⁠”

“⁠그 집 아들이 저렇게 컸지⁠. 그때는 배 위에서 뛰어다니던 꼬마였어⁠.⁠”

할머니가 바다를 보았다⁠.

“⁠옥선녀 신당이 진오귀굿을 했어⁠. 죽은 넋을 저승으로 보내는 굿⁠. 선주가 굿값을 다 댔지⁠. 옥선녀 신당 만신이 공수를 내렸어⁠. 용왕님이 데려가셨다⁠, 사람 원망 말아라⁠. 다들 그 말 믿고 울고 말았어⁠. 송사도 안 했어⁠. 선주는 보험금 받아서 언덕 아래 땅을 샀고⁠.⁠”

깜이는 이동장 쇠그물에 코를 붙였다⁠. 젖은 남자가 당집 마루 끝에 와 앉아 있었다⁠. 할머니의 등 바로 뒤였다⁠.

“⁠그 뒤로 영감이 꿈에 와⁠. 젖어서 와⁠. 굿을 했는데 왜 아직 젖었느냐고⁠, 내가 물어도 대답을 안 해⁠.⁠”

*

내려오는 계단에서 춘심과 대학원생은 한 번도 나란히 걷지 않았다⁠. 대학원생이 이동장을 안고 세 칸 뒤에서 따라왔다⁠. 중턱 평상 앞에서 대학원생이 멈췄다⁠.

“⁠선생님⁠, 그 굿 하시면 안 돼요⁠.⁠”

춘심은 돌아보지 않았다⁠.

“⁠굿값은 받았어⁠. 반은 벌써 요양원에 들어갔고⁠.⁠”

“⁠할머니 얘기 들으셨잖아요⁠. 어머님이 마흔 해 전에 하신 굿이랑 똑같은 굿이에요⁠.⁠”

“⁠그래서 뭐⁠. 똑같이 안 하면 엄마는 어디 가⁠. 할머니가 우리 엄마 받아 준대⁠?⁠”

대학원생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동장이 기울었고⁠, 깜이는 쇠그물에 볼이 눌렸다⁠. 대학원생의 전화기가 울렸다⁠. 화면에 알림 글자가 떴다⁠. 「⁠노후 주거지 정비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대학원생이 화면을 춘심에게 내밀었다⁠.

“⁠이것 때문에 조합장님이 서두르시는 거예요⁠. 법이 바뀌면 동의율만 넘기면 돼요⁠. 꼭대기 열한 집이 마지막이에요⁠.⁠”

“⁠그럼 더 빨리 끝나겠네⁠.⁠”

춘심이 계단을 내려갔다⁠. 차이나타운 골목 어귀의 상인회 건물에는 붉은 현수막이 새로 펄럭였다⁠. 「⁠언덕 정비⁠, 차이나타운 관광의 새 문을 엽니다⁠」 관광객들이 현수막 아래에서 짜장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깜이는 이동장 안에서 짜장 냄새를 맡으며 혀를 날름거렸다⁠. 대학원생이 이동장을 고쳐 안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너는 배고프구나⁠. 다행이다⁠, 너라도⁠.⁠”

*

밤이 깊어 부엌에서 춘심은 소주를 반 병 비웠다⁠. 대학원생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깜이는 식탁 밑에서 둘의 발을 번갈아 보았다⁠. 춘심의 발가락은 까딱거리지 않았다⁠. 사냥하지 않는 발이었다⁠.

“⁠엄마는 보는 사람이었어⁠. 나는 보는 척하는 사람이고⁠.⁠”

대학원생이 숨을 들이켰다⁠.

“⁠신기가⁠… 없으세요⁠?⁠”

“⁠한 번도 없었어⁠. 엄마가 쓰러지고 나서 이 집 문 닫으면 엄마 요양원비가 안 나와⁠. 그래서 엄마 무복 입고 엄마 방울 흔들었어⁠. 손님 얼굴 읽는 건 엄마 옆에서 십 년 구경하다 배웠고⁠.⁠”

“⁠그래도 손님들은 나아서 가잖아요⁠.⁠”

“⁠나아서 가는 게 아니라 울고 가는 거야⁠. 울면 좀 낫지⁠.⁠”

대학원생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장구를 끌어당겼다⁠. 덩⁠, 기덕⁠, 쿵⁠. 여전히 박자가 엉망이었다⁠. 춘심이 웃음을 터뜨리다가 소주를 코로 뿜었다⁠. 깜이가 식탁 밑에서 튀어나와 장구채에 매달렸다⁠. 장구채가 날아가 찬장 문에 맞았다⁠. 춘심은 웃다가 눈가를 닦았다⁠.

*

자정 무렵 젖은 남자가 돌아왔다⁠. 방석으로 가지 않았다⁠. 신당 안쪽 끝의 뒷방 문 앞에 섰다가⁠,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깜이는 문에 몸을 붙였다⁠. 나무 문짝은 차가웠고⁠, 틈이 없었다⁠. 깜이는 앞발로 문을 긁었다⁠. 박박⁠, 박박⁠. 부엌에서 의자 밀리는 소리가 났다⁠.

“⁠깜이⁠, 거기 엄마 방이야⁠. 안 돼⁠.⁠”

깜이는 멈추지 않았다⁠. 박박⁠, 박박⁠. 대학원생이 먼저 와서 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선생님⁠, 이 안에 뭐가 있어요⁠?⁠”

“⁠엄마 무구⁠. 엄마가 쓰던 굿 물건들⁠. 엄마 쓰러지고 아무도 안 열었어⁠.⁠”

춘심이 한참 서 있다가 안방으로 가서 반짇고리를 들고 나왔다⁠. 실패 밑에서 녹슨 열쇠가 나왔다⁠. 자물쇠가 끼익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먼지 냄새가 쏟아졌다⁠. 향 냄새가 오래 갇혀 쉰 냄새였다⁠. 대학원생이 전화기 불을 켰다⁠. 벽의 못마다 무복이 한 벌씩 늘어져 있었고⁠, 선반에 방울과 부채와 놋거울이 놓여 있었다⁠. 무당이 굿에서 신령의 얼굴로 모시는 거울⁠, 명두였다⁠. 방 한가운데 대나무 고리짝이 하나 있었다⁠.

젖은 남자가 고리짝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깜이는 고리짝으로 가서 뚜껑 틈에 코를 넣고 머리로 밀었다⁠. 뚜껑이 들썩 열렸다⁠. 안에 하얀 무명천이 길게 개켜져 있었다⁠. 대학원생이 천 끝을 잡아 펼쳤다⁠. 펼쳐도 펼쳐도 끝이 나오지 않았다⁠. 열 걸음은 될 만큼 긴 천이었다⁠.

“⁠이거 길베예요⁠.⁠”

“⁠길베⁠?⁠”

“⁠넋이 저승으로 건너가는 길이요⁠. 진오귀굿 끝에 무당이 이 천을 몸으로 갈라서 길을 내 줘요⁠. 갈라야 넋이 건너가요⁠.⁠”

대학원생이 천 끝까지 손으로 더듬었다⁠. 실 한 올 끊긴 데가 없었다⁠.

“⁠굿 끝나면 가르는 천인데⁠, 안 갈랐어요⁠.⁠”

춘심이 천 앞에 주저앉았다⁠. 젖은 남자가 천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깜이만 보았다⁠.

“⁠엄마가⁠… 길을 안 열어 줬다고⁠?⁠”

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꼭대기 당집 · 가짜 무당과 신당 고양이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