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5,501자)

영물

가짜 무당과 신당 고양이 · 문들레

아침에 눈을 뜨자 계단이 시끄러웠다⁠.

깜이는 담장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신당 대문에서 시작한 사람 줄이 돌계단을 타고 구불구불 내려가 차이나타운 골목 어귀까지 이어져 있었다⁠. 공갈빵을 든 사람⁠, 커피를 든 사람⁠, 전화기를 머리 위로 든 사람⁠. 중국말과 영어와 일본말이 계단 위에서 뒤섞였다⁠. 맨 앞의 여자가 깜이를 보고 손가락질을 했다⁠.

“⁠저기 있다⁠! 귀신 보는 고양이⁠!⁠”

계단 전체가 한꺼번에 고개를 들었다⁠. 수십 개의 전화기가 깜이를 향했다⁠. 깜이는 담장에서 그대로 굳었다⁠. 고양이에게 사람 눈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은 개 떼가 몰려오는 것과 비슷하다⁠. 깜이는 꼬리를 몸에 바짝 붙이고 담장에서 내려와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마루 위에서 대학원생이 노트북을 끌어안고 있었다⁠.

“⁠선생님⁠, 조회수가 이백만이에요⁠. 밤새 이백만이요⁠.⁠”

“⁠이백만이 뭔데⁠. 돈이야⁠?⁠”

“⁠사람이요⁠. 이백만 명이 깜이를 봤어요⁠.⁠”

어제 대학원생이 신당 계정에 올린 영상이었다⁠. 털조끼 남자가 쓰러지고⁠, 깜이가 미닫이를 밀고 뛰어들어 남자의 등을 넘고⁠, 털을 부풀린 채 빈 문지방을 노려보는 장면⁠. 남자는 얼굴을 가리고 올려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다⁠. 영상 아래에 대학원생이 한 줄을 붙였다⁠. 「⁠신당 고양이가 무엇을 보았을까요⁠」

춘심은 노트북 화면을 한참 보다가 대문 밖 줄을 보았다⁠. 춘심의 목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아가씨⁠. 저 사람들 다 손님이야⁠?⁠”

“⁠구경꾼이 반은 넘어요⁠.⁠”

“⁠구경꾼도 복채는 내⁠.⁠”

*

춘심이 생각해 낸 것은 ‘⁠깜이 점⁠’이었다⁠.

손님 여섯을 한 번에 들여 신당 방에 줄지어 앉힌다⁠. 깜이를 방 한가운데에 풀어 놓는다⁠. 깜이가 앞에 와서 앉은 손님은 액운이 붙은 손님이 된다⁠. 액운이 붙은 손님은 따로 남아 굿을 받는다⁠. 굿값은 복채의 열 배다⁠.

첫판은 엉망이었다⁠. 깜이는 방 한가운데에서 하품을 한 번 하고⁠, 앞발을 핥고⁠, 줄 끝에 앉은 남자 앞으로 곧장 걸어가 털썩 앉았다⁠. 남자의 점퍼 주머니에서 구운 오징어 냄새가 났다⁠.

“⁠액운이 있습니다⁠!⁠”

춘심이 방울을 흔들며 외쳤다⁠. 남자가 겁에 질린 얼굴로 주머니를 뒤졌고⁠, 오징어 다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깜이가 오징어 다리를 물고 제단 밑으로 사라졌다⁠. 줄 선 손님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남자도 웃었다⁠. 남자는 굿 대신 웃음값이라며 만 원을 내고 갔다⁠.

두 번째 판부터 춘심은 요령을 바꾸었다⁠. 깜이는 보았다⁠. 손님들이 신발을 벗고 들어올 때⁠, 춘심이 무복 소매로 손님 하나의 외투 자락을 슬쩍 쓸었다⁠. 소매 안쪽에 작은 깡통이 숨겨져 있었다⁠. 북어를 곱게 빻은 가루였다⁠. 춘심은 언제나 시계가 무겁고 구두가 반짝이는 손님을 골랐다⁠.

깜이는 외투 자락 앞에 앉았다⁠. 앉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북어 냄새는 북어 냄새였다⁠.

“⁠액운이 있습니다⁠.⁠”

방울이 울렸다⁠. 시계 무거운 손님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굿을 청했다⁠. 과자 깡통이 다시 무거워졌다⁠. 밤에 춘심은 요양원에 한 달 치를 보냈다⁠. 깜이 밥그릇에는 처음 보는 금빛 깡통의 참치가 담겼다⁠. 기름이 반지르르했다⁠. 깜이는 사냥감이 제 발로 계단에 줄을 서는 것을 처음 보았다⁠. 사냥하지 않아도 참치가 나오는 날이었다⁠.

이튿날에는 깃발을 든 안내원이 중국인 단체 관광객 스무 명을 데리고 올라왔다⁠. 안내원이 춘심에게 한 번에 봐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춘심은 스무 명을 마당에 세 줄로 세우고 깜이를 감나무 밑에 내려놓았다⁠.

“⁠마오⁠! 마오⁠!⁠”

관광객들이 깜이를 부르며 손뼉을 쳤다⁠. 깜이는 마오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스무 사람이 한꺼번에 같은 소리를 내자 마오가 저를 부르는 소리라는 것은 알았다⁠. 맨 뒷줄의 할머니 관광객이 주머니에서 말린 생선 과자를 꺼내 흔들었다⁠. 깜이는 세 줄을 곧장 가로질러 할머니 앞에 앉았다⁠.

“⁠액운이 있습니다⁠!⁠”

안내원이 춘심의 말을 중국말로 옮기자 할머니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안내원이 다시 옮겼다⁠. 할머니는 올해 일흔이고⁠, 액운이 붙어도 좋으니 고양이랑 사진 한 장만 찍게 해 달라고 했다⁠. 춘심은 사진값을 받았다⁠. 깜이는 생선 과자를 받았다⁠. 둘 다 손해 보지 않는 장사였다⁠.

*

밤에 대학원생이 열화상 카메라를 들고 춘심을 신당 방으로 불렀다⁠.

“⁠선생님⁠, 이거 보세요⁠. 방석이요⁠.⁠”

화면 속 제단 밑이 파랬다⁠. 방석 위에 무릎을 끌어안은 파란 덩어리가 있었다⁠. 춘심은 화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카메라가 고장 났네⁠. 방석이 습해서 그래⁠. 엄마가 쓰던 방석이야⁠. 바닥이 차⁠.⁠”

“⁠그럼 앉아 보세요⁠.⁠”

춘심이 콧방귀를 뀌고 제단 천을 걷어 올렸다⁠. 무릎을 짚고 엉덩이를 방석에 내렸다⁠. 젖은 남자의 무릎 위였다⁠. 깜이는 문지방에서 꼬리를 바짝 세웠다⁠.

“⁠…엉덩이가 왜 이렇게 시려⁠.⁠”

춘심이 벌떡 일어나 엉덩이를 두 손으로 문질렀다⁠. 무복 치마 뒷자락만 축축했다⁠. 대학원생이 화면을 내밀었다⁠. 파란 덩어리가 방석 위에 그대로 있었고⁠, 방금 춘심이 앉았던 자리의 장판만 붉게 데워져 있었다⁠.

“⁠보일러 고쳐야겠다⁠.⁠”

춘심은 방을 나가며 방석을 한 번 돌아보았다⁠. 깜이는 춘심의 손끝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엉덩이를 문지르던 손이었다⁠. 춘심은 밤새 부엌 불을 끄지 않았다⁠.

*

사흘째 되는 날 대학원생이 춘심의 소매를 잡았다⁠. 손님들이 다 내려간 저녁이었다⁠. 대학원생이 소매 안쪽에서 깡통을 꺼내 마루 위에 내려놓았다⁠. 북어 가루가 조금 쏟아졌다⁠. 깜이가 마루 밑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이거⁠, 고양이로 사기 치시는 거잖아요⁠.⁠”

“⁠사기는⁠. 깜이가 앉고 싶은 데 앉는 거지⁠.⁠”

“⁠앉고 싶게 만드시잖아요⁠. 저 오늘 그 아저씨 우는 거 봤어요⁠. 집 팔아서 하는 장사 망했다고 울었어요⁠. 그 사람한테 굿값 받으셨어요⁠.⁠”

“⁠그 양반⁠, 굿 받고 웃으면서 갔어⁠.⁠”

“⁠북어 가루 때문에 겁먹고 낸 돈이잖아요⁠.⁠”

춘심이 마루에 털썩 앉았다⁠. 무복 치마가 넓게 퍼졌다⁠. 오색 소매에서 북어 냄새가 났다⁠.

“⁠엄마 요양원비가 석 달 밀렸었어⁠. 지금 두 달이야⁠. 이달 말까지 안 채우면 엄마는 퇴소야⁠. 아가씨 논문이 우리 엄마 요양원비 내 줄 거야⁠?⁠”

대학원생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그럼 입 다물고 장구 연습이나 해⁠. 굿에 장구 소리가 스피커에서 나는 무당집은 우리밖에 없어⁠.⁠”

대학원생은 깡통을 춘심 앞에 남겨 두고 일어섰다⁠. 장구를 끌어안고 마당 구석으로 갔다⁠. 덩⁠, 기덕⁠, 쿵⁠. 박자가 하나도 맞지 않았다⁠. 깜이는 장구채가 움직일 때마다 앞발로 채 끝을 쳤다⁠. 대학원생이 웃었다⁠. 웃으면서도 장구를 놓지 않았다⁠.

마루에서 춘심이 깡통을 들고 오래 내려다보다가⁠, 뚜껑을 닫아 무복 소매 안에 도로 넣었다⁠.

*

진짜 손님도 왔다⁠. 줄 가운데에 서 있던 젊은 여자의 등에는 비에 젖은 강아지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강아지는 여자의 운동화 뒤축을 따라 꼬리를 흔들었다⁠. 꼬리를 흔드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깜이는 대문 앞으로 뛰어나가 털을 부풀리고 하악 소리를 냈다⁠. 강아지가 여자 다리 뒤로 숨었다⁠. 여자가 울음을 터뜨리고 계단을 도로 내려갔다⁠.

“⁠깜이가 액운을 쫓았네⁠!⁠”

줄에서 누군가 외쳤다⁠. 다음 사람부터는 부적값이 올랐다⁠. 대학원생은 마당 구석에서 장구채를 든 채 내려가는 여자의 등을 보았다⁠. 깜이는 대학원생의 무릎에 머리를 문질렀다⁠. 대학원생에게서 늙은 고양이 냄새가 났다⁠. 늙은 고양이가 지금은 없다는 것을 깜이는 냄새가 오래되었다는 것으로 알았다⁠.

*

닷새째 오후⁠, 검은 세단이 계단 아래 멈췄다⁠. 손님 줄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조합장이 올라왔다⁠. 조합장의 등에는 젖은 남자가 업혀 있지 않았다⁠. 젖은 남자는 여전히 제단 밑 방석 위에 있었다⁠.

조합장이 대문을 넘자 젖은 남자가 방석에서 일어났다⁠. 신당 방을 가로질러⁠,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조합장을 향해 걸어갔다⁠. 조합장 등에 다시 업혔다⁠. 두 팔을 조합장의 목에 감고⁠, 턱을 어깨에 얹었다⁠. 조합장이 목덜미를 쓸었다⁠.

“⁠가을이 벌써 춥네요⁠.⁠”

깜이는 문지방에서 조합장의 등을 향해 털을 부풀렸다⁠. 대문 밖에 줄 선 손님들이 부푼 깜이를 보았다⁠. 누군가 전화기를 들었다⁠. 수군거림이 계단을 따라 아래로 번져 갔다⁠.

“⁠고양이가 저 사람한테 화났어⁠.⁠”

“⁠조합장이래⁠. 저 사람한테 뭐가 붙었나 봐⁠.⁠”

조합장의 귀가 붉어졌다⁠. 조합장은 신당 방문을 닫고 춘심 앞에 앉았다⁠.

“⁠구경거리가 되셨더군요⁠. 잘됐습니다⁠. 영물 고양이가 있는 신당이면 노인들도 더 믿겠지요⁠.⁠”

“⁠무슨 말씀이세요⁠?⁠”

“⁠고양이도 굿판에 데려오시죠⁠. 꼭대기 당집 앞에서 저 고양이가 얌전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됩니다⁠. 영물이 아무것도 안 보고 얌전하다⁠, 언덕은 깨끗하다⁠. 공수 한마디보다 그게 더 셉니다⁠.⁠”

조합장이 봉투를 두 개 내려놓았다⁠.

“⁠천입니다⁠. 월세는 없던 일로 하고요⁠.⁠”

“⁠고양이가 얌전하지 않으면요⁠.⁠”

“⁠그러니까 잘 단속하셔야죠⁠.⁠”

“⁠깜이는 짐승이에요⁠. 짐승이 뭘 보고 뭘 안 볼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무당이 모르면 누가 압니까⁠?⁠”

조합장이 처음으로 웃었다⁠. 웃는데 눈 밑 그늘은 그대로였다⁠. 춘심은 대답 대신 조합장의 손을 보았다⁠. 엄지손톱이 살까지 뜯겨 나가 있었다⁠. 지난주보다 더 뜯겨 있었다⁠.

“⁠요새도 물소리 들리세요⁠?⁠”

조합장의 웃음이 멎었다⁠.

“⁠그러니까 굿을 하자는 겁니다⁠. 언덕 비우고⁠, 굿 한 번 크게 하고⁠, 다 끝내자는 거예요⁠. 노인들은 따뜻한 데로 가고⁠, 저는 잠 좀 자고⁠. 누가 손해를 봅니까⁠?⁠”

방문 밖에서 장구 소리가 한 번 쿵 났다⁠. 대학원생이 문틈에 서 있었다⁠. 장구채를 쥔 손이 하얬다⁠. 춘심이 대학원생을 돌아보지 않고 봉투 두 개를 무릎 앞으로 끌어당겼다⁠. 깜이는 봉투에서 차 방향제 냄새와 함께 아주 옅게 바닷물 냄새를 맡았다⁠. 젖은 남자의 손이 봉투 위에 얹혀 있었다⁠.

조합장이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줄 선 손님들의 전화기가 일제히 조합장을 향했다⁠. 조합장은 고개를 숙이고 계단을 내려갔다⁠. 등에 업힌 젖은 남자가 깜이를 돌아보았다⁠. 계단 중간에서 조합장과 엇갈려 올라오는 사람이 있었다⁠.

*

작고 마른 할머니였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손등이 소금기에 쩍쩍 갈라져 있었다⁠. 할머니가 조합장 옆을 스칠 때⁠, 업힌 젖은 남자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젖은 손 하나가 조합장의 목을 놓고 할머니의 어깨 쪽으로 뻗었다⁠. 손끝이 할머니의 수건에 닿기 직전에 조합장이 계단을 다 내려갔고⁠, 젖은 남자도 조합장에게 끌려 멀어졌다⁠.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 올라왔다⁠.

깜이는 할머니가 대문을 넘을 때 코를 들었다⁠. 새우젓 냄새가 진하게 났다⁠. 젖은 남자에게서 아주 옅게 나던 냄새와 같았다⁠. 깜이는 할머니의 발목에 코를 대고 한참 맡았다⁠. 같은 냄새였다⁠. 하나는 짙고 하나는 옅을 뿐이었다⁠.

“⁠옥선녀 신당 딸이 너냐⁠.⁠”

할머니가 손님 줄을 밀치고 춘심 앞으로 왔다⁠. 춘심이 무복 차림으로 일어섰다⁠.

“⁠어르신⁠, 줄 서셔야⁠…⁠.⁠”

“⁠선주 집 아들 굿을 네가 맡는다며⁠. 꼭대기에 다 소문났다⁠.⁠”

“⁠위령굿이에요⁠, 어르신⁠. 언덕 넋들 달래 드리는⁠.⁠”

할머니가 춘심의 무복 소매를 움켜쥐었다⁠. 오색 소매가 할머니 주먹 안에서 구겨졌고⁠, 소매 속 깡통에서 북어 가루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깜이는 가루를 핥지 않았다⁠. 할머니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네 어미도 마흔 해 전에 그 집 굿을 했다⁠. 그 굿 받고도 우리 영감 넋은 아직 못 건져졌어⁠. 너도 그럴 거냐⁠?⁠”

3화는 어땠나요?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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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만더2026.10.31· 3화

    깜이 점을 북어 가루로 짜는 춘심, 나쁜데 미워할 수가 없어요.

    • 문들레작가2026.10.31

      춘심도 먹고살 길을 찾는 거예요. 새우젓 할머니가 내려오면서 판이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