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422자)

신딸

가짜 무당과 신당 고양이 · 문들레

젖은 남자는 아침이 되어도 방석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깜이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보았다⁠. 먼저 방석 끝에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젖은 남자의 무릎이 있는 자리로 엉덩이가 그대로 들어갔고⁠, 얼음물에 앉은 것처럼 꼬리뼈가 시렸다⁠. 깜이는 비명을 삼키고 튀어나왔다⁠. 다음은 하악이었다⁠. 귀를 뒤로 붙이고 이빨을 드러내자 젖은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물러서지는 않았다⁠. 고개만 돌려 잠긴 뒷방 문을 다시 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볼을 비볐다⁠. 냄새를 묻혀 놓으면 남의 자리도 제 자리가 된다⁠. 볼이 젖은 남자의 어깨를 지나 허공을 문질렀다⁠. 수염 끝이 축축해졌다⁠. 묻은 냄새는 하나도 없었다⁠.

깜이는 포기하고 신당 구석의 장구 위로 올라갔다⁠. 춘심이 칠 줄 몰라 먼지만 쌓인 장구였다⁠. 가죽이 둥그렇게 팽팽해서 배를 깔기 좋았다⁠. 가죽 위에서 몸을 말자 큰 몸뚱이 아래로 새까만 긴 털이 장구 허리까지 흘러내렸다⁠.

*

열 시쯤 계단 아래에서 바퀴 소리가 올라왔다⁠. 덜컹⁠, 덜컹⁠. 캐리어 바퀴가 돌계단 모서리에 하나씩 부딪히는 소리였다⁠.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여자가 캐리어를 끌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등에는 커다란 배낭을 멨고⁠, 안경알에 김이 서려 있었다⁠.

여자에게서는 오래된 종이 먼지 냄새가 났다⁠. 먼지 냄새 아래에 아주 옅게⁠, 늙은 고양이 냄새가 있었다⁠. 털갈이를 몇 번 거친 털이 옷 솔기 깊이 박혀 남은 냄새였다⁠. 깜이는 장구에서 고개를 들었다⁠.

“⁠메일 드렸던 대학원생이에요⁠. 민속학 박사과정이요⁠. 도시 무속으로 논문을 쓰는데⁠, 신딸로 들어가서 곁에서 배우고 싶다고⁠…⁠.⁠”

“⁠답장 안 했잖아요⁠.⁠”

“⁠안 된다고도 안 하셨잖아요⁠.⁠”

춘심은 마루에서 김치를 썰다 말고 칼을 든 채 여자를 보았다⁠.

“⁠신딸은 내림굿을 받아야 신딸이에요⁠. 신이 내려서 어머니 무당 밑으로 들어가는 거라고요⁠. 논문 쓰러 온 사람이 무슨 신딸이야⁠.⁠”

“⁠신내림 없이 배워서 하는 무당도 있잖아요⁠. 학습무라고요⁠. 저는 그렇게라도 곁에서 보고 싶어요⁠. 월급은 안 주셔도 돼요⁠. 밥은 제가 할게요⁠. 신당 계정도 제가 관리해 드리고요⁠. 요즘은 다 그걸로 손님 받으세요⁠.⁠”

춘심이 칼을 내려놓았다⁠. 깜이는 춘심이 손님을 읽을 때와 똑같은 눈으로 여자를 읽는 것을 보았다⁠. 캐리어 바퀴의 닳은 고무⁠, 안경테의 테이프⁠, 배낭에 매단 도서관 출입증⁠.

“⁠녹음은⁠.⁠”

“⁠목소리만 받을게요⁠. 얼굴은 안 나가요⁠. 논문에만 쓰고요⁠.⁠”

“⁠녹음하면 나가요⁠. 보이는 대로 눈으로만 봐요⁠.⁠”

“⁠선생님⁠, 그러면 논문이⁠…⁠.⁠”

“⁠밥은 아가씨가 해요⁠. 짜면 나가고⁠.⁠”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마루 앞에 쪼그려 앉아 깜이와 눈높이를 맞추더니⁠,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깜이는 장구 위에서 굳었다⁠. 사람이 고양이 말을 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깜이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춘심이 혀를 찼다⁠.

“⁠고양이한테 윙크하는 신딸은 또 처음 보네⁠.⁠”

*

대학원생이 처음 차린 점심은 고등어조림이었다⁠. 부엌에서 무가 졸아드는 냄새가 나자 깜이는 장구에서 내려와 부엌 문턱에 앉았다⁠. 고양이가 부엌 문턱에 앉으면 일하는 사람을 감독하는 중이다⁠. 대학원생은 감독관에게 고등어 꼬리 한 토막을 바쳤다⁠. 깜이는 꼬리를 물고 마루 밑으로 들어가서 먹었다⁠. 감독관은 원래 뇌물을 받는다⁠.

춘심이 조림 국물을 한 숟갈 떠먹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짜⁠.⁠”

“⁠간장 반만 넣었는데요⁠.⁠”

“⁠그럼 반의반만 넣어⁠. 우리 집은 신령님도 싱겁게 드셔⁠.⁠”

“⁠신령님이 조림도 드세요⁠?⁠”

“⁠드시지⁠. 드시고 나면 깜이가 치우고⁠.⁠”

대학원생이 웃음을 참느라 어깨를 들썩였다⁠. 웃음을 참는 사람에게서는 콧김이 짧게 여러 번 나온다⁠. 깜이는 마루 밑에서 콧김 소리를 세다가 그만두었다⁠. 고등어가 더 중요했다⁠.

밥상을 물릴 무렵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조끼를 입은 젊은 남자가 사과 상자를 안고 서 있었다⁠. 조끼 등판에 붉은 글씨가 박혀 있었다⁠. 「⁠언덕 재개발 조합⁠」

“⁠조합장님이 화요일에 다시 오신답니다⁠. 이건 인사로 드리라고요⁠.⁠”

“⁠인사는 됐고⁠, 가져가요⁠.⁠”

“⁠두고 가라고 하셨는데요⁠.⁠”

젊은 남자는 상자를 마루에 내려놓고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갔다⁠. 깜이는 상자 냄새를 맡았다⁠. 사과와 마분지⁠, 그리고 조합장의 차 방향제⁠. 사람들은 가끔 먹지도 않는 것을 남의 집에 두고 간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 문 앞에 놓는 것과 비슷한데⁠, 사람의 쥐는 먹을 수가 없다⁠. 깜이는 상자 모서리에 뺨을 대고 문질러 조합장 냄새를 제 냄새로 덮었다⁠.

계단 아래 골목 벽에는 새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조합 설립 동의율 칠십팔 퍼센트 — 꼭대기 어르신들의 결단을 기다립니다⁠」 춘심이 현수막을 내려다보며 사과 하나를 꺼내 앞치마에 닦았다⁠.

“⁠사과는 죄가 없지⁠.⁠”

춘심은 사과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대학원생이 상자를 부엌으로 들이며 춘심의 등을 오래 보았다⁠.

*

점심 무렵 손님이 왔다⁠. 쉰쯤 된 남자였다⁠. 손목에 무거운 금속 시계를 찼고⁠, 손으로 뜬 회색 털조끼를 양복 위에 입고 있었다⁠. 조끼만 계절보다 일렀다⁠.

남자 등에 할머니가 붙어 있었다⁠. 작고 굽은 할머니가 남자의 허리춤을 두 손으로 붙잡고⁠, 남자의 걸음에 끌려오듯 따라왔다⁠. 한쪽 팔에 보따리를 끼고 있었다⁠. 할머니에게서도 냄새가 아주 옅었다⁠. 파스 냄새와 탄 누룽지 냄새였다⁠.

깜이는 장구에서 뛰어내려 문지방을 막아섰다⁠. 귀를 눕히고⁠, 털을 부풀리고⁠, 할머니를 향해 하악 소리를 냈다⁠. 남자가 멈춰 섰다⁠.

“⁠고양이가 왜 이래요⁠?⁠”

“⁠아유⁠, 낯을 가려서요⁠.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춘심이 깜이를 번쩍 들어 부엌에 넣고 미닫이를 닫았다⁠. 깜이는 미닫이 유리에 코를 붙였다⁠. 유리 너머로 대학원생이 배낭에서 검은 상자 하나를 꺼내 무릎 위에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녹음기가 아니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이 달려 있었다⁠.

춘심은 무복 소매를 걷고 전화기를 블루투스 스피커에 이었다⁠. 장구와 징 소리가 녹음된 굿 음악이 방을 채웠다⁠. 춘심은 장구를 칠 줄 몰랐다⁠. 대신 방울을 흔들었다⁠. 흔드는 솜씨만은 이 동네 누구보다 좋았다⁠.

“⁠어머니 보내 드렸지⁠. 요양원에서⁠. 혼자 가셨지⁠.⁠”

남자가 무릎을 꿇은 채 어깨를 떨었다⁠. 할머니가 남자의 허리춤에서 손을 떼고 춘심 쪽으로 기어 왔다⁠. 촛불 두 개가 동시에 옆으로 누웠다⁠. 방울 소리가 커질수록 할머니의 손이 춘심의 무복 자락을 타고 올라갔다⁠. 춘심의 목덜미에서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이 유리 너머로도 보였다⁠.

스피커가 뚝 끊겼다⁠. 남자의 입술이 파래졌다⁠. 남자가 옆으로 쓰러졌다⁠.

깜이는 미닫이 틈에 머리를 박았다⁠. 이 문은 위쪽이 조금 헐거워서⁠, 머리를 비스듬히 넣고 어깨로 밀면 열린다⁠. 춘심은 헐거운 문을 모른다⁠. 깜이는 어깨로 문을 밀고 방으로 뛰어들어⁠, 쓰러진 남자의 등을 밟고 할머니의 팔 위로 몸을 날렸다⁠.

차가웠다⁠. 털 한 올 한 올 사이로 얼음물이 스며드는 것처럼⁠. 깜이는 할머니를 지나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돌아서서 털을 부풀렸다⁠. 할머니가 춘심의 무복 자락을 놓았다⁠. 깜이를 한 번 보고⁠, 보따리를 끌어안고⁠, 문지방을 넘어 마당으로 나갔다⁠. 감나무 밑에서 잠깐 머뭇거리더니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남자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스피커가 저절로 다시 이어졌는지 징이 한 번 울렸다⁠.

춘심은 방울을 쥔 채 잠깐 굳어 있다가⁠, 남자의 털조끼에 시선을 붙였다⁠. 앞섶의 단추 하나가 다른 단추보다 컸고⁠, 실이 두 겹으로 박혀 있었다⁠. 눈이 어두운 사람이 뜬 바느질이었다⁠.

“⁠어머니가 원망 안 하신대⁠. 이 조끼 뜨실 때 이미 다 아셨대⁠. 너 밥 굶을까⁠, 그거 하나 걱정이시대⁠.⁠”

남자가 털조끼 앞섶을 쥐고 소리 내어 울었다⁠. 우는 남자에게서는 소금 냄새와 함께⁠, 아까는 없던 따뜻한 땀 냄새가 났다⁠.

*

남자가 떠난 뒤 과자 깡통이 두툼해졌다⁠. 춘심은 깜이를 노려보다가 깡통을 보다가 다시 깜이를 노려보았다⁠.

“⁠너 또 손님 앞에서 그러면 중국집 뒷골목에 내다 버린다⁠.⁠”

깜이는 버린다는 말을 몰랐다⁠. 목소리에 웃음이 반쯤 섞여 있어서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

대학원생이 검은 상자를 든 채 춘심 앞으로 왔다⁠.

“⁠아까 방 온도가 갑자기 떨어졌어요⁠. 카메라에⁠…⁠.⁠”

“⁠보일러가 고장 났어⁠.⁠”

“⁠시월에 보일러를 트셨어요⁠?⁠”

“⁠아가씨⁠, 공수는 어디로 받는 줄 알아요⁠?⁠”

“⁠…어디로 받으시는데요⁠?⁠”

“⁠귀로⁠. 남의 말을 잘 들으면 공수가 와⁠. 아가씨는 말이 많아서 평생 못 받겠다⁠.⁠”

대학원생이 입을 다물었다⁠. 춘심은 무복을 벗어 걸고 전화기를 들었다⁠. 영상 통화였다⁠. 화면에 요양원 창가가 비쳤고⁠, 휠체어에 앉은 마른 노인이 보였다⁠. 춘심의 어머니였다⁠.

“⁠엄마⁠, 나야⁠. 춘심이⁠. 밥 드셨어⁠?⁠”

“⁠…누구세요⁠?⁠”

“⁠딸이요⁠, 딸⁠.⁠”

노인은 한참 화면을 보다가 엉뚱한 것을 물었다⁠.

“⁠깜이 밥 줬냐⁠.⁠”

춘심이 웃음을 터뜨리며 깜이 쪽으로 화면을 돌렸다⁠. 깜이는 화면 속 노인의 눈을 보았다⁠. 노인의 눈이 깜이를 지나 제단 밑으로 갔다⁠. 방석 위로⁠.

“⁠방석에 누가 앉았냐⁠.⁠”

“⁠깜이요⁠. 깜이가 앉아요⁠.⁠”

“⁠깜이 말고⁠.⁠”

전화가 끊겼다⁠. 요양원에서 끊은 전화였다⁠. 춘심은 꺼진 화면을 한참 보다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마루 벽에 붙은 대학원생의 노트북 화면에서는 외국 방송국이 찍은 한국 무당 다큐멘터리가 소리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영어 자막 아래에서 무당이 작두 위에 서 있었다⁠.

*

밤에 깜이는 장구 위에서 자는 척을 했다⁠. 마당에서 대학원생이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기 너머 남자 목소리는 낮고 느렸고⁠, 대학원생의 대답은 점점 짧아졌다⁠.

“⁠네⁠, 교수님⁠. 아직 첫날이라서요⁠. 녹음은 못 하게 하세요⁠. 네⁠? 아니요⁠, 가짜라고 단정하긴 이르고요⁠. 손님들이 실제로 나아져서 가요⁠. 네⁠, 그것도 분석해 볼게요⁠.⁠”

전화를 끊고 대학원생은 감나무에 이마를 대고 한참 서 있었다⁠. 사람이 나무에 이마를 대는 것은 고양이가 벽에 머리를 박는 것과 비슷하다⁠. 어딘가 답답한데 어디를 긁어야 할지 모를 때 그렇게 한다⁠. 감나무 위에서 삼색이가 내려다보다가 언덕 위로 사라졌다⁠.

대학원생이 맨발로 신당 방에 들어왔다⁠. 머리를 풀어 내린 채 장판에 배를 깔고 엎드리더니⁠, 턱을 바닥에 붙이고 깜이와 같은 높이에서 제단 밑을 들여다보았다⁠. 손에는 낮에 본 검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작은 화면이 푸르게 빛났다⁠. 깜이는 장구에서 내려와 대학원생의 어깨 너머로 화면을 보았다⁠. 화면은 방 안을 노랗고 붉은 얼룩으로 바꾸어 보여 주었다⁠. 대학원생의 손은 붉었고⁠, 장판은 주황색이었다⁠. 제단 밑만 파랬다⁠. 방석 위에 파랗게 식은 덩어리가 있었다⁠.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사람 모양이었다⁠.

대학원생이 숨을 멈추었다⁠. 화면에서 눈을 떼고 맨눈으로 제단 밑을 보았다⁠. 맨눈에는 젖은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다시 화면을 보았다⁠. 파란 사람이 거기 있었다⁠.

대학원생이 고개를 돌려 깜이를 보았다⁠. 샛노란 눈 두 개가 바로 옆에 있었다⁠. 대학원생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그러고는 아무도 깨지 않을 만큼 작게 속삭였다⁠.

“⁠너도 보이지⁠?⁠”

깜이는 대답 대신 젖은 방석을 보았다⁠. 화면 속 파란 사람이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두 얼굴을 마주 보았다⁠.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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