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062자)
꼬리를 밟아도
가짜 무당과 신당 고양이 · 문들레
새벽 다섯 시가 되면 제단 밑부터 밝아진다. 붉은 천이 바닥까지 드리운 제단 아래, 붉은 방석 위에서 깜이는 눈만 뜨고 있었다. 사람 눈에는 아직 캄캄한 신당 방이 깜이 눈에는 낮처럼 보였다. 벽의 무신도에서 장군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문지방 앞에는 밤새 떨어진 나방이 누워 있었다. 나방 날개가 한 번 떨리자 깜이의 엉덩이가 저절로 들썩였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먼저 났다. 오른쪽 무릎이 한 칸마다 딱 소리를 냈다. 마춘심이었다.
“아이고, 무릎아. 장군님, 오늘은 손님 좀 보내 주세요. 돈 되는 손님으로요.”
춘심은 놋촛대에 불을 붙이고, 신령에게 올리는 맑은 물인 청수를 새로 떠 놓았다. 다음은 북어였다. 북어가 제단 한가운데 눕자 꼬리가 제단 끝에서 손가락 한 마디만큼 비어져 나왔다. 깜이는 천 밑에서 앞발을 내밀어 발톱 하나로 꼬리를 끌어당겼다. 마른 꼬리가 툭 끊겼다.
“깜이. 그거 장군님 거야.”
깜이는 꼬리를 입에 문 채 올려다보았다. 춘심이 무릎을 짚고 쪼그려 앉아 천을 들췄다. 춘심에게서는 밤새 덮은 솜이불 냄새와, 담배를 끊으려고 씹는 계피 껌 냄새가 났다.
“장군님이 북어 꼬리 드시는 거 봤어? 너는 봤겠지. 넌 다 보잖아.”
춘심이 엄지로 깜이 이마를 밀었다. 깜이가 뜻으로 아는 사람 말은 몇 개 안 된다. 깜이, 밥, 북어, 참치, 안 돼, 저리 가, 손님. 나머지는 소리째로 귀에 담는다. 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하는 말은 장난이라는 것도 안다. “넌 다 보잖아”는 늘 웃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
아침 열 시, 차이나타운 골목에서 짜장 볶는 냄새가 계단을 타고 올라올 무렵 첫 손님이 왔다. 서른 남짓한 여자였다. 운동화 앞코가 하얗게 닳았고, 손톱 밑에 볼펜 잉크가 배어 있었다. 춘심은 어느새 붉은 치마에 남색 쾌자를 걸치고 오색 소매를 늘어뜨린 무복 차림이 되어 있었다. 쉰을 넘긴 손목에서 놋방울이 짤랑거렸다.
여자가 문지방에서 멈칫했다. 깜이가 제단 천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어머, 고양이 덩치 좀 봐. 털이 길고 새까매요. 흰 털이 한 올도 없네.”
“신당 고양이라 그래요. 눈 좀 봐요, 샛노랗지. 사람 속을 다 봐요.”
깜이는 샛노란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의 운동화 냄새를 맡았다. 고무 밑창과 지하철 계단 먼지 냄새였다. 등에 업힌 것은 없었다. 깜이는 도로 천 밑으로 들어가 긴 털을 방석에 펼치고 엎드렸다.
깜이는 제단 밑에서 춘심의 사냥을 구경했다. 춘심은 사냥할 때 늘 같은 순서를 밟았다. 먼저 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아무 말 없이 오래 본다. 눈이 신발에서 손으로, 손에서 목덜미로 천천히 올라간다. 비둘기를 노리는 고양이가 꼬리 끝만 까딱이듯, 춘심은 방석 위에서 엄지발가락만 까딱였다.
“회사에서 나왔구나. 제 발로 나온 게 아니고 밀려서.”
여자의 어깨가 움찔했다. 깜이는 이 순간을 안다. 벽 틈에서 쥐가 머리를 내미는 순간이다.
“남의 집 밥을 오래 먹었어. 싫은 소리 못 하고, 남의 말 다 들어 주고. 그러다 네 문서가 남한테 넘어갔지.”
“…어떻게 아세요?”
“장군님이 그러셔.”
장군은 아무 말도 안 했다. 깜이는 무신도를 올려다보았다. 장군은 오늘도 눈만 부릅떴다. 춘심이 손님의 손을 끌어다 제 무릎에 얹었다.
“겨울까지만 버텨. 동짓달 넘어가면 네 이름으로 된 문서가 들어와. 그땐 남의 집 말고 네 집 밥 먹어.”
여자가 울기 시작했다. 우는 사람에게서는 소금 냄새가 난다. 여자는 한참 울다가 코를 풀고, 춘심의 무릎에 하얀 봉투를 놓고, 들어올 때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사냥이 끝나면 무엇이 오는지 깜이는 안다. 봉투는 냉장고 옆 과자 깡통으로 들어가고, 저녁이면 참치 캔 따는 소리가 난다.
춘심이 봉투를 깡통에 넣으며 혼잣말을 했다.
“앞코 닳은 운동화에 볼펜 손톱이면 사무실에서 종일 뛰던 애야. 문서 얘기 하면 다 울어.”
깜이는 하품을 했다. 사냥 솜씨는 언제 봐도 좋았다.
*
낮에는 담장에 오른다. 신당 마당 담장은 언덕으로 이어진 골목 계단과 맞붙어 있다. 담장 위에 앉으면 아래로는 차이나타운의 붉은 등과 관광버스가 보이고, 위로는 언덕 꼭대기의 늙은 회화나무가 보인다. 아래 골목에서 깃발을 든 안내원이 중국말로 무언가를 외치자 관광객들이 공갈빵을 든 채 일제히 사진기를 들었다.
담장 끝에 늙은 삼색이가 먼저 와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 사는 암고양이다. 깜이는 꼬리를 곧게 세우고 다가갔다. 고양이끼리 꼬리를 세우는 것은 반갑다는 인사다. 삼색이는 꼬리 대신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너를 해칠 생각이 없다는 인사다. 깜이도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삼색이가 제 볼을 깜이 볼에 한 번 문질렀다. 볼 냄새를 나눠 묻히면 같은 무리가 된다. 귀를 뒤로 눕히고 하악 소리를 내면 물러서라는 말이 된다. 사람들은 이 말들을 하나도 못 알아듣는다.
삼색이에게서 오늘은 낯선 냄새가 났다. 코를 찌르는 시큼한 칠 냄새였다. 삼색이가 언덕 위를 보며 귀를 눕혔다. 꼭대기 빈집 담벼락마다 붉은 동그라미가 하나씩 늘어 있었다. 깜이는 처음 보는 표시였다. 덩치 큰 수컷이 남의 영역에 오줌을 뿌리고 다니면 저런 냄새가 날 것이다. 깜이의 꼬리털이 저절로 부풀었다.
부엌 창으로 텔레비전 소리가 흘러나왔다. “요양시설 본인 부담금이 내년부터 오를 전망이라는 보건 당국의 발표가….” 춘심이 텔레비전을 껐다. 리모컨 내려놓는 소리가 거칠었다.
*
오후 세 시, 검은 세단이 계단 아래에서 멈췄다. 내린 남자는 구두가 반짝였고, 구두약과 차 방향제 냄새를 짙게 풍겼다. 깜이는 담장에서 내려와 마당 감나무 밑에 앉았다가 남자의 등을 보고 몸을 낮췄다.
남자 등에 또 한 사람이 업혀 있었다. 남자의 어깨에 턱을 얹고, 두 팔을 남자의 목에 느슨하게 감고. 젊은 남자였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졌다. 고무장화를 신었고, 비닐 앞치마가 미역처럼 몸에 들러붙어 있었다. 떨어진 물방울은 계단에 닿기 전에 없어졌다.
깜이는 코를 들었다. 업힌 남자에게서는 거의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아주 옅게, 바닷물과 녹슨 쇠와 새우젓 냄새가 났다. 새우젓. 깜이의 수염이 앞으로 쏠렸다.
이런 손님을 깜이는 전에도 보았다. 신당에는 가끔 사람 등에 무언가를 업고 오는 손님이 있다. 춘심은 못 보고 손님도 못 본다. 깜이만 본다. 이 손님들은 냄새가 옅고, 발소리가 없고, 지나간 자리의 공기가 차다. 깜이가 꼬리를 세워도 꼬리를 세우지 않고, 눈을 천천히 감아도 따라 감지 않는다. 볼을 비비려 들면 볼이 없다. 인사를 모르는 손님들이다.
깜이는 새우젓 냄새를 따라 업힌 남자의 장화 뒤꿈치까지 다가갔다. 장화가 깜이의 꼬리를 밟았다.
무게가 없었다. 아프지도 않았다. 꼬리 끝에 얼음물이 한 방울 떨어진 것처럼 차가웠을 뿐이다. 깜이는 펄쩍 뛰어 감나무에 올라갔다. 사람이 고양이 꼬리를 밟으면 사람이 먼저 놀라 소리를 지른다. 개가 밟으면 개가 깨갱 한다. 업힌 남자는 꼬리를 밟고도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기색도 없었다. 깜이는 나뭇가지 위에서 귀를 눕혔다.
*
“언덕 재개발 조합장입니다. 이 집, 지난여름에 제가 샀습니다.”
신당 방에서 조합장은 방석에 앉지 않고 무릎을 세운 채 쪼그렸다. 춘심은 무신도 앞에 정좌하고 있었다. 깜이는 감나무에서 내려와 문지방에 배를 깔았다.
“압니다. 새 집주인 양반. 월세 밀린 거 말씀하러 오셨으면, 다음 달에….”
“월세 얘기 하러 온 거 아닙니다. 굿을 하나 맡기려고요.”
업힌 남자가 조합장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방을 가로질러, 제단 천을 들추지도 않고 천을 지나, 제단 밑으로 들어갔다. 깜이의 방석 위에 앉았다. 방석이 검게 젖어 들었다. 깜이의 등털이 한꺼번에 곤두섰다.
“다음 보름에 언덕 꼭대기 당집 앞에서 위령굿을 열어 주십시오. 언덕에 떠도는 넋들을 달래는 굿이요. 그 자리에서 옥선녀 신당이 공수 한마디만 내려 주시면 됩니다.”
공수는 무당이 신령의 말을 받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깜이는 공수가 무엇인지 몰랐다. 춘심이 공수를 내릴 때마다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고 손님이 운다는 것만 알았다.
“무슨 공수요?”
“넋들이 이제 언덕을 떠나도 좋다고 하신다고요. 꼭대기에 아직 도장 안 찍은 노인이 열한 집입니다. 그 양반들은 구청 말도, 조합 말도 안 믿어요. 옥선녀 신당 말은 믿습니다. 사십 년을 믿었대요.”
춘심이 조합장을 보았다. 사냥할 때의 눈이었다. 손톱 끝이 뜯겨 있었고, 눈 밑이 거뭇했고, 셔츠 깃이 땀에 누렇게 절어 있었다.
“잠 못 주무시죠. 밤마다 물소리 들리시고.”
조합장의 턱이 굳었다.
“그것도 장군님이 그러십니까?”
“장군님이요.”
조합장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방바닥에 놓았다.
“오백입니다. 굿 끝나면 밀린 월세 석 달도 없던 일로 하죠. 물소리도 굿 한 번이면 그친다고 하시면 더 좋고요.”
춘심의 바지 주머니에서 전화기가 떨었다. 춘심은 화면을 보지 않고 꺼 버렸다. 깜이는 화면에 뜬 글자를 읽지 못했지만, 요양원에서 걸려 오는 전화는 늘 같은 소리로 울린다는 것을 알았다. 춘심이 봉투 쪽으로 손을 뻗었다.
제단 밑에서 젖은 남자가 일어났다. 소리 없이 방석을 떠나 춘심의 등 뒤로 갔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이 춘심의 손등 위로 내려왔다. 춘심이 봉투를 집으려던 손을 멈추고 목덜미를 문질렀다.
“방이 왜 이리 차.”
깜이는 문지방에서 한 번에 제단 위로 뛰어올랐다. 새까만 긴 털을 있는 대로 부풀리자 큰 몸이 두 배로 불어났다. 꼬리가 솔처럼 굵어졌다. 깜이는 젖은 남자를 내려다보며 길게 울었다. 아기 울음 같기도 하고 쇠 긁는 소리 같기도 한 울음이었다. 젖은 남자가 고개를 들어 깜이를 보았다. 깜이의 뒷발이 촛대를 찼다.
촛대가 무신도 앞으로 쓰러졌다. 춘심이 비명을 지르며 촛대를 잡았고, 녹은 촛농이 조합장의 반짝이는 구두 위로 튀었다. 조합장이 뒤로 물러앉다가 봉투를 깔고 넘어졌다.
“아니, 이놈의 고양이가!”
젖은 남자가 조합장의 등으로 돌아갔다. 조합장은 구두를 손수건으로 문지르며 일어섰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검은 고양이는 재수가 없다더니. 생각해 보시고 다음 주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땐 월세 얘기도 같이 하죠.”
조합장이 봉투를 다시 안주머니에 넣고 계단을 내려갔다. 등에 업힌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깜이와 눈이 마주쳤다. 젖은 남자는 눈을 감지도 깜박이지도 않았다.
*
춘심이 깜이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네 다리가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오백이야, 오백! 엄마 석 달 치를 네가 날렸어!”
깜이는 마당으로 던져졌다. 감나무 밑 흙에 네 발로 내려앉으며 깜이는 귀를 눕혔다. 마루 끝에서 춘심이 손가락으로 깜이를 찔렀다.
“오늘 참치 없어. 없어!”
참치는 알아들었다. 없어도 알아들었다. 깜이는 꼬리로 흙바닥을 두 번 치고 등을 돌렸다. 담장 위에서 삼색이가 내려다보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위로인지 구경인지 깜이는 알 수 없었다.
춘심이 마루에 걸터앉아 꺼 두었던 전화기를 다시 켰다. 신호가 가자 사무적인 여자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머님 이번 달까지 석 달 치예요, 보호자님. 이달 말까지 안 되시면 퇴소 절차 안내를 드려야 해서요.”
“네, 네. 알아요. 보낼게요. 이번 주에 큰 굿이 하나 잡혀서요.”
춘심이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마당을 보았다. 깜이는 감나무 뒤에 숨어 있었다. 춘심이 소주병을 따는 소리가 났다.
“엄마가 너 제단 밑에서 주워 왔을 때, 내가 말렸어야 했는데.”
밤이 되자 부엌 문이 한 뼘 열렸다. 문 앞에 참치 캔이 반쯤 따진 채 놓여 있었다. 깜이는 참치를 다 먹고 나서도 한참 캔을 핥았다.
*
자정이 지나 깜이는 신당 방으로 들어갔다. 촛불은 꺼져 있었고 무신도 속 장군만 깨어 있었다. 깜이는 제단 천 밑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방석 위에 젖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조합장을 따라 나간 손님이 혼자 돌아와 있었다. 무릎을 끌어안고, 머리카락에서 물을 떨어뜨리며, 신당 안쪽 끝의 잠긴 뒷방 문을 보고 있었다. 춘심의 어머니가 쓰던 방이었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간 뒤로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는 문이었다.
깜이는 앞발 하나를 방석 끝에 올렸다. 발바닥이 축축했다. 젖은 남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깜이는 방석 대신 차가운 장판 위에 몸을 말았다. 밤새 방석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깜이 귀에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