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334자)

현관

청약 당첨 위장 결혼 · 소하린

1203호 현관 문턱은 밤새 삐걱거렸다⁠. 길건오가 개켜 둔 에어매트를 현관 바닥에 깔고 누웠기 때문이었다⁠. 매트 끝이 문턱에 걸쳐져서⁠, 건오가 뒤척일 때마다 문턱 나무가 끼익 하고 울었다⁠. 거실에서 자도 된다고 가율이 말한 적은 없었다⁠. 거실에서 자지 말라고 말한 적도 없었다⁠. 시청에서 돌아온 뒤로 가율은 건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간호사의 말만 했다⁠.

“⁠식사하세요⁠.⁠” 저녁 일곱 시에 가율이 식탁에 북엇국을 두 그릇 놓고 말했다⁠. 병동에서 금식이 풀린 환자에게 하는 말투였다⁠.

“⁠고맙습니다⁠.⁠”

“⁠취침하세요⁠.⁠” 밤 열한 시에 가율이 안방 문을 닫으며 말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소등합니다⁠.⁠”

거실 불이 꺼졌다⁠. 건오는 현관 센서등 밑에서 혼자 누워 있었다⁠. 신발장 문 아래 틈으로 구두약 냄새가 났다⁠. 머리맡에 가율의 간호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발목 쿠션이 꺼진 신발이었다⁠. 건오는 가율의 신발 크기를 「⁠부부 문답 100⁠」 12번에 이백삼십오라고 적어 두었는데⁠, 머리맡에서 보니 이백사십이었다⁠. 칫솔 색과 잠버릇과 처음 웃은 날은 다 맞혔는데⁠, 신발 크기 하나를 틀렸다⁠. 매일 보는 신발이었다⁠.

헤어질 수가 없었다⁠. 둘이 따로 살면 실거주가 아니게 된다⁠. 실거주가 아니게 되면 맞은편 집 조사관은 서류철 맨 위에 1203호를 올린다⁠. 이혼을 하면 석 달 만의 이혼이 된다⁠. 석 달 만의 이혼은 석 달 전 혼인신고가 무엇이었는지 혼자서 다 말해 준다⁠. 둘은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같은 현관을 써야 했다⁠. 건오는 이런 날들이 위장 결혼보다 결혼 같다고 생각하다가⁠, 생각을 접었다⁠.

새벽 두 시에 건오가 몸을 돌리자 문턱이 길게 울었다⁠. 맞은편 1204호에서 누가 화장실 물을 내리는 소리가 났다⁠.

*

염서겸은 아침 일곱 시 반에 1203호 초인종을 눌렀다⁠. 밤새 맞은편 집 문턱이 스물몇 번 울었다⁠. 서겸은 세다가 잠들었다⁠.

문을 연 것은 건오였다⁠. 머리 한쪽이 눌려 있었고⁠, 등 뒤 현관 바닥에 에어매트가 깔려 있었다⁠.

“⁠현관에서 주무셨어요⁠?⁠”

“⁠허리에 좋대서요⁠. 현관이 집에서 제일 딱딱하거든요⁠.⁠”

“⁠대리석이죠⁠. 엉덩이 아프셨겠어요⁠.⁠” 서겸이 매트를 내려다보았다⁠. “⁠아내분 계세요⁠?⁠”

가율이 안방에서 나왔다⁠. 데이 근무 출근 차림이었다⁠. 블라우스 단추를 맨 위까지 잠그고 베이지 가디건을 걸쳤다⁠. 가율은 건오 옆에 섰지만 건오를 보지 않았다⁠.

“⁠보름 드리겠습니다⁠.⁠” 서겸이 말했다⁠. “⁠5월 18일에 1203호 결과를 올립니다⁠. 경찰에 넘길지⁠, 넘기지 않을지요⁠. 그 전에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세요⁠. 그 뒤로는 제가 들을 수 있는 말이 없어요⁠.⁠”

“⁠설기담은요⁠?⁠” 가율이 물었다⁠.

“⁠설기담 씨는 여전히 서류가 깨끗해요⁠.⁠”

“⁠계약금을 대부업체가 댔다면서요⁠. 그 대부업체 돈이 설기담 돈이라고요⁠.⁠”

“⁠누가 그렇게 말해요⁠?⁠” 서겸이 건오를 보았다⁠. 건오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서겸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남편분이 알고 계신 게 설기담 씨를 가리키는 증거가 되려면⁠, 남편분이 진술하셔야 해요⁠. 서명하시고요⁠. 진술하시는 순간 1203호도 끝나요⁠. 각서를 쓴 사람이 자기 각서를 증언하는 거니까요⁠.⁠”

“⁠그럼 설기담을 잡으려면 저희가 먼저 잡혀야 해요⁠?⁠”

“⁠잡히는 게 아니고요⁠.⁠” 서겸이 말을 골랐다⁠. 고르는 데 시간이 들었다⁠. “⁠두 분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가는 거예요⁠. 1203호는 원래 두 분 집이 아니잖아요⁠.⁠”

가율의 입술이 한 번 떨렸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간호화를 신었다⁠. 건오가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아 둔 간호화였다⁠. 가율은 신발 끈을 묶다가 손을 멈췄다⁠. 끈이 어젯밤 가율이 풀어 둔 모양과 달랐다⁠. 누가 다시 묶어 놓았다⁠. 매듭이 반듯했다⁠.

가율은 매듭을 풀지 않고 그대로 신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돌아보지 않았다⁠.

*

왕가율은 금요일 점심시간⁠, 병동 휴게실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열었다⁠. 알림이 쌓여 있었다⁠. 「⁠솔마루 입주민 소통방⁠」에 106동 1103호가 글을 올렸다⁠.

「⁠12층 분들 혹시 밤마다 끼익끼익 소리 나는 거 뭔가요⁠? 새벽 두 시에도 나요⁠. 층간소음 같아서요ㅠㅠ 문턱 삐걱이면 관리실에 하자 접수하세요⁠」

밑에 답글이 줄줄이 달렸다⁠. 「⁠신혼집이라 그런 거 아님⁠?ㅋㅋ⁠」⁠, 「⁠1103호님 이해하세요 새 아파트 국룰⁠」⁠, 「⁠아 근데 진짜 매일 밤이면 대단하신데⁠」 가율은 휴대전화를 엎었다가 다시 뒤집어 「⁠1203호입니다⁠. 현관 문턱 하자예요⁠. 접수할게요⁠. 죄송합니다⁠」라고 쓰고 보냈다⁠. 답글이 바로 달렸다⁠. 「⁠아 하자였구나ㅋㅋ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신혼 축하드려요⁠」

동기 간호사가 컵라면을 들고 들어오다 가율의 얼굴을 보았다⁠. “⁠왕 간호사⁠, 귀가 왜 그래⁠? 새빨개⁠.⁠”

“⁠덥네⁠.⁠”

“⁠에어컨 틀었는데⁠.⁠”

휴대전화가 또 떨었다⁠. 건오 어머니였다⁠. 「⁠며늘아 다음 주 화요일 건오 생일인 거 알지⁠? 미역국은 소고기 말고 홍합으로 끓여 줘 건오가 소고기 미역국 먹으면 두드러기 나 ^^⁠」

가율은 화면을 오래 보았다⁠. 「⁠부부 문답 100⁠」에 생일은 없었다⁠. 건오가 자기 생일을 넣지 않았다⁠. 홍합 미역국도⁠, 두드러기도 없었다⁠. 건오는 백 개의 물음을 가율이 들킬 만한 것으로만 채웠다⁠. 가율은 어머니에게 「⁠네 어머님 홍합으로 할게요⁠」라고 답했다⁠. 보내 놓고 보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가율은 정말로 홍합으로 끓일 생각이었다⁠.

*

염서겸은 토요일 오후 봉천동의 원룸 3층으로 총각김치 한 통을 들고 올라갔다⁠. 계단이 좁아 김치통이 벽에 쓸렸다⁠. 누나는 문을 열자마자 김치통부터 받아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이거 어디서 났어⁠? 맛있겠다⁠.⁠”

“⁠옆집 신혼부부 시어머니가 줬어⁠.⁠”

“⁠너 그 집 조사한다며⁠.⁠” 누나가 웃었다⁠. “⁠조사하는 집 김치를 받아 와⁠?⁠”

“⁠안 받으면 의심받아⁠.⁠”

누나의 원룸은 열 평이 안 됐다⁠. 바닥은 마른 장판이었다⁠. 여름이 와도 젖지 않는 3층 장판이었다⁠. 누나는 그래도 장마철이면 아침마다 장판 모서리를 들춰 보았다⁠. 다섯 해 전 여름 반지하가 잠긴 밤 이후로 생긴 버릇이었다⁠. 같은 해 봄⁠, 누나 부부는 신혼부부 특별공급 예비 1번이었다⁠. 당첨된 집 하나가 위장 결혼으로 드러났지만⁠, 드러났을 때는 이미 집이 두 번 팔린 뒤였다⁠. 서겸은 누나의 일을 서류로 처음 알았고⁠, 국토부 청약 점검반에 지원했다⁠.

“⁠그 신혼부부⁠, 가짜야⁠?⁠” 누나가 김치를 손으로 집어 먹으며 물었다⁠.

“⁠아직 몰라⁠.⁠”

“⁠모르는 얼굴이 아닌데⁠.⁠” 누나가 서겸의 얼굴을 보았다⁠. “⁠너 모를 때는 입을 다물잖아⁠. 지금 입을 너무 다물고 있어⁠.⁠”

서겸은 대답하지 않고 장판 모서리를 내려다보았다⁠. 누나가 김치 국물 묻은 손가락을 휴지로 닦았다⁠.

“⁠그 사람들도 사정 있겠지⁠.⁠”

“⁠누나 집 가져간 사람들도 사정 있었어⁠.⁠”

“⁠알아⁠. 나도 그때는 그 사람들 다 감옥 가라고 했어⁠.⁠” 누나가 김치통 뚜껑을 닫았다⁠. “⁠근데 서겸아⁠. 내가 그 집 못 들어간 게 그 사람들 때문만은 아니야⁠. 집이 모자라서야⁠. 사다리가 하나밖에 없는데 사람이 백 명이면⁠, 누가 밀든 누가 떨어지든 사다리가 하나라서 그래⁠. 너는 미는 사람만 잡잖아⁠.⁠”

“⁠미는 사람을 잡아야 사다리가 공평해져⁠.⁠”

“⁠공평해져도 하나야⁠.⁠” 누나가 웃었다⁠. “⁠김치 맛있다⁠. 시어머니한테 고맙다고 해 줘⁠. 가짜 시어머니든 진짜 시어머니든⁠.⁠”

*

왕가율은 일요일 오후 마곡의 원룸 건물 앞에서 옥다엽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엽은 세 번째 전화에 받았다⁠. 「⁠언니⁠, 나 지금 집에 없는데⁠」라고 말하는 다엽의 목소리 뒤로⁠, 가율이 서 있는 건물 3층 창문에서 같은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다엽의 원룸 바닥은 나뭇결 무늬 마루였다⁠. 현관에 흰 가죽 운동화가 가지런히 돌려 놓여 있었다⁠. 가율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 마루를 디뎠다⁠. 발바닥이 매끈했다⁠. 화곡동 고시원의 끈적한 장판과 다른 바닥이었다⁠.

“⁠보증금 돌려받았구나⁠.⁠”

다엽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마실 것을 꺼내려다 그만둔 손이었다⁠.

“⁠곽 실장님이 줬어⁠. 다섯 쌍 이어 주면 내 보증금 대신 돌려준다고⁠.⁠” 다엽이 마루에 털썩 앉았다⁠. “⁠언니⁠, 나는 거짓말 안 했어⁠. 돈 받은 거 없다고 한 건⁠, 그 사람들한테서 받은 게 없다는 거였어⁠. 실장님한테 받은 거야⁠.⁠”

“⁠설기담 돈이야⁠.⁠”

“⁠돈에 이름 있어⁠?⁠” 다엽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젖어 있었지만 목소리는 젖지 않았다⁠. “⁠언니가 이 년 동안 우리한테 해 준 게 뭐야⁠. 고소장 양식이랑 집회 날짜⁠. 그거 고마웠어⁠. 진짜로⁠. 근데 고소장으로 방은 못 구해⁠. 실장님은 방을 줬어⁠. 다섯 집한테는 새 아파트를 줬고⁠. 그 집에서 205호는 처음으로 밤에 안 깨고 잔대⁠. 307호 언니는 천식약을 반으로 줄였대⁠.⁠”

“⁠몇 년 뒤에 그 집들 다 거둬 가⁠.⁠”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해⁠. 언니는 그런 걸 미리 다 생각하니까 대표지⁠. 우리는 오늘 숨 쉬는 게 급했어⁠.⁠”

가율은 마루 위에 서 있었다⁠. 앉으라는 말을 듣지 못했고⁠, 앉고 싶지도 않았다⁠. 발바닥 밑의 매끈한 마루가 설기담의 돈으로 깐 마루였다⁠. 1203호의 따뜻한 마루도 그랬다⁠.

“⁠언니도 똑같잖아⁠.⁠” 다엽이 작게 말했다⁠. “⁠언니도 그 돈으로 사는 집에서 왔잖아⁠.⁠”

가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다엽이 맞았다⁠. 맞는 말이 제일 아팠다⁠.

“⁠모임에는 말하지 마⁠, 언니⁠.⁠” 다엽이 무릎을 끌어안았다⁠. “⁠부탁이야⁠. 다들 나를 착한 총무라고 생각해⁠. 나는 그게 좋았어⁠. 이 년 동안 내가 가진 게 그거 하나였어⁠.⁠”

가율은 현관으로 걸어갔다⁠. 신발을 신다가 흰 운동화를 내려다보았다⁠. 운동화는 한 번도 빗물을 밟지 않은 것처럼 깨끗했다⁠.

“⁠다엽아⁠. 예비 1번 선생님 아들⁠, 반지하에서 무릎이 까매진대⁠. 기어 다니면⁠.⁠”

다엽이 고개를 무릎에 묻었다⁠. 가율은 문을 닫았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3층 창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꺼졌다⁠.

*

길건오는 일요일 밤 열한 시 반⁠, 냉장고 앞에서 노란 접착 메모지를 한 장 떼어 냈다⁠. 냉장고 문에는 네 컷 사진이 자석에 붙어 있었고⁠, 사진 옆에 가율의 근무표가 있었다⁠. 내일은 데이였다⁠. 가율은 여섯 시에 일어난다⁠.

건오는 메모지에 볼펜으로 천천히 썼다⁠. 반듯한 글씨였다⁠. 각서에 쓴 것과 같은 글씨여서⁠, 쓰다가 손이 한 번 멈췄다⁠.

「⁠다녀오겠습니다⁠. 갚을 수 있는 것부터 갚고 오겠습니다⁠. 가율 씨 신발은 이백사십입니다⁠. 문답 12번 틀렸습니다⁠. — 현관 사람⁠」

건오는 메모지를 네 컷 사진 바로 밑에 붙였다⁠. 세 번째 칸의 입 벌린 얼굴 밑이었다⁠. 그러고는 현관에 깐 에어매트를 접어 신발장 옆에 세웠다⁠. 매트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쉬이 내며 접혔다⁠. 건오는 웃지 않았다⁠.

안방 문 아래 틈은 어두웠다⁠. 건오는 노크를 두 번 하려다 주먹을 내렸다⁠. 현관 문턱을 밟았다⁠. 끼익⁠. 한 번 멈췄다가 넘었다⁠.

맞은편 1204호 문틈에 불빛이 가늘게 새어 나왔다⁠. 서겸이 깨어 있었다⁠. 건오는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계단 문을 열었다⁠. 지하 2층까지 내려가 첫차를 탈 생각이었다⁠. 천호동 상가 3층 온집 파이낸스는 월요일 아침 아홉 시에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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