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369자)

후보 토론회

청약 당첨 위장 결혼 · 소하린

단지 안 국공립 어린이집 앞 보도블록은 아침마다 물에 젖어 있었다⁠. 교사가 일곱 시 반에 호스로 씻어 내기 때문이었다⁠. 왕가율은 데이 근무에 가려고 정문 버스 정류장으로 걷다가⁠, 젖은 보도블록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호스를 든 교사가 달려와 가율의 팔꿈치를 잡았다⁠.

“⁠어머⁠, 죄송해요⁠! 제가 물을 너무 뿌렸죠⁠.⁠”

교사는 머리를 질끈 묶고 앞치마 주머니에 크레파스를 꽂은 젊은 여자였다⁠. 앞치마에 「⁠햇살반 서담희 선생님⁠」이라는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운동화 앞코가 거뭇하게 젖어 있었다⁠. 호스 물에 젖은 것보다 오래된 얼룩이었다⁠.

“⁠괜찮아요⁠. 제가 땅을 안 봤어요⁠.⁠”

“⁠106동 사시죠⁠? 저 그 동 맨날 올려다봐요⁠.⁠” 담희가 웃으며 106동을 가리켰다⁠. 12층 창이 아침 해를 받아 반짝였다⁠. “⁠저 이 단지 특공 예비 1번이거든요⁠. 한 집만 취소되면 들어올 수 있어요⁠. 떨어진 집에 날마다 출근하는 사람⁠, 저밖에 없을걸요⁠.⁠”

가율의 손이 블라우스 위로 목걸이 반지를 눌렀다⁠.

“⁠예비 1번이면⁠, 거의 다 오셨네요⁠.⁠”

“⁠거의요⁠. 거의가 제일 멀대요⁠.⁠” 담희가 호스를 감았다⁠. “⁠지금은 성남 반지하에 살아요⁠. 남편이랑 두 살 아들이랑⁠. 여름만 오면 바닥이 눅눅해서 애가 기어 다니면 무릎이 까매져요⁠. 그래서 이 어린이집에 지원했어요⁠. 우리 애는 낮에라도 마른 바닥에서 놀라고⁠.⁠”

어린이집 창 안에서 아이 하나가 유리에 이마를 대고 담희를 불렀다⁠. 담희가 손을 흔들었다⁠.

“⁠아드님도 여기 다녀요⁠?⁠”

“⁠네⁠, 옆 반이요⁠. 출근할 때 같이 버스 타고 와서 퇴근할 때 같이 가요⁠. 한 시간 걸려요⁠.⁠” 담희가 젖은 운동화 앞코로 보도블록을 톡톡 찼다⁠. “⁠남편이 택배 일을 해서 밤에 들어오거든요⁠. 그 사이에 제가 장판을 들춰서 선풍기로 말려요⁠. 이 단지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뭔 줄 아세요⁠? 맨발로 거실 걷기요⁠.⁠”

가율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웃었다⁠. 웃는 얼굴 밑에서 목걸이 반지가 블라우스에 쓸렸다⁠. 가율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발밑의 보도블록만 보았다⁠. 젖은 자리가 끝나고 마른 자리가 시작되는 경계가 신발 앞에서 한 번 밟혔다⁠.

*

염서겸은 104동 803호 현관에서 슬리퍼 대신 덧신을 신었다⁠. 열두 가구 가운데 세 번째 집이었다⁠. 신발장 앞에 남자 운동화 한 켤레와 여자 샌들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남자 운동화는 이백칠십오⁠, 여자 샌들은 이백삼십⁠. 둘 다 한 사람이 매일 신는 신발처럼 앞이 닳아 있었다⁠. 문제는 신발장 안이었다⁠. 남자 신발만 여섯 켤레였고 여자 신발은 하나도 없었다⁠.

“⁠아내분 신발이 하나뿐이네요⁠.⁠”

“⁠아내가 미니멀리스트예요⁠.⁠” 남편이 대답했다⁠. 스물여섯쯤 된 청년이었다⁠. 귀가 가율처럼 빨개지지는 않았지만⁠, 대신 계속 엄지로 검지 손톱을 뜯었다⁠. “⁠물건 많은 거 싫어해요⁠.⁠”

“⁠아내분 제일 좋아하시는 음식은요⁠?⁠”

“⁠치킨이요⁠.⁠”

부엌에서 같은 물음을 받은 아내는 서른 안팎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아내가 망설임 없이 말했다⁠. “⁠저 치킨 싫어해요⁠. 닭 껍질이 무서워서⁠.⁠”

서겸은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대신 현관으로 돌아가며 신발장 옆 행거를 보았다⁠. 우산 두 개 사이에 남색 티셔츠 하나가 접힌 채 얹혀 있었다⁠. 가슴에 흰 글씨로 「⁠늘해랑빌 보증금 돌려줘⁠」 뒤에는 「⁠302 205 307 옥탑⁠…⁠」 같은 숫자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집회 때 맞춰 입은 단체 티셔츠였다⁠.

서겸은 덧신을 벗으며 티셔츠 뒤의 숫자를 한 번 더 보았다⁠. 302가 맨 앞이었다⁠. 1203호 대표가 말한 옛 호수였다⁠.

“⁠늘해랑빌에 사셨어요⁠?⁠”

청년의 엄지가 검지에서 떨어졌다⁠. “⁠아⁠, 그거요⁠. 누가 준 거예요⁠. 잠옷으로 입어요⁠.⁠”

“⁠잠옷이요⁠.⁠” 서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어울리시겠네요⁠.⁠”

*

왕가율은 저녁 일곱 시 반⁠, 커뮤니티 센터 강당 맨 앞줄에 앉았다⁠. 접이식 의자 백 개가 다 찼고⁠, 뒤에는 아기 띠를 한 사람들까지 서 있었다⁠. 강당 바닥은 체육관 마루였다⁠. 누가 의자를 끌 때마다 끼익 소리가 강당 천장으로 올라갔다⁠. 옆자리의 건오가 「⁠부부 문답 100⁠」을 무릎에 펴 놓고 있었다⁠.

“⁠그걸 여기서 왜 봐요⁠?⁠”

“⁠틈날 때 외워야죠⁠. 오늘은 41번부터⁠. 「⁠남편의 콤플렉스는⁠?⁠」⁠”

“⁠뭔데요⁠?⁠”

“⁠아직 안 정했어요⁠.⁠”

단상 위에 두 후보가 앉아 있었다⁠. 기호 1번은 103동에 산다는 은퇴한 교장 선생님이었고⁠, 소개가 시작되자마자 고개가 앞으로 꾸벅 떨어졌다⁠. 기호 2번 설기담은 하늘색 점퍼에 넥타이를 맸다⁠. 마이크를 잡자 강당이 조용해졌다⁠.

“⁠입주민 여러분⁠, 집은 사는 게 목적이에요⁠. 사고파는 게 목적이 되면 안 돼요⁠. 그런데요⁠.⁠” 설기담이 손가락을 세웠다⁠. “⁠사는 사람이 편하려면⁠, 팔 때도 안 손해 봐야 해요⁠. 그게 집값이에요⁠. 제가 집값 지키겠습니다⁠.⁠”

박수가 터졌다⁠. 건오가 따라 박수를 치다가 가율의 눈길을 받고 손을 무릎에 내려놓았다⁠. 기호 1번 교장 선생님이 박수 소리에 깨서 덩달아 박수를 쳤다⁠.

질문 시간이 되자 가율이 손을 들었다⁠. 사회를 보던 관리사무소 직원이 마이크를 건넸다⁠. 마이크가 손바닥에 무거웠다⁠. 가율은 일어섰다⁠. 앞줄이라 백 명의 눈이 뒤통수에 닿았다⁠.

“⁠106동 주민입니다⁠. 기호 2번 후보님께 여쭐게요⁠. 전세 사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 단지 입주민 가운데도 보증금을 잃고 온 사람들이 있어요⁠. 집주인이 명의를 남한테 넘기고 사라진 일이요⁠.⁠”

강당이 잠깐 술렁였다⁠. 설기담은 웃으며 마이크를 입에 댔다⁠. 보조개가 파였다⁠.

“⁠좋은 질문이에요⁠, 우리 새댁⁠. 전세 사기⁠, 나쁜 거죠⁠. 저도 뉴스 보면 화가 나요⁠. 근데 우리 새댁 말 나온 김에 하나 여쭤볼게요⁠, 여러분⁠.⁠” 설기담이 강당을 둘러보았다⁠. “⁠요즘 우리 단지에 국토부 조사관이 와서 산다는 거 아세요⁠? 신혼부부 집에 들어가서 칫솔을 센대요⁠. 신발장을 열어 보고요⁠. 위장 결혼이 아닌지 본다고⁠.⁠”

술렁임이 커졌다⁠. 뒷줄에서 누가 「⁠진짜요⁠?⁠」라고 소리쳤다⁠.

“⁠위장 결혼⁠, 나쁘죠⁠. 근데 여러분⁠. 우리 단지가 신문에 「⁠위장 결혼 단지⁠」로 나가면⁠, 집값이 어떻게 되겠어요⁠?⁠” 설기담이 마이크를 가슴에 댔다⁠. “⁠제가 회장이 되면 입주민 사생활부터 지키겠습니다⁠. 영장도 없이 남의 신발장 여는 거⁠, 우리 단지에선 안 됩니다⁠.⁠”

박수가 아까보다 두 배로 터졌다⁠. 아기 띠를 한 아빠가 휘파람을 불었다⁠. 설기담이 강당 맨 뒤를 손바닥으로 가리켰다⁠.

“⁠마침 저기 와 계시네요⁠. 조사관님⁠.⁠”

백 명의 고개가 뒤로 돌았다⁠. 맨 뒷줄 벽에 염서겸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서겸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대신 강당 마루 위에서 의자 수십 개가 동시에 끼익 하고 돌아갔다⁠.

가율은 마이크를 쥔 채 서 있었다⁠. 질문을 던진 사람이 가율이었는데⁠, 강당의 화살은 서겸에게 날아가 있었다⁠.

“⁠새댁⁠, 앉아요⁠.⁠” 설기담이 다정하게 말했다⁠. “⁠새댁 같은 신혼부부 지키려고 하는 얘기예요⁠.⁠”

“⁠제 질문에 대답 안 하셨어요⁠.⁠”

“⁠했잖아⁠. 나쁘다고⁠.⁠” 설기담이 웃었다⁠. “⁠나쁜 건 나쁘다고 하면 끝이지⁠. 다음 질문⁠.⁠”

관리사무소 직원이 가율 손에서 마이크를 가져갔다⁠. 가율이 앉자 건오가 「⁠부부 문답 100⁠」 41번 옆에 연필로 무언가를 썼다⁠. 가율이 고개를 숙여 보았다⁠. 「⁠남편의 콤플렉스는⁠? — 아내가 혼자 일어설 때 같이 못 일어난다⁠.⁠」

*

길건오는 커뮤니티 센터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거울 속에 하늘색 점퍼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설기담이 옆 세면대에 서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타일 바닥에 물기가 번져 있었다⁠. 건오의 구두 밑창이 물기 위에서 한 번 미끄러졌다⁠.

“⁠새신랑⁠, 단속을 안 했네⁠.⁠” 설기담이 손을 씻으며 말했다⁠. 거울 속의 설기담만 건오를 보고 있었다⁠. “⁠우리 새댁이 마이크까지 잡았어⁠. 사람 백 명 앞에서⁠.⁠”

“⁠대표님은 원래 그래요⁠. 누가 말린다고 안 멈춰요⁠.⁠”

“⁠그러니까 새신랑이 있는 거지⁠.⁠” 설기담이 종이 수건을 두 장 뽑았다⁠. 한 장을 건오에게 건넸다⁠. 건오가 받지 않자 건오의 젖은 손등에 얹었다⁠. “⁠새댁이 멈추면 다섯 집이 다 편해⁠. 104동 8층 애들⁠, 108동 애들⁠, 다 새댁 모임 사람들이야⁠. 새댁이 저렇게 시끄러우면 조사관이 그 애들까지 다 뒤져⁠. 새댁이 지금 제 식구들 집을 하나씩 태우고 있는 거야⁠.⁠”

“⁠사장님이 마흔 집 보증금을 가져가셨잖아요⁠.⁠”

“⁠가져갔지⁠. 은행 이자 갚느라⁠.⁠” 설기담이 손을 털었다⁠. 물방울이 건오의 안경에 튀었다⁠. “⁠은행은 한 푼도 안 잃었어⁠. 집값이 떨어지니 나만 사기꾼이 됐고⁠. 그래서 내가 너희한테 집을 줬잖아⁠. 새 집⁠. 바닥 따뜻한 집⁠. 국가가 너희한테 뭘 줬는데⁠? 고소장 접수증⁠?⁠”

건오는 안경을 벗어 셔츠 자락으로 닦았다⁠. 안경이 없으니 설기담의 얼굴이 하늘색 덩어리로 번졌다⁠. 번진 얼굴이 오히려 말하기 쉬웠다⁠.

“⁠대표님한테는 손대지 마세요⁠.⁠”

“⁠나는 손 안 대⁠. 손은 새신랑이 대는 거야⁠.⁠” 설기담이 화장실 문을 열었다⁠. 강당의 웅성거림이 밀려 들어왔다⁠. “⁠곽 실장 말로는 새신랑이 계산이 빠르다던데⁠. 수학 선생이라며⁠. 계산해 봐⁠. 새댁이 고소를 계속하면 누가 제일 먼저 집을 잃는지⁠.⁠”

문이 닫혔다⁠. 건오는 안경을 다시 썼다⁠. 거울 속에 청 셔츠를 입은 남자가 혼자 서 있었다⁠. 손등의 종이 수건이 물을 먹고 축 늘어져 있었다⁠.

*

왕가율은 토론회가 끝나고 건오보다 먼저 104동 엘리베이터를 탔다⁠. 106동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너무 몰려 지하 주차장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건오는 화장실에 들렀다⁠. 문이 닫히기 직전 젊은 남녀 둘이 뛰어 들어왔다⁠. 가율은 남자의 얼굴을 보고⁠, 여자의 얼굴을 보고⁠,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대표님⁠?⁠”

늘해랑빌 205호 청년이었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늘 맨 뒤에 앉아 컵라면을 먹던 대학원생이었다⁠. 옆의 여자는 307호 언니였다⁠. 마트 계산원 일을 하던⁠, 모임에서 가장 크게 울던 사람이었다⁠. 둘은 모임 단톡방에서 「⁠205호⁠」와 「⁠307호⁠」로만 이야기를 나눴다⁠. 이름도 서로 모를 사이였다⁠.

“⁠두 사람 여기 살아요⁠?⁠”

“⁠104동 8층이요⁠.⁠” 307호 언니가 가율의 휴대전화를 주워 주며 웃었다⁠. 웃음이 얼굴 반쪽에서만 났다⁠. “⁠오늘 아침에 그 조사관이 다녀갔어요⁠. 티셔츠 봤어요⁠. 우리 집회 때 입은 거⁠.⁠”

“⁠둘이 결혼했어요⁠?⁠”

엘리베이터가 올라갔다⁠. 205호 청년이 엄지로 검지 손톱을 뜯었다⁠. 307호 언니가 청년의 손을 잡아 내렸다⁠. 연습한 손놀림이었다⁠. 가율은 손놀림을 알아보았다⁠. 1203호 거실에서 가율이 날마다 하는 동작이었다⁠.

“⁠대표님도 다엽 언니 소개로 하셨잖아요⁠.⁠” 307호 언니가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끼리는 다 알아요⁠. 대표님 먼저 하셨으니까 우리도 용기 냈죠⁠.⁠”

엘리베이터가 8층에 멈췄다⁠. 문이 열렸다⁠. 둘이 내리기 전에 205호 청년이 돌아보았다⁠.

“⁠다섯 쌍이에요⁠, 대표님⁠. 이 단지에 우리 모임 사람⁠.⁠”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는 가율 혼자 태우고 15층까지 올라갔다⁠. 아무도 누르지 않은 층에서 문이 한 번 더 열렸다⁠. 15층 엘리베이터 홀은 비어 있었다⁠. 맞은편 101동 15층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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