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5,317자)

예비 1번

청약 당첨 위장 결혼 · 소하린

서담희는 금요일 오후 다섯 시 반⁠, 어린이집 현관에서 아이들 실내화를 한 켤레씩 짝 맞춰 신발장에 넣고 있었다⁠. 노란 실내화 열여섯 켤레 가운데 한 켤레는 늘 짝이 안 맞았다⁠. 오늘은 콩떡이네 강아지 그림 실내화 한 짝이 없어서 담희가 무릎을 꿇고 신발장 밑을 더듬었다⁠.

“⁠선생님⁠, 이거 찾으시나⁠?⁠”

고개를 들자 하늘색 점퍼가 보였다⁠. 설기담이 강아지 그림 실내화 한 짝을 손가락 끝에 걸고 웃고 있었다⁠. 어린이집 담장 밑에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담희는 실내화를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입주자대표 후보라는 아저씨였다⁠. 아이들한테 떡을 나눠 준 적이 있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예비 1번이시라며⁠.⁠” 설기담이 담장에 팔을 올렸다⁠. 「⁠기호 2번⁠」 배지가 노을빛에 반짝였다⁠. “⁠좋은 소식 하나 알려 드릴까⁠. 106동 1203호⁠, 곧 취소될 거야⁠. 조사관이 그 집 계약금을 다 털었대⁠. 위장 결혼이래⁠.⁠”

담희의 손에서 실내화가 떨어졌다⁠. 실내화가 현관 타일 위에서 한 바퀴 굴렀다⁠.

“⁠1203호요⁠? 12층이요⁠?⁠”

“⁠선생님이 맨날 올려다보는 그 집⁠.⁠” 설기담이 실내화를 주워 다시 담희의 손에 쥐여 주었다⁠. “⁠조사관이 꾸물거려서 그렇지⁠. 선생님이 한번 가서 물어봐⁠. 집주인이 진짜 부부인지⁠. 선생님 집이잖아⁠. 원래⁠.⁠”

설기담이 휘파람을 불며 걸어갔다⁠. 담희는 실내화를 쥔 채 106동을 올려다보았다⁠. 12층 창에 저녁 해가 들었다⁠. 지난달 정류장에서 미끄러질 뻔한 간호사가 사는 동이었다⁠. 몇 층에 사는지는 묻지 않았었다⁠.

*

왕가율은 토요일 오전 열한 시⁠, 현관 화면에 뜬 얼굴을 보고 숨을 멈췄다⁠. 담희가 두 살 아이를 안고 서 있었다⁠. 아이는 노란 우비를 입고 엄지를 빨고 있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었다⁠.

문을 열자 담희가 먼저 웃었다⁠. 웃음이 얼굴 반만 했다⁠.

“⁠정류장 간호사님이네요⁠. 12층이셨구나⁠.⁠”

“⁠들어오세요⁠.⁠”

“⁠아니에요⁠. 금방 갈게요⁠.⁠” 담희가 현관 문턱 앞에서 멈췄다⁠. 들어오지도 돌아서지도 않았다⁠. “⁠하나만 여쭤볼게요⁠. 언니네 집이 그 집이에요⁠? 취소된다는 집이요⁠.⁠”

가율은 거짓말을 고를 시간이 있었다⁠. 고르지 않았다⁠.

“⁠네⁠.⁠”

담희의 팔에 안긴 아이가 엄지를 입에서 빼고 가율을 보았다⁠. 담희가 아이를 고쳐 안았다⁠. 아이의 노란 장화 끝이 가율의 블라우스 단추에 스쳤다⁠.

“⁠진짜 부부 아니세요⁠?⁠”

“⁠처음엔 아니었어요⁠.⁠”

“⁠지금은요⁠?⁠”

가율은 대답하지 못했다⁠. 담희는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이가 몸을 비틀며 내려 달라고 칭얼거렸다⁠. 담희가 아이를 현관 바닥에 내려놓자 아이는 장화를 벗어 던지고 맨발로 문턱을 넘어 거실로 뛰어 들어갔다⁠. 문턱이 끼익 울었다⁠. 아이가 문턱 소리가 재미있다는 듯 꺅 웃고 거실 한가운데서 털썩 엎드렸다⁠. 바닥 난방이 들어온 마루에 볼을 댔다⁠.

“⁠엄마⁠, 바닥이 따뜻해⁠.⁠”

담희가 입을 막았다⁠. 가율은 담희의 손등 위로 눈물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담희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이가 마루에 두 팔을 벌리고 누워 헤엄치듯 팔다리를 저었다⁠. 반지하에서 무릎이 까매진다는 아이였다⁠.

“⁠제가 데려올게요⁠.⁠” 가율이 말했다⁠.

“⁠아니에요⁠. 조금만요⁠.⁠” 담희가 문틀을 붙잡았다⁠. “⁠일 분만 누워 있게 해 주세요⁠. 우리 애 마른 바닥에 누워 보는 거⁠, 어린이집 말고 처음이에요⁠.⁠”

둘은 현관에 서서 아이를 보았다⁠. 일 분이 지났다⁠. 이 분이 지났다⁠. 거실 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아이의 맨발바닥을 비췄다⁠. 깨끗한 발바닥이었다⁠.

“⁠저 신고 안 할 거예요⁠.⁠” 담희가 말했다⁠. 눈물을 닦지 않은 얼굴이었다⁠. “⁠언니 잡혀가는 거 제 손으로 하기 싫어요⁠. 근데 언니⁠. 나가 주세요⁠. 언니가 나가 주세요⁠. 제가 뺏는 거 말고⁠, 언니가 주는 걸로요⁠.⁠”

“⁠선생님⁠.⁠”

“⁠제 이름 담희예요⁠.⁠” 담희가 거실로 들어가 아이를 안아 올렸다⁠. 아이가 바닥에서 떨어지기 싫다고 울었다⁠. 담희는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현관으로 돌아왔다⁠. “⁠서담희요⁠. 다음에 오면 그렇게 불러 주세요⁠. 다음에 올 때는 제가 열쇠로 열 테니까요⁠.⁠”

문이 닫혔다⁠. 거실 마루에 아이의 볼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습기가 마루에 남긴 둥근 자국이었다⁠. 바닥 난방이 금방 지웠다⁠.

*

염서겸은 아이 웃음소리를 1204호 거실에서 들었다⁠. 꺅 하는 소리 뒤에 문턱이 끼익 울었다⁠. 처음 듣는 발소리였다⁠. 아주 가볍고⁠, 뒤꿈치가 바닥에 닿지 않는 발소리였다⁠. 서겸은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 홀에서 담희가 우는 아이를 안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담희가 서겸을 알아보았다⁠. 예비 입주자 설명회 때 단상 옆에 앉아 있던 얼굴이었다⁠.

“⁠조사관님⁠.⁠” 담희가 아이의 등을 두드렸다⁠. “⁠1203호⁠, 취소돼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담희가 웃었다⁠. 젖은 눈으로 웃었다⁠. “⁠저 그 집 원해요⁠. 오 년을 원했어요⁠. 근데요⁠, 이렇게 원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언니 얼굴 보고 나니까요⁠.⁠”

서겸은 대답 대신 1204호 신발장 위에 놓아 둔 편의점 봉지를 집어 왔다⁠. 따뜻한 보리차 두 병이 들어 있었다⁠. 아침마다 사 두고 마시지 않은 병이었다⁠. 서겸은 한 병을 담희에게⁠, 한 병을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병을 두 손으로 받았다⁠.

“⁠규정에 없는 거예요⁠.⁠” 서겸이 말했다⁠. “⁠식었을 수도 있어요⁠.⁠”

“⁠따뜻해요⁠.⁠” 담희가 병을 볼에 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담희가 타고 돌아섰다⁠. “⁠조사관님⁠, 언니한테 너무 모질게 하지 마세요⁠. 저 대신 화내 주시는 거면⁠, 저 그거 안 원해요⁠.⁠”

문이 닫혔다⁠. 서겸은 엘리베이터 홀에 혼자 서 있었다⁠. 센서등이 꺼졌다⁠. 서겸은 한 걸음을 움직여 불을 다시 켜지 않았다⁠.

*

옥다엽은 토요일 밤 열 시에 106동 1203호 초인종을 눌렀다⁠. 누르기 전에 엘리베이터 홀에서 스무 번쯤 돌았다⁠. 센서등이 켜졌다 꺼졌다 했다⁠. 맞은편 1204호 문 너머에서 누가 다엽의 발소리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다엽은 결국 운동화를 벗어 손에 들고 양말 바람으로 1203호 초인종 앞까지 갔다⁠.

가율이 문을 열었다⁠. 다엽은 손에 든 흰 운동화를 내려다보고⁠, 가율의 얼굴을 보고⁠,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언니⁠. 이거⁠.⁠”

거실 바닥에 셋이 둘러앉았다⁠. 건오가 생수를 가져왔다⁠. 다엽은 휴대전화를 마루 가운데 내려놓고 대화방 하나를 열었다⁠. 「⁠곽 실장님⁠」과의 대화였다⁠. 일 년 치였다⁠. 손가락으로 끝없이 올려도 끝이 나오지 않았다⁠.

“⁠여기 다 있어⁠. 누구랑 누구 이어 줬는지⁠, 계약금 언제 들어갔는지⁠, 실장님이 뭐라고 했는지⁠.⁠” 다엽이 화면을 한 군데에서 멈췄다⁠. 음성 메시지 하나였다⁠. “⁠이건 실장님이 실수로 보낸 거야⁠. 사장님이랑 같이 있을 때⁠.⁠”

재생 단추를 누르자 마루 위에서 낮은 목소리 둘이 흘러나왔다⁠. 곽 실장의 목소리가 먼저였다⁠. 「⁠다섯 집 다 계약 끝났습니다⁠, 사장님⁠.⁠」 다음 목소리가 웃었다⁠. 가율은 두 번째 목소리의 웃음을 귤 냄새보다 먼저 기억했다⁠. 「⁠잘했어⁠. 전매 풀리면 다섯 채 한꺼번에 거둬⁠. 늘해랑빌 애들 보증금이 집이 돼서 돌아오네⁠. 우리 새댁들 고생했다⁠.⁠」

음성이 끝났다⁠. 셋 다 한동안 마루만 보았다⁠. 건오가 생수병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

“⁠왜 가져왔어⁠?⁠” 가율이 물었다⁠.

“⁠어제 307호 언니가 전화했어⁠. 사장님이 보증금을 돌려준대⁠. 다섯 집 다⁠. 대신 진술서를 써 달래⁠.⁠” 다엽이 무릎을 끌어안았다⁠. “⁠대표님이 위장 결혼을 시켰다고⁠. 대표님이 다 짰다고⁠.⁠”

건오가 생수병을 내려놓았다⁠. 병이 마루 위에서 통 하고 울렸다⁠.

“⁠그 사람들이 써요⁠?⁠”

“⁠쓸 거야⁠. 보증금이잖아⁠. 이 년 동안 울었던 돈이잖아⁠.⁠” 다엽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렸다⁠. “⁠나한테도 쓰라고 했어⁠. 총무가 쓰면 제일 확실하다고⁠. 나 어제 밤새 진술서 앞에 앉아 있었어⁠. 이름까지 썼다가 찢었어⁠.⁠”

“⁠왜 찢었어⁠?⁠”

“⁠언니가 그랬잖아⁠. 예비 1번 선생님 아들 무릎이 까매진다고⁠.⁠” 다엽이 휴대전화를 가율 앞으로 밀었다⁠. “⁠그 말이 계속 생각났어⁠. 나는 착한 총무가 되고 싶었는데⁠, 착한 총무는 진술서 안 써⁠. 언니⁠, 하나만 부탁할게⁠. 모임에는 내 이름 말하지 말아 줘⁠.⁠”

가율이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화면 위에 손을 얹었다가⁠, 손을 거두었다⁠.

“⁠약속 못 해⁠.⁠” 가율이 말했다⁠. “⁠다엽아⁠, 나는 이제 거짓말 안 하기로 했어⁠. 이걸 쓰면 네 이름이 나와⁠. 내 이름도 나오고⁠.⁠”

다엽은 오래 가율을 보았다⁠. 그러다 휴대전화를 마루 위에 그대로 두고 일어섰다⁠. 흰 운동화를 손에 든 채 현관으로 갔다⁠.

“⁠그럼 그냥 둬⁠.⁠” 다엽이 말했다⁠. “⁠내 이름은 내가 말할게⁠. 언니 입으로 듣는 것보다 그게 나아⁠.⁠”

*

길건오는 자정에 현관 에어매트 위에서 노크 소리를 들었다⁠. 두 번⁠. 안방 문이 아니었다⁠. 신발장 문이었다⁠. 가율이 현관에 쪼그려 앉아 손가락 마디로 신발장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노크 두 번 규칙이요⁠.⁠” 가율이 말했다⁠. “⁠현관이 건오 씨 방이니까요⁠.⁠”

“⁠들어오세요⁠.⁠”

가율은 들어오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건오가 손을 잡자 가율이 건오를 일으켜 거실로 데려갔다⁠. 조절기 화면에 「⁠22⁠」가 떠 있었다⁠. 둘은 마루 한가운데 앉았다⁠. 오전에 아이가 엎드렸던 자리였다⁠.

“⁠담희 씨가 다음엔 열쇠로 열겠대요⁠.⁠” 가율이 말했다⁠. “⁠저 그 말 들으면서 화가 안 났어요⁠. 이상하죠⁠. 제 집인데 화가 안 났어요⁠.⁠”

“⁠제 집이 아니라서요⁠.⁠”

“⁠알아요⁠.⁠” 가율이 건오의 안경을 벗겼다⁠. 펜치로 편 다리가 아직 조금 비뚤었다⁠. 가율은 안경을 접어 마루 위에 내려놓았다⁠. “⁠근데 건오 씨는 제 거예요⁠. 그건 담희 씨 차례가 아니에요⁠.⁠”

건오는 맨눈으로 가율을 보았다⁠. 가까이 와서야 또렷해지는 얼굴이었다⁠. 가율이 더 가까이 왔다⁠. 이번에는 둘 다 물러날 틈을 남기지 않았다⁠. 입술이 닿고⁠, 가율의 손이 건오의 멍든 어깨를 피해 등으로 돌아갔다⁠. 건오는 가율의 블라우스 단추를 맨 위부터 하나씩 풀었다⁠. 손가락이 세 번째 단추에서 떨렸다⁠. 가율이 건오의 손을 잡아 네 번째 단추에 얹어 주었다⁠. 목걸이에 꿴 은반지가 둘의 가슴 사이에서 체온만큼 데워졌다⁠.

마루는 22도였다⁠. 둘의 등이 번갈아 마루에 닿았다⁠. 숨이 길어지고⁠, 숨 사이에 웃음이 한 번 섞였다⁠. 건오가 「⁠여보⁠」라고 불렀고⁠, 가율이 「⁠응⁠」이라고 대답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시청 복도에서도 하지 못한 대답의 높이였다⁠. 문턱은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아무도 현관에 가지 않았다⁠.

새벽 세 시⁠, 마루 위에 엎어 둔 가율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가율이 건오의 팔을 베고 누운 채 손을 뻗었다⁠. 「⁠늘해랑빌 보증금 모임⁠」이 아니었다⁠. 「⁠205호⁠」가 따로 보낸 문자였다⁠.

「⁠대표님 죄송해요⁠. 설 사장님이 보증금 돌려준대서요⁠. 저희 진술서 써요⁠. 307호 누나도요⁠. 대표님이 시켰다고 써야 돌려준대요⁠. 진짜 죄송해요⁠.⁠」

가율은 화면을 건오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건오는 이미 읽고 있었다⁠. 맨눈으로도 읽을 수 있을 만큼 화면이 가까웠다⁠. 건오의 팔 밑에서 마루가 여전히 따뜻했다⁠.

10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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