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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월세 지원 120유로
비교체험 유럽/한국 · 윤서각
2026년 10월 21일 수요일, 그리스 아테네.
아침 8시, 신타그마 광장 의회 앞 계단 아래에 텐트가 줄지어 있었다. 학생들은 13일부터 의회와 국가경제재무부 건물 앞에 텐트를 치고 잤다. 그리스 공산당이 학생들 편을 들었고, 20일 밤에는 광장에서 항의 콘서트가 열렸다. 빵을 나눠 먹던 학생들이 구호를 맞췄다. “그리스에서 프랑스까지, 우리는 공공의 무상 교육을 원한다.” 그리스 국립대학은 등록금이 없다. 한국 4년제 대학의 올해 평균 등록금은 727만 300원으로 1년 전보다 2.1% 올랐고, 192곳 가운데 130곳이 등록금을 올렸다. 텐트 앞의 한 학생이 한국 등록금을 듣더니 빵을 내려놓았다. “그 돈이면 우리는 4년 동안 월세를 내요. 한국 학생들은 왜 텐트를 안 쳐요?”
행진은 오전 11시에 시작됐다. 로이터는 아테네와 근교 집회에 1만 명가량이 모였다고 했고, AP는 아테네에만 적어도 5,000명이 모였다고 했다. 테살로니키와 파트라스에서도 학생들이 걸었다. 교사와 의사 일부가 일손을 놓고 합류해 학교와 병원이 흔들렸다. 교사 노동조합은 그리스 중등학교에 교사 1만 5,000명이 모자란다고 했다. 한국 교사들도 학교를 멈춘 적이 있다. 2023년 9월 4일, 서이초 교사의 죽음 뒤 전국의 교사들이 연가와 병가를 내고 국회 앞에 모였다. 그리스 교사는 모자란 동료를 채워 달라고 나왔고, 한국 교사는 교실에서 자신을 지켜 달라고 나왔다. 까닭이 다른 두 멈춤이다.
행렬의 한 학생은 AP 기자에게 정부의 월세 지원 120유로(약 17만 9천 원)가 한 달 월세의 절반도 안 되고, 그나마 한 해 끝에 한꺼번에 나온다고 했다. 로이터 집계로 그리스 평균 월급은 1,500유로(약 224만 원)쯤이다. 한국 정부는 2022년부터 부모와 떨어져 사는 무주택 청년에게 월세를 한 달 최대 20만 원까지 지원해 왔다. 2027년 한국 최저임금을 월로 바꾸면 223만 6,300원이다. 그리스의 평균 월급과 한국의 최저 월급이 거의 같다. 평균과 최저는 다른 잣대다. 같은 돈이 아테네에서는 보통 사람의 한 달이고, 서울에서는 가장 낮은 한 달이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는 그리스가 긴축 시절의 사회 불안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 다음 총선은 2027년 중반으로 예상된다. 6일 뒤인 10월 27일, 이재명 대통령도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청년을 짚었다. 대통령은 한국 경제가 지표로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민생 회복은 더디고, 「기회의 총량 부족」으로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아테네 총리는 지난 시절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고, 서울 대통령은 숙제를 먼저 말했다.
처방도 나란히 놓는다. 소피아 자하라키 교육부 장관은 학생들의 걱정을 듣고 있다며, 학생 주거와 학교 시설 개선 사업에 7억 3,300만 유로(약 1조 900억 원) 넘게 쓰고 정규 교사도 뽑아 왔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2027년 고용노동부 예산안에서 청년 일자리 예산을 올해 2조 6천억 원에서 3조 3천억 원으로 7천억 원 늘렸다. 일 경험 과정 「K-뉴딜 아카데미」를 1만 명에서 5만 명으로 늘리고, 일한 적 없는 청년을 돕는 청년 첫취업 지원제도에 3,793억 원을 새로 넣었다. 인공지능 훈련을 마친 청년을 뽑는 회사를 돕는 사업도 750명 규모로 처음 생긴다. 그리스는 학생이 살 방과 배울 교실을 고치고, 한국은 청년이 첫발을 디딜 일터의 입구를 넓힌다. 지우가 파리에서 메시지를 보냈다. 「이름에 뉴딜이 들어가니까 든든하네요. 루스벨트가 이력서도 봐 주나요?」
그리스의 기억은 긴축이다. 2009년 시작된 빚 위기는 2018년 8월 구제금융 졸업까지 이어졌다. 2012년 그리스는 최저임금을 22%, 스물다섯 살 아래는 32% 깎았다. 텐트의 대학생들은 2012년에 초등학생이었다. 한국 최저임금은 1988년 처음 생긴 뒤 한 번도 내려간 적이 없다. 한국 청년에게도 어두운 시기가 있었다. 한국은행은 2014~2019년을 청년 실업률이 9%대로 높았던 가장 가까운 고용 침체기로 꼽는다. 그리스 청년은 월급이 깎이는 것을 보며 컸고, 한국 청년은 월급은 그대로인데 자리가 모자란 것을 보며 컸다.
유럽연합 통계청 숫자로 그리스는 2023년 교육에 국내총생산의 3.3%를 썼고, 유럽연합 평균은 4.7%였다. OECD 교육지표 2026에서 한국의 2023년 초등부터 고등교육까지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1만 8,256달러로 OECD 평균 1만 6,075달러를 넘었다. 대학만 떼어 보면 한국은 평균의 72%에 머문다. 잣대가 다르다. 그리스 숫자는 나라 경제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몫이고, 한국 숫자는 학생 한 사람에게 간 돈이다. 아테네의 큰 학교 단지 하나는 가스 누출 소동으로 두 주 가까이 문을 닫아 학생 4,000명이 집에 머물렀다.
그리스가 오래 가진 장점은 헌법에 있다. 그리스 헌법 제16조는 모든 그리스 사람이 국립 교육기관에서 모든 단계의 무상 교육을 받을 권리를 적는다. 대학은 오랫동안 국립만 허용됐고, 2024년에야 국립이 아닌 대학을 여는 법이 통과됐다. 한국 헌법 제31조는 의무교육을 무상으로 한다고 적지만, 대학은 이 조항 밖에 있다. 한국 대학의 학비는 헌법 대신 가계가 맡아 왔다. 광장의 법대생은 헌법 조문을 외워 보였다. “학비는 헌법에 있는데 방값은 헌법에 없어요. 그래서 헌법 앞에서 자요.” 학생이 가리킨 텐트는 정말로 의회 정문을 보고 있었다.
점심 무렵 민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배달 사이에 트럭을 세워 둔 참이라고 했다. “누나, 그리스 애들은 등록금도 안 내는데 왜 나와?” “방값이랑 일자리.” “아, 그건 우리도 똑같네. 방값은 내가 내고 일자리는 내가 찾지.” 민수는 3년 전 첫 직장 공채에서 세 번 떨어지고 택배 일을 시작했다. 나는 동생의 공채 이야기를 데스크에 한 번도 하지 않았다. 9월 한국 15~29세 고용률은 44.0%로 1년 전보다 1.1%포인트 내려 29개월 연속 떨어졌다. 청년 취업자는 14만 7천 명 줄어 47개월째 줄었고, 실업률은 5.4%로 9월 기준 4년 만에 가장 높았다. 유럽연합의 스물다섯 살 아래 실업률은 7월 15.1%였다.
숫자 하나로 끝내지 않는다. 한국 청년 고용률 내림은 2024년 5월에 시작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보다 13개월 앞이다. 그리스 청년의 겨울도 정부 하나보다 길었다. 2009년 위기가 시작된 뒤 2018년 졸업까지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에서 알렉시스 치프라스까지 총리가 여러 번 바뀌었다. 두 나라 모두 지금 정부가 시작하지 않은 숫자를 지금 정부가 받아 들었다. 다른 것은 깊이다. 그리스는 나라 살림이 무너졌고, 한국은 나라 살림이 넉넉한데 청년 자리가 줄었다.
무엇이 밀어 내렸는지는 반도체에서 시작한다. 한국은행은 10월 26일 보고서에서 반도체 호황이 사상 최대인데도 고용을 끌어내는 힘이 낮아 새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IT 제조업 중심의 산업 재편이 상용직 일자리를 덜 만들고, 임시·일용직 비중은 가파르게 늘었다. 1차 노동시장에 들어가지 못한 청년이 눈높이를 낮춰 2차 시장으로 내려가 갇히는 현상도 강해진다고 했다. 반도체는 법인세로 나라 곳간을 채웠고, 사람은 적게 뽑았다. 그리스 젊은이는 다른 길로 빠져나갔다. 유럽연합 통계청 숫자로 2010년부터 2021년까지 그리스 국적자 59만 2,200명이 나라를 떠났다. 그리스 청년은 국경 밖으로 나갔고, 한국 청년은 노동시장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인공지능은 신입의 자리부터 건드린다. 한국은행이 8월 18일 낸 보고서를 보면 2022년 6월부터 2026년 6월까지 15~29세 일자리는 28만 5천 개 줄었고, 이 가운데 26만 8천 개(94.0%)가 인공지능에 많이 노출된 업종에서 사라졌다.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3만 개 늘었다. 챗GPT가 나온 2022년 11월 뒤 대졸 청년 실업률은 평균 7.0%로 전문대졸 이하 5.4%보다 1.6%포인트 높아졌다. 한국은행은 인공지능 하나만 탓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유럽연합 통계청 조사로 2025년 직원 열 명 넘는 유럽연합 기업의 20.0%가 인공지능을 썼고, 1년 전 13.5%에서 빠르게 늘었다. 유럽은 인공지능을 쓰는 회사를 세고, 한국은 인공지능 곁에서 사라진 청년 자리를 셌다.
좋아 보이는 숫자도 있다. 9월 20대 「쉬었음」은 1년 전보다 5만 1천 명(12.8%) 줄었다. 그러나 같은 달 20대 취업자가 17만 명 줄고 경제활동참가율이 0.6%포인트 내려, 쉬던 청년이 일터로 돌아왔다고 읽기는 어렵다. 9월부터 새로 내는 15~34세 통계에서 고용률은 56.1%로 0.4%포인트만 내려, 나이 구간을 넓혀 나빠짐이 작아 보이는 착시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리스는 돌아오는 사람을 센다. 아키스 스케르토스 국무장관은 2010년부터 2024년까지 그리스 사람 77만 3,296명이 떠나고 47만 3,044명이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스는 돌아온 사람이 신호이고, 한국은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신호다.
유럽과 한국은 같은 자리에서 다른 병을 앓는다. 유럽연합 스물다섯 살 아래 실업률 15.1%는 일자리 숫자부터 모자라다는 신호다. 한국 15~29세 실업률 5.4%는 그보다 낮지만, 나이 구간이 다르다. 한국 숫자에는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스물다섯에서 스물아홉 살이 들어 있다. 같은 잣대로 맞추면 차이는 줄어든다. 그래도 한국의 병은 숫자보다 첫 자리의 질과 끊긴 사다리에 있다. 한국은행은 노동 수요가 살아나도 청년 고용이 늦게 나아지는 이력 현상을 걱정했다. 유럽은 문이 적고, 한국은 문 너머의 계단이 끊겼다.
2011년 8월 런던에서는 경찰 총격 사건 뒤 폭동이 번지고 상점이 털렸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8월 9일 쓴 글에서 이를 배고픈 사람의 빵 폭동이 아닌, 소비 사회에서 「결함 있고 자격을 잃은 소비자들의 폭동」이라고 불렀다. 남들이 가진 물건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의 굴욕이 진열장으로 향했다는 해석이다. 해석이 범죄를 덜어 주지는 않는다. 상점을 터는 일은 범죄다. 한국 청년의 막힘은 진열장 대신 통계로 나온다. 한국은행이 말한 2차 시장 고착과 늘어난 임시·일용직이 서울 청년이 받은 문 닫힘의 모양이다. 런던과 서울은 같은 일이 아니다. 같은 것은 첫 문 앞에서 돌려보내진 젊은 사람이 있다는 것뿐이다.
저녁에 박성훈 차장의 메시지가 왔다. 「한국 쪽 사례 하나 붙여. 청년 얼굴이 있어야 읽힌다.」 나는 민수의 이야기를 세 줄 썼다가 지웠다. 공채 세 번, 택배 3년, 하루 경유 2만 원. 동생의 얼굴은 동생 허락 없이 기사에 쓸 수 없었다. 나는 「사례는 다음 회에」라고 보냈다가 그것도 지우고 「한국은행 숫자로 갑니다」라고 고쳐 보냈다. 박 차장은 「숫자도 얼굴이다」라고 답했다. 그리스 학생들은 21일 밤에도 텐트를 지켰다. 나는 빈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음 날 빈에서는 대학 예산 삭감에 맞선 학생 행진이 열리고, 서울에서는 2027년 연구개발 예산 39조 5천억 원이 국회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