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340자)

마드리드, 일흔 해의 집

비교체험 유럽/한국 · 윤서각

2026년 10월 7일 수요일⁠, 스페인 마드리드⁠.

저녁 7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의 텐트 사이로 확성기 소리가 지나갔다⁠. 마드리드 세입자 노동조합이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이 그레고리오 마라뇬 병원에서 숨졌다고 알렸다⁠. 여든일곱 살이었다⁠. 텐트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손뼉을 쳤고⁠, 몇몇은 울었다⁠. 광장 바닥의 판지에는 「⁠마리카르멘은 남는다⁠」는 글씨가 아직 그대로였다⁠. 같은 9월 말까지 한국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세입자는 누적 4만 1⁠,559건이었다⁠. 마드리드는 노인 한 사람의 얼굴로 광장을 채웠고⁠, 한국은 4만 건 넘는 사연을 위원회 서류로 쌓았다⁠.

아바스칼은 레티로 구 알칼데 사인스 데 바란다 거리의 집에서 1956년부터 살았다⁠. 아버지가 임대차 계약에 서명한 해다⁠. 매체에 따라 70년이라고도 하고 71년이라고도 한다⁠. 건물 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고⁠, 2018년 부동산 회사 우르바헤스티온이 건물을 샀다⁠. 아바스칼은 1심에서 이겼지만 마드리드 항소법원이 판결을 뒤집었고⁠, 대법원도 집주인 손을 들었다⁠. 9월 23일 네 번째 집행 시도에서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어갔고⁠, 아바스칼은 들것에 실려 나왔다⁠. 유엔이 집행을 미뤄 달라고 요청한 뒤였다⁠. 한국 세입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2년 계약을 한 번 더 갱신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법이 지켜 주는 기간은 길어야 4년이다⁠.

세입자 노동조합은 아바스칼의 월세가 275% 올라 2⁠,650유로(⁠약 395만 원⁠)가 됐다고 밝혔다⁠. 앞서 건물을 가졌던 회사는 아바스칼에게 집을 24만 7⁠,000유로(⁠약 3억 6⁠,800만 원⁠)에 사라고 내놓기도 했다⁠. 한국은 2020년 7월부터 갱신 계약의 보증금과 월세를 5%까지만 올리게 했다⁠. 집주인이나 가족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하면 갱신을 거절할 수 있고⁠, 5% 상한은 갱신할 때만 적용된다⁠. 마드리드의 275%는 한국 갱신 계약이라면 법에 막힌다⁠. 새 계약이라면 한국에도 천장은 없다⁠.

텐트촌의 젊은 사람들은 노인보다 자기 방 이야기를 먼저 했다⁠. 텐트를 지키던 페드로는 유로뉴스에 마드리드에서는 일자리가 있어도 집을 빌릴 수 없고⁠, 집 한 채를 방으로 쪼개 따로 세를 놓는 바람에 값이 더 뛴다고 했다⁠. 보증금과 소득 증명을 겹겹이 요구하는 중개소도 있다⁠. 서울의 세입자도 같은 가을에 오름세를 겪었다⁠. KB부동산 10월 조사에서 서울 강북 14개 구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 281만 원으로 처음 6억 원을 넘었고⁠, 올해 들어서만 11⁠.16% 올랐다⁠. 마드리드 젊은이는 방을 쪼갠 월세에 밀리고⁠, 서울 젊은이는 목돈 보증금에 밀린다⁠. 텐트 옆에서 휴대전화로 매물을 넘기던 간호사가 말했다⁠. “⁠방 하나에 침대 둘이면 싸다고 광고해요⁠. 사람을 접어서 넣으라는 거죠⁠.⁠”

공공이 가진 집은 스페인의 오랜 약점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스페인 사회주택이 전체 주택의 1⁠.5%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보호 주택까지 넓혀 세어도 3⁠.4%쯤이고⁠, 유럽연합 평균은 8% 안팎이다⁠. 스페인 정부는 4월 2026⁠~2030년 주택 계획을 승인하며 돈의 40%가량을 공공 주택 늘리기에 쓰기로 했다⁠. 한국 정부는 2024년 말 장기 공공임대 재고율을 8⁠.4%로 집계해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7⁠.1%보다 높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경실련은 민간 소유 전세임대를 빼고 공공이 가진 집만 세면 4⁠~5%대라고 반박한다⁠. 어느 잣대로 재도 한국의 공공 임대는 스페인보다 두꺼웠다⁠.

광장 텐트촌은 9월 26일에 생겼다⁠. 2011년 5월 같은 광장을 채운 「⁠분노한 사람들⁠」의 15-M 운동에 견주는 사람이 많았다⁠. 텐트촌에는 밥 나누는 곳과 의료 천막⁠, 자원봉사 변호사의 법률 상담⁠, 작은 도서관⁠, 청소 위원회까지 있었다⁠. 자원봉사자 나초는 일주일 뒤 유로뉴스에 “⁠우리는 돈을 받지 않는다⁠. 여기 있는 것은 모두 사람들이 가져다준 것⁠”이라고 했다⁠. 2024년 12월 여의도에서도 시민들이 근처 식당과 카페에 음식값을 미리 내 두고 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먹게 했다⁠. 마드리드 시민은 물건을 들고 왔고⁠, 서울 시민은 계산부터 해 두었다⁠.

마드리드 자치 정부는 텐트촌을 걷어 내려 했다⁠. 10월 5일 마드리드 고등법원은 자치 정부의 철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치 정부 대변인 미겔 앙헬 가르시아 마르틴은 대법원까지 “⁠모든 법적 수단⁠”을 쓰겠다고 했다⁠. 마드리드 시청은 해마다 가을 도심으로 양 떼를 몰고 지나가는 목축 축제의 길을 텐트촌을 피해 돌릴지 따졌다⁠. 한국 법원도 광장 편을 든 적이 있다⁠. 2016년 11월 서울행정법원은 경찰의 행진 금지 통고를 멈추고 청와대 가까운 길까지 행진을 허락했다⁠. 마드리드 법원은 텐트를⁠, 서울 법원은 행진을 남겼다⁠. 지우가 전화로 물었다⁠. “⁠양 떼가 텐트를 피해 간다고요⁠? 한국이면 양 떼도 집회 신고부터 해야 해요⁠.⁠”

텐트촌을 만든 것은 정부의 약속이기도 했다⁠. 9월 29일 스페인 각료회의는 2030년까지 퇴거를 막고⁠, 임대 계약을 저절로 갱신하고⁠, 단기 임대를 규제하고⁠, 헐값에 부동산을 사들이는 이른바 「⁠독수리 펀드⁠」의 주택 매입을 막는 법령을 승인했다⁠. 펠릭스 볼라뇨스 법무부 장관은 엑스에 “⁠세입자와 작은 집주인에게는 좋은 날⁠, 투기꾼에게는 나쁜 날⁠”이라고 썼다⁠. 모니카 가르시아 보건부 장관은 텐트촌에 고맙다고 했다⁠. 한국은 2023년 6월 전세사기 피해자 특별법을 시행했고⁠,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피해 주택을 사들여 세입자가 계속 살게 했다⁠. 9월 말까지 사들인 집은 1만 1⁠,148가구다⁠.

법령은 하원을 넘지 못했다⁠. 10월 첫 주 표결에서 두 법령은 178 대 172⁠, 184 대 166으로 부결됐다⁠. 중도우파 국민당과 극우 복스⁠, 카탈루냐 독립파 정당 훈츠가 반대표를 던졌다⁠. 한국 국회와 정부도 세입자 보호법을 두고 부딪쳤다⁠. 2024년 5월 당시 대통령은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국회로 돌려보냈고⁠, 여야는 2024년 11월에야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경매 차익으로 피해자를 돕는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마드리드에서는 의회가 정부를 막았고⁠, 서울에서는 정부가 국회를 막았다가 반년 뒤 다시 합의했다⁠.

10월 5일 월요일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몽클로아 총리실에서 의회를 해산하고 11월 29일 조기 총선을 치른다고 발표했다⁠. 임기를 아홉 달쯤 앞당긴 결정이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국민당과 복스는 하원 350석 가운데 200석 넘게 얻는 것으로 나온다⁠. 한국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없다⁠. 1987년 헌법이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없앴고⁠, 다음 국회의원 선거는 2028년 4월이다⁠. 스페인은 법이 막히면 선거로 묻고⁠, 한국은 법이 막히면 다음 선거까지 국회에서 협상한다⁠.

아바스칼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9월 28일 마드리드 시청의 중재로 집에 다시 들어가게 하는 합의가 나왔지만⁠, 9일 뒤 숨졌다⁠. 스페인 통계청 조사로 2025년 65세 이상의 빈곤·사회적 배제 위험률은 19⁠.2%다⁠. 한국 66세 이상의 상대적 빈곤율은 2024년 37⁠.7%로⁠, 10월 1일 국가데이터처가 낸 고령자 통계에 실렸다⁠. 스페인 숫자는 중위소득의 60% 아래에 물질적 결핍까지 넣은 넓은 잣대이고⁠, 한국 숫자는 중위소득의 50% 아래만 세는 좁은 잣대다⁠. 넓게 잰 스페인보다 좁게 잰 한국이 두 배 가까이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한눈에 보는 연금 2025⁠」에서도 한국 노인 소득 빈곤율은 39⁠.7%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파리의 미경이 지우와 함께 영상 통화를 걸어 왔다⁠. 스페인 연금은 2021년에 고친 법에 따라 해마다 물가만큼 오른다⁠. 한국 국민연금도 해마다 전년 물가만큼 오른다⁠. 다른 것은 내는 돈이다⁠. 한국 국회는 2025년 3월 연금법을 고쳐 보험료율을 9%에서 해마다 0⁠.5%포인트씩 13%까지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3%로 정했다⁠. 올해 1월 보험료율이 9⁠.5%가 됐다⁠. 미경이 말했다⁠. “⁠나는 프랑스 연금 받고 한국 연금도 받을 거야⁠. 둘 다 쥐꼬리지만 꼬리가 두 개야⁠.⁠” 지우가 받았다⁠. “⁠사장님⁠, 꼬리 두 개면 구미호까지 일곱 개 남았어요⁠.⁠” 미경은 고추장 값을 올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연금을 못 부은 노인을 받치는 장치도 두 나라에 다 있다⁠. 스페인은 1990년 법으로 보험료를 내지 못한 노인과 장애인에게 주는 무기여 연금을 만들었다⁠. 한국은 2014년 7월 기초연금을 만들었고⁠, 2027년 예산안에서 기초연금 예산을 11% 늘리며 소득에 따라 지급액을 달리하고 저소득 노인 부부의 감액을 줄이기로 했다⁠. 노인 일자리는 115만 2천 개에서 118만 개로 늘린다⁠. 대한은퇴자협회는 같은 기간 65세 이상이 47만 명(⁠4⁠.2%⁠) 느는데 일자리는 2⁠.4% 느는 데 그친다고 지적했다⁠.

스페인이 오래 가진 장점은 헌법에 적혀 있다⁠. 1978년 스페인 헌법 제47조는 모든 스페인 사람이 품위 있고 알맞은 집에서 살 권리를 밝히고⁠, 공권력이 투기를 막도록 땅의 쓰임을 정하라고 한다⁠. 한국 헌법 제35조도 국가가 주택개발정책 등으로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적는다⁠. 두 헌법이 같은 약속을 했다⁠. 스페인 헌법은 투기라는 낱말까지 넣었고⁠, 한국 헌법은 노력이라는 낱말에서 멈췄다⁠. 광장의 한 대학생은 문고판 헌법을 펼쳐 47조에 형광펜을 그어 두었다⁠. “⁠선생님들이 이 조항은 시험에 안 나온대요⁠. 그래서 광장에서 외워요⁠.⁠”

스페인의 넉넉함이 무엇에 기대 왔는지도 적는다⁠. 스페인은 1898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필리핀을 잃으며 바다 건너 제국의 마지막 조각을 내려놓았다⁠. 20세기 뒤쪽의 넉넉함은 유럽에서 왔다⁠. 1986년 유럽공동체에 들어간 스페인은 낙후 지역을 돕는 유럽 기금으로 고속도로와 철도를 깔았다⁠.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에 들어갔고⁠, 이듬해 외환 위기를 맞았다⁠. 스페인은 이웃 나라들이 함께 낸 돈으로 길을 닦았고⁠, 한국은 가입하자마자 빌린 돈을 갚는 법부터 배웠다⁠.

광장의 기억은 무너짐에서 시작한다⁠. 스페인 집값 거품은 2008년에 터졌고⁠, 2011년 5월 푸에르타 델 솔의 첫 텐트는 실업과 빚 위에서 생겼다⁠. 2012년 6월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스페인 은행을 살리려고 최대 1⁠,000억 유로의 신용을 열었고⁠, 스페인은 이 가운데 410억 유로쯤을 썼다⁠. 한국은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을 받았고⁠, 은행과 기업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열다섯 해 뒤 같은 광장에 다시 텐트를 친 마드리드 사람들은 이번에는 은행 대신 집주인에게 화를 냈다⁠.

밤 11시⁠, 박성훈 차장이 전화했다⁠. “⁠70이냐 71이냐⁠.⁠” “⁠영국 공영방송은 1956년 계약이라고 썼어요⁠. 9월이면 70년이고⁠, 어떤 매체는 71년이라고 했어요⁠.⁠” “⁠제목은 일흔 해로 가⁠. 본문에 둘 다 써⁠.⁠” 박 차장은 한국 숫자를 하나 더 붙이라고 했다⁠. 서울 아파트값은 2025년 2월부터 한 주도 쉬지 않고 오르고 있었다⁠. 나는 리스본행 표를 끊었다⁠. 10월 10일 리스본과 포르투에서 집값 행진이 열린다고 했다⁠. 광장을 떠날 때 누군가 아바스칼의 사진 앞에 카네이션 한 송이를 놓았다⁠. 포르투갈 혁명의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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