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535자)

밀라노, 노 멜로니 데이

비교체험 유럽/한국 · 윤서각

2026년 10월 16일 금요일⁠, 이탈리아 밀라노⁠.

아침 9시 반⁠, 밀라노 국립대학 본관 앞 페스타 델 페르도노 거리에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맨 앞 현수막에는 「⁠Nessuno è straniero⁠」⁠, 여기 외국인은 없다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학생들이 맞선 것은 한 반에 외국인 학생을 30%까지만 두게 한 정부의 새 법령이었다⁠. 같은 해 8월 한국 교육부의 교육기본통계에서 초중고 이주배경학생은 역대 가장 많았다⁠. 1년 전 집계로 20만 2⁠,208명⁠, 전체 학생의 4⁠.0%였다⁠. 이탈리아는 반마다 비율에 뚜껑을 씌우고⁠, 한국은 늘어나는 숫자를 해마다 따로 센다⁠. 행렬 옆에서 밀라노 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 윤태오가 손을 흔들었다⁠. “⁠저도 여기선 외국인이에요⁠. 우리 성악 수업은 열 명 중 넷이 한국 사람이라 벌써 30%를 넘었어요⁠. 법대로면 한 명은 나가야 해요⁠.⁠”

이탈리아 경제 일간지 일 솔레 24 오레는 이날 마흔 곳 넘는 광장에서 학생 수만 명이 걸었다고 전했다⁠. 밀라노 광장에만 적어도 3⁠,000명이 모였다⁠. 교육부가 낸 잠정 전국 참여율은 1⁠.08%였다⁠. 주세페 발디타라 교육부 장관은 로마 교육부 청사로 폭죽이 날아든 것을 두고 “⁠우리가 본 것은 민주적 반대의 표현도⁠, 정당한 항의도 아니다⁠”라며 정치적 훌리건 짓이라고 했다⁠. 서울의 박성훈 차장이 메시지를 보냈다⁠. 「⁠1⁠.08%면 한국으로 몇 명이냐⁠.⁠」 한국 유·초·중등 학생은 올해 536만 2⁠,281명으로 1년 전보다 3⁠.4% 줄었다⁠. 1⁠.08%를 곱하면 5만 8천 명쯤 된다⁠. 박 차장은 곧장 답했다⁠. 「⁠잠실 야구장 두 번은 차네⁠. 제목 된다⁠.⁠」 나는 「⁠야구장 말고 교실이요⁠」라고 보냈다⁠.

오전 행렬에는 비닐봉지에 회반죽 조각을 담아 든 학생이 있었다⁠. 봉지에는 매직으로 「⁠우리 교실 천장⁠」이라고 이탈리아어로 적혀 있었다⁠. 시민단체 치타디난차티바가 9월 9일 하원에서 낸 보고서를 보면 2025년 9월부터 2026년 8월까지 이탈리아 학교에서 천장과 벽이 무너진 일이 68건이었고⁠, 학생 8명을 포함해 12명이 다쳤다⁠. 학교 건물 3만 9⁠,351동의 평균 나이는 60년에 가깝고⁠, 59%는 사용 승인서도 소방 증명서도 없다⁠. 한국은 2024년 국회 교육위원회 의원실 집계로 초중고 건물 6만 1⁠,251동 가운데 23⁠.72%인 1만 4⁠,531동이 40년을 넘었다⁠. 한국 정부는 2021년부터 5년 동안 18조 5천억 원을 들여 낡은 건물 2⁠,835동을 고쳐 짓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을 했다⁠.

학생들의 요구는 넷이었다⁠. 외국인 학생 상한 법령을 거둘 것⁠, 집에 130억 유로(⁠약 19조 4천억 원⁠)를 쓸 것⁠, 기술·직업 고등학교 개편을 멈출 것⁠, 생활비 위기를 끝낼 것⁠. 한국 정부가 집에 내놓은 처방은 공급이다⁠. 지난해 9월 7일 대책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 가구를 착공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직접 짓게 했다⁠. 이탈리아 학생은 정부에 돈을 내놓으라고 하고⁠, 한국 정부는 땅과 공사 일정을 내놓았다⁠. 태오가 말했다⁠. “⁠밀라노 방값 얘기는 하지 마세요⁠. 저는 발성 연습을 옷장 안에서 해요⁠. 방이 옷장만 해서 소리가 잘 울려요⁠.⁠”

이날은 청소년 기후 운동 「⁠미래를 위한 금요일⁠」의 세계 기후 파업 날이기도 했다⁠. 행렬 뒤쪽에서 중학생들이 녹아내리는 지구를 그린 판지를 들었다⁠. 한국 청소년들은 기후를 들고 법정으로 갔다⁠. 2024년 8월 29일 한국 헌법재판소는 청소년들이 낸 기후 소송에서 2031년 뒤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지 않은 탄소중립기본법 조항이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보고⁠, 2026년 2월 28일까지 법을 고치라고 했다⁠. 밀라노 중학생들은 거리에서 지구를 들고⁠, 한국 청소년들은 법정에서 기한을 받아 냈다⁠.

오후 행진은 대체로 조용히 끝났다⁠. 학생들은 국립대학 뒤편 옛 영안실 건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비어 있는 건물을 차지해 모임 장소로 쓰는 것은 이탈리아 학생들이 오래 써 온 방식이다⁠. 한국 대학생들도 건물을 차지한 적이 있다⁠. 2024년 11월 서울 동덕여대 학생들은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맞서 본관을 점거했다⁠. 밀라노 학생들은 버려진 건물을 골랐고⁠, 동덕여대 학생들은 학교의 심장인 본관을 골랐다⁠. 영안실 문 앞에서 한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한국 학생들은 왜 거리에 안 나와요⁠?⁠” 나는 수능까지 34일 남았다고 답했다⁠. 학생은 34일이면 시위를 세 번은 한다고 했다⁠.

나는 저녁 기차로 파리에 돌아왔다⁠. 다음 날 레퓌블리크 광장에 서 있을 때 태오의 메시지가 연달아 왔다⁠. 10월 17일 밀라노 시내 행진은 평화롭게 시작했다⁠. 복면을 쓴 무리가 경찰에게 돌과 보도블록을 던지고⁠, 술집 탁자로 쌓은 바리케이드에 불을 붙였다⁠. 두오모 광장이 비었고⁠, 명품 상점이 늘어선 아케이드의 가게들이 털렸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가스를 쏘았다⁠. 이탈리아 통신사 라프레세는 경찰 2명이 다치고 시위대 50명가량이 붙잡혔으며⁠, 미성년이 많았다고 전했다⁠. 진열장을 깨고 물건을 가져가는 일은 어느 나라 법으로도 범죄다⁠. 한국 집시법 제5조도 집단 폭행이나 손괴⁠, 방화로 공공의 안녕 질서를 직접 위협할 것이 명백한 집회를 금지한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엑스에 “⁠시위는 권리다⁠. 우리 도시에 불을 지르는 것은 권리가 아니다⁠”라고 쓰고⁠, 혼란을 퍼뜨리려 시위를 이용하는 훌리건을 탓했다⁠. 중도좌파인 주세페 살라 밀라노 시장은 “⁠시위의 이유는 이해할 만하다⁠”고 했다⁠. 이어 각료회의는 폭력 소요에 2년에서 5년 징역과 2만 유로(⁠약 3천만 원⁠)까지 벌금을 매기는 치안 법령을 통과시켰다⁠. 한국 형법 제115조 소요죄는 여럿이 모여 폭행이나 협박⁠, 손괴를 한 사람에게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매긴다⁠. 이탈리아는 불탄 밤 뒤에 새 법령을 냈고⁠, 한국은 1953년에 만든 형법에 이미 같은 줄을 그어 두었다⁠.

국방에서 두 나라는 같은 방향을 본다⁠. 2025년 6월 헤이그 나토 정상회의에서 이탈리아를 비롯한 회원국은 2035년까지 국방에 국내총생산의 5%를 쓰겠다고 약속했다⁠. 핵심 국방비가 3⁠.5%⁠, 기반 시설과 사이버 같은 관련 지출이 1⁠.5%다⁠. 한국은 2025년 11월 한미 공동 설명자료에서 국방비를 국내총생산의 3⁠.5%로 늘리겠다고 밝혔고⁠, 정부 안의 목표 시점은 2035년이다⁠. 2027년 국방예산은 73조 3천억 원으로 8⁠.2% 늘어 처음 70조 원을 넘었다⁠. 한국은 2030년까지 미국 무기 250억 달러어치를 사겠다고도 했다⁠. 동맹국 미국이 내민 숫자를 두 나라가 같은 해에 받아 들었다⁠.

박 차장의 제목은 저녁 전에 왔다⁠. 「⁠총이냐 학교냐⁠.⁠」 치타디난차티바가 학교 안전에 달라고 한 돈은 3년 동안 30억 유로(⁠약 4조 5천억 원⁠)였다⁠. 이탈리아 정부가 이 돈에 어떻게 답할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한국은 같은 2027년 예산안에서 국방을 8⁠.2% 늘리고⁠, 시도 교육청에 내려보내는 교육재정교부금도 7조 2천억 원 늘렸다⁠. 둘을 함께 늘릴 여력은 반도체가 키워 놓은 세수에 있었다⁠. 나는 답을 보냈다⁠. 「⁠한국은 총도 학교도요⁠.⁠」 박 차장이 고쳐 보냈다⁠. 「⁠그럼 이탈리아는 총부터⁠.⁠」 「⁠이탈리아가 총부터 골랐다는 증거는 없어요⁠. 약속만 있어요⁠.⁠」 박 차장은 한참 뒤에 「⁠물음표 붙인다⁠」라고만 보냈다⁠.

기름값에서는 두 정부의 손이 반대로 갔다⁠. 이탈리아의 한시 경유세 할인은 10월 초에 끝났다⁠. 유럽 연료 가격 집계 사이트는 10월 10일 이탈리아 경유 평균을 리터당 2⁠.25유로(⁠약 3⁠,356원⁠)로⁠, 9월 27일 꼭대기를 2⁠.38유로(⁠약 3⁠,550원⁠)로 적었다⁠. 한국 정부는 9월에 유류세 인하를 11월 30일까지 다시 늘렸다⁠. 휘발유는 15%⁠, 경유는 25%를 깎고⁠, 대신 세수 1조 2천억 원이 줄어든다는 전망을 받아들였다⁠. 이탈리아는 할인을 끝내 놓고 기사들과 협상하고⁠, 한국은 할인을 이어 가며 끝나는 날을 미뤘다⁠.

물가에 찍힌 숫자도 다르다⁠. 이탈리아 경제지 이탈리아오지는 유럽연합 통계청 숫자를 들어 9월 이탈리아 연료값이 1년 전보다 26⁠.7%⁠, 유럽연합 전체로는 31⁠.4% 올랐다고 전했다⁠. 같은 9월 한국 소비자물가에서 석유류는 14⁠.8%⁠, 경유는 20⁠.0% 올랐다⁠. 이탈리아 숫자는 연료를 한 묶음으로 쟀고⁠, 한국 숫자는 석유류와 경유를 나눠 쟀다⁠. 묶음이 조금 달라도 같은 달 같은 1년 비교에서 이탈리아 연료의 오름폭은 한국 석유류의 두 배에 가까웠다⁠.

같은 16일 자정⁠,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의 화물 기사들이 운행을 멈췄다⁠. 파업은 캄파니아와 풀리아⁠, 시칠리아로 번졌고⁠, 20일에는 나폴리의 슈퍼마켓 진열대와 주유기가 비었다⁠. 남부 기사들은 아직 돈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부가 3월부터 8월까지 경유값을 메워 주려고 떼어 둔 4억 3⁠,480만 유로(⁠약 6⁠,500억 원⁠)는 신청서 3만 1천 건 앞에서 멈춰 있었고⁠, 9⁠~10월 몫 세액공제 1억 2⁠,640만 유로는 2027년에야 나온다⁠. 한국 영업용 화물차 기사는 유류구매카드로 기름을 넣는 순간 유가보조금을 덜고 돈을 낸다⁠. 민수가 메시지를 보냈다⁠. 「⁠누나 나도 카드 긁으면 바로 빠짐⁠. 이탈리아는 내년에 준대⁠? 내년이면 차 바꿨겠다⁠.⁠」

이탈리아가 오래 지켜 온 장점은 병원에 있다⁠. 1978년 12월 이탈리아 의회는 법률 제833호로 국민보건서비스를 세웠다⁠. 세금으로 꾸리고⁠, 사는 사람 누구나 같은 공공 의료를 받는다⁠. 한국 건강보험은 1977년 7월 500인 이상 사업장의 직장의료보험으로 시작해⁠, 1989년 7월 도시 자영업자까지 넓혀 전 국민을 덮었다⁠. 이탈리아는 세금으로⁠, 한국은 보험료로 같은 문을 열었다⁠. 태오는 밀라노에서 무릎 연골 수술을 받은 이야기를 했다⁠. “⁠수술비는 0유로였어요⁠. 대신 넉 달 기다렸어요⁠. 노래는 서서 하니까 버텼죠⁠.⁠”

국민보건서비스가 무엇 위에 세워졌는지도 적어 둔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이탈리아는 「⁠경제 기적⁠」이라 불릴 만큼 빠르게 컸고⁠, 국민보건서비스는 고성장이 꺾인 1970년대 끝에 문을 열었다⁠. 한국 전 국민 건강보험은 1980년대 고성장의 끝자락인 1989년에 완성됐다⁠. 두 나라 모두 빨리 자란 뒤에 병원 문을 넓혔다⁠. 지금의 성장은 다르다⁠. 유럽연합 통계청 속보로 이탈리아 3분기 성장은 0⁠.0%였고⁠, 한국은행 속보로 한국은 1⁠.0%였다⁠. 세금으로 꾸리는 병원도⁠, 보험료로 꾸리는 병원도 내일의 월급에서 돈이 나온다⁠.

밤늦게 로마 소식이 들어왔다⁠. 이탈리아 최대 노동조합 총연맹 CGIL의 마우리치오 란디니 위원장은 같은 날 로마 집회에서 11월 20일 하루 총파업을 예고했다⁠.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 맞선 파업이다⁠. 다른 노동조합 총연맹 CISL은 예산안 내용을 보기도 전에 파업은 이르다며 거리를 두었다⁠. 한국의 2027년 예산안 820조 9천억 원은 국회에 있고⁠, 법정 처리 기한은 12월 2일이다⁠. 두 나라 예산이 같은 늦가을에 한 곳은 거리에서⁠, 한 곳은 국회에서 심판을 받는다⁠. 11월 20일은 한국 수능 다음 날이기도 하다⁠.

박 차장의 마지막 메시지는 짧았다⁠. 「⁠다음은 집이다⁠. 마드리드 수첩 펴⁠.⁠」 나는 10월 7일 마드리드에서 쓴 수첩을 꺼냈다⁠. 첫 장에는 여든일곱 살 세입자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의 사진이 붙어 있었고⁠, 옆에는 2027년 한국 기초연금이 11% 오른다는 기사를 오려 붙여 두었다⁠. 마드리드에서는 집에서 쫓겨난 노인이 광장을 채웠고⁠, 서울에서는 노인의 통장에 들어갈 숫자가 국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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