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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주, 1,194유로

비교체험 유럽/한국 · 윤서각

2026년 10월 6일 화요일⁠, 벨기에 리에주⁠.

아침 9시⁠, 뫼즈강 가 리에주 대학 옛 본관 앞 계단에 학생 스무 명쯤이 앉아 있었다⁠. 맨 아래 계단에 펼친 현수막에는 벨기에식으로 점을 찍은 숫자 「⁠1⁠.194 €⁠」가 크게 그려져 있었다⁠. 2026⁠~27학년도부터 벨기에 프랑스어권 대학 등록금은 학생 형편에 따라 네 구간으로 나뉜다⁠. 장학생은 내지 않고⁠, 나머지는 374유로(⁠약 56만 원⁠)⁠, 835유로(⁠약 125만 원⁠)⁠, 1⁠,194유로(⁠약 178만 원⁠) 가운데 하나를 낸다⁠. 같은 해 한국 대학이 2026학년도 등록금을 올릴 수 있는 법정 한도는 3⁠.19%였다⁠. 한국은 오름폭에 뚜껑을 씌우고⁠, 벨기에는 형편에 따라 구간을 나눴다⁠.

계단의 학생들은 9월 16일 브뤼셀 중앙역 앞 집회에 다녀온 사람들이었다⁠. 브뤼셀에서 리에주 대학생 티보 레테는 이 개편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사실상 대학에서 내쫓는다⁠”고 했다⁠. 연극과 3학년 에밀리는 등록금이 350유로(⁠약 52만 원⁠)에서 1⁠,200유로(⁠약 179만 원⁠) 가까이로 뛰었다며 “⁠일과 사교 생활과 학업을 한꺼번에 해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도 등록금을 받치는 장치를 손본다⁠. 대학이 등록금을 묶는 대신 받던 국가장학금 Ⅱ유형을 2027년에 없애고⁠, 18년 동안 이어 온 사립대 등록금 억제를 풀기로 했다⁠. 두 나라 학생이 같은 해에 같은 질문을 받는다⁠. 누가 대학 학비를 내나⁠?

개편에는 돈 말고 규칙도 들어 있다⁠. 같은 학년도부터 학생이 학점을 제때 따지 못하면 공공 재정 지원 대상에서 빠지는 기준이 엄해졌다⁠. 한국 국가장학금도 성적을 본다⁠. 소득에 따라 주는 Ⅰ유형을 받으려면 직전 학기에 12학점 이상을 따고 성적이 100점 만점에 80점을 넘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은 기준을 낮춰 준다⁠. 계단에 앉은 경영학과 2학년 학생이 말했다⁠. “⁠시험 하나 떨어지면 지원 대상에서 빠질까 봐 무서워요⁠. 요즘은 등록금보다 학점이 먼저 무서워요⁠.⁠”

벨기에에서 등록금을 정하는 곳은 나라가 아닌 언어 공동체다⁠. 프랑스어권 학교와 대학은 프랑스어 공동체 정부가 맡고⁠, 학생들이 따지려 한 사람도 공동체 정부 총리 엘리자베트 데그리즈였다⁠. 한국 등록금은 대학마다 정하되⁠, 직전 3년 평균 물가 상승률의 1⁠.5배를 넘지 못하게 법이 막는다⁠. 올해 3⁠.19%가 그렇게 나왔다⁠. 지우가 현수막 앞에서 휴대전화 계산기를 두드렸다⁠. “⁠1⁠,194유로면 한국 4년제 평균의 4분의 1이에요⁠. 저는 프랑스에서 2⁠,895유로 내니까⁠, 여기 오면 벨기에 최고 구간보다 비싼 학생이에요⁠. 어디를 가도 제가 제일 비싸요⁠.⁠”

등록금이 오른 까닭은 대학 살림에 있다⁠. 프랑스어권 대학이 공동체 정부에서 받는 돈은 이른바 「⁠닫힌 봉투⁠」에 담겨 있다⁠. 총액은 물가만 따라 오르고⁠, 학생 수가 늘어도 봉투는 커지지 않는다⁠. 브뤼셀 지역 방송 BX1은 1997년부터 2016년까지 대학생 한 사람에게 돌아간 공공 재정이 22⁠.3% 줄었다고 전했다⁠. 한국 대학의 학생 한 사람 몫도 얇다⁠. 9월 29일 나온 OECD 교육지표 2026에서 2023년 한국 고등교육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1만 6⁠,479달러로⁠, OECD 평균 2만 2⁠,878달러에 못 미쳤다⁠. 한 경제지는 평균의 72%라고 썼고⁠, 한 방송은 70% 수준이라고 썼다⁠. 대학에 들어가는 정부 돈은 국내총생산의 0⁠.7%로⁠, OECD 평균 0⁠.9%보다 적다⁠.

봉투를 열겠다는 약속은 있었다⁠. 2024년 여름 들어선 프랑스어 공동체 정부는 5년 정책 선언에 닫힌 봉투에서 벗어나 고등교육의 구조적 재정 부족을 끝내겠다고 적었다⁠. 한국은 2023년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를 만들어 대학에 갈 돈을 따로 떼어 두었고⁠, 같은 해 1인당 공교육비가 1년 전보다 12⁠.1% 늘었다⁠. 벨기에는 봉투가 학생 수를 따라가지 않아 학생 몫이 줄었고⁠, 한국은 등록금을 묶은 자리를 나라 돈이 아직 다 채우지 못했다⁠. 계단의 학생들 손에 먼저 들린 것은 약속이 아닌 오른 등록금 안내문이었다⁠. 지우가 안내문을 접으며 말했다⁠. “⁠봉투는 안 열리고 안내문만 열렸어요⁠.⁠”

점심 무렵 서울의 박성훈 차장이 영상 통화를 걸어 왔다⁠. 화면에 지우가 먼저 잡히자 박 차장은 대뜸 물었다⁠. “⁠유학생 등록금 2⁠,895유로 맞아⁠? 숫자가 너무 예쁘던데⁠.⁠” 지우는 학생증과 납부 영수증을 화면에 들이밀었다⁠. “⁠차장님⁠, 예쁜 숫자는 제 통장에서 나갔어요⁠.⁠” 박 차장은 영수증을 캡처했다⁠. 같은 해 8월 한국 교육부의 2026년 교육기본통계에서 한국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은 역대 가장 많았다⁠. 벨기에와 프랑스는 유럽연합 밖에서 온 학생에게 더 받고⁠, 한국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을 더 불러 모은다⁠.

오후에는 시내로 내려갔다⁠. 생랑베르 광장에 고등학생 행렬이 들어왔다⁠. 리에주의 고등학생들은 프랑스어권 교사 감축에 맞서 10월 1일부터 거리에 나왔고⁠, 2일에는 몇몇 학교가 문을 닫았다⁠. 판지에는 「⁠Profs en moins⁠, élèves en plus⁠」⁠, 교사는 줄고 학생은 는다고 적혀 있었다⁠. 같은 해 한국 교육부가 8월 5일 예고한 2027학년도 공립 초등교사 선발은 2⁠,821명으로⁠, 1년 전 3⁠,113명보다 9⁠.4% 적다⁠. 교원 단체들은 현장 수요를 외면했다며 반발했다⁠. 학생이 줄어 교사를 덜 뽑는 나라와⁠, 예산을 줄이며 교사를 줄이는 공동체가 같은 가을에 같은 항의를 들었다⁠.

체포 숫자는 이 도시에서도 둘이다⁠. 전날인 5일 경찰관 18명이 가볍게 다쳤고⁠, 이날 6일에만 50명 안팎이 체포됐다⁠. 리에주 경찰은 10월 1일부터 체포된 사람을 107명으로 셌다⁠. 사법 체포가 27명⁠, 행정 체포가 80명이다⁠. 플랑드르 공영방송 VRT의 보도를 바탕으로 한 집계는 194명이고⁠, 미성년이 114명⁠, 다친 경찰이 43명이다⁠. 서울에서 박 차장의 메시지가 왔다⁠. 「⁠또 두 개냐⁠.⁠」 나는 「⁠이번엔 경찰과 방송이 다퉈요⁠」라고 답했다⁠. 박 차장은 엄지 하나를 보냈다⁠. 엄지가 승인인지 체념인지는 알 수 없었다⁠.

11일 뒤인 10월 17일⁠, 브뤼셀과 리에주 경찰은 최루가스와 물대포를 썼다⁠. 경찰은 시위대가 물건을 던지고 불을 질렀다고 했다⁠. 베르나르 캥탱 내무부 장관은 “⁠브뤼셀에서 벌어지는 일은 더는 단순한 시위가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 경찰은 2017년 9월 경찰개혁위원회 권고를 받아들여 집회와 시위에는 살수차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소요 사태나 핵심 국가 시설을 공격하는 때만 아주 예외로 남겼다⁠. 2015년 11월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농민 백남기가 이듬해 9월 숨진 뒤의 일이다⁠. 물대포를 거둔 나라와 물대포를 쓰는 나라가 같은 해에 있다⁠.

벨기에가 오래 지켜 온 장점은 월급에 있다⁠. 벨기에 임금은 물가를 저절로 따라간다⁠. 업종마다 노사가 맺은 협약에 따라⁠, 물가 지수가 정해진 문턱을 넘으면 월급이 그만큼 오른다⁠. 기준이 되는 건강 지수는 1994년부터 쓰였고 담배와 술⁠, 휘발유와 경유를 뺀다⁠. 올해 기름값이 뛰어도 기름값 몫은 임금 연동에 바로 들어가지 않는다⁠. 한국 최저임금은 해마다 최저임금위원회 표결로 정한다⁠. 2027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10⁠,700원으로 3⁠.7% 올랐고⁠, 표결에 오른 것은 사용자안이었다⁠. 9월 한국 소비자물가는 2⁠.9% 올랐다⁠.

임금 연동도 공짜로 지켜진 것은 아니다⁠. 벨기에 정부는 1976년과 1982년 경제가 흔들릴 때 연동을 한때 멈췄다⁠. 기름값을 지수에서 빼면 수입 기름값이 뛰어도 월급이 곧장 따라 오르지 않는다⁠. 한국은 물가가 뛰어도 최저임금이 따라 오르려면 다음 해 표결을 기다려야 한다⁠. 지우는 이 대목에서 손을 들었다⁠. “⁠그럼 한국은 물가 지수 대신 위원회 지수예요⁠. 위원이 몇 명인지가 물가예요⁠.⁠”

협약이 닿는 범위도 다르다⁠. 유럽연합 노동 연구 기관 유로파운드 집계로 벨기에 노동자의 100%⁠, 프랑스의 98%가 단체협약을 적용받는다⁠. 독일은 49%다⁠. 벨기에에서는 노조에 들지 않은 사람도 업종 협약 임금을 받는다⁠. 한국은 2024년 노조 조직률이 13⁠.0%다⁠. 조직률과 적용률은 다른 잣대지만⁠, 한국의 협약은 대체로 노조가 있는 회사 안에서만 효력이 나 둘의 거리가 멀지 않다⁠. 벨기에 노조원 한 사람의 협상은 업종 전체로 퍼지고⁠, 한국 노조원 한 사람의 협상은 회사 담장에서 멈춘다⁠.

한국도 담장을 넓히는 중이다⁠. 3월 10일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되자 첫날 하청 노조 407곳이 원청에 교섭을 요구했다⁠.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실제로 좌우하면 교섭에 나와야 한다는 법이다⁠. 9월 10일 현대제철이 처음으로 원청과 하청 노조의 교섭을 타결했다⁠. 벨기에는 업종별 노사 합동 위원회가 업종 전체의 임금을 정한다⁠. 한국은 회사 담장을 하나 넘었고⁠, 벨기에는 처음부터 업종 단위에서 정했다⁠. 리에주 대학 앞 카페의 직원은 내 수첩을 보더니 자기 월급 명세서를 휴대전화로 보여 주었다⁠. “⁠저도 1월에 물가만큼 올랐어요⁠. 사장님은 싫어했지만 협약이 그래요⁠.⁠”

리에주의 넉넉함이 어디서 왔는지도 적어야 한다⁠. 이 도시는 19세기 유럽 철강과 석탄의 중심이었다⁠. 뫼즈강을 따라 용광로가 늘어섰고⁠, 강철은 벨기에의 자랑이었다⁠. 2011년 10월 14일 아르셀로미탈은 리에주 용광로를 영원히 끄겠다고 발표했고⁠, 2013년 1월에는 코크스 공장과 마감 라인 여섯 곳을 닫겠다고 했다⁠. 한국의 첫 쇳물은 1973년 6월 포항제철에서 나왔다⁠. 리에주가 용광로를 끈 2011년에도 포항과 광양의 용광로는 돌고 있었다⁠. 리에주의 강철은 백 년 넘게 벨기에를 먹여 살렸고⁠, 한국의 강철은 반세기 만에 조선과 자동차를 떠받쳤다⁠.

강철 다음의 받침은 더 멀리 있었다⁠.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는 1885년 콩고 자유국을 세웠다⁠. 나라의 식민지가 아니라 왕 한 사람의 사유지였다⁠. 주민들에게 고무 채집 할당을 지우고⁠, 채우지 못하면 손을 자르는 처벌이 국제 사회에 알려지자 벨기에 국가가 1908년 콩고를 넘겨받았다⁠. 콩고는 1960년 6월 30일에야 독립했다⁠. 브뤼셀의 개선문과 테르뷔런의 박물관에는 콩고에서 거둔 돈이 들어갔다⁠. 약탈이 왕과 나라의 사업이던 시대의 건물이다⁠. 벨기에가 콩고를 국가 식민지로 넘겨받은 1908년에서 2년 뒤⁠, 대한제국은 나라를 잃었다⁠.

한국은 같은 20세기를 거꾸로 지났다⁠. 남의 땅에서 고무를 거두는 대신 1910년부터 35년 동안 남의 식민지였다⁠. 벨기에 대학 등록금은 올라도 1⁠,194유로에서 멈춘다⁠. 지난 백 년 동안 나라가 대학 살림을 대 왔고⁠, 나라 살림 아래에는 철강과 식민지와 전후 성장이 겹겹이 깔려 있다⁠. 한국 대학의 727만 원은 그런 받침 없이 가계가 낸 돈이다⁠. 지우가 말했다⁠. “⁠벨기에는 올리는 중이고⁠, 한국은 원래 높아요⁠. 높은 데서 시작한 나라가 오르는 나라를 구경하러 왔네요⁠.⁠”

저녁 기차역에서 박 차장이 전화했다⁠. “⁠1⁠,194가 제목이다⁠. 근데 835에서 1⁠,194로 오른 거 맞냐⁠?⁠” 나는 수첩을 다시 봤다⁠. 기사들은 네 구간을 적었을 뿐⁠, 835유로를 내던 학생이 1⁠,194유로로 옮겨 간다고 쓰지 않았다⁠. “⁠안 맞아요⁠. 구간이 네 개예요⁠. 에밀리는 350유로에서 1⁠,200유로 가까이로 올랐다고 했고요⁠.⁠” “⁠그럼 네 구간으로 써⁠.⁠” 한국 국가장학금 Ⅰ유형도 집안 소득 구간에 따라 나눠 준다⁠. 벨기에는 내는 돈을 구간으로 나누고⁠, 한국은 받는 돈을 구간으로 나눈다⁠. 나는 밀라노행 표를 끊었다⁠. 10월 16일⁠, 이탈리아 학생들이 「⁠노 멜로니 데이⁠」를 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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