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668자)

크레테이, 40도 교실

비교체험 유럽/한국 · 윤서각

2026년 9월 17일 목요일⁠, 파리 동남쪽 크레테이⁠. 수첩 첫 장이다⁠.

아침 7시 40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교사들이 보온병을 돌리고 있었다⁠. 크레테이 교사들은 이날 사람도 예산도 모자란다며 파업했다⁠. 수학 교사 나디아는 마흔두 살이고⁠, 짧게 친 곱슬머리에 빨간 목도리를 둘렀다⁠. 손에 든 판지에는 분필로 「⁠PROF CHERCHE COLLÈGUES⁠」⁠, 동료 구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9월인데 아직 선생이 안 온 과목이 있어요⁠. 그 시간에 애들은 복도에 앉아 있어요⁠.⁠” 같은 달 초 한국 정부가 국회에 낸 2027년 교육부 예산은 117조 5⁠,962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0⁠.6% 늘었다⁠. 나는 수첩 첫 줄에 두 가지를 적었다⁠. 빈 교사 자리⁠, 그리고 10⁠.6%⁠.

교사가 빈 대신 교실은 사람으로 넘친다⁠. 고등학생 연합 노조 USL의 대표 리야드 라니는 한 반이 32명에서 36명이라고 말했다⁠. 한국 교육부가 8월 26일 낸 2026년 교육기본통계에서 한국 고등학교 한 반은 23⁠.1명이었다⁠. 한국은 학생이 줄어 반이 작아진 몫이 크다⁠. 고등학생이 1년 새 2만 74명 줄었다⁠. 나디아는 내 수첩의 23⁠.1을 보더니 웃었다⁠. “⁠그 반이면 저는 이름을 다 외우겠네요⁠. 지금은 출석부 사진 보고 외워요⁠. 머리 자르고 오면 처음부터 다시고요⁠.⁠”

빈자리의 뿌리는 사람을 뽑는 데 있다⁠. 프랑스 교육부는 올해 중등 교사 임용 시험에서 뽑으려던 자리의 96⁠.1%를 채웠다고 발표했다⁠. 1년 전에는 90⁠.6%였다⁠. 채운 비율은 올랐어도 크레테이 같은 파리 외곽 학구의 교실에는 9월 중순까지 빈자리가 남았다⁠. 한국은 거꾸로 뽑는 사람을 줄인다⁠. 9월 30일 확정된 2027학년도 전국 공립 중등 교과 교사 선발 인원은 4⁠,932명으로⁠, 1년 전보다 2⁠,215명 적다⁠. 학생이 줄어드는 나라는 교사를 덜 뽑고⁠, 교사가 모자란 나라는 빈 교실로 개학했다⁠.

나디아는 운동장 끝 조립식 임시 교실로 나를 데려갔다⁠. 한 고등학생은 언론에 임시 교실이 겨울엔 영하 5도⁠, 여름엔 40도라고 말했다⁠. 2026년 유럽 폭염 때 프랑스 교실 온도는 40도까지 올라갔다⁠. “⁠여기선 일기 예보가 시간표예요⁠. 40도면 수학 대신 물 마시기 수업이에요⁠.⁠” 창문에는 학부모들이 붙였다는 은박 단열 필름이 반쯤 떨어진 채 매달려 있었고⁠, 나디아는 떨어진 모서리를 테이프로 다시 눌렀다⁠. 프랑스 고등학교 건물은 지역 의회인 레지옹이 짓고 고친다⁠. 한국은 시도교육청이 학교를 짓고 고치고⁠, 돈은 대부분 나라가 내려보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나온다⁠. 2027년 교부금은 78조 8⁠,718억 원으로 본예산보다 7조 2천억 원쯤 늘었다⁠. 다만 정부가 산식을 바꿔 지금 법의 교부율대로라면 받을 몫보다 적게 잡히자⁠, 교육감들과 교원 단체는 학교 살림이 나아지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4일 뒤인 9월 21일 월요일⁠, 같은 학교 학생들이 정문을 막았다⁠. 바퀴 달린 쓰레기통 여섯 개가 문 앞에 줄지어 있었고⁠, 맨 앞 통에 매직으로 쓴 판지가 붙어 있었다⁠. 「⁠40°C EN CLASSE⁠」⁠, 교실 40도⁠. 학생들이 내세운 이유는 비어 있는 교사 자리였다⁠. 취재 보조로 따라온 김지우는 스물여섯 살⁠, 파리의 국립대 학사 과정에 다니는 한국 유학생이다⁠. 지우가 쓰레기통 줄을 보며 말했다⁠. “⁠언니⁠, 한국이었으면 월요일 1교시에 쓰레기통 옮기는 애는 선도부예요⁠.⁠” 한국 정부가 2027년 교육 예산에서 가장 크게 늘린 것은 대학 몫이다⁠. 고등교육 예산이 18조 9⁠,661억 원으로 18⁠.2% 늘었다⁠. 같은 예산에서 고등학교 무상교육에 나라가 대는 몫은 30%에서 15%로 줄어⁠, 나머지를 교육청이 떠안는다⁠.

쓰레기통으로 길을 막는 데에는 오래된 내력이 있다⁠. 바리케이드라는 말은 통⁠, 바리크에서 왔다⁠. 1588년 5월 12일 파리 시민들이 흙과 돌을 채운 통으로 거리를 막은 날을 프랑스 역사책은 바리케이드의 날이라 부른다⁠. 1830년과 1848년 혁명⁠, 1871년 파리 코뮌⁠, 1968년 5월에도 파리 거리에는 통과 포석이 쌓였다⁠. 미국 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사람들이 불만을 드러내는 몸짓을 「⁠저항의 레퍼토리⁠」라 불렀다⁠. 집단이 무엇이 통했는지 겪으며 오래 익힌 목록이다⁠. 한국 광장이 익힌 목록은 다르다⁠. 2024년 12월 14일 국회 앞 여의도에서 주최 측은 200만 명⁠, 서울시 생활인구 자료로 따진 뉴스타파는 적어도 42만 명이 모였다고 보았고⁠, 시민들은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을 들었다⁠. 파리는 통을 굴리고⁠, 서울은 불빛을 흔들도록 배웠다⁠. 다만 통을 굴리는 일과 학교에 불을 지르는 일은 다르다⁠. 제프레 장관은 10월 5일 시위가 시작된 뒤 학교 24곳이 불타거나 털렸다고 밝혔다⁠. 학교를 태우고 터는 일은 어느 목록에 올려도 범죄다⁠.

통은 일주일 만에 크레테이 밖으로 굴러갔다⁠. 르몽드는 9월 24⁠~25일 파리권 고등학교 60곳 안팎이 흔들렸고 10곳쯤은 실제로 막혔다고 썼다⁠. 크레테이 교육청은 25일 막힌 고등학교를 「⁠열두 곳은 족히⁠」로 셌다⁠. 25일은 한국의 추석이었고⁠, 서울의 고3에게 2027학년도 수능은 55일 남아 있었다⁠. 11월 19일 수능에는 55만 1⁠,864명이 응시한다⁠. 지우가 고3 사촌 동생이 보낸 사진을 보여 주었다⁠. 송편 접시 옆에 수학 문제집이 펼쳐져 있었다⁠. “⁠송편 하나 먹고 한 장 푸는 게 우리 집 추석 규칙이래요⁠. 동생 말로는 송편이 모자란대요⁠.⁠”

정문 옆 벽에는 학생들이 붙인 요구 목록도 있었다⁠. 9월 29일 USL이 낸 요구 넷 가운데 하나가 파르쿠르쉽이다⁠. 2018년에 생긴 대학 입학 배정 사이트로⁠, 고3이 지망 학과를 올리면 대학이 순위를 매겨 자리를 나눈다⁠. 학생들은 이 사이트를 스트레스의 이름으로 불렀다⁠. 한국 고등학생은 같은 입시 압박을 돈으로 낸다⁠. 2025년 사교육비 조사에서 고등학교 1학년 가운데 사교육을 받는 학생은 한 달에 평균 80만 6천 원을 썼다⁠. 지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 애들은 사이트한테 화내고⁠, 한국 애들은 학원비 고지서한테 화낼 시간도 없어요⁠.⁠”

두 나라는 몇 해 앞서 고등학교 교실을 같은 방향으로 바꿨다⁠. 프랑스는 2021년부터 대학입학자격시험 바칼로레아를 고쳐 학생이 전공 과목을 골라 듣게 했고⁠, 한국은 2025년 고1부터 고교학점제를 전면 시행해 학생이 과목을 골라 학점을 채운다⁠. 두 제도 모두 열여섯 살에게 진로부터 고르라고 한다⁠. 지우는 고교학점제 첫해에 고1이었던 다른 사촌 동생⁠, 지금 고2인 막내 이야기를 꺼냈다⁠. “⁠동생이 과목 고르는 날 엄마랑 학원 상담부터 갔대요⁠. 고르는 건 학생인데⁠, 상담은 학원이 먼저 해 줘요⁠.⁠”

봉쇄는 10일 만에 나라로 번졌다⁠. 10월 1일 저녁 내무부는 고등학교 1⁠,027곳이 흔들렸고 222곳은 아예 막혔다고 집계했다⁠. 다음 날 에두아르 제프레 교육부 장관은 같은 목요일에 1⁠,207곳이 흔들리거나 막혔다고 말했다⁠. 같은 정부 안에서 180곳이 어긋났다⁠. 한국의 고등학교는 모두 2⁠,398곳이다⁠. 내무부 숫자로만 보아도 한국 고등학교 열에 넷이 한 날 흔들린 크기다⁠. 서울에서 박성훈 차장의 메시지가 왔다⁠. 「⁠1⁠,027이냐 1⁠,207이냐⁠. 숫자 두 개 붙이랬지 두 숫자끼리 싸우라곤 안 했다⁠.⁠」 나는 답했다⁠. 「⁠둘 다 정부 숫자예요⁠. 싸움은 정부 안에서 났어요⁠.⁠」

체포 숫자는 더 크게 엇갈린다⁠. 10월 1일 내무부 집계로 하루 1⁠,949명이 체포됐고⁠, 다음 날 내무부는 월요일부터 구금된 1⁠,793명 가운데 90% 안팎이 미성년이라고 밝혔다⁠. 10월 22일 제랄드 다르마냉 법무부 장관은 2⁠,700명이 체포돼 1⁠,000명 넘게 재판에 넘겨졌고 217명이 즉결 재판 뒤 수감됐다고 했다⁠. 인권 단체와 언론 집계를 모은 숫자는 6⁠,800명이다⁠. 한국의 광장은 다른 숫자를 남겼다⁠. 2016년 10월 29일부터 12월 24일까지 주말마다 수십만 명이 모인 촛불 집회 9번 가운데 7번은 입건자가 한 명도 없었다⁠. 파리 15구에서 서른 해째 한인 식품점을 하는 최미경은 내게 고추장을 싸 주며 혀를 찼다⁠. “⁠애들을 왜 잡아가요⁠. 한국 같으면 그 시간에 학원 가 있지⁠.⁠” 옆에서 지우가 받았다⁠. “⁠사장님⁠, 그 학원이 한 달 80만 원이에요⁠.⁠”

정부의 답은 처음엔 말이었다⁠. 제프레 장관은 10월 2일 운동이 “⁠극단 폭력 집단에게 인질로 잡혔다⁠”며 “⁠거리에서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했다⁠. 11일 뒤인 10월 13일 같은 장관은 가장 흔들린 학교들에 대체 교사 3⁠,000명을 보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9월에 비어 있던 자리를 10월에 임시로 메운 것이다⁠. 한국 고등학교에서 교원 한 사람이 맡는 학생은 10⁠.0명이다⁠. 전화로 대체 교사 소식을 전하자 나디아는 한숨부터 쉬었다⁠. “⁠3⁠,000명이 오면 좋죠⁠. 문제는 내년 9월에도 또 3⁠,000명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프랑스가 지키려고 거리에 나온 것이 무엇인지도 적어야 공정하다⁠. 프랑스 국립대 학사 과정 한 해 등록금은 유럽연합 학생 기준 178유로(⁠약 26만 6천 원⁠)⁠, 석사는 254유로(⁠약 38만 원⁠)다⁠. 한국 4년제 대학 평균 등록금은 2026년 727만 300원이었고⁠, 192곳 가운데 130곳이 올렸다⁠. 유럽연합 밖에서 온 지우는 학사 등록금으로 2⁠,895유로(⁠약 432만 원⁠)를 낸다⁠. “⁠프랑스 친구들보다 열여섯 배를 내요⁠. 그래도 한국 사립대보다 싸요⁠. 외국인 요금이 모국 요금보다 싼 나라예요⁠.⁠” 이 장점은 대학 예산 대부분을 세금으로 대는 나라 위에 서 있다⁠. 르코르뉘 총리는 교사들이 파업한 9월 17일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내년 예산 540억 유로 절감을 꺼냈다⁠.

고등학교가 공짜가 된 해도 두 나라가 멀리 떨어져 있다⁠. 프랑스는 1933년 5월 31일 법으로 중등 교육 학비를 없앴고⁠, 비시 정부가 1941년 고등학교 상급 학년 학비를 되살렸다가 해방 뒤 다시 없앴다⁠. 한국은 2019년 2학기 고3부터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시작해 2021년 전 학년으로 넓혔다⁠. 2004년 중학교에 이어 17년 만에 초중고 무상교육이 다 갖춰졌다⁠. 프랑스가 90년 넘게 지켜 온 것을 한국은 다섯 해 전에 갖췄고⁠, 2027년 예산에서 나라가 대는 몫부터 줄였다⁠.

거리의 학생이 교육 정책을 물린 일은 두 나라에 다 있다⁠. 1986년 겨울 대학이 학생을 가려 뽑고 등록금을 올릴 길을 열려던 드바케 법안에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거리로 나왔고⁠, 12월 6일 새벽 대학생 말리크 우세킨이 경찰에게 맞아 숨진 뒤 정부는 법안을 거두었다⁠. 한국 대학생들은 2011년 5⁠~6월 청계광장과 광화문에서 반값 등록금을 외쳤고⁠, 정부는 이듬해인 2012년 소득에 따라 등록금을 덜어 주는 국가장학금을 들였다⁠. 투표 나이도 다르게 왔다⁠. 프랑스는 1974년에 18세로 낮췄고⁠, 한국은 2019년 12월 선거법을 고쳐 2020년 총선부터 만 18세가 투표했다⁠. 다만 한국 고3의 저녁 시간표에는 투표소보다 학원 이름이 먼저 적혀 있다⁠.

10월 6일 전국 시위에 내무부는 25만 6천 명⁠, 주최 측은 45만 명이 나왔다고 셌다⁠. 서울의 한 매체는 이 장면에 「⁠2026년식 68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68혁명은 1968년 5월 프랑스 대학생 시위가 노동자 총파업으로 번진 사건이다⁠. 같은 이름을 들은 미경은 “⁠여기 애들 데모는 원래 축제⁠”라고 했고⁠, 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축제에서는 사람을 잡아가지 않아요⁠.⁠” 10월 14일 저녁 나디아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칠판 앞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오늘 우리 반 수학 선생 왔어요⁠. 대체 교사예요⁠. 이름은 내일 외울게요⁠.⁠」 지우는 축하 케이크를 사 가자고 했다⁠. “⁠이름 외울 때까지만 버텨 달라고 초를 하나 꽂아요⁠.⁠” 3일 뒤인 10월 17일⁠, 노란 조끼가 학생들 옆에 붙는다는 소식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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