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634자)
티라나, 섬 하나의 대가
비교체험 유럽/한국 · 윤서각
제목: 티라나, 섬 하나의 대가 훅: 알바니아 총리가 보호구역 바닷가를 외국 투자자에게 내주려다 거리에 불이 붙은 가을, 한국 대통령은 1년 전 국유재산 매각을 전면 멈추라고 지시해 두었다. 요약: 2026년 10월 27일, 한정현은 티라나 총리실 앞에서 사잔섬과 즈베르네츠 리조트 계획에 맞선 「플라밍고 혁명」의 저녁을 지킨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유럽의 시위를 짚었다는 알림이 온다. 정현은 보호 등급부터 바뀌었다는 의심을 받는 알바니아와 매각을 멈추고 국회 보고를 의무로 만든 한국, 반부패 특별검찰과 공수처, 310명이 다친 티라나의 2주와 최루탄을 내려놓은 한국 경찰을 나란히 놓는다. 그리고 3.66% 자란 나라의 분노는 저성장만으로 풀리지 않는다고 적는다. --- 2026년 10월 27일 화요일, 알바니아 티라나.
저녁 7시, 총리실 앞 인도에는 검게 그을린 솜뭉치가 아직 눌어붙어 있었다. 10월 24일 정부가 대화하자며 총리실 앞에 깔아 둔 빨간 방석을 시위대가 태운 자리다. 화요일이라 모인 사람은 주말보다 적었지만, 분홍색 판지 플라밍고 수십 마리가 막대 끝에서 흔들렸다. 사람들은 「알바니아는 팔지 않는다」를 외쳤다. 5월 말 남쪽 해안 즈베르네츠에 철조망 울타리가 쳐지고 바닷가로 가는 길이 막히면서 시작된 싸움이다. 한국에도 공공의 땅을 파는 일을 멈춘 날이 있다. 2025년 11월 3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유재산 매각을 전면 중단하고 보류하라고 지시했고, 꼭 해야 할 매각만 국무총리의 재가를 받게 했다. 티라나는 바닷가를 지키려고 거리에 나왔고, 서울은 대통령 지시로 땅 팔기를 먼저 멈췄다.
계획의 뿌리는 2024년에 있다. 재러드 쿠슈너의 투자사 어피니티 파트너스가 2024년, 사람이 살지 않는 사잔섬과 브요서·나르타 보호 경관 일부에 고급 리조트를 짓겠다고 밝혔다. 호텔 객실만 1만 개쯤 들어선다는 계획이다. 쿠슈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위다. 울타리 근처에서는 사설 경비원들이 항의하던 주민을 끌고 가는 영상이 돌았다. 한국 대통령은 매각을 멈춘 다음 날인 11월 4일 “공공자산 매각이 무원칙하게 대량으로 이뤄진다는 지적이 있다”며 까닭을 밝혔다. 알바니아에서는 바닷가를 막는 울타리가 먼저 올라가고 설명이 뒤따랐고, 한국에서는 멈추라는 지시와 설명이 하루 차이로 나왔다.
알바니아 반부패 특별검찰 SPAK은 6월에 이 사업을 수사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들여다보는 것은 2024년에 바뀐 이 지역의 보호 등급과 땅 소유 관계다. 리조트를 짓기 좋게 규칙이 먼저 바뀌었는지를 묻는 수사다. SPAK은 알바니아가 유럽연합 가입을 준비하며 사법 개혁을 거쳐 2019년에 일을 시작한 기관이다. 한국에는 2021년 1월 문을 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공수처도 오랜 검찰 개혁 논쟁 끝에 생겼다. 두 기관 모두 권력 가까운 곳의 비리를 따로 보라고 세운 곳이고, 알바니아에서는 지금 수사의 칼끝이 총리가 아끼는 투자 계획 앞에 와 있다.
한국은 멈춘 뒤 규칙을 바꿨다. 정부는 2025년 12월 15일, 300억 원 넘는 국유재산을 팔려면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 상임위원회에 미리 보고하게 했다. 50억 원이 넘으면 국유재산정책심의위원회의 의결을 받는다. 감정가보다 싸게 파는 할인 매각은 원칙적으로 막았고, 공공시설을 민간에 넘기는 민영화는 국회 논의를 거친 뒤에만 하게 했다. 라마 총리는 6월 초 보도된 미국 정치 매체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최종 제안서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환경영향평가도 끝나지 않았다며, 보호구역은 해치지 않는다고 했다. 알바니아는 제안서가 들어오기도 전에 보호 등급부터 바뀌었다는 의심을 받고, 한국은 팔기 전에 국회에 먼저 알리게 됐다.
주인이 누구인지도 흐리다. 즈베르네츠 사업을 쥔 회사의 지분은 카타르에 등록된 회사로 넘어갔고, 알바니아 매체 엑시트는 실제 지배권이 카타르에 근거를 둔 시리아계 알카야트 형제의 회사들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라마는 미국 CNN에 트럼프 가족이 이 사업의 주인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사업 규모도 14억 유로(약 2조 900억 원)부터 40억 유로(약 6조 원)까지 보도마다 다르다. 한국 정부는 12월 개편에서 10억 원 넘는 매각은 감정평가가 타당한지 따로 검토받게 하고, 매각 정보는 공매 사이트 온비드에 공개하게 했다. 한국은 누가 얼마에 사는지 보이게 하려 하고, 알바니아 사람들은 누가 사는지부터 묻고 있다.
「플라밍고 혁명」이라는 이름은 석호의 새에게서 왔다. 브요서·나르타 석호에는 겨울마다 플라밍고 떼가 내려앉고, 드문 달마시안펠리컨과 바다거북도 산다. 한국은 1997년 람사르 습지 협약에 가입하며 강원도 대암산 용늪을 첫 습지로 올렸고, 2021년 7월에는 서천·고창·신안·보성-순천의 갯벌이 「한국의 갯벌」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 됐다. 철새가 쉬어 가는 물가를 나라 밖 약속으로 묶어 둔 것이다. 티라나의 생물학과 학생이 말했다. “플라밍고는 투표를 못 하니까 우리가 대신 나와요. 대신 플라밍고는 세금도 안 내요.” 옆의 친구가 받았다. “그래서 정부가 플라밍고 말을 안 듣는 거야.”
알바니아가 가진 장점은 강이다. 2023년 3월 알바니아는 브요서강을 유럽 첫 야생 강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댐 없이 바다까지 흐르는 강을 물줄기째 지킨 것이다. 나르타 석호는 이 강의 하구 곁에 있다. 한국은 1967년 지리산을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했고, 지금은 국립공원이 23곳이다. 알바니아는 강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묶었고, 한국은 산과 바다를 한 곳씩 공원으로 묶어 왔다. 리조트 계획은 알바니아가 스스로 자랑해 온 강의 하구 곁까지 들어간다. 자랑거리 바로 옆에 울타리가 올라간 것이다.
라마 총리는 의회에서 이 사업이 알바니아를 지역의 으뜸 관광지로 만드는 계획에 맞는다고 말했다. 알바니아의 리조트는 환경영향평가가 끝나기도 전에 울타리부터 올라갔다. 새와 산양은 의견서를 내지 못한다.
학생들이 이 길에 합류한 것은 10월 13일이다. 학생들은 비싼 학비와 낡은 대학 시설, 젊은이를 돕지 않는 정부를 들고 교육부로 갔고, 일부는 벽돌과 콘크리트 덩어리를 던졌다. 경찰은 최루가스와 물대포를 쐈다. 10월 15일까지 총리실과 부처 건물, 은행 지점 여러 곳에 불이 붙었다. 보건부는 10월 13일부터 19일까지 310명이 다쳤고 그중 191명이 경찰, 88명이 시위대, 31명이 지나가던 사람이라고 집계했다. 건물에 불을 지르는 일은 시위의 까닭이 아무리 옳아도 범죄다. 한국 경찰은 1999년 「무최루탄」 원칙을 밝히고, 1999년 한 해 동안 시위 현장에서 최루탄을 한 발도 쏘지 않았다. 티라나의 큰길에서는 최루가스 냄새가 2주 넘게 빠지지 않았다.
알바니아 학생들이 학비로 거리에 나온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8년 12월 학생들은 한 해 2만~4만 5천 레크(약 180~410달러)이던 학사 등록금을 절반으로 내리고, 대학의 결정에 학생 목소리를 넓히라고 요구했다. 시위가 번지자 라마는 12월 28일 장관 열다섯 명 가운데 여덟 명을 바꿨다. 일곱 명이라고 적은 보도도 있다. 2019년 1월 내놓은 「대학 협약」은 학생들이 정부 혼자 쓴 문서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은 2010년 2월 고등교육법을 고쳐 대학마다 등록금심의위원회를 두게 했고, 지금은 위원의 10분의 3 이상을 학생으로 채운다. 알바니아는 장관을 바꿨고, 한국은 등록금을 정하는 탁자에 학생 의자를 법으로 놓았다. 티라나 정치연구소의 아프림 크라스니치는 올해 학생들이 3개월 가까이 평화롭게 시위했지만 요구가 대부분 무시됐다고 했다.
라마는 2013년부터 총리이고, 2025년 5월 총선에서 네 번째 임기를 얻었다. 사퇴 요구가 쏟아지자 10월 15일 로이터에 “작년에 우리는 선거를 치렀지, 혁명을 치른 게 아니다”라고 했다. 10월 24일에는 폭력의 배후로 「외국 세력」을 꼽고, 러시아와 이란이 온라인에 거짓 정보를 퍼뜨린다고 했다. 대화하자며 깐 빨간 방석이 불에 탄 것이 같은 날 밤이다. 한국은 1998년 1월 15일, 외환위기 한복판에 노동자와 사용자와 정부가 한 탁자에 앉는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었고 2월에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 협약」을 맺었다. 노사정위원회는 1999년 법에 따른 기구가 됐고, 2018년 11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이름을 바꿨다. 방석으로 깐 대화의 자리는 하룻밤에 탔고, 법으로 깐 자리는 이름을 바꿔 가며 남았다.
밤 9시, 휴대전화에 서울 알림이 떴다.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유럽을 짚었다. “최근 여러 유럽 국가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면서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대통령은 “가장 크고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저성장”이라고 보고, “유럽의 현 상황을 우리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큰길 가로등 아래서 숫자 둘을 찾아 적었다. 알바니아 통계청은 2025년 실질 성장률을 3.66%로 잡았고, 3.79%로 고친 집계도 나와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한국의 2025년 성장률은 1.0%였다. 알바니아는 한국보다 3배 넘게 빨리 자랐는데도 거리에 불이 붙었다.
박성훈 차장이 곧장 전화했다. “봤냐. 대통령도 유럽 얘기 했다.” “지금 티라나 총리실 앞이에요.” “타이밍 좋다. 대통령이 네 연재 읽나 보다.” “제가 대통령 발언을 읽는 거예요, 차장님.” 박 차장은 발언을 기사 맨 앞에 붙이자고 했다. 나는 반대했다. 대통령의 진단은 1.0% 자란 한국의 숙제다. 3.66% 자란 알바니아의 분노는 누가 바닷가를 갖고 누가 학교를 고치느냐에서 왔다. 둘을 한 문장에 붙이면 남의 섬이 우리 숙제의 소품이 된다. 박 차장은 「그럼 둘째 문단」이라며 한발 물렀다.
알바니아에는 기댈 제국이 없었다. 알바니아는 바다 건너 식민지를 가진 적이 없고, 1939년 4월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에 점령당했다. 1944년부터 1985년 죽을 때까지 나라를 다스린 엔베르 호자는 알바니아를 바깥과 거의 끊어 놓았다. 사잔섬은 공산 정권 시절 군사 기지였다. 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다. 유럽이라고 모두 식민지에서 실어 온 부 위에 서 있지는 않다. 알바니아는 유럽 안에서 남에게 점령당한 나라이고, 그래서 섬을 바깥 사람에게 넘기는 일이 더 아프다.
밤이 깊자 할아버지 한 사람이 학생들에게 손뼉을 쳐 주었다. 1990년 12월 티라나 대학생 기숙사촌에서 시작한 학생 시위에 나갔었다고 했다. 시위가 번지자 공산 정권은 1990년 12월 안에 야당을 허락했고, 알바니아는 1991년 3월 첫 복수 정당 선거를 치렀다. 한국 대학생들은 3년 앞선 1987년 6월 거리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 냈다. 할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한국 학생들도 노래를 불렀소?” “「아침이슬」을 불렀대요.” 할아버지는 제목을 몇 번 따라 하더니 「이슬」만 정확하게 발음했다. 그러고는 플라밍고 판지를 내게 쥐여 주며 다음 시위 때 서울로 가져가라고 했다.
나는 수첩에 오늘의 숫자를 적었다. 티라나의 숫자는 5개월, 310명, 13년이었다. 서울의 숫자는 300억 원과 50억 원, 그리고 1년 전 11월 3일이었다. 비슷한 크기의 숫자가 한 도시에서는 다친 사람이고 다른 도시에서는 국회 보고의 문턱이다. 박 차장에게 제목을 보냈다. 「섬 하나의 대가.」 「가격으로 하지.」 「대가요. 내준 것이 섬이니까요.」 박 차장은 한참 뒤 「대가로 가자」라고 보냈다. 2일 뒤 나는 파리 남쪽 에손의 주유소에 있을 것이다. 주유기 숫자는 리터당 2.37유로를 가리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