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04자)
베오그라드, 지붕이 무너진 뒤
비교체험 유럽/한국 · 윤서각
2026년 10월 25일 일요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오전 11시 52분, 브라차르 구의 초등학교 투표소 앞 줄에서 몇몇이 휴대전화 알람을 끄고 고개를 숙였다. 2024년 11월 1일 11시 52분, 노비사드 기차역 입구의 콘크리트 지붕이 무너졌다. 16명이 숨졌다. 사고 뒤 세르비아 사람들은 날마다 11시 52분이 되면 16분 동안 길 위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숨진 한 사람에 1분씩이다. 투표소 줄의 침묵은 2년 가까이 이어 온 습관이었다. 한국도 무너진 구조물의 이름을 안다.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가 끊어져 32명이 숨졌고,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숨졌다. 두 사고 모두 부실 공사와 허술한 감독이 원인으로 드러났다.
노비사드 역은 사고 넉 달 전인 2024년 7월 보수 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연 참이었다. 공사는 중국 기업들이 맡은 철도 사업의 일부였다. 학생들은 지붕을 무너뜨린 것이 부패라고 보고 대학 건물을 막았다. 고란 베시치 건설부 장관은 사고 4일 뒤 물러났고, 2025년 1월에는 밀로시 부체비치 총리가 사퇴했다. 한국에서는 성수대교 붕괴 뒤 시공사와 서울시 공무원들이, 삼풍 붕괴 뒤에는 회장과 구청 공무원들이 처벌받았다. 세르비아 학생들은 처벌을 넘어 정부를 바꾸자고 했고, 한국은 처벌한 뒤 법과 점검 제도를 고쳤다.
학생들의 첫 요구는 문서였다. 2024년 12월 학생들은 역 보수 공사의 모든 문서를 공개할 것, 시위대를 폭행한 사람을 처벌할 것, 붙잡힌 학생들의 기소를 거둘 것, 고등교육 예산을 20% 늘릴 것을 요구했다. 정부는 문서 일부를 공개했지만 학생들은 빠진 문서가 많다고 했다. 한국은 1996년 정보공개법을 만들어 1998년부터 시민 누구나 공공기관에 문서를 청구할 수 있게 했다. 베오그라드 학생들은 문서를 받으려고 대학을 막았고, 한국 시민은 청구서 한 장으로 문서를 받는다. 받은 문서가 다 열려 있는지는 두 나라 모두 다투는 중이다.
누가 철도를 짓느냐도 다르다. 노비사드 역은 베오그라드와 부다페스트를 잇는 고속 철도 사업의 한 구간이고, 이 사업은 중국 차관과 중국 시공사에 크게 기댔다. 한국은 2004년 프랑스 테제베 기술을 들여와 고속철도를 열었고, 2010년에는 기술을 익혀 만든 KTX-산천을 달리게 했다. 세르비아는 돈과 공사를 함께 빌렸고, 한국은 기술을 사 와서 제 손에 익혔다. 무너진 지붕 아래에서 학생들이 맨 먼저 물은 것도 누가 지었고 누가 검사했느냐였다.
세르비아 학생들의 몸짓은 바리케이드와 달랐다. 날마다 16분의 침묵, 대학 건물 봉쇄, 수백 킬로미터를 걷고 자전거로 달려 유럽 의회가 있는 스트라스부르까지 간 행렬. 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사람들이 불만을 드러내는 방식을 「저항의 레퍼토리」라고 불렀다. 무엇이 통했는지 겪으며 익힌 목록이라는 말이다. 한국의 목록에는 촛불과 응원봉이 있다. 2025년 1월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서 눈을 맞으며 은박 담요를 덮고 밤을 새운 사람들은 「키세스 시위대」라고 불렸다. 베오그라드는 침묵으로, 서울은 불빛으로 같은 말을 했다.
앞줄에 선 사람도 비슷했다. 세르비아에서는 대학생이 운동을 이끌었고, 2025년 4월에는 학생들이 노비사드에서 스트라스부르까지 1,300킬로미터 넘게 자전거를 타고 가 유럽 의회 앞에 닿았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2024년 12월 여의도 집회의 생활인구 자료를 분석한 보도들이 20대 여성이 가장 많았다고 전했다. 아이돌 응원봉이 광장의 상징이 된 까닭이다. 두 나라 모두 정치가 오래 듣지 않던 세대가 맨 앞에서 걸었다.
숫자도 엇갈렸다. 2025년 3월 15일 베오그라드 집회는 세르비아 역사상 가장 큰 집회로 꼽혔다. 독립 집계 단체 「공공 집회 기록」은 27만 5천~32만 5천 명으로, 경찰은 10만 7천 명으로 셌다. 한국 광장도 숫자를 두고 다퉜다. 2016~2017년 촛불 집회를 연 시민단체는 23차례 집회의 누적 참가자를 1,600만 명이 넘는다고 집계했다. 경찰은 보통 같은 시각 한자리에 있던 최대 인원만 세서 숫자가 훨씬 작았다. 세르비아도 한국도 광장의 크기는 누가 세느냐에 따라 세 배씩 달라졌다.
길은 광장에서 법정과 투표함으로 갔다. 알렉산다르 부치치와 집권당은 학생 운동을 바깥이 부추긴 「색깔 혁명」이라고 불러 왔다. 학생들은 직접 후보 명단을 꾸렸다. 한국 광장은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거쳤다.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이 선포됐고, 12월 14일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204표로 가결했다.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로 대통령을 파면했다. 세르비아 학생들은 정권을 투표지로 심판하려 했고, 한국 시민들은 헌법 절차로 먼저 심판한 뒤 투표했다.
3일 전인 22일, 베오그라드에서 학생 명단을 지지하는 15만 명가량이 행진했다. 오늘 밤 선거 감시 단체 크르타의 표본 집계로 학생 명단은 51.47%, 「알렉산다르 부치치 - 하나 된 세르비아」 연합은 40.42%를 얻었다. 무효표는 1.55%였다. 부치치는 패배를 인정하며 학생 명단이 135~140석, 자기 당이 105석가량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250석 의회의 과반이다. 한국은 2025년 6월 3일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49.42%, 김문수 후보가 41.15%를 얻었다. 세르비아는 학생이 만든 명단이 처음으로 과반을, 한국은 탄핵 넉 달 뒤 정권 교체를 이뤘다.
걸린 시간도 다르다. 세르비아 학생 운동은 노비사드의 지붕이 무너진 2024년 11월부터 투표함에 닿기까지 2년 가까이를 썼다. 한국은 계엄의 밤에서 대선까지 6개월이었다. 까닭 하나는 권력의 길이다. 부치치는 2012년부터 부총리와 총리, 대통령으로 세르비아 정치를 쥐어 왔다. 한국 대통령은 1987년 헌법에 따라 5년 단임이고 다시 나올 수 없다. 세르비아 학생들은 열네 해 쌓인 권력을 상대했고, 한국 시민은 임기 3년 차 대통령을 상대했다.
학생 명단 대표 일리야 스르다노비치는 “오늘 밤 세르비아가 이겼다”고 했다. 스르다노비치는 유럽연합으로 가는 길을 이어 가겠다고 했다. 한국의 새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다음 날인 2025년 6월 4일 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취임했다. 베오그라드의 학생들은 이제 정부를 꾸려야 하고, 한국의 정부는 한 해 넘게 일하며 성적표를 받고 있다. 학생들이 광장에서 외친 부패 청산과 안전은 이제 국회의원들의 숙제가 된다.
선거 자체를 둘러싼 그늘도 있다. 유럽 서부 발칸 전문 매체는 유권자 압박과 국가 자원의 선거 남용이 이번 선거를 얼룩지게 했다고 전했고, 학생 명단은 학생들에게 덮어씌울 「연출된 사건」을 경계하라고 했다. 한국 대선은 투표율 79.4%, 사전투표율 34.74%를 기록했고, 독립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했다. 세르비아에서는 표가 이겨도 개표가 의심받고, 한국에서는 2020년 총선을 두고 낸 선거 무효 소송들이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투표소 줄에서 만난 일흔 살 할머니는 2000년 대선 때도 이 학교에서 표를 찍었다고 했다. “그때는 아들이 불도저 옆에 있었고, 이번엔 손녀가 명단에 있어.” 할머니는 아침 7시부터 줄에 있었다고 했다. 한국 유권자는 2014년 지방선거부터 선거일 5일 전부터 2일 동안 전국 어느 사전투표소에서나 표를 찍을 수 있다. 2025년 대선 때 열에 셋 넘게가 사전투표를 했다. 베오그라드 할머니는 자기 동네 학교 앞에서 기다렸고, 한국 할머니는 장 보러 간 길에 역 앞 사전투표소에 들른다.
세르비아 사람들은 같은 일을 한 번 겪었다. 2000년 9월 대선 부정에 맞서 10월 5일 수십만 명이 베오그라드 의회로 몰려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물러나게 했다. 불도저가 의회 앞으로 나아가 「불도저 혁명」이라 불린다. 한국도 같은 일을 겪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맞서 4월 19일 학생과 시민이 거리로 나왔고,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났다. 4월 혁명에서 학생과 시민 186명이 숨졌다. 한국의 광장이 촛불을 들기까지는 피를 흘린 광장들이 먼저 있었다. 두 나라 모두 부정선거가 정권을 무너뜨린 기억을 갖고 있다. 이번 베오그라드의 학생들은 불도저 대신 투표지를 골랐다.
세르비아 학생들이 바라본 바깥 잣대는 유럽연합이다. 세르비아는 2012년 가입 후보국이 됐고, 2014년 가입 협상을 시작했다. 협상의 핵심은 사법부 독립과 부패 척결을 다루는 법치 분야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1월 4일 2026년 확대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한국의 잣대는 안에 있었다. 1988년 문을 연 헌법재판소가 계엄과 탄핵을 심판했다. 세르비아는 바깥의 잣대에 기대 안을 고치려 하고, 한국은 안의 잣대로 바깥의 의심을 견뎠다.
밤에 지우가 영상 통화를 걸어 왔다. 2024년 겨울 지우는 파리 교민 집회에 나갔다고 했다. “응원봉이 없어서 휴대전화 손전등 켰어요. 프랑스 사람들이 콘서트인 줄 알고 노래 신청했어요.” 지우는 화면 너머 베오그라드 광장의 불꽃을 보더니 물었다. “여기도 이겼어요? 그럼 내일부터 뭐 해요?” 나는 대답 대신 한국의 다음 날을 떠올렸다. 광장이 이기면 다음 날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지우가 덧붙였다. “한국은 이긴 다음 날 대통령이 바로 출근했잖아요. 세르비아는 학생들이 내일 강의부터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한국의 다음 날은 국무회의와 예산안이었다. 세르비아의 다음 날은 연립과 장관 인선이다.
바꾼 뒤에 줄었는지가 진짜 물음이다. 세르비아의 지붕은 부실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한국은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해 노동자가 숨지면 경영 책임자까지 처벌하게 했고, 2024년 1월부터는 5인 이상 사업장으로 넓혔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뒤 「산재와의 전쟁」을 내걸었다. 고용노동부 집계로 2026년 상반기 산재 사고 사망자는 253명으로 1년 전보다 34명(11.8%) 줄어 2022년 통계 작성 뒤 상반기 가장 적었다. 건설업 사망은 105명으로 23.9%, 떨어짐 사고 사망은 84명으로 34.9% 줄었다. 같은 반년 제조업 사망은 92명으로 37.3% 늘었다. 3월 대전의 자동차 부품 공장 화재로 14명이 숨진 탓이 컸다. 노비사드의 16명과 대전의 14명은 다른 사고다. 같은 것은 숫자 뒤에 이름이 있다는 것이다.
새벽 1시, 베오그라드 공화국 광장에서 학생들이 국가를 불렀다. 나는 수첩 맨 뒤에 한국 산재 숫자를 다시 적었다. 253, 105, 84, 92, 14. 박성훈 차장이 메시지를 보냈다. 「제목 ‘체포 없이 바꾼 광장’ 어떠냐.」 「체포는 있었어요. 세르비아도 한국도요. 대신 ‘총 대신 표’는 어때요?」 「표는 진작부터 있었잖아. 한국은 표 찍을 날이 모자라서 사전투표까지 하는 나라다.」 「투표함까지 걸어간 사람들이 처음이죠.」 박 차장은 「둘 다 써 와」라고 했다. 나는 티라나행 버스표를 끊었다. 알바니아에서는 섬 하나를 두고 사람들이 다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