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409자)
창립 회원
진짜 던전 방탈출 카페 · 류시안
목요일 아침, 재이는 계산대에 도연의 휴대전화와 제 휴대전화를 나란히 놓았다. 도연의 화면에는 중고 거래 앱의 「곰굴」 대화창이 열려 있었다. 재이의 화면에는 동호회 랭킹 사이트의 「탈출토끼」 기록 창이 열려 있었다. 재이는 큐브를 돌리지 않았다. 큐브는 계산대 구석에서 여섯 면이 맞은 채 놓여 있었다.
“토끼 님은 마침표를 이상하게 찍어요.” 재이가 두 화면을 손가락으로 번갈아 짚었다. “‘ㅇㅋ.’ 이렇게요. 자음 두 개 뒤에 마침표. 동호회에서 토끼 님만 그래요. 회장님이 예전에 놀렸어요. 「ㅇㅋ에 마침표 찍는 사람 처음 봄」”
도연의 화면 속 「곰굴」의 마지막 메시지가 보였다. 「사장님 개업 축하드려요. 문 꼭 보세요. ㅇㅋ.」
“그리고 곰젤리요. 토끼 님 기록 사진은 전부 곰젤리 들고 찍었어요. 마흔두 개 테마 전부.” 재이가 랭킹 사이트의 사진들을 넘겼다. 테마 간판 앞에서 하담이 곰젤리 봉지를 들고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사진마다 같은 봉지, 같은 표정이었다. “곰굴이 토끼 님이에요. 하담 씨가 사장님한테 이 문을 사게 했어요.”
도연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내 펼쳤다. 어제 전봇대에서 떼어 온 전단이었다. 바스러진 귀퉁이를 테이프로 붙여 두었다. 「사람을 찾습니다 — 채하운(27세)」 사진 속 남자의 가방에 손잡이 패치가 붙어 있었다.
재이가 전단을 들여다보았다. 오래 보았다.
“사 층 물에서 건진 패치요.”
“같은 그림이에요.”
“하담 씨는 구조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네요.” 재이가 전단을 내려놓았다. “오빠 찾으러 간 사람이에요. 사장님 가게를 골라서요.”
계단에서 발소리가 났다. 세찬이었다. 어제 하루 연락이 없던 세찬은 모자를 쓰지 않고 내려왔다. 머리는 감은 채로 말리지 않았고, 가슴에는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화면 귀퉁이에 「동시 시청 228,104」가 떠 있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어제는 사정이 있어서….” 세찬이 계산대 위의 전단을 보았다. 말이 끊겼다.
“회장님, 이 사람 알아요?”
재이가 전단을 세찬 앞으로 밀었다. 세찬은 전단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가, 돌린 자리에서 카메라 화면 속 자기 얼굴을 보았다.
“창립 멤버였어. 그만뒀다니까.”
“그만둔 사람을 찾습니다 전단은 안 붙여요.”
세찬은 대답하지 않았다. 계단에서 경탁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흔여덟, 하고 세는 소리가 났다. 경탁은 언제나 맨 아래 칸에서 숫자를 멈췄다.
*
물 빠진 사 층의 소용돌이를 지나 다음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세찬의 카메라 화면 속 댓글만 시끄러웠다. 「오늘 분위기 왜 이럼」 「회장님 머리 덜 말림」 「조사관님 오늘 계단 세는 소리가 작음」
사 층 계단참에서 유선 전화 상자가 울렸다. 경탁이 수화기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차장의 목소리가 작게 새어 나왔다. 부드럽고 짧았다. 도연은 한 걸음 뒤에서 들었다.
「여 조사관, 지금 동시 시청이 이십이만이야. 어제 공구 상가에서 금 사장이랑 종이 한 장 붙잡고 있었다며. 그 종이 화면에 나오면 안 돼. 숫자 하나 알려 줄까? 우리 국 예산 심의가 다음 달이야.」
“알겠습니다.”
「알겠다는 건 안 나온다는 거지?」
“알겠다는 겁니다.”
경탁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상자 옆에 감아 둔 전선을 한 바퀴 더 풀며 계단을 내려갔다. 도연이 따라 내려가며 물었다. 차장님이 뭐래요? 경탁은 계단을 세느라 대답하지 않았다. 마흔여덟 칸을 다 세고 나서야 한마디를 했다. 예산 얘기를 하셨습니다. 차장님은 늘 숫자로 걱정하십니다.
오 층은 넓었다. 천장이 높았고, 푸른 돌이 하늘의 별처럼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바닥이 이상했다. 손톱만 한 돌 조각 수만 개가 바닥 전체에 깔려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푸른 돌 조각이 굽이치며 바닥을 가로질렀다. 도연은 굽이치는 모양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한강이었다. 강을 따라 회색 돌 조각이 동네와 길을 이루었고, 동네 사이사이에 소용돌이 표시가 박혀 있었다.
“서울이에요.” 재이가 말했다. “서울 아래.”
소용돌이 표시는 대부분 금이 가 있었다. 금 간 표시 위에는 회색 가루가 덮여 있었다. 금이 가지 않은 표시는 둘이었다. 하나는 홍대 근처에서 푸르게 빛났다. 열쇠공이었다. 다른 하나는 바로 위, 철길을 나타내는 줄 옆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연남동 근처였다.
“연남동이요.” 재이가 쪼그려 앉아 희미한 표시를 짚었다. “경의선숲길 옆이에요. 저희 엄마 편의점이 여기서 두 블록이에요.”
홍대 표시에서 푸른 선이 아래로 뻗었다. 선 위에 작은 고리가 하나씩 박혀 있었다. 층이었다. 도연은 고리를 따라가며 셌다. 하나, 둘. 다섯 번째 고리가 지금 서 있는 자리였다. 선은 아래로 계속되어 아홉 번째 고리에서 다른 선과 만났다. 다른 선은 을지로에서 내려왔다. 을지로 표시는 금이 가 있었는데, 거기서 내려온 선은 금 가지 않고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두 선이 만나는 자리 밑에 고리가 하나 더 있었다. 열 번째 고리, 바닥이었다. 바닥 고리 위에는 열쇠 머리 모양의 홈이 파여 있었다.
다음 층으로 가는 문은 지도의 북쪽 끝, 벽에 있었다. 손잡이도 장치도 없었다. 소용돌이 무늬만 있었다.
“여러분, 지금 바닥에 서울 지도가 있습니다. 저기 홍대 표시가 저희가 내려온 데고요.” 세찬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댓글이 폭발했다. 「우리 동네 있나 찾아봄」 「강남은 왜 금 갔어」 「金 間 = 봉인?」 「seoul underground map omg」
경탁이 지도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금 간 표시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술이 움직였다. 칸을 세는 입이 아니었다. 표시를 세는 입이었다.
“마흔하나입니다.”
“금 간 거요?”
“봉인한 문입니다. 관리국이 여덟 해 동안 덮은 자리입니다.” 경탁이 종로 근처의 금 간 표시 하나를 발끝으로 가리켰다. “이건 제가 덮었습니다. 이것도요. 이것도.” 경탁의 발끝이 지도 위를 옮겨 다녔다. “열아홉입니다. 제가 덮은 건.”
도연은 지도를 가로질러 을지로 표시 앞에 갔다. 금이 간 표시였다. 표시에서 내려간 선은 금이 가지 않고 희미하게 빛났다. 바닥의 열 번째 고리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이건요? 을지로 미로상회요. 조사관님이 덮은 거죠?”
“네.”
“위는 덮였는데 선은 왜 살아 있어요?”
경탁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연은 을지로 표시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금 간 표시는 다른 표시들과 달리 살짝 들떠 있었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들어갈 만큼이었다. 방에서 혼자 튀는 것이었다. 도연은 지도 북쪽 벽의 문을 한 번 보고, 을지로 표시를 눌렀다.
돌 조각 하나가 바닥으로 쑥 들어갔다. 선을 따라 푸른빛이 번졌다. 을지로에서 바닥까지 희미하던 선이 한 번 환하게 타올랐다가 꺼졌다. 북쪽 벽의 문에서 돌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문이 옆으로 밀려나며 다음 계단이 드러났다.
차가운 바람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같이 올라오지 않았다. 바람만 왔다.
*
“조사관님.” 도연이 일어났다. 무릎에 돌가루가 묻어 있었다. “어제 내일 다 말씀하신다고 하셨어요. 오늘이에요.”
경탁이 세찬의 가슴 카메라를 보았다.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화면 귀퉁이의 숫자가 사십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카메라 끄십시오.”
세찬의 손이 카메라 단추로 갔다. 재이가 세찬의 손목을 잡았다.
“켜 두세요. 사장님이 켜 두기로 했어요. 오백만 원 받았잖아요.”
세찬의 손이 내려왔다. 경탁은 카메라를 오래 보다가 시선을 도연에게 옮겼다. 카메라를 피한 것이 아니었다. 말을 할 사람을 골랐다.
“2022년 7월입니다. 을지로3가 미로상회에서 손님이 안 나온다는 신고가 왔습니다. 손님 둘이 들어갔고, 하나가 나왔습니다. 나온 사람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못 했습니다. 저는 문 앞에서 일흔두 시간 기다렸습니다. 아래에서 아무 신호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소리도, 불빛도요.”
경탁이 숨을 골랐다. 세찬의 화면 속 댓글이 멈췄다. 사람들이 치던 손을 멈추고 듣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문틈으로 돌게가 올라왔습니다. 보도블록처럼 생긴 것들입니다. 을지로 지하철 공사장으로 들어갔고, 인부 두 분이 다리를 다쳤습니다. 한 분은 지금도 못 걸으십니다. 일흔세 시간째에 차장님이 봉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봉인했습니다.” 경탁이 도연을 똑바로 보았다. “안에 사람을 두고요. 문은 떼어서 창고에 넣었고, 두 해 뒤에 폐기 승인했습니다. 그 문이 사장님 가게에 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지도 위의 홍대 표시만 푸르게 빛났다.
“안에 둔 사람이 채하운이에요?”
“네.”
“하담 씨 오빠요.”
“네. 하담 씨는 다섯 해 동안 관리국에 전화를 했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칠월에. 제가 받았습니다. 매번 모른다고 했습니다. 지침이 그랬습니다.” 경탁이 점퍼 가슴의 배지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지침이 그랬다는 말은 사장님께는 안 하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했습니다.”
도연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미워하려고 내려왔는데, 경탁의 얼굴은 미워할 데가 없을 만큼 지쳐 있었다. 도연은 손에 쥔 젤리 봉지 다섯 장을 쥐었다 폈다.
재이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평소처럼 단조로웠다.
“둘이 들어갔고, 하나가 나왔다고 하셨죠. 나온 사람은 누구예요?”
경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경탁의 눈이 세찬에게로 갔다. 도연의 눈도, 재이의 눈도 세찬에게 갔다. 세찬의 가슴에서 카메라 빨간 불이 깜빡였다. 화면 속 숫자가 사십일만을 넘었다. 「뭐야」 「회장님?」 「설마」
세찬은 한동안 숨만 쉬었다. 입을 두 번 열었다가 두 번 닫았다. 세 번째에 말이 나왔다. 방송 말투가 아니었다. 「여러분」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저예요.”
세찬이 지도 위의 을지로 표시를 내려다보았다.
“하운이 형이랑 손잡이 만들었어요. 창립 회원 둘이서 미로상회 베타 테스트 들어갔어요. 형이 문을 풀었고, 계단이 나왔고, 형이 웃었어요. 이거 진짜다, 하면서요. 세 번째 층에서 돌게가 나왔어요. 저는 무서워서 혼자 올라왔어요. 형은 조금만 더 가 보자고 했어요. 금방 따라 올라온다고.” 세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관리국에서 서약서를 쓰라고 했어요. 안에서 본 걸 말하면 안 된다고. 저는 썼어요. 쓰고 나서 손잡이 로고를 바꿨어요. 형이 그린 손잡이 그림이 보기 싫어서요.”
재이의 손이 세찬의 손목에서 떨어졌다.
“하담 씨는요? 하담 씨는 알아요?”
“몰라. 내가 안 말했어. 다섯 해 동안 동호회에서 같이 방 들어가면서 한 번도.” 세찬이 웃었다. 웃음이 아니었다. “하담이가 우리 동호회 들어온 거, 형 찾으려고 들어온 거였어. 나는 알았어. 그래서 더 못 말했어.”
화면 귀퉁이의 댓글 창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빠르지 않았다. 한 줄씩, 천천히 올라왔다.
「…」 「회장님」 「구독 취소합니다」 「그래도 오늘 말한 건」
열린 북쪽 문 아래로 여섯 번째 층으로 가는 계단이 어둠 속으로 이어졌다. 바닥 지도 위에서 을지로에서 내려온 선이 다시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홉 번째 고리까지, 끊기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