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400자)

을지로

진짜 던전 방탈출 카페 · 류시안

수요일 아침⁠, 지하 2층 주차장 경사로에 견인차가 내려와 있었다⁠. 물은 밤새 빠졌지만 바닥에는 형광 이끼가 얇게 깔려 있었다⁠. 견인차 기사가 쇠사슬을 걸자 구십팔 년식 세단이 끼익 소리를 내며 끌려 올라갔다⁠. 차 문틈으로 물이 줄줄 흘렀다⁠. 운전석 거울에 매달린 작은 염주가 흔들렸다⁠.

건물주는 경사로 위에서 양산을 쓰고 서 있었다⁠. 도연이 옆으로 가서 고개를 숙였다⁠. 건물주는 차가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키는 나한테 있어요⁠.⁠” 건물주가 모시 셔츠 주머니를 두드렸다⁠. “⁠차가 없어서 그렇지⁠.⁠”

“⁠죄송합니다⁠.⁠”

“⁠할멈한테도 그렇게 말해 줘요⁠. 할멈은 차보다 차에 붙은 스티커를 더 아꼈어요⁠. 처음 간 바닷가에서 산 거⁠.⁠” 건물주가 양산을 접었다⁠. “⁠스티커는 물에 다 떨어졌대요⁠.⁠”

도연의 휴대전화가 떨었다⁠. 경탁이었다⁠. 「⁠오늘 하강 없음⁠. 건물 안전 점검⁠. 차장님 지시⁠.⁠」 바로 밑에 한 줄이 더 왔다⁠. 「⁠어제 질문 답 아직 못 들었습니다⁠.⁠」

도연은 답장을 쓰지 않았다⁠. 대신 중고 거래 앱을 열어 철거왕의 대화창을 띄웠다⁠. 거래 장소 칸에 「⁠을지로 공구 상가 3동 뒤 창고⁠」라고 적혀 있었다⁠.

을지로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도연은 세찬의 채널을 열었다⁠. 생중계 다시 보기 밑에 옛 영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강남 공포 테마 다섯 곳 비교⁠」 「⁠혼자 가도 되는 방 vs 절대 안 되는 방⁠」 세 해 전에 올린 영상이었고⁠, 조회수는 대부분 몇백이었다⁠. 「⁠혼자 가도 되는 방⁠」의 댓글 창이 갑자기 길어져 있었다⁠. 생중계를 보고 넘어온 사람들이 옛 영상에도 댓글을 달았다⁠. 「⁠여기서부터 정주행 시작⁠」 「⁠회장님 이때 머리 기셨네⁠」

댓글을 내리다가 도연의 엄지가 멈췄다⁠. 맨 아래⁠, 생중계보다 훨씬 전에 달린 댓글 하나였다⁠. 프로필 사진은 곰젤리였고⁠, 이름은 「⁠곰굴⁠」이었다⁠. 「⁠회장님⁠, 혼자 가면 안 되는 방에 혼자 들어간 사람은 어떻게 돼요⁠?⁠」 날짜는 작년 겨울이었다⁠. 답글은 없었다⁠. 세찬은 다른 댓글에는 하트를 다 눌러 두었는데⁠, 이 댓글에만 하트가 없었다⁠.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을지로3가에 멈췄다⁠. 선로 옆 벽에 붙은 형광등 하나가 깜빡였다⁠. 흰 나방은 보이지 않았다⁠. 도연은 휴대전화를 끄고 내렸다⁠.

*

을지로 공구 상가 뒷골목은 쇳소리로 가득했다⁠. 그라인더가 철판을 갈았고⁠, 지게차가 후진 경보를 울렸고⁠, 어디선가 망치가 같은 박자로 내려쳤다⁠. 3동 뒤 창고의 셔터는 반쯤 올라가 있었다⁠. 셔터 밑으로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자 문이 숲처럼 서 있었다⁠. 철문⁠, 나무 문⁠, 유리문⁠, 녹슨 방화문⁠. 문마다 매직으로 숫자가 적혀 있었고⁠, 문 사이사이에 세면대와 간판과 마네킹 상반신이 끼어 있었다⁠.

“⁠어서 와요⁠. 문 사러 왔어요⁠?⁠”

철거왕은 쉰 남짓한 남자였다⁠. 형광 주황 조끼를 입었고⁠, 목에 수건을 둘렀고⁠, 한 손에 아이스 커피를 들고 있었다⁠. 도연의 얼굴을 보자 커피를 내려놓았다⁠.

“⁠어⁠? 어어⁠? 홍대 던전 사장님⁠?⁠”

“⁠네⁠.⁠”

“⁠내가 그 문 판 사람이요⁠!⁠” 철거왕이 무릎을 쳤다⁠. “⁠내가 그 방송에 댓글 달았어요⁠. 「⁠저 문 내가 팔았음⁠」 아무도 안 믿어⁠. 다들 ‘⁠ㅋㅋ 나는 저 쥐 키움⁠’ 이러고⁠. 사장님⁠, 나 사인 좀⁠.⁠”

철거왕이 내민 것은 영수증 뭉치였다⁠. 도연은 맨 위 영수증 뒷면에 사인을 해 주고 물었다⁠.

“⁠그 문⁠, 원래 어디 거였어요⁠?⁠”

“⁠관리국이요⁠.⁠” 철거왕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라에서 쓰던 물건 팔아 치우는 공매 있잖아요⁠. 이 년 전에 관리국 창고 물건이 한 묶음 나왔어요⁠. 철제 선반⁠, 낡은 금고⁠, 의자 서른 개⁠, 그리고 나무 문 하나⁠. 서류에는 「⁠폐기 물품 — 목재 문짝 1⁠」 이렇게만 적혀 있었어요⁠. 열쇠는 철사로 손잡이에 묶여 있었고요⁠.⁠”

“⁠관리국 창고에 왜 방탈출 문이 있었어요⁠?⁠”

“⁠내가 알아요⁠? 관리국이 뭐 하는 데인지도 그때 처음 들었는데⁠. 문이 좋잖아요⁠. 참나무에 놋쇠⁠. 요새 이런 거 안 나와요⁠.⁠” 철거왕이 커피를 마셨다⁠. “⁠근데 그 문은 금방 안 팔렸어요⁠. 아니⁠, 못 팔았어요⁠.⁠”

“⁠왜요⁠?⁠”

“⁠올봄에 웬 아가씨가 왔어요⁠. 등산 가방 메고⁠, 곰젤리 먹으면서⁠.⁠” 철거왕이 손가락으로 곰 모양을 그려 보였다⁠. “⁠문을 한참 보더니 오십만 원을 주는 거예요⁠. 사는 게 아니라 붙잡아 두는 값이라고⁠. 자기가 말할 때까지 아무한테도 팔지 말고⁠, 말하면 그때 앱에 올리래요⁠. 홍대에 새로 여는 방탈출 사장님이 사러 올 거라고⁠.⁠”

도연은 가방끈을 쥐었다⁠. 손가락이 끈 위에서 미끄러졌다⁠.

“⁠언제 말했어요⁠, 올리라고⁠?⁠”

“⁠유월 말인가⁠? 사장님 개업하기 일주일 전⁠.⁠” 철거왕이 휴대전화를 열어 보여 주었다⁠. 「⁠곰굴⁠」이라는 이름으로 온 메시지였다⁠. 「⁠이제 올려 주세요⁠. 사장님 이름은 금도연이에요⁠. 사러 올 거예요⁠.⁠」

“⁠사장님 이름까지 알더라고⁠. 그래서 나는 둘이 아는 사이인 줄 알았지⁠.⁠”

*

창고 셔터 밑으로 남색 점퍼가 허리를 숙이고 들어왔다⁠. 경탁이었다⁠. 땀에 젖은 셔츠 위로 점퍼를 입고 있었고⁠, 손에 관리국 서류철을 들고 있었다⁠.

“⁠사장님⁠, 여기 계실 줄 알았습니다⁠.⁠”

“⁠제 질문에도 답 안 하시면서 제 위치는 아시네요⁠.⁠”

경탁은 대답하지 않고 철거왕에게 서류철을 펼쳐 보였다⁠.

“⁠관리국 조사관입니다⁠. 이 년 전 공매로 사 가신 물품 중에 목재 문짝 한 짝⁠, 공매 서류 사본 좀 보겠습니다⁠.⁠”

“⁠아⁠, 그거요⁠. 잠깐만요⁠.⁠” 철거왕이 책상 서랍을 뒤져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여기 있네⁠. 복사본이에요⁠. 원본은 컴퓨터에 있고⁠.⁠”

경탁이 손을 뻗었다⁠. 도연의 손이 먼저 닿았다⁠. 종이 한쪽 끝을 도연이⁠, 반대쪽 끝을 경탁이 쥐었다⁠. 둘은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다⁠. 종이가 팽팽해졌다⁠.

“⁠놓으십시오⁠.⁠”

“⁠읽고 놓을게요⁠.⁠”

“⁠관리국 서류입니다⁠.⁠”

“⁠제 가게 문 서류예요⁠.⁠”

“⁠사장님이 이걸 읽으시면 내일부터 저를 다르게 보실 겁니다⁠.⁠”

“⁠지금도 다르게 보고 있어요⁠. 조사관님은 계단은 세면서 자기 얘기는 안 세잖아요⁠.⁠”

철거왕이 커피를 든 채 둘을 번갈아 보았다⁠. “⁠찢어지면 또 뽑아 드릴게⁠. 복사기 있어요⁠.⁠”

경탁이 손에 힘을 빼지 않았고⁠, 도연도 빼지 않았다⁠. 도연은 종이를 당긴 채 글씨를 읽었다⁠. 「⁠국유 물품 매각 목록 — 지하이상공간관리국 보관 창고⁠」 목록의 일곱 번째 줄에 「⁠목재 문짝(⁠놋쇠 손잡이⁠) 1 · 원 소재지 을지로3가 미로상회 · 봉인 해제 후 보관⁠」 맨 아래 칸에 도장이 찍혀 있었고⁠, 도장 옆에 손으로 쓴 이름이 있었다⁠.

「⁠폐기 승인 — 조사관 여경탁⁠」

도연은 종이를 놓았다⁠. 경탁도 동시에 놓았다⁠. 종이가 바닥에 떨어져 문짝 하나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철거왕이 무릎을 꿇고 종이를 주웠다⁠.

“⁠조사관님이 파셨네요⁠. 이 문⁠.⁠”

“⁠제가 폐기 승인했습니다⁠. 사 가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문을 왜 떼서 창고에 둬요⁠? 문 뒤가 던전인데요⁠?⁠”

“⁠문을 떼면 던전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경탁이 철거왕에게서 종이를 받아 접었다⁠. 접는 손이 느렸다⁠. “⁠봉인한 자리에서 떼어 낸 문은 그냥 나무라고요⁠. 다섯 해 동안 그렇게 알았습니다⁠. 사장님 가게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문이 문을 데려간다는 걸⁠.⁠”

“⁠미로상회는요⁠? 거기 뭐가 있었는데요⁠?⁠”

경탁은 서류철을 덮었다⁠. 셔터 밖 골목에서 그라인더가 길게 비명을 질렀다⁠.

“⁠가 보시겠습니까⁠?⁠”

*

을지로3가 노가리 골목은 낮인데도 의자가 골목에 나와 있었다⁠. 은박 테이블마다 맥주잔이 놓였고⁠, 연탄 화로 위에서 노가리가 구워졌다⁠. 미로상회가 있던 자리는 골목 끝의 맥줏집이었다⁠. 간판에 「⁠을지로 원조 노가리⁠」라고 적혀 있었다⁠. 경탁은 가게 주인에게 배지를 보여 주고 뒷문 창고로 들어갔다⁠. 주인은 노가리를 뒤집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관리국 사람이 오는 건 다섯 해 만이라고 했다⁠. 주인은 도연을 알아보고 노가리 한 마리를 은박 접시에 담아 내밀었다⁠. 홍대 던전 사장님이시죠⁠? 우리 창고에도 뭐 있어요⁠? 있으면 우리도 방송 좀 타게⁠. 경탁이 대신 대답했다⁠. 없습니다⁠. 주인은 실망한 얼굴로 노가리를 도로 가져가다가⁠, 도연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는 접시를 놓고 갔다⁠. 노가리는 딱딱했고 마요네즈에 고춧가루가 섞여 있었다⁠.

창고 바닥 한구석에 콘크리트를 덧바른 자리가 있었다⁠. 문짝 하나 크기였다⁠. 다른 바닥보다 색이 짙었고⁠, 한가운데에 쇠 도장이 박혀 있었다⁠. 「⁠봉인 2022-07 · 지하이상공간관리국⁠」 콘크리트 위에 맥주 상자가 세 개 쌓여 있었다⁠.

경탁이 맥주 상자를 하나씩 내려놓았다⁠. 세 번째 상자를 내려놓고 나서 콘크리트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여기 문이 있었습니다⁠. 미로상회는 방탈출 카페였습니다⁠. 사장님 가게처럼요⁠. 손님이 들어가서 안 나왔습니다⁠.⁠”

“⁠몇 명이요⁠?⁠”

경탁은 대답하지 않았다⁠. 콘크리트 가장자리의 금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금은 콘크리트 바깥으로는 나가지 않았다⁠.

“⁠조사관님⁠. 사람이 있는데 봉인했어요⁠?⁠”

“⁠일흔두 시간 기다렸습니다⁠.⁠” 경탁이 일어났다⁠. 무릎을 털었다⁠. “⁠사장님⁠, 내일 내려가실 때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조사관님은 늘 여기까지래요⁠.⁠”

“⁠압니다⁠.⁠”

경탁은 맥주 상자 셋을 원래대로 콘크리트 위에 쌓았다⁠. 맨 위 상자의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맞춰 반듯하게 놓았다⁠. 다섯 해 동안 누군가 이 자리에 상자를 쌓아 왔고⁠, 경탁은 쌓인 모양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했다⁠.

맥줏집 안 텔레비전에서 낮 뉴스가 돌았다⁠. 자막이 흘렀다⁠. 「⁠해외 지하철 정전 원인 “⁠빛 먹는 곤충⁠” 가능성 … 각국 조사 착수⁠」 손님 하나가 노가리를 씹으며 화면을 가리켰다⁠. 저거 홍대 그거 아냐⁠? 다른 손님이 대답했다⁠. 전 세계가 다 홍대네⁠.

*

도연은 혼자 골목으로 나왔다⁠. 단톡방 「⁠손잡이⁠」에서 재이가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편의점 끝나고 열쇠공 갈게요⁠. 회장님 오늘 연락 안 됨⁠. 단톡방도 안 읽음⁠.⁠」 세찬의 이름 옆 숫자 1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맥줏집 앞 전봇대에는 전단이 겹겹이 붙어 있었다⁠. 맨 위에는 「⁠원룸 즉시 입주⁠」⁠, 아래에는 「⁠휴대폰 성지⁠」⁠, 다시 아래에는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바랜 종이들⁠. 도연은 전봇대를 지나치다 걸음을 멈췄다⁠. 틀린 그림이 하나 있었다⁠. 겹친 전단 사이로 사진 한 귀퉁이가 비죽 나와 있었다⁠. 사진 속 남자가 멘 가방에 동그란 패치가 붙어 있었다⁠. 문손잡이 그림이었다⁠. 어제 사 층 물에서 건진 패치와 같은 그림이었다⁠.

도연은 손톱으로 「⁠휴대폰 성지⁠」의 모서리를 긁어 떼었다⁠. 밑에 붙은 종이도 뗐다⁠. 테이프가 굳어 종이가 바스러졌다⁠. 바스러진 조각 밑에서 다섯 해 묵은 전단이 나왔다⁠. 비와 햇빛에 색이 빠져 거의 하얬지만 굵은 글씨는 남아 있었다⁠.

「⁠사람을 찾습니다 — 채하운(⁠27세⁠)⁠」

사진 속 남자는 웃고 있었다⁠. 큰 키에 짧은 머리⁠, 가방에 손잡이 패치⁠. 웃을 때 한쪽 눈이 더 감기는 얼굴이었다⁠. 사진 밑에 글씨가 이어졌다⁠.

「⁠2022년 7월 을지로3가 미로상회에서 마지막으로 목격⁠. 보신 분은 연락 주세요⁠. 연락처 — 동생 채하담⁠」

도연은 전봇대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등 뒤 노가리 골목에서 누군가 건배를 외쳤다⁠. 맥주잔 부딪히는 소리가 골목 끝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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