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5,335자)

물길

진짜 던전 방탈출 카페 · 류시안

화요일 아침⁠, 세찬은 계산대에 노트북을 펴 놓고 앉아 있었다⁠. 밤새 잠을 안 잔 얼굴이었다⁠. 화면에는 채널 관리 창이 떠 있었고⁠, 숫자 하나가 크게 적혀 있었다⁠. 「⁠이번 주 후원 합계 5⁠,120⁠,000원⁠」 숫자 아래로 후원 메시지가 길게 이어졌다⁠. 「⁠사장님 가게 망하지 마세요⁠」 「⁠이끼쥐 굿즈 나오면 삽니다⁠」 「⁠조사관님 거울 돌리는 영상 백 번 봄⁠」

“⁠사장님⁠, 앉아 봐요⁠.⁠”

도연은 형광등 상자를 내려놓고 앉았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떨었다⁠. 「⁠[대출 이자 안내] 7월 납입일까지 3일 남았습니다⁠」 알림 아래에 건물주가 보낸 문자가 있었다⁠. 「⁠형광등·전선·방역 견적 첨부합니다⁠. 보증금에서 공제 예정⁠.⁠」 첨부한 사진 속 견적서 맨 아래 숫자가 이자보다 컸다⁠.

세찬이 노트북을 돌려 도연에게 보였다⁠.

“⁠이거 제 돈 아니에요⁠. 사장님 가게 덕에 들어온 돈이에요⁠. 오백만 원 보낼게요⁠. 이자 내고⁠, 건물주님 수리비 내고⁠.⁠”

“⁠조건은요⁠?⁠”

세찬이 웃었다⁠. 웃음이 금방 닫혔다⁠.

“⁠사장님은 방탈출 사장님이라 조건부터 찾네⁠.⁠” 세찬이 노트북 화면을 넘겼다⁠. 후원사 메일이 열렸다⁠. 「⁠[제휴 제안] 실시간 던전 탐사 독점 중계 및 캐릭터 상품화⁠」 “⁠카메라는 계속 제 거⁠. 그리고 이끼쥐 키링⁠. 사장님 가게 이름 넣어서요⁠. 굿즈 수익 반은 사장님 거⁠.⁠”

“⁠이끼쥐가 귀여워요⁠?⁠”

“⁠댓글 보면 귀엽대요⁠. 형광색이 요즘 유행이래요⁠.⁠”

도연은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이자 납입일까지 사흘⁠. 견적서⁠. 건물주의 한 달⁠. 계단의 나방⁠, 보컬 학원의 촛불⁠, 타코집 앞의 줄⁠. 앞치마 주머니에는 재이가 접어 넣은 철물점 영수증이 아직 들어 있었다⁠.

“⁠어제 그 패치요⁠.⁠”

세찬의 손가락이 노트북 위에서 멈췄다⁠.

“⁠그거 예전 로고 맞아요⁠. 창립 멤버들 거⁠. 다들 그만뒀어요⁠. 누가 이 던전에 먼저 들어왔다가 흘렸나 보죠⁠.⁠”

“⁠누가요⁠?⁠”

“⁠모르죠⁠. 창립 멤버가 열 명이 넘었는데⁠.⁠” 세찬이 노트북을 덮었다⁠. “⁠사장님⁠, 돈 받을 거예요⁠, 말 거예요⁠? 저 지금 이 말 진짜 하기 싫은데⁠, 이 돈 없으면 사장님 이번 달 못 넘겨요⁠.⁠”

도연은 오래 대답하지 않았다⁠. 세찬은 노트북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같은 박자로 세 번⁠, 다시 세 번⁠.

“⁠받을게요⁠. 키링은 빼고요⁠.⁠”

“⁠키링이 제일 돈 되는데⁠.⁠”

“⁠이끼쥐가 살사를 먹었어요⁠. 타코집 사장님이 이끼쥐 키링 보시면 울어요⁠.⁠”

세찬이 웃었다⁠. 이번에는 웃음이 조금 오래 갔다⁠. 휴대전화를 꺼내 이체 화면을 열고 숫자를 넣었다⁠. 도연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진동이 한 번 왔다⁠. 「⁠입금 5⁠,000⁠,000원 — 탁세찬⁠」 계단을 내려오던 재이가 계산대 앞에서 두 사람의 휴대전화를 차례로 보았다⁠. 재이는 아무 말 없이 큐브를 한 바퀴 돌렸다⁠. 맞아 있던 한 면이 흐트러졌다⁠.

세찬이 노트북을 들고 화장실에 간 사이⁠, 재이가 계산대 옆 의자에 앉았다⁠. 큐브를 다시 맞추면서 말했다⁠.

“⁠받으셨네요⁠.⁠”

“⁠받았어요⁠. 이자가 사흘 남았어요⁠.⁠”

“⁠잘하셨어요⁠. 저라도 받아요⁠.⁠” 재이가 큐브 윗면을 맞췄다⁠. “⁠회장님이 예전에 저한테 그랬어요⁠. 협찬 받으면 카메라를 못 끈대요⁠. 끄면 돈 준 사람이 화낸대요⁠. 그래서 회장님은 협찬을 안 받았어요⁠. 삼 년 동안 한 번도요⁠.⁠”

“⁠이번엔 받았네요⁠.⁠”

“⁠이번엔 받았어요⁠. 사장님한테 주려고요⁠.⁠” 재이가 큐브 옆면을 돌렸다⁠. 노란 면이 맞았다⁠. “⁠그러니까 이제 사장님도 카메라를 못 꺼요⁠.⁠”

도연은 앞치마 주머니의 휴대전화를 만졌다⁠. 입금 알림이 아직 화면에 떠 있었다⁠. 화장실 문 너머에서 세찬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났다⁠. 네⁠, 네⁠, 독점은 아직요⁠. 사장님이 키링은 싫대요⁠. 네⁠.

재이가 다 맞춘 큐브를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섞지 않았다⁠.

*

열한 시⁠, 경탁이 둥글게 만 종이를 들고 내려왔다⁠. 건물 도면이었다⁠. 경탁은 계산대에 도면을 펴고 지하 2층 주차장 바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차장님이 보내셨습니다⁠. 어젯밤부터 주차장 바닥 배수구에서 물소리가 납니다⁠. 위로 흐르는 소리입니다⁠.⁠”

“⁠물이 위로 흘러요⁠?⁠”

“⁠아래 것이 위로 오릅니다⁠. 물도 아래 것입니다⁠.⁠” 경탁이 도면을 말았다⁠. “⁠사 층은 물입니다⁠. 사장님이 물을 빼시면 물이 어디로 가는지 저는 모릅니다⁠. 차장님도 모르십니다⁠.⁠”

“⁠그럼 빼지 말라는 말이에요⁠?⁠”

“⁠차장님은 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빼실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경탁이 도면을 겨드랑이에 꼈다⁠. “⁠맞았네요⁠.⁠”

*

사 층의 물은 어제보다 조금 더 차올라 있었다⁠. 물가 계단 두 칸이 잠겼다⁠. 도연은 맨 아래 마른 계단에 쪼그려 앉아 물을 보았다⁠. 물은 검었지만 맑았다⁠. 손전등을 비추자 바닥까지 보였다⁠. 깊이는 어른 키 하나쯤이었다⁠. 바닥에 둥근 무늬가 있었다⁠. 물결이 흔들려서 무늬가 무엇인지는 잡히지 않았다⁠.

맞은편 벽 아래에 돌 바퀴가 반쯤 물 밖으로 나와 있었다⁠. 바퀴에는 손잡이가 셋 달려 있었다⁠. 바퀴 위쪽 벽에는 돌을 깎아 만든 물길 셋이 비스듬히 위로 뻗어 있었다⁠. 왼편 물길⁠, 가운데 물길⁠, 오른편 물길⁠. 물길마다 입구에 작은 돌 문짝이 닫혀 있었다⁠.

“⁠여러분⁠, 지하 사 층입니다⁠. 오늘은 수영장입니다⁠.⁠” 세찬이 가슴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 댓글이 올라갔다⁠. 「⁠회장님 수영 가능⁠?⁠」 「⁠조사관님 튜브 챙기셨나요⁠」 「⁠how deep⁠」

“⁠저 바퀴까지 가야 하는데요⁠.⁠” 재이가 말했다⁠. “⁠물을 건너서요⁠.⁠”

모두가 경탁을 보았다⁠.

“⁠제가 왜 봅니까⁠?⁠”

“⁠제일 크시잖아요⁠.⁠”

“⁠어제도 그러셨습니다⁠.⁠”

“⁠어제는 천장이었고요⁠, 오늘은 물이에요⁠.⁠”

경탁은 한숨을 쉬고 점퍼를 벗어 세찬에게 건넸다⁠. 은색 배지가 달린 점퍼였다⁠. 세찬은 배지를 카메라에 비췄다가 재이에게 팔꿈치로 찔렸다⁠. 경탁이 신발을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었다⁠. 걷은 바지는 물속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경탁은 가슴까지 물에 잠긴 채 바퀴로 걸어갔다⁠. 물속에서 발밑을 세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칸이 아니라 걸음이었다⁠.

“⁠조사관님⁠, 손잡이 셋 중에 어느 걸 돌릴지 제가 말할 때까지 만지지 마세요⁠.⁠”

“⁠안 만집니다⁠. 저 거울 이후로 장치는 안 만집니다⁠.⁠”

도연은 물길 셋을 보았다⁠. 셋은 크기도 모양도 같았다⁠. 다른 것을 찾으려고 하나씩 보았다⁠. 왼편 물길 입구는 돌이 말라 하얬다⁠. 가운데 물길도 하얬다⁠. 오른편 물길 입구에만 이끼가 붙어 있었다⁠. 이끼쥐의 털과 같은 형광 이끼였고⁠, 이끼는 물길을 따라 위로 가늘게 자라 올라가 있었다⁠. 물이 흐르는 데에 이끼가 자랐다⁠. 물길 셋 가운데 물이 흘러 본 데는 오른편 하나였다⁠.

바퀴의 손잡이 셋에도 다른 것이 있었다⁠. 셋 중 하나에 소용돌이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소용돌이 손잡이는 오른편 물길을 향해 있었다⁠.

“⁠조사관님⁠, 소용돌이 새겨진 손잡이요⁠. 오른편으로 돌려 주세요⁠.⁠”

“⁠물이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알아요⁠. 저도 몰라요⁠.⁠”

경탁이 물속에서 도연을 보았다⁠.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 경탁은 손잡이를 잡고 한참 서 있었다⁠. 돌리지도 놓지도 않았다⁠. 세찬의 화면 속 댓글이 빨라졌다⁠. 「⁠돌려⁠」 「⁠돌리지 마⁠」 「⁠아저씨 표정 봐⁠」

“⁠사장님⁠. 이 물이 위로 가면 누가 젖습니까⁠?⁠”

“⁠모르겠어요⁠.⁠”

“⁠저는 압니다⁠. 누군가 젖습니다⁠. 늘 누군가 젖었습니다⁠.⁠” 경탁이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사장님이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돌립니다⁠. 둘 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경탁이 바퀴를 돌렸다⁠. 오른편 물길의 돌 문짝이 덜컥 열렸다⁠. 물이 소리를 내며 물길로 빨려 들어갔다⁠. 위로 비스듬히 뻗은 물길을 따라 검은 물이 거꾸로 흘러 올라갔다⁠. 사 층의 물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경탁의 가슴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무릎으로⁠.

계단 위에 둔 유선 전화 상자가 울렸다⁠. 재이가 수화기를 들어 도연에게 건넸다⁠. 봉인팀장의 목소리가 거칠게 올라왔다⁠.

「⁠조사관님⁠, 주차장 배수구에서 물이 솟습니다⁠. 분수처럼요⁠. 바닥이 벌써 발목까지 찼습니다⁠. 아니⁠, 무릎입니다⁠.⁠」

도연은 수화기를 쥐고 숨을 멈췄다⁠. 팀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구십팔 년식 세단이 떴습니다⁠. 천천히 돌고 있습니다⁠. 건물주 어르신이 양산 쓰고 경사로에 서 계십니다⁠.⁠」 팀장이 잠깐 말을 끊었다⁠. 「⁠울고 계십니다⁠.⁠」

경탁이 무릎까지 빠진 물속에서 도연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연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할멈이랑 처음 산 차요⁠. 그것만은 건드리지 마요⁠. 도연은 물이 빠지는 소리를 들으며 계단에 앉아 있었다⁠. 세찬도 이번에는 카메라에 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댓글만 올라갔다⁠. 「⁠할아버지 차ㅠㅠ⁠」 「⁠보험 되나요⁠」 「⁠이건 좀⁠」

*

물이 다 빠지는 데 이십 분이 들었다⁠. 사 층 바닥이 드러나자 하담의 젤리 봉지 하나가 젖은 돌 위에 납작하게 붙어 있었다⁠. 다섯 번째였다⁠. 맞은편 벽 아래에 다음 계단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경탁이 젖은 바지를 짜면서 도연에게 다가왔다⁠. 물이 바짓단에서 똑똑 떨어졌다⁠.

“⁠하나 여쭙겠습니다⁠.⁠”

“⁠하세요⁠.⁠”

“⁠하담 씨가 베타 테스트하러 올 때 가방이 얼마나 컸습니까⁠?⁠”

도연은 폐쇄회로 화면 속 하담의 등을 떠올렸다⁠. 어깨보다 높이 솟은 배낭이었다⁠. 등산용이었다⁠.

“⁠컸어요⁠. 등산 가방이요⁠.⁠”

“⁠방탈출하러 등산 가방을 멥니까⁠?⁠”

“⁠안 메죠⁠.⁠”

“⁠그 문⁠, 어디서 샀습니까⁠?⁠”

“⁠중고 거래 앱이요⁠. 「⁠철거왕⁠」이라는 업자가 올렸어요⁠. 을지로요⁠.⁠” 도연은 앞치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앱의 대화창을 열었다⁠. 철거왕과 주고받은 대화 위에 다른 대화창 하나가 있었다⁠. 곰젤리 그림이 프로필 사진인 「⁠곰굴⁠」이었다⁠. “⁠이분이 링크를 보내 줬어요⁠. 개업 축하한다고⁠, 새 테마에 딱 맞는 문이 나왔다고요⁠. 저는 동호회 사람인 줄 알았어요⁠.⁠”

경탁은 휴대전화 화면의 곰젤리를 오래 보았다⁠. 도연이 화면을 끄자 경탁이 고개를 들었다⁠.

“⁠그 업자⁠, 이름이 뭡니까⁠?⁠”

“⁠모르죠⁠. 철거왕이요⁠.⁠”

“⁠을지로 어디입니까⁠?⁠”

“⁠공구 상가 뒷골목이요⁠. 왜요⁠? 조사관님이 사 가시게요⁠?⁠”

경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계단 앞으로 가서 손전등을 비췄다⁠. 재이가 큐브를 돌리다 멈추고 바닥을 가리켰다⁠.

“⁠사장님⁠, 바닥이요⁠.⁠”

물이 빠진 바닥 한가운데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새겨져 있었다⁠. 물속에서 흔들려 보이지 않던 둥근 무늬였다⁠. 문마다 붙어 있던 소용돌이와 같은 모양이었고⁠, 크기만 방 하나만 했다⁠. 소용돌이 가운데에 홈이 하나 파여 있었다⁠. 열쇠 머리 모양이었다⁠.

도연은 소용돌이 가운데로 걸어가 홈 앞에 쪼그려 앉았다⁠. 허리를 굽히자 허리춤의 열쇠 꾸러미가 쩔렁 울렸다⁠. 가게 열쇠 여덟 개 사이에서 놋쇠 열쇠 하나가 손전등 빛을 받아 번쩍였다⁠. 열쇠 머리에 소용돌이가 새겨져 있었다⁠. 누런 꼬리표가 흔들렸다⁠.

경탁의 그림자가 도연의 등 위로 길게 덮였다⁠. 경탁이 손을 뻗어 꼬리표를 손가락 끝으로 들었다⁠. 꼬리표에 적힌 글씨를 소리 내어 읽었다⁠.

“⁠미로상회⁠, 삼⁠.⁠”

경탁의 손이 꼬리표에서 미끄러졌다⁠. 젖은 손가락이었다⁠.

“⁠사장님⁠, 그 열쇠 어디서 났습니까⁠?⁠”

5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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