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5,426자)

빛을 먹는 것

진짜 던전 방탈출 카페 · 류시안

월요일 아침⁠, 건물 계단은 한낮인데도 어두웠다⁠. 층마다 달린 형광등이 전부 꺼져 있었고⁠, 등갓마다 흰 나방이 대여섯 마리씩 날개를 접고 붙어 있었다⁠. 불을 다 먹은 나방들은 배가 불룩했다⁠. 도연이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자 가까운 나방 둘이 날개를 펴고 날아와 화면에 앉았다⁠. 손전등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 도연은 손전등을 끄고 난간을 더듬으며 올라갔다⁠.

3층 보컬 학원 문틈으로 노랫소리가 새어 나왔다⁠. 불 꺼진 연습실 안에서 학생 넷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고음을 지르고 있었다⁠. 피아노 위에는 촛불 하나가 켜져 있었다⁠. 촛불에는 나방이 앉지 않았다⁠.

“⁠열쇠공 사장님⁠?⁠” 원장이 문을 열었다⁠. 마흔쯤 된 여자였고⁠, 목에 스카프를 두 번 감고 있었다⁠. “⁠녹음실 전선은 쥐가 갉고⁠, 불은 나방이 먹고⁠. 수업을 촛불 켜고 해요⁠. 이게 무슨 홍대 감성이에요⁠.⁠”

“⁠죄송합니다⁠. 수리비는 제가⁠.⁠”

“⁠근데요⁠, 사장님⁠.⁠” 원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애들 음정이 좋아졌어요⁠. 안 보이니까 자기 소리를 들어요⁠. 어제 처음으로 하이 시를 깨끗하게 냈어요⁠.⁠” 원장은 잠깐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그래도 수리비는 주세요⁠.⁠”

연습실 안에서 한 학생이 고음을 내다 말고 소리쳤다⁠. 원장님 촛불에 나방 왔어요⁠. 원장이 문을 닫았다⁠. 문 너머에서 피아노가 다시 울렸다⁠.

*

열 시⁠, 선큰 마당 계단으로 하얀 모시 셔츠가 천천히 내려왔다⁠. 건물주였다⁠. 일흔을 넘긴 할아버지였고⁠, 지팡이 대신 접은 양산을 짚었다⁠. 겨드랑이에 누런 서류 봉투를 끼고 있었다⁠.

“⁠금 사장⁠, 앉아요⁠.⁠”

건물주는 마당 벤치에 앉아 양산을 무릎에 눕혔다⁠. 도연이 옆에 앉자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겉에 「⁠내용증명⁠」이라고 찍혀 있었다⁠.

“⁠계약 해지요⁠. 읽어 보면 알겠지만 한 달 줄 거요⁠. 법이 그래요⁠.⁠”

“⁠사장님⁠, 일주일만 기다려 주세요⁠. 사람이 안에 있어요⁠.⁠”

“⁠알아요⁠.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우리 손녀가 보여 줬어요⁠. 생방송인지 뭔지⁠.⁠” 건물주가 양산 손잡이를 쓰다듬었다⁠. “⁠금 사장⁠, 나는 이 건물 하나로 살아요⁠. 일 층 타코집이 장사가 안 되면 월세가 밀려요⁠. 네일숍 원장님은 손님이 쥐 보고 도망갔대요⁠. 보컬 학원은 불이 없고⁠. 나는 금 사장 하나 때문에 세 집을 잃게 생겼어요⁠.⁠”

“⁠다 돌려놓을게요⁠.⁠”

“⁠어떻게요⁠?⁠”

도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건물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기다린 얼굴이 아니었다⁠.

“⁠보증금에서 수리비를 깔 거요⁠. 전선⁠, 형광등⁠, 방역⁠. 그건 미안하게 생각 안 할 거요⁠.⁠” 건물주가 일어나 양산을 폈다⁠. 하얀 양산 그늘 위로 흰 나방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가⁠, 그늘에는 먹을 빛이 없다는 듯 도로 날아갔다⁠. “⁠내 차가 지하 2층에 있어요⁠. 구십팔 년식이요⁠. 할멈이랑 처음 산 차요⁠. 그것만은 건드리지 마요⁠.⁠”

건물주는 양산을 쓰고 계단을 올라갔다⁠. 도연은 봉투를 무릎에 얹은 채 앉아 있었다⁠. 마당 난간 너머에서 휴대전화 몇 대가 도연을 찍었다⁠. 계산대 텔레비전에서 낮 뉴스 자막이 흘렀다⁠. 「⁠홍대 지하 영상⁠, 해외 방송 잇따라 인용 … “⁠빛 먹는 나방⁠” 목격담 외국에서도⁠」

점심 무렵 도연은 철물점에서 형광등 스무 개와 촛불 한 상자를 샀다⁠. 계산대 단말기에 카드를 꽂자 짧은 소리가 났다⁠. 「⁠승인 거절 — 한도 초과⁠」 다른 카드를 꽂았다⁠. 같은 글자가 떴다⁠. 철물점 주인이 형광등 상자를 계산대 너머로 슬쩍 당겨 갔다⁠.

“⁠제가 낼게요⁠.⁠”

뒤에서 재이가 카드를 내밀었다⁠. 편의점 조끼 주머니에서 꺼낸⁠, 귀퉁이가 닳은 체크카드였다⁠. 승인 소리가 났다⁠. 재이는 영수증을 받아 접어서 도연의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나중에 갚으세요⁠. 이자는 없어요⁠. 대신 하담 씨 찾으면 저 먼저 소개해 주세요⁠. 랭킹 1위랑 같이 방 들어가 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재이 씨 랭킹 몇 위예요⁠?⁠”

“⁠칠 위요⁠. 회장님은 삼십일 위고요⁠. 리뷰만 해서요⁠.⁠”

형광등 상자를 안고 골목으로 나오자 타코집 앞에 줄이 건물을 반 바퀴 돌아 있었다⁠. 구경꾼들이 줄을 서서 타코를 샀다⁠. 타코집 사장이 솜브레로를 쓰고 창구에서 손을 흔들었다⁠. 「⁠던전 타코⁠」라고 적은 종이가 창구에 새로 붙어 있었다⁠. 살사는 초록색이었다⁠.

“⁠사장님⁠, 그거 쥐 살사 아니죠⁠?⁠”

“⁠고수 넣은 깁니더⁠! 진짜 과카몰리라예⁠!⁠” 사장이 큰 소리로 외치고 나서 작게 덧붙였다⁠. “⁠오늘 매출이 한 달 치라예⁠. 근데 내일 쥐 또 나오면 보건소 온다 카대예⁠.⁠”

세찬의 휴대전화가 주머니에서 쉬지 않고 울렸다⁠. 화면에 후원 알림이 연달아 떴다⁠. 「⁠후원 10⁠,000원 — 하담 씨 꼭 찾아 주세요⁠」 「⁠후원 5⁠,000원 — 링라이트 새로 사세요⁠」 세찬은 알림을 보다가 도연과 눈이 마주치자 휴대전화를 뒤집어 쥐었다⁠.

*

삼 층은 어두웠다⁠. 천장의 푸른 돌이 위층보다 드물게 박혀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 사람 키만 한 청동 거울 셋이 받침대에 꽂혀 있었다⁠. 오른편 벽의 갈라진 틈으로 굵은 푸른 빛줄기 하나가 들어와 바닥을 비췄다⁠. 맞은편 돌문의 소용돌이 무늬 한가운데에는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 둘레가 유리처럼 매끄러웠다⁠.

빛줄기 위에 흰 나방이 몰려 있었다⁠. 나방이 빛을 먹는 동안 빛줄기가 군데군데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

“⁠여러분⁠, 지하 삼 층입니다⁠. 오늘 화면이 좀 어두운데요⁠, 여러분 이해해 주세요⁠. 제 링라이트가 어제 순직했습니다⁠.⁠” 세찬이 가슴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 댓글이 올라갔다⁠. 「⁠링라이트 명복을 빕니다⁠」 「⁠조사관님 오늘은 서 있지만 말고 해 보세요⁠」

차장이 계단에서 무전으로 한 말을 경탁이 거울 앞에서 되뇌었다⁠. 화면에 사람 구하는 그림⁠. 경탁이 첫 거울을 잡고 돌렸다⁠. 빛줄기가 거울에 맞아 엉뚱한 벽으로 튀었다⁠. 다른 거울을 돌렸다⁠. 빛이 천장으로 갔다⁠. 세 번째 거울을 돌리자 빛이 세찬의 얼굴을 정통으로 비췄다⁠.

“⁠아⁠, 눈⁠! 눈⁠!⁠”

“⁠죄송합니다⁠.⁠”

댓글 창이 웃음으로 덮였다⁠. 「⁠조사관님 방탈출 처음이세요⁠?⁠」 「⁠회장님 실명 위기⁠」 「⁠아저씨 귀여움⁠」

경탁이 거울에서 손을 뗐다⁠. 손바닥을 점퍼에 문질렀다⁠.

“⁠처음입니다⁠. 저는 열쇠 없는 방에 들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관리국에서는 문이 보이면 덮습니다⁠. 여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그럼 왜 오늘은 돌리셨어요⁠?⁠”

“⁠차장님이 화면에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경탁이 도연을 보았다⁠. “⁠그리고 사장님이 돌리는 것보다 제가 못 돌리는 게 낫습니다⁠.⁠”

“⁠무슨 뜻이에요⁠?⁠”

“⁠제가 못 돌리면 오늘은 이 층에서 끝납니다⁠. 아래 것이 안 올라옵니다⁠.⁠”

도연은 경탁을 지나 거울 앞으로 갔다⁠. 경탁은 비켜 주었지만 멀리 가지 않았다⁠. 도연의 어깨 뒤 한 걸음에서 팔짱을 꼈다⁠.

도연은 빛줄기가 들어오는 틈부터 보았다⁠. 빛은 바닥에 비스듬히 떨어졌다⁠. 첫 거울은 빛이 떨어지는 자리 바로 위에 있었다⁠. 받침대 밑동에 긁힌 자국이 하나 있었다⁠. 거울을 돌린 흔적이었다⁠. 자국은 하나뿐이었고⁠, 자국이 가리키는 방향이 있었다⁠. 두 번째 거울 받침에도 자국이 있었다⁠. 세 번째에도⁠. 하담이 돌린 자국이었다⁠. 하담은 돌리고 지나갔고⁠, 문이 열린 뒤 누군가⁠, 아니면 무언가가 거울을 다시 흐트러뜨렸다⁠. 거울 받침대마다 이끼가 묻어 있었다⁠. 쥐였다⁠.

“⁠재이 씨⁠, 받침대 자국에 맞춰 돌려 줄래요⁠? 저는 빛을 볼게요⁠.⁠”

재이가 첫 거울을 자국에 맞췄다⁠. 빛줄기가 거울에 맞아 두 번째 거울로 튀었다⁠. 두 번째를 맞추자 빛이 세 번째로 갔다⁠. 세 번째 거울이 빛을 돌문으로 보냈다⁠. 푸른 빛이 돌문의 소용돌이를 따라 미끄러지다 구멍 바로 아래에서 흩어졌다⁠. 나방 수십 마리가 마지막 빛줄기 위에 한꺼번에 몰려든 탓이었다⁠. 흰 날개가 빛을 덮고⁠, 덮인 빛이 끊겼다⁠.

“⁠나방이 빛을 다 먹어요⁠.⁠” 재이가 말했다⁠.

“⁠나방은 제일 밝은 데로 가요⁠.⁠” 도연이 손전등을 꺼내 들었다⁠. “⁠회장님⁠, 휴대전화 화면 밝기 최대로 올려 줄래요⁠? 구석으로 가서요⁠.⁠”

“⁠나 미끼야⁠?⁠”

“⁠구독자 이십만이잖아요⁠. 제일 밝은 사람이에요⁠.⁠”

세찬이 휴대전화 두 대의 밝기를 끝까지 올리고 방 구석으로 달려갔다⁠. 나방 절반이 빛줄기를 떠나 세찬에게 몰려갔다⁠. 세찬의 머리와 어깨와 가슴 카메라에 흰 날개가 내려앉았다⁠. 세찬이 비명을 지르며 휴대전화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화면 속 생중계는 온통 흰 날개였다⁠. 「⁠화면이 하얘요⁠」 「⁠회장님 나방 됨⁠」 「⁠역대급 미끼⁠」

남은 나방이 빛줄기에 붙어 있었다⁠. 도연은 노란 앞치마 끈을 풀었다⁠. 앞치마를 펼쳐 세 번째 거울과 돌문 사이의 빛줄기 위에 지붕처럼 씌웠다⁠. 앞치마 밑으로 빛이 지나갔다⁠. 위에서 보면 빛이 보이지 않았다⁠. 나방들이 앞치마 위를 맴돌다가 더 밝은 세찬에게로 날아갔다⁠.

앞치마 그늘 밑에서 빛이 끊기지 않고 구멍에 닿았다⁠.

소용돌이 무늬가 바깥에서부터 푸르게 물들었다⁠. 한 바퀴⁠, 두 바퀴⁠. 가운데 구멍까지 물들자 돌문이 위로 들렸다⁠. 문이 천장 속으로 말려 올라가는 동안 경탁은 팔짱을 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열었습니다⁠.⁠” 경탁이 말했다⁠. 칭찬도 비난도 아닌 목소리였다⁠. “⁠제가 못 돌려도 사장님이 돌리시는군요⁠.⁠”

“⁠제가 그거 하려고 가게 차렸어요⁠.⁠”

경탁의 무전기가 작게 지직거렸다⁠. 유선 전화 상자에서 봉인팀장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조사관님⁠, 나방이 건물 계단을 다 덮었습니다⁠. 2층 네일숍 조명도 꺼졌습니다⁠. 원장님이 손님 손톱을 손전등 켜고 칠하고 계십니다⁠. 손전등도 꺼지고 있습니다⁠.⁠」

경탁이 수화기를 들었다⁠. “⁠촛불을 쓰라고 하십시오⁠. 촛불은 안 먹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도연을 보았다⁠. “⁠나방이 촛불을 안 먹는 건 보컬 학원 원장님이 찾아냈습니다⁠. 위에서는 다들 사장님이 연 문 때문에 새로운 걸 배우고 있습니다⁠.⁠”

도연은 앞치마를 털었다⁠. 앞치마 자락에 흰 날개 가루가 묻어 반짝였다⁠.

*

열린 문 아래 계단은 몇 칸 내려가다 물에 잠겼다⁠. 사 층은 방 전체가 물이었다⁠. 검은 물이 계단 끝까지 차올라 있었고⁠, 물 위로 천장의 푸른 돌빛이 흔들리며 비쳤다⁠. 물이 어디서 흘러드는지 졸졸 소리가 났다⁠. 맞은편 벽 아래에 돌로 만든 둥근 바퀴 같은 것이 반쯤 물 밖으로 나와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경탁이 말했다⁠. “⁠약속하신 한 층입니다⁠.⁠”

도연은 대답하지 않고 손전등으로 물 위를 비췄다⁠. 나방이 앉기 전에 빠르게 훑었다⁠. 물가에 빨간 것이 떠 있었다⁠. 젤리 봉지였다⁠. 네 번째였다⁠. 봉지 옆에 손바닥만 한 천 조각이 하나 더 떠 있었다⁠. 재이가 계단 끝에 엎드려 손을 뻗어 천 조각을 건졌다⁠.

헝겊 패치였다⁠. 가방에 붙이는 동그란 패치였고⁠, 오래 물에 잠겨 색이 다 빠져 있었다⁠. 가운데 문손잡이 그림이 있었고⁠, 둘레에 글씨가 수놓여 있었다⁠. 「⁠손잡이 · 방탈출 모임 · 창립⁠」

“⁠우리 동호회 거네요⁠.⁠” 재이가 말했다⁠. “⁠근데 지금 거랑 손잡이 모양이 달라요⁠. 예전 로고예요⁠.⁠”

재이가 패치를 세찬에게 내밀었다⁠. 나방을 다 털어 내고 돌아온 세찬이 패치를 보았다⁠. 머리카락에 흰 날개 가루가 묻어 있었다⁠. 세찬은 패치를 받지 않았다⁠. 대신 가슴 카메라에 손을 가져갔다⁠. 생중계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세찬이 제 손으로 카메라 단추를 눌러 껐다⁠.

“⁠회장님⁠?⁠”

세찬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 위에 비친 푸른 빛이 세찬의 얼굴 아래에서 흔들렸다⁠.

4화는 어땠나요?

댓글 0

로그인하면 댓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 보세요.

빛을 먹는 것 · 진짜 던전 방탈출 카페 · 나오늘 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