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518자)
일 층
진짜 던전 방탈출 카페 · 류시안
여덟 시 오십 분, 선큰 마당 계단으로 링라이트가 먼저 내려왔다. 둥근 조명이 배낭 위에 장대처럼 꽂혀 있었고, 배낭을 멘 사람은 가슴에 짐벌을 달고 양손에 손전등 두 개를 쥐고 있었다. 탁세찬이었다. 동호회 「손잡이」의 회장이자 구독자 팔백 명짜리 방탈출 리뷰 채널 「탈출각」의 주인이었다.
“여러분, 지금 제가 와 있는 곳은요.”
“카메라 꺼요.”
뒤에서 옥재이가 내려왔다. 연남동 편의점 조끼를 입은 채였고, 손에서는 큐브가 돌아가고 있었다. 재이는 계단을 다 내려올 때까지 큐브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마지막 칸에서 큐브의 여섯 면이 다 맞았다. 재이는 맞춘 큐브를 섞어서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켠 거 아니야. 리허설이야.” 세찬이 짐벌을 내렸다. “사장님, 진짜예요? 단톡방 분위기 반반이에요. 반은 사장님이 마케팅에 미쳤다고 하고, 반은 사장님이 그냥 미쳤다고 하고.”
“둘 다 아니에요. 보면 알아요.”
도연은 둘을 「지하 서고」로 데려갔다. 참나무 문 앞에서 숫자 자물쇠를 3174에 맞췄다. 걸쇠가 깊게 빠지고 문 안쪽에서 무언가 한 칸씩 물러났다. 문을 당기자 푸른 계단이 아래로 뻗었다. 세찬이 비명을 질렀다. 짧고 높았고, 끝이 갈라졌다. 재이는 큐브를 멈추고 계단을 내려다보았다.
“합판 아니네요.”
“어제까지는 합판이었어요.”
“풀어서 열었어요?”
“풀어서 열었어요. 비상 단추로 열면 합판이에요.”
재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이 이상해졌다는 것보다 규칙이 하나 생겼다는 데 더 관심이 있는 얼굴이었다. 세찬은 비명을 지른 입을 다물지 못하고 짐벌을 도로 들었다.
“기록용이야. 안 올려. 맹세해. 우리 이거 나중에 증거 필요할 수도 있잖아.”
재이가 세찬을 보았다. 세찬이 짐벌의 카메라를 떼어 가슴 고정대에 끼웠다. 손은 비었지만 렌즈는 앞을 보았다. 재이는 더 말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1층 타코집 사장이 은박 접시를 들고 내려왔다. 솜브레로는 벗었고, 대신 앞치마 주머니에 파리채가 꽂혀 있었다. 접시에는 타코 여섯 개가 담겨 있었다.
“쥐가 묵다 남긴 거 아니라예. 새로 싼 깁니더. 살사는 빼고.” 사장이 접시를 계산대에 놓고 「지하 서고」 문을 기웃거렸다. “상인회 단톡방 난리 났어예. 네일숍 원장님은 초록 쥐가 매니큐어 신상이냐 카고, 보컬 학원 원장님은 녹음실 전선 갉았다꼬 고소한다 카고.”
사장이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골목 상인회」 방에 사진이 줄줄이 올라와 있었다. 「지하 카페 사장 연락처 아시는 분」 「건물주님께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쥐가 형광색인 건 처음 봄 ㄷㄷ」 맨 아래에 건물주의 답이 짧게 달려 있었다. 「내일 내려가 보겠습니다.」
세찬이 타코 하나를 집어 반을 베어 물고 말했다. “사장님, 이거 끝나면 저희 채널에 타코집 협찬 넣어 드릴게요.”
“구독자 몇 명인데예?”
“팔백 명요.”
사장은 대답 없이 타코 접시를 세찬 앞에서 재이 앞으로 옮겨 놓고 올라갔다. 재이가 타코를 하나 집으며 큐브를 반 바퀴 돌렸다.
*
아홉 시 사십 분, 계단에서 쇳소리가 났다. 남색 점퍼 둘이 큰 철판 한 장을 양쪽에서 들고 내려왔고, 뒤에서 경탁이 회색 페인트 통 두 개와 전동 드릴을 들고 따라왔다. 페인트 통에는 「봉인 도료」라고 찍혀 있었다. 철판이 출입문 틀에 부딪혀 쾅 울렸다. 세찬이 한 번 더 비명을 질렀다.
“일찍 오셨네요. 열 시라면서요.”
“장비 설치에 이십 분 걸립니다.” 경탁이 「지하 서고」 앞에 드릴을 내려놓고 열린 참나무 문을 보았다. 푸른 계단을 보고, 도연을 보았다. “또 푸셨습니까?”
“풀었어요.”
“닫으십시오.”
도연은 문지방에 발을 걸쳤다. 낮에 경탁이 수첩을 펴며 한 말이 귀에 남아 있었다. 안에 확인된 사람이 있습니까. 목소리, 모습, 신호. 봉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확인된 사람을 그렇게 꼼꼼하게 묻는 데는 까닭이 있었다.
도연은 뒤로 한 걸음 내려갔다. 돌계단이 운동화 밑창으로 차갑게 올라왔다. 두 걸음, 세 걸음.
“사장님.”
“조사관님, 낮에 확인된 사람 있냐고 물으셨죠.” 도연은 세 번째 계단에서 몸을 돌렸다. 푸른빛이 아래에서 도연의 턱을 비췄다. “이제 있어요. 저요. 목소리, 모습 다 확인되죠?”
경탁의 턱 근육이 움직였다. 철판을 든 봉인팀 하나가 경탁을 보았다. 머리가 희끗한 남자였다.
“조사관님, 지침상 확인 생존자 있으면 못 덮습니다.”
“압니다.”
“제가 아까 사진도 찍었는데요. 사장님 얼굴 나왔어요.”
“압니다, 팀장님.”
경탁이 점퍼 지퍼를 목까지 올렸다. 드릴을 내려놓고 손전등 하나를 집었다. 계단 앞에서 잠깐 숨을 골랐다.
“끌어올리겠습니다. 사장님 팔을 잡고 올라오는 데까지 걸리는 동안만 안에 있겠습니다.”
“그럼 저 잡으러 오세요.”
도연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등 뒤에서 경탁이 욕 비슷한 소리를 삼키고 따라왔다. 뒤이어 재이가 큐브를 앞치마 주머니처럼 조끼에 넣고 내려왔고, 맨 뒤에서 세찬이 링라이트를 켰다가 끄고, 다시 켰다.
“회장님, 그거 끄세요. 눈부셔요.”
“무서워서 그래. 빛이 있어야 덜 무서워.”
*
계단은 꺾일 때마다 푸른빛이 짙어졌다. 경탁은 내려가는 내내 입술을 달싹였다. 도연이 뒤를 돌아보자 경탁이 입을 다물었다.
“칸 세세요?”
“마흔여덟입니다. 올라갈 때 필요합니다.”
계단 끝은 둥근 방이었다. 천장 한가운데 박힌 큰 돌 하나가 가장 밝게 빛났고, 방 안에는 돌기둥 넷이 사방에 서 있었다. 기둥 높이가 다 달랐다. 무릎 높이, 허리 높이, 어깨 높이, 머리 위까지. 천장 돌의 빛을 받아 기둥마다 바닥에 그림자가 길게 누웠다. 반대편 벽에 돌문이 있었고, 문 한가운데 둥근 돌 손잡이가 박혀 있었다. 손잡이 둘레에 화살표 네 개가 새겨져 있었다. 위, 아래, 왼쪽, 오른쪽. 손잡이 위에는 참나무 문과 같은 소용돌이 무늬가 있었다.
머리 위까지 오는 기둥 밑동에 빨간 봉지가 떨어져 있었다. 도연이 주웠다. 곰젤리 봉지였다. 두 번째였다.
“여기까지 왔어요. 하담 씨가 이 문 열고 내려갔어요.”
경탁이 도연의 팔꿈치를 잡았다. 세게 잡지는 않았지만 놓지도 않았다.
“확인했습니다. 올라가십시오.”
“삼십 초만요.”
“사장님이 이 문을 열면 이 층 아래 것이 올라옵니다.”
“안 열면 하담 씨가 못 올라와요.”
도연은 팔을 잡힌 채 방을 둘러보았다. 방탈출을 만들 때 도연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방에서 혼자 튀는 것을 찾는 일이었다. 이 방에서 튀는 것은 기둥 높이였다. 같은 돌로 깎은 기둥을 굳이 다 다르게 깎았다. 그다음은 그림자였다. 천장 돌이 하나뿐이라 기둥 그림자는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누웠다. 무릎 기둥의 그림자는 문을 향했고, 허리 기둥의 그림자는 왼편 벽을, 어깨 기둥의 그림자는 계단을, 머리 위 기둥의 그림자는 오른편 벽을 가리켰다.
“재이 씨, 낮은 기둥부터 그림자 방향 불러 줄래요? 문을 위로 놓고.”
재이가 기둥 사이를 걸으며 손가락으로 그림자를 따라갔다.
“무릎 기둥, 문으로 가니까 위. 허리 기둥, 왼쪽. 어깨 기둥, 계단으로 가니까 아래. 제일 큰 거, 오른쪽.”
“위, 왼쪽, 아래, 오른쪽.”
“잠깐만, 내가 더 밝게 해 줄게.” 세찬이 링라이트를 기둥에 들이밀었다. 바닥에 그림자가 하나씩 더 생겼다. 링라이트에서 나온 그림자가 천장 돌의 그림자와 엇갈려 기둥마다 두 갈래가 되었다.
“회장님.”
“어, 어, 미안. 끌게.”
링라이트가 꺼지자 그림자가 다시 하나씩이 되었다. 재이가 세찬을 오래 보았다. 세찬은 링라이트를 등 뒤로 숨겼다.
경탁이 도연의 팔을 끌었다. 도연은 끌려가면서 손을 뻗어 돌 손잡이를 잡았다. 위. 손잡이가 무겁게 돌아가며 딸깍했다. 왼쪽. 딸깍. 경탁이 한 번 더 끌었고, 도연의 손가락이 손잡이에서 미끄러졌다.
“조사관님, 두 번만요.”
“사장님은 지금 골목에 뭘 풀어놓는지 모르십니다.”
“알아요. 쥐요. 살사 먹는 쥐요. 하담 씨는 사흘째 밥도 못 먹었어요.”
경탁의 손이 아주 잠깐 느슨해졌다. 도연은 느슨해진 틈에 손잡이를 아래로 돌리고, 오른쪽으로 돌렸다. 딸깍, 딸깍.
돌문 안에서 무언가 무너지듯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문이 바닥으로 천천히 가라앉았고, 문이 있던 자리에 다음 계단이 드러났다. 아래에서 바람이 올라왔다. 아까보다 차고, 이끼 냄새가 짙었다.
이어서 소리가 올라왔다. 수백 개의 작은 발톱이 돌을 긁는 소리였다.
초록색이 벽을 타고 쏟아졌다. 이끼쥐 떼가 다음 계단에서 넘쳐 올라와 벽을 따라 둥근 방을 한 바퀴 돌고, 네 사람의 발목 사이를 빠져나가 위층 계단으로 몰려갔다. 형광 이끼가 어둠 속에 초록 강물처럼 흘렀다. 세찬이 재이의 등 뒤로 숨었고, 재이는 피하지도 않고 쥐 떼를 내려다보았다. 쥐 한 마리가 재이의 운동화 끈을 물었다가 놓고 지나갔다.
경탁의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위에 남은 봉인팀장의 목소리였다.
「조사관님, 쥐 떼가 계단으로 올라옵니다. 수백 마리입니다. 골목으로 나갑니다. 1층 타코집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장님이 솜브레로로 때리고 계십니다.」
경탁이 무전기를 입에 댔다. “출입문 닫으십시오. 반지하 창 닫으십시오. 골목 하수구 덮개 확인하십시오.” 무전기를 내리고 도연을 보았다. 푸른빛 아래에서 경탁의 얼굴은 화가 나 있다기보다 지쳐 보였다.
“방금 사장님이 연 문 때문에 위에서 사람이 다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사람이 있어요.”
“압니다. 저도 셀 줄 압니다. 위에 몇 명이 있는지도 셉니다.” 경탁이 계단으로 몸을 돌렸다. “올라가겠습니다. 쥐는 제가 막습니다. 삼십 분 드리겠습니다. 삼십 분 안에 안 올라오시면 팀장님하고 둘이 내려와서 끌어올립니다. 다리 하나씩 잡고.”
경탁은 마흔여덟 칸을 세며 올라갔다. 점퍼 등판이 꺾인 데서 사라질 때까지 숫자가 들렸다.
*
“사장님, 우리 진짜 여기서 삼십 분 놀아요?” 세찬이 속삭였다. “속삭이는 거 아니야. 그냥 목소리가 안 나와.”
도연은 열린 문 앞에 무릎을 꿇고 다음 계단을 내려다보았다. 계단은 아까보다 가팔랐고, 푸른 돌이 드문드문 박혀 있어서 아래가 잘 보이지 않았다. 재이가 도연 옆에 쪼그려 앉았다.
깊은 데서 불빛 하나가 깜빡였다.
푸른 돌빛과 다른 흰빛이었다. 손전등이었다. 빛이 짧게 세 번 깜빡이고, 길게 세 번 깜빡이고, 다시 짧게 세 번 깜빡였다. 잠깐 꺼졌다가 같은 순서로 되풀이했다.
“에스오에스예요.” 재이가 말했다.
“모스부호를 어떻게 알아?” 세찬이 물었다.
“방탈출 백 번 하면 알게 돼요. 회장님도 백 번 넘게 했잖아요.”
“나는 팔십 번째쯤부터 리뷰만 했어.”
도연은 젤리 봉지 두 장을 한 손에 겹쳐 쥐었다. 손바닥이 땀으로 미끄러웠다. 아래의 불빛이 다시 짧게 세 번 깜빡였다. 도연은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서 아래로 향했다.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 짧게 세 번. 손이 떨려서 긴 빛이 한 번 짧게 끊겼다.
아래의 불빛이 멈췄다. 이어서 한 번, 아주 길게 켜졌다가 꺼졌다.
“들었대요.” 재이가 말했다.
도연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옆에서 세찬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세찬의 가슴 고정대에 끼운 카메라 옆구리에서 작은 빨간 불이 깜빡였다. 아래의 손전등처럼 일정한 간격이었다. 도연은 배터리 표시등이겠거니 하고 다시 아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