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5,463자)

사흘째

진짜 던전 방탈출 카페 · 류시안

휴대전화가 이마 위에서 세 번 떨었다⁠. 금도연은 사무용 의자 네 개를 이어 붙인 자리에서 눈을 떴다⁠. 「⁠출근 오 분 전⁠」 테마의 소품 의자였고⁠, 바퀴 하나가 자꾸 미끄러져 밤새 몸이 조금씩 벽으로 밀려갔다⁠. 화면에 알림이 겹겹이 떠 있었다⁠.

「⁠예약 취소 — 할머니의 다락 · 2인 · 오후 2시⁠」 「⁠예약 취소 — 출근 오 분 전 · 4인 · 오후 4시⁠」 「⁠[대출 이자 안내] 7월 납입일까지 6일 남았습니다⁠」

열쇠공은 문을 연 지 삼 주가 된 가게였다⁠. 전세 보증금을 빼서 넣고⁠, 모자란 만큼 은행에서 빌렸다⁠. 반지하지만 큰 창이 선큰 마당을 향해 나 있어서 한낮이면 크림색 벽에 햇빛이 가득 찼다⁠. 도연은 이 창 때문에 계약했다⁠. 지하인데 밝은 가게는 홍대에 흔하지 않았다⁠.

계산대 모니터에는 사흘 전 밤의 폐쇄회로 화면이 멈춰 있었다⁠. 도연은 남색 조끼의 단추를 채우고 노란 앞치마 끈을 묶은 다음 재생 단추를 눌렀다⁠. 수요일 밤 열한 시 사십이 분⁠. 큰 배낭을 멘 채하담이 「⁠지하 서고⁠」의 책장 앞에서 곰젤리 봉지를 뜯었다⁠. 하담은 젤리 하나를 입에 넣고⁠, 책장을 훑고⁠, 칠 분 만에 첫 자물쇠를 열었다⁠. 가게 기록은 이십이 분이었다⁠. 마지막 문 앞에서 하담이 숫자 자물쇠를 돌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화면이 하얗게 끓었다⁠. 흰 눈발 같은 잡음이 사 분 동안 내렸고⁠, 잡음이 걷히자 방은 비어 있었다⁠.

경찰은 두 번 왔다⁠. 두 번 다 계산대의 비상 해제 단추로 마지막 문을 열었고⁠, 두 번 다 합판 벽을 보았다⁠. 합판에는 도연이 직접 그린 초록색 출구 표시가 붙어 있었다⁠. 「⁠성인 실종이고 자발적 가능성도 있습니다⁠.⁠」 형사는 그렇게 말하고 갔다⁠.

입구 유리문에는 도연이 붙인 안내문이 그대로 있었다⁠. 「⁠안전을 위해 두 분 이상 입장해 주세요⁠.⁠」 수요일 밤⁠, 하담은 혼자 왔다⁠. 동호회 랭킹 1위가 혼자 깨고 별점 다섯 개를 남겨 주겠다고 했다⁠. 도연은 안내문을 등지고 문을 열어 주었다⁠. 하담의 배낭이 베타 테스트에 들고 오기에는 너무 크다는 것도 보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편의점 삼각김밥 포장을 반쯤 뜯었을 때⁠, 「⁠지하 서고⁠」 방문 아래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렸다⁠.

도연은 김밥을 든 채 복도를 보았다⁠. 마지막 문은 중고로 들인 짙은 참나무 문이었다⁠. 놋쇠 손잡이 위에 소용돌이 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문과 함께 따라온 열쇠에는 「⁠미로상회 3⁠」이라는 누런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쓸 데 없는 열쇠라 가게 열쇠 꾸러미에 끼워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참나무 문 아래 틈에서 초록색 덩어리가 빠져나왔다⁠. 주먹만 한 쥐였다⁠. 털 대신 이끼가 덮여 있었고⁠, 이끼 끝이 형광펜처럼 옅게 빛났다⁠. 쥐는 복도 한가운데서 코를 벌름거리더니 곧장 도연의 발등으로 달려왔다⁠.

“⁠어⁠, 어⁠, 잠깐만⁠.⁠”

쥐가 도연의 운동화를 밟고 뛰어올라 김밥을 포장 비닐째 물었다⁠. 도연이 김밥을 놓지 않자 쥐도 놓지 않았다⁠. 둘은 김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 초쯤 버텼고⁠, 쥐가 이겼다⁠. 쥐는 김밥을 질질 끌고 복도를 달려 참나무 문틈으로 쑥 들어갔다⁠. 비닐이 문틈에 끼어 바스락거리다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연은 빈손을 내려다보았다⁠. 문틈에서 바람이 나왔다⁠. 에어컨 바람보다 차고 축축했다⁠. 바닥에 닿은 바람을 따라 가는 빛이 한 줄 새어 나왔다⁠. 형광등의 흰빛도 햇빛의 노란빛도 아닌 푸른빛이었다⁠.

도연은 계산대로 돌아가 비상 해제 단추에 손을 얹었다가 뗐다⁠. 경찰은 단추로 열었다⁠. 하담은 단추로 열지 않았다⁠. 하담은 풀었다⁠.

도연은 「⁠지하 서고⁠」의 입구로 갔다⁠. 손님처럼 문을 닫고⁠, 손님처럼 처음부터 시작했다⁠. 첫 자물쇠는 지구본이었다⁠. 지구본의 적도를 따라 붙은 스티커 넷이 도시 이름의 첫 글자를 가리켰다⁠. 다음은 촛대 셋의 그림자였고⁠, 그다음은 낡은 사전의 접힌 귀퉁이였다⁠. 자기가 만든 방인데도 손이 떨려 촛대를 한 번 쓰러뜨렸다⁠. 마지막은 책장이었다⁠. 책 일곱 권 가운데 넷이 거꾸로 꽂혀 있었다⁠. 거꾸로 꽂힌 책등의 권 번호를 왼쪽부터 읽으면 3⁠, 1⁠, 7⁠, 4였다⁠.

도연은 참나무 문의 숫자 자물쇠를 3174에 맞췄다⁠. 걸쇠가 빠지는 소리가 평소보다 깊고 길었다⁠. 문 안쪽에서 무언가 한 칸씩 물러나는 소리가 이어졌다⁠. 도연은 손잡이를 당겼다⁠.

합판 벽이 없었다⁠.

돌계단이 아래로 뻗어 있었다⁠. 계단 양옆의 벽에 박힌 돌들이 푸르게 빛났고⁠, 빛은 아래로 갈수록 짙어졌다⁠. 계단은 열두 칸쯤에서 꺾여 보이지 않았다⁠. 습한 바람에서 비 온 뒤의 공원 냄새가 났다⁠. 세 번째 계단에 빨간 봉지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도연은 무릎을 꿇고 봉지를 집었다⁠. 곰젤리 봉지였다⁠. 반쯤 남은 곰 세 마리가 봉지 안에서 굳어 있었다⁠. 하담이 수요일 밤 화면 속에서 뜯던 봉지와 같은 색이었다⁠.

“⁠하담 씨⁠.⁠”

목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가 꺾인 데서 사라졌다⁠. 대답은 없었다⁠. 아래 어딘가에서 김밥 비닐이 바스락거렸다⁠.

*

“⁠거기서 한 발도 내려가지 마십시오⁠.⁠”

도연은 젤리 봉지를 쥔 채 돌아보았다⁠. 「⁠지하 서고⁠」 입구에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짧은 검은 머리에 남색 점퍼를 입었고⁠, 점퍼 가슴에 은색 배지가 달려 있었다⁠. 손에 든 검은 상자에서 삑삑 소리가 났다⁠. 상자의 작은 화면에 푸른 막대가 끝까지 차 있었다⁠.

“⁠가게 문 잠가 놨는데요⁠.⁠”

“⁠열려 있었습니다⁠. 입구 유리문 위 걸쇠가 덜 걸렸습니다⁠.⁠” 남자가 배지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지하이상공간관리국 조사관 여경탁입니다⁠. 다들 던전 관리국이라고 부릅니다⁠. 저희도 그렇게 부릅니다⁠.⁠”

“⁠던전이요⁠?⁠”

“⁠지금 사장님이 서 계신 데가 던전 입구입니다⁠.⁠” 경탁이 상자를 문 앞에 들이밀었다⁠. 삑삑 소리가 한 음으로 이어졌다⁠. “⁠청색광 수치가 골목 끝에서부터 잡혔습니다⁠. 이 가게 창 밑에서 제일 셌고요⁠.⁠”

도연은 계단을 등진 채 문지방을 막았다⁠. 경탁의 눈이 도연의 어깨 너머 푸른 계단으로 갔다가 도연의 손으로 왔다⁠.

“⁠그건 뭡니까⁠?⁠”

“⁠손님 젤리요⁠. 사흘 전에 들어간 손님이요⁠. 아직 안 나왔어요⁠.⁠”

경탁은 젤리 봉지를 오래 보았다⁠. 상자를 점퍼 주머니에 넣고 수첩을 꺼냈다⁠.

“⁠안에 확인된 사람이 있습니까⁠? 목소리⁠, 모습⁠, 신호⁠.⁠”

“⁠젤리 봉지는 확인됐어요⁠.⁠”

“⁠봉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경탁이 수첩에 무언가 적고 덮었다⁠. “⁠오늘 밤 열 시에 이 문을 봉인합니다⁠. 봉인팀이 장비를 들고 옵니다⁠. 그때까지 아무도 들이지 마십시오⁠.⁠”

“⁠봉인하면 손님은요⁠?⁠”

경탁이 대답 대신 문으로 손을 뻗었다⁠. 도연이 막기 전에 손잡이를 잡아 문을 닫았다⁠. 쿵⁠. 걸쇠가 맞물렸다⁠. 경탁이 고개를 까딱했다⁠.

“⁠비상 해제 눌러 보십시오⁠.⁠”

도연은 계산대로 가서 단추를 눌렀다⁠. 자석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경탁이 문을 당겼다⁠. 합판 벽이었다⁠. 초록색 출구 표시가 둘을 내려다보았다⁠. 표시 속의 사람 그림이 달리는 모양이었다⁠.

“⁠억지로 열면 그냥 문입니다⁠. 풀어야 열립니다⁠. 저희는 푸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경탁이 합판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덮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덮으면 안 되죠⁠. 풀면 열린다면서요⁠. 제가 풀면 되잖아요⁠.⁠”

“⁠사장님이 한 층 풀 때마다 아래 것이 한 층씩 올라옵니다⁠.⁠” 경탁이 복도 바닥을 가리켰다⁠. 김밥 비닐이 끌려간 자국을 따라 초록색 이끼 부스러기가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이게 첫 층 것입니다⁠. 쥐입니다⁠. 다음은 쥐가 아닙니다⁠.⁠”

계단 위에서 쿵쿵 발소리가 났다⁠. 1층 타코집 사장이 앞치마 차림으로 뛰어 내려왔다⁠. 머리에는 가게 홍보용 솜브레로를 쓰고⁠, 한 손에 살사 통을 들고 있었다⁠.

“⁠사장님예⁠! 쥐가예⁠, 초록색 쥐가 우리 살사를 묵고 갔다 아입니까⁠! 살사가 초록색이 됐다꼬요⁠. 이거 과카몰리라꼬 팔 수도 없고⁠!⁠”

“⁠사장님⁠, 그게요⁠.⁠”

“⁠지하에서 올라온 거 내 다 봤어예⁠. 반지하 창문으로 쏙 들어가대예⁠.⁠” 타코집 사장이 경탁의 배지를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어⁠, 구청에서 나오셨습니꺼⁠?⁠”

“⁠비슷한 데서 나왔습니다⁠.⁠” 경탁이 살사 통을 들여다보았다⁠. 초록색 이끼 한 가닥이 빨간 살사 위에 떠 있었다⁠. “⁠드시지 마십시오⁠. 버리시고 영수증 챙겨 두십시오⁠.⁠”

“⁠보상해 줍니꺼⁠?⁠”

“⁠영수증 챙겨 두십시오⁠.⁠”

타코집 사장이 솜브레로를 고쳐 쓰고 살사 통을 끌어안은 채 올라갔다⁠. 계단 중간에서 한 번 돌아보았다⁠. 우리 건물에 뭐가 있는 깁니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계산대 구석의 작은 텔레비전에서 낮 뉴스가 소리 없이 돌았다⁠. 화면 아래로 자막이 흘렀다⁠. 「⁠해외 대도시 지하철역 정체불명 정전 잇따라 … 원인 조사 중⁠」 경탁이 자막을 보았다가 눈을 돌렸다⁠.

도연은 입구 유리문 앞으로 걸어가 문을 등지고 버텼다⁠. 경탁이 나가려면 도연을 지나야 했다⁠.

“⁠열 시까지 일곱 시간 남았어요⁠. 일곱 시간이면 저 내려가서 찾을 수 있어요⁠.⁠”

“⁠몇 층인지도 모르십니다⁠.⁠”

“⁠조사관님은 아세요⁠?⁠”

경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수첩을 다시 펴서 실종 신고 서류의 사진을 꺼냈다⁠. 경찰서에서 받아 온 복사본이었다⁠.

“⁠실종자 이름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하담 씨⁠, 성이 뭡니까⁠?⁠”

“⁠채요⁠. 채하담⁠.⁠”

경탁의 손이 멈췄다⁠. 수첩을 쥔 손가락 끝이 하얘졌다⁠. 경탁은 사진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수첩을 덮었다⁠.

“⁠채⁠, 무슨 채입니까⁠?⁠”

“⁠나물 채요⁠. 왜요⁠?⁠”

“⁠아닙니다⁠.⁠” 경탁이 도연의 어깨 옆으로 손을 뻗어 유리문을 밀었다⁠. 도연은 비켜 주지 않았고⁠, 경탁도 밀고 나가지 않았다⁠. 둘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뼘 거리에서 마주 보았다⁠. 경탁이 먼저 눈을 내렸다⁠. “⁠열 시에 오겠습니다⁠. 그 전에 문을 풀면 사장님이 그 결과를 지셔야 합니다⁠.⁠”

“⁠지금도 지고 있어요⁠.⁠”

경탁은 도연의 옆으로 비켜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계단 칸을 세는 입 모양이었다⁠. 열넷⁠, 열다섯⁠. 셔츠 등판이 땀에 젖어 남색 점퍼에 들러붙어 있었다⁠.

도연은 휴대전화를 열었다⁠. 방탈출 동호회 단톡방 「⁠손잡이⁠」에는 아침부터 같은 말이 오가고 있었다⁠.

「⁠열쇠공 지하 서고 손님 실종 썰 진짜임⁠?⁠」 「⁠탈출토끼 님 맞대요⁠. 사흘째 연락 두절⁠」 「⁠회장님 리뷰 내려야 하는 거 아님⁠?⁠」

도연은 엄지로 공지를 썼다⁠. 쓰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

「⁠오늘 밤 아홉 시⁠. 열쇠공 지하 서고⁠. 진짜로 열리는 문 있음⁠. 하담 씨 찾으러 갑니다⁠. 손전등⁠, 물 지참⁠. 장난 아님⁠.⁠」

일 분도 안 되어 답이 달렸다⁠.

「⁠ㅋㅋㅋㅋ 사장님 마케팅 미쳤다⁠」 「⁠회장 탁세찬⁠: 갑니다⁠. 장비 챙김⁠. 카메라도 챙김⁠」 「⁠옥재이⁠: 갑니다⁠. 카메라는 놓고 오세요⁠」

곧이어 세찬에게서 개인 메시지가 왔다⁠. 「⁠사장님 근데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토끼 님 혼자 들여보낸 거예요⁠? 우리 동호회 기록 규칙은 2인 이상인데⁠. 아 비난 아님⁠. 그냥 랭킹 정리하다가⁠.⁠」 도연은 답장 칸에 「⁠네⁠」 한 글자를 썼다가 지우고⁠, 「⁠제가 들여보냈어요⁠」라고 다시 썼다⁠. 전송을 누르고 나서 휴대전화를 계산대에 엎어 두었다⁠. 엎어 둔 화면 밑으로 진동이 두 번 더 왔다⁠. 열어 보지 않았다⁠.

도연은 「⁠지하 서고⁠」로 돌아가 참나무 문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문틈의 푸른빛은 아까보다 조금 더 굵어져 있었다⁠. 빛이 바닥을 건너와 노란 앞치마 자락에 가는 줄을 그었다⁠. 도연은 손바닥을 펴서 빛 위에 얹었다⁠. 차가웠다⁠. 손바닥 가운데 푸른 줄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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