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5,305자)

열쇠 구멍

진짜 던전 방탈출 카페 · 류시안

월요일 아침 여덟 시⁠, 도연은 아홉 번째 층의 돌바닥에서 눈을 떴다⁠. 네 시간쯤 잤다⁠. 하담은 하운의 가방을 끌어안고 잤고⁠, 경탁은 계단에 등을 기댄 채 앉아서 잤다⁠. 밧줄로 감싼 은박 담요가 경탁의 발치에 놓여 있었다⁠. 경탁은 자면서도 한 손을 담요 위에 얹고 있었다⁠.

휴대전화 배터리는 사 퍼센트였다⁠. 도연은 화면을 껐다⁠. 정오까지 네 시간이었다⁠.

“⁠올라가요⁠.⁠” 하담이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맑았다⁠. “⁠지금 출발하면 정오 전에 나가요⁠. 조사관님이 오빠 업고요⁠.⁠”

도연은 대답하지 않고 열린 문 아래 계단을 보았다⁠. 바닥 층으로 가는 계단이었다⁠. 벽에 하운이 분필로 그린 화살표가 계단을 가리켰다⁠.

“⁠하담 씨⁠, 저 아래 한 번만 보고 와요⁠.⁠”

“⁠사장님⁠.⁠”

“⁠보기만요⁠. 하운 씨가 열쇠를 그렸어요⁠. 몇 번이나 덧그렸어요⁠. 저 열쇠 있어요⁠.⁠”

하담이 도연의 허리춤을 보았다⁠. 꼬리표가 흔들렸다⁠. 하담은 한참 망설이다 일어났다⁠. 경탁이 담요 위의 손을 거두고 일어났다⁠. 가방에서 전선 뭉치를 꺼냈다⁠. 팔 층의 상자에서 끌고 내려온 줄 끝에 남은 전선을 이었다⁠. 줄은 바닥 층까지 닿을 만큼 남아 있었다⁠. 경탁은 쓸 데 없이 무거운 것을 늘 넉넉히 넣고 다녔다⁠.

*

바닥 층은 넓었다⁠. 오 층보다 넓었다⁠. 천장이 너무 높아 끝이 보이지 않았고⁠, 푸른 돌이 천장이 아니라 벽을 따라 한 줄로 박혀 방을 둥글게 둘렀다⁠. 도연은 벽의 돌을 셌다⁠. 하나씩 세다가 손을 멈췄다⁠. 돌 사이의 간격이 일정했다⁠. 벽을 한 바퀴 두른 돌은 예순 개였다⁠.

방 한가운데에 보도블록 더미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자동차만 했다⁠. 손전등을 비추자 더미가 굳었다⁠. 손전등을 거두자 더미의 가장자리에서 다리가 하나씩 움직였다⁠. 집게 둘이 바닥을 긁었다⁠.

돌게였다⁠. 칠 층의 것보다 수백 배 큰 돌게였다⁠. 등껍질은 보도블록 무늬가 아니라 맨홀 뚜껑 무늬였다⁠. 격자 사이로 소용돌이가 겹쳐 있었다⁠.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구멍이 하나 있었다⁠. 열쇠 구멍이었다⁠.

“⁠문지기네요⁠.⁠” 하담이 말했다⁠. 방탈출에서 마지막 장치를 부르는 말이었다⁠.

경탁이 손전등을 들어 문지기를 비췄다⁠. 문지기가 굳었다⁠. 손전등 빛이 닿은 자리만 굳고⁠, 빛이 닿지 않은 뒷다리는 천천히 움직였다⁠. 경탁이 손전등을 하나 더 꺼내 뒷다리를 비췄다⁠. 문지기 전체가 굳었다⁠.

“⁠빛을 다 비추면 다 굳습니다⁠.⁠” 경탁이 말했다⁠. “⁠빛을 하나라도 거두면 움직입니다⁠.⁠”

도연은 벽의 푸른 돌 예순 개를 한 번 더 보았다⁠. 문지기 등의 열쇠 구멍을 보았다⁠. 허리춤의 열쇠를 보았다⁠. 방탈출 사장의 눈으로 보았다⁠. 손님이 마지막 장치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방을 만든 사람이 늘 방에 써 둔다⁠.

“⁠예순 개예요⁠. 벽 돌이요⁠.⁠” 도연이 말했다⁠. “⁠방탈출은 육십 분이에요⁠. 시간이 다 되면 직원이 문을 다 열어 줘요⁠. 손님이 나가면 직원이 다시 다 잠그고요⁠. 다음 손님 받으려고요⁠.⁠”

“⁠이게 방탈출이라는 겁니까⁠?⁠”

“⁠이 던전 만든 사람이 방탈출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어요⁠. 근데 열쇠 구멍이 바닥에 있어요⁠. 맨 마지막 방에요⁠. 마지막 방의 열쇠는 늘 같은 일을 해요⁠. 끝내는 일이요⁠.⁠” 도연이 열쇠 꾸러미에서 놋쇠 열쇠를 뺐다⁠. “⁠돌리면 문이 다 열릴 거예요⁠. 위의 문까지요⁠. 연남동도⁠, 덮인 마흔한 개도요⁠. 육십 분 동안⁠. 그리고 다 닫혀요⁠. 영영요⁠. 그러면 아래 것이 더 안 올라와요⁠. 관리국이 덮을 필요도 없어요⁠.⁠”

“⁠그러면 우리는요⁠?⁠” 하담이 말했다⁠.

“⁠육십 분 안에 올라가요⁠.⁠”

“⁠못 가요⁠.⁠”

하담이 도연 앞으로 걸어왔다⁠. 방금까지 보이던 맑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기서 연남동까지 열 층이에요⁠. 칠 층에서 육 층⁠, 육 층에서 연남동 계단⁠. 사장님이 처음 일 층에서 오 층까지 오는 데 며칠 걸렸어요⁠?⁠” 하담이 경탁의 발치를 가리켰다⁠. 밧줄에 감싼 담요가 계단 끝에 놓여 있었다⁠. 경탁이 끌고 내려온 것이었다⁠. “⁠조사관님이 오빠 업고요⁠. 육십 분 안에 못 가요⁠. 누가 남아요⁠. 오빠 업은 조사관님이 제일 느려요⁠.⁠”

“⁠그럼 열쇠 안 돌리고 그냥 올라가요⁠?⁠”

“⁠네⁠. 그냥 올라가요⁠. 아까 그러자고 했잖아요⁠. 정오 전에요⁠.⁠”

“⁠그러면 아래 것이 계속 올라와요⁠. 차장님이 연남동을 덮어도⁠, 어디선가 또 문이 열려요⁠. 제 가게 문처럼요⁠. 미로상회 문이 창고에 있다가 제 가게로 온 것처럼요⁠.⁠” 도연은 열쇠를 쥔 손을 내렸다⁠. “⁠누군가 또 혼자 들어가요⁠. 하운 씨처럼⁠. 누군가 또 칠월마다 전화해요⁠. 하담 씨처럼⁠.⁠”

하담이 입을 다물었다⁠. 손이 하운의 가방끈을 쥐었다⁠.

“⁠사장님은 저한테 안 올라간다고 화냈잖아요⁠. 사장님 가게까지 덮였잖아요⁠. 이제 올라가자는데 왜 안 가요⁠?⁠”

“⁠하담 씨가 처음에 왜 혼자 들어갔는지 알아서요⁠.⁠” 도연이 말했다⁠. “⁠하운 씨를 아무도 안 봐서요⁠. 저는 이 던전을 아무도 끝까지 안 봐서 다들 덮기만 했다고 생각해요⁠. 끝을 보는 게 저 열쇠예요⁠.⁠”

둘은 문지기 앞에서 마주 보았다⁠. 경탁은 두 손전등으로 문지기를 비춘 채 끼어들지 않았다⁠. 손전등을 쥔 팔이 떨렸다⁠.

*

연남동 숲길에서는 해가 철제 울타리 위로 한참 올라와 있었다⁠. 재이는 맨홀 옆에 앉아 손에 전선을 감고 있었다⁠. 밤새 감고 있어서 손바닥에 전선 자국이 붉게 패였다⁠. 세찬은 맨홀 턱에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었다⁠. 가슴의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세찬의 휴대전화에 「⁠동시 시청 1⁠,830⁠,445⁠」가 떴다⁠. 댓글이 끊이지 않았다⁠. 「⁠회장님 밤새 안 잠⁠」 「⁠재이 님 손 괜찮아요⁠?⁠」 「⁠이 줄이 지구에서 제일 중요한 줄⁠」

콘크리트 펌프차는 새벽에 숲길 입구에 와 있었다⁠. 기사는 운전석에서 내리지 않았다⁠. 차장이 펌프차 옆에서 시계를 보았다⁠.

울타리 밖에서 비명이 났다⁠. 숲길 끝⁠, 망원동으로 이어지는 골목이었다⁠. 출근하던 자전거 한 대가 넘어져 있었다⁠. 맨홀에서 밤사이 빠져나간 돌게 하나가 자전거 바퀴를 물었다⁠. 넘어진 남자가 무릎을 감싸 쥐고 있었다⁠. 관리국 직원들이 조명을 들고 달려갔다⁠.

차장이 맨홀 앞으로 왔다⁠. 세찬을 내려다보았다⁠.

“⁠열한 시에 덮는다⁠.⁠”

“⁠정오라고 하셨잖아요⁠.⁠”

“⁠아홉 번째 층이 열리고 나서 돌게가 밤새 열두 마리 더 나왔어⁠. 방금 사람이 다쳤어⁠. 정오는 어젯밤 숫자야⁠.⁠” 차장이 휴대전화의 시각을 보여 주었다⁠. 아홉 시 사십 분이었다⁠. “⁠한 시간 이십 분⁠.⁠”

세찬이 맨홀 턱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재이가 전선을 감은 손을 들어 올렸다⁠.

“⁠사장님이 할 말 있대요⁠.⁠”

재이가 전선 끝의 수화기를 차장에게 내밀었다⁠. 차장은 수화기를 받았다⁠.

“⁠금 사장⁠.⁠”

「⁠차장님⁠, 바닥 층이에요⁠. 열쇠 구멍 찾았어요⁠.⁠」 도연의 목소리가 잡음 사이로 올라왔다⁠. 「⁠돌리면 육십 분 동안 문이 다 열리고 다 닫혀요⁠. 연남동도요⁠. 영영요⁠. 덮으실 필요 없어요⁠.⁠」

“⁠증거는⁠?⁠”

「⁠없어요⁠. 돌려 봐야 알아요⁠.⁠」

차장은 수화기를 귀에 댄 채 맨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푸른 계단이 아래로 이어졌다⁠. 오래 보았다⁠. 세찬이 차장을 올려다보았고⁠, 재이가 전선을 감은 손을 쥐었다 폈다⁠.

“⁠금 사장⁠, 나는 숫자를 믿어⁠.⁠” 차장이 말했다⁠. “⁠숫자를 하나 줄게⁠. 금 사장이 열쇠를 돌리면⁠, 나는 육십 분 동안 맨홀 위에서 본다⁠. 아래 것이 내려가면 기다린다⁠. 아래 것이 올라오면 그 자리에서 덮는다⁠. 육십 분이 지나도 문이 안 닫혀도 덮는다⁠.⁠”

「⁠네⁠.⁠」

“⁠마지막 오 분이 남았을 때 맨홀에서 사람 머리가 안 보이면⁠, 나는 덮을 거야⁠. 금 사장 셋에⁠, 업고 오는 사람 하나⁠. 넷이 그 안에 안 오면⁠.⁠”

「⁠알아요⁠.⁠」

“⁠그럼 돌려⁠.⁠” 차장이 수화기를 재이에게 돌려주었다⁠. 재이를 보지 않고 펌프차 기사에게 손을 들었다⁠. 기다리라는 손짓이었다⁠. 차장은 맨홀 턱 옆에 쪼그려 앉았다⁠. 회색 양복 무릎이 숲길 흙에 닿았다⁠.

“⁠탁세찬 씨⁠. 다섯 해 전 서약서⁠, 내가 받았어⁠.⁠”

세찬이 차장을 보았다⁠. “⁠알아요⁠.⁠”

“⁠그날 탁세찬 씨가 형이 금방 따라온다고 했지⁠. 계단 위에서⁠, 떨면서⁠.⁠” 차장이 맨홀 아래를 보았다⁠. “⁠나는 그 말을 일흔두 시간 믿었어⁠. 그다음엔 숫자를 믿었고⁠. 숫자가 덜 떨었거든⁠.⁠”

“⁠지금은요⁠?⁠”

“⁠지금은 둘 다 떨려⁠.⁠” 차장이 무릎에 묻은 흙을 털지 않았다⁠. “⁠그러니까 육십 분 보는 거야⁠. 숫자도 말도 아니고⁠, 맨홀을⁠.⁠”

재이가 수화기를 귀에 댔다⁠. 아래에서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렸다⁠. 세찬은 맨홀 턱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다섯 해 전 계단 위에서 붙잡지 못한 손잡이를 붙잡는 손이었다⁠.

*

도연은 수화기를 경탁에게 건넸다⁠. 경탁이 손전등 하나를 내려놓고 수화기를 받았다가⁠, 내려놓은 손전등 때문에 문지기의 뒷다리가 움직이자 급히 다시 들었다⁠. 수화기가 계단에 떨어졌다⁠.

“⁠하담 씨⁠.⁠”

하담은 하운의 가방끈을 쥔 채 서 있었다⁠.

“⁠하담 씨가 그랬잖아요⁠. 하운 씨가 무서우면 문을 보지 말고 자물쇠를 보라고 했다고⁠. 자물쇠는 무섭지 않다고⁠.⁠” 도연이 열쇠를 들어 보였다⁠. “⁠이게 자물쇠예요⁠. 마지막 자물쇠요⁠.⁠”

하담은 오래 열쇠를 보았다⁠. 가방끈을 놓았다⁠. 경탁의 발치에서 손전등 하나를 집었다⁠. 하담의 머리 전등까지 켜자 문지기를 비추는 빛이 넷이 되었다⁠.

“⁠제가 비출게요⁠.⁠” 하담이 말했다⁠. “⁠사장님이 올라가요⁠. 조사관님은 오빠 업을 준비하세요⁠. 무거워요⁠.⁠”

경탁이 손전등 하나를 하담에게 넘기고 밧줄로 감싼 담요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담요를 등에 지고 밧줄을 어깨와 허리에 감았다⁠. 일어나는 데 두 번이 들었다⁠. 두 번째에 일어났다⁠. 무릎이 떨렸지만 꺾이지 않았다⁠.

도연은 문지기의 다리를 밟고 올라갔다⁠. 굳은 다리는 돌이었다⁠. 차갑고 단단했다⁠. 집게 옆을 지나 등껍질로 올라갔다⁠. 맨홀 뚜껑 무늬의 격자가 운동화 밑창에 닿아 덜컹거렸다⁠. 등껍질 한가운데에 소용돌이가 있었다⁠. 도연은 소용돌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소용돌이는 열쇠 머리와 같았다⁠. 분필 그림과도 같았다⁠. 열쇠 구멍 둘레에 손때 같은 자국이 있었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오래 문지른 자국이었다⁠. 하운이었다⁠. 하운은 열쇠 없이 여기까지 올라와 구멍을 손가락으로 만져 보았다⁠.

도연은 열쇠를 구멍에 넣었다⁠. 이빨 넷이 하나도 걸리지 않고 끝까지 들어갔다⁠. 오른쪽으로 돌렸다⁠. 무거웠다⁠. 한 번 더 힘을 주었다⁠.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바닥 층 전체에 울렸다⁠. 문지기의 등껍질이 발밑에서 떨렸다⁠.

벽을 두른 푸른 돌 예순 개가 한꺼번에 밝아졌다⁠. 바닥 층이 처음으로 구석까지 다 보였다⁠. 예순 개 가운데 맨 위의 돌 하나 위에⁠, 푸른빛으로 숫자가 떠올랐다⁠.

「⁠60⁠:00⁠」

숫자가 바뀌었다⁠. 「⁠59⁠:59⁠」

열쇠 구멍에서 열쇠가 빠지지 않았다⁠. 당겨 보아도 꿈쩍하지 않았다⁠. 도연은 손을 떼었다⁠. 놋쇠 열쇠는 꼬리표를 단 채 문지기 등에 꽂혀 있었다⁠. 누런 꼬리표가 바닥 층의 바람에 한 번 흔들렸다⁠.

“⁠사장님⁠, 내려와요⁠!⁠” 하담이 외쳤다⁠. 하담의 손전등 빛 아래에서 문지기의 다리가 굳은 채 떨렸다⁠. 굳은 몸 안에서 무언가 아래로 끌려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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