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5,362자)

손바닥 판

진짜 던전 방탈출 카페 · 류시안

일요일 아침 일곱 시⁠, 팔 층에는 아침이 오지 않았다⁠. 천장의 푸른 돌 하나가 밤과 똑같은 빛으로 방을 비췄다⁠. 도연은 휴대전화 화면의 시각으로 아침을 알았다⁠. 배터리가 십일 퍼센트 남아 있었다⁠.

경탁이 가방에서 은박 담요를 꺼내 하담의 어깨에 둘렀다⁠. 하담은 왼편 판에 손을 얹은 채 깨어 있었다⁠. 밤새 판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손을 얹은 자리의 손목이 붉게 부어 있었다⁠.

“⁠사장님⁠, 지금 올라가시면 됩니다⁠.⁠” 경탁이 가방 지퍼를 닫았다⁠. “⁠칠 층으로 올라가서 육 층 호수를 지나면 오 층 지도에서 연남동 선이 갈라집니다⁠. 지도에서 봤습니다⁠. 연남동 선은 육 층에서 홍대 선과 붙습니다⁠. 육 층부터 연남동 맨홀까지 계단 셋입니다⁠. 지금 출발하면 정오 전에 숲길에 나갑니다⁠. 월요일 정오가 아니라 오늘 정오요⁠.⁠”

“⁠하담 씨는요⁠?⁠”

“⁠하담 씨는 제가 데리고 올라가겠습니다⁠. 손을 떼게 하겠습니다⁠.⁠”

“⁠어떻게요⁠?⁠”

경탁은 대답하지 못했다⁠. 하담이 은박 담요를 어깨에서 떨어뜨렸다⁠.

“⁠못 떼요⁠. 아까 말했잖아요⁠.⁠”

도연은 오른편 판 앞으로 걸어갔다⁠. 판에 새겨진 큰 손을 내려다보았다⁠. 도연의 손보다 한 마디가 컸다⁠. 판 둘레의 홈은 캄캄했다⁠. 열 걸음 건너편에서 하담의 판 둘레는 반쯤 푸르게 차 있었다⁠.

“⁠사장님⁠.⁠” 경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아홉 번째 층을 열면 아래 것이 올라옵니다⁠. 이제 열쇠공이 덮였습니다⁠. 아래 것이 올라갈 데는 연남동 맨홀 하나입니다⁠.⁠” 경탁이 도연과 판 사이로 걸어 들어왔다⁠. 한 걸음 거리였다⁠. “⁠재이 씨 어머님 가게 앞입니다⁠. 슬리퍼를 잃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다음에는 슬리퍼가 아닐 수 있습니다⁠.⁠”

“⁠알아요⁠.⁠”

“⁠아시면서 누르십니까⁠?⁠”

“⁠조사관님⁠, 우리 셋이 올라가도 하담 씨는 여기 남아요⁠. 손을 안 떼니까요⁠.⁠” 도연은 경탁의 어깨 너머로 하담을 보았다⁠. “⁠차장님이 월요일 정오에 연남동을 덮으면⁠, 하담 씨는 아홉 번째 층 문 앞에서 혼자 남아요⁠. 다섯 해 전 하운 씨처럼요⁠. 저는 하담 씨가 혼자 아홉 번째 층을 보게 두는 게 싫어요⁠. 하담 씨가 혼자 갇히는 건 더 싫고요⁠.⁠”

“⁠그래서 같이 갇히시겠다는 겁니까⁠?⁠”

“⁠같이 보고⁠, 같이 나가겠다는 거예요⁠.⁠” 도연이 손바닥을 펴 보였다⁠. “⁠조사관님이 지도 봤다고 하셨죠⁠. 바닥 고리에 열쇠 구멍 있었어요⁠. 열쇠 머리 모양요⁠. 저 열쇠 있어요⁠.⁠”

경탁의 눈이 도연의 허리춤으로 갔다⁠. 「⁠미로상회 3⁠」의 누런 꼬리표가 흔들렸다⁠.

“⁠그게 뭘 하는지 모르십니다⁠.⁠”

“⁠네⁠, 몰라요⁠. 방탈출에서 마지막 열쇠는 늘 뭘 하는지 몰라요⁠. 돌려 봐야 알아요⁠.⁠”

경탁은 비켜 주지 않았다⁠. 도연도 판에 손을 대지 않았다⁠. 둘은 한 걸음 거리에서 마주 보았다⁠. 하담이 문 앞에서 둘을 보고 있었다⁠. 천장의 푸른 돌 하나가 셋의 그림자를 바닥에 하나씩 눕혔다⁠.

*

같은 시각⁠, 연남동 경의선숲길에는 관리국 철제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다⁠. 맨홀을 가운데 두고 지름 오십 미터짜리 원이었다⁠. 울타리 밖에 사람들이 모였다⁠. 어제보다 휴대전화가 많았다⁠. 울타리 안에는 굳은 돌게를 담은 플라스틱 상자가 서른 개 넘게 쌓여 있었다⁠. 상자 사이로 관리국 직원들이 조명을 들고 다녔다⁠.

재이는 울타리 안쪽 편의점 앞 계단에 앉아 있었다⁠. 엄마가 새 슬리퍼를 신고 가게 문을 열었다⁠. 재이가 아침에 산 슬리퍼였다⁠. 상자 속 보도블록들 때문에 손님이 하나도 오지 않았지만 엄마는 문을 닫지 않았다⁠. 너희 사장님 가게도 불 켜 두고 기다린다며⁠, 하고 엄마가 말했다⁠. 재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장이 맨홀 앞에 서 있었다⁠. 회색 양복 소매에 이끼 부스러기가 묻어 있었다⁠. 밤새 한 번도 차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의 양복이었다⁠.

맨홀 턱에는 세찬이 앉아 있었다⁠. 다리를 맨홀 안으로 늘어뜨린 채였다⁠. 가슴에 카메라가 달려 있었고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후원사 화면은 없었다⁠. 세찬의 휴대전화 하나에 세찬의 채널이 떠 있었다⁠. 「⁠동시 시청 864⁠,201⁠」

“⁠탁세찬 씨⁠, 거기서 내려와⁠.⁠”

“⁠싫어요⁠.⁠”

“⁠연남동은 월요일 정오에 덮어⁠. 장비는 내일 새벽에 들어와⁠.⁠” 차장이 맨홀 안을 내려다보았다⁠. 푸른 계단이 아래로 이어졌다⁠. “⁠카메라 켜 놓으면 내가 못 덮을 줄 알지⁠? 열쇠공도 카메라 앞에서 덮었어⁠. 이백만 명 앞에서⁠.⁠”

“⁠알아요⁠. 봤어요⁠.⁠” 세찬이 맨홀 턱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그래서 이번엔 제가 여기 있는 거예요⁠. 열쇠공 덮을 때 저는 여기서 빗자루 들고 있었어요⁠. 다섯 해 전에는 을지로 계단 위에서 서약서 쓰고 있었고요⁠. 늘 위에 있었어요⁠.⁠”

“⁠지금도 위에 있어⁠.⁠”

“⁠네⁠. 그러니까 차장님이 저를 그냥 치우실 수 있죠⁠. 저는 확인된 사람이 아니니까⁠.⁠”

세찬이 맨홀 안으로 몸을 내렸다⁠. 첫 계단을 딛고⁠, 두 번째⁠, 세 번째⁠. 푸른빛이 세찬의 턱을 아래에서 비췄다⁠. 세찬이 계단 세 칸 아래에서 차장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확인된 사람이에요⁠. 목소리⁠, 모습⁠. 팔십육만 명이 확인했어요⁠.⁠”

울타리 밖에서 누군가 웃었다⁠. 웃음이 번졌다⁠. 차장은 웃지 않았다⁠. 맨홀 턱에 손을 짚고 세찬을 내려다보았다⁠.

“⁠금 사장한테 배웠구나⁠.⁠”

“⁠사장님이 일 층에서 조사관님한테 쓴 거예요⁠. 다시 봤어요⁠. 백 번요⁠.⁠”

“⁠그 방법은 한 번 쓰면 끝이야⁠. 내가 안 덮어도 아래 것이 올라오면 탁세찬 씨가 제일 먼저 다쳐⁠.⁠”

“⁠알아요⁠.⁠” 세찬이 계단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다리가 떨렸다⁠. 떨리는 다리를 두 손으로 눌렀다⁠. “⁠형도 알았을 거예요⁠.⁠”

차장은 오래 맨홀을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몸을 일으켜 뒤에 서 있던 직원을 불렀다⁠.

“⁠유선 전화 줄 남은 거 있지⁠? 내려보내⁠. 맨홀 아래로⁠, 갈 수 있는 데까지⁠.⁠”

“⁠차장님⁠, 봉인 대상 구역에는⁠…⁠.⁠”

“⁠소리라도 들어야지⁠.⁠” 차장이 양복 소매의 이끼를 털었다⁠. “⁠아래에 사람이 넷이야⁠. 다섯 해 전에는 일흔두 시간 동안 아무 소리도 못 들었어⁠. 이번에는 들을 거야⁠.⁠”

직원이 검은 전선 뭉치를 들고 왔다⁠. 세찬이 손을 내밀어 전선 끝을 받았다⁠. 전선 상자를 무릎에 얹고 계단을 한 칸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면서 칸을 셌다⁠. 하나⁠, 둘⁠. 재이가 편의점 앞 계단에서 일어났다⁠. 세찬이 세는 숫자가 맨홀에서 울려 나왔다⁠. 재이는 울타리를 따라 맨홀 앞까지 걸어가 차장 옆에 멈췄다⁠.

“⁠회장님 혼자 못 내려가요⁠. 랭킹 삼십일 위예요⁠.⁠”

“⁠그럼 옥재이 씨도 확인된 사람이 되겠다고⁠?⁠”

“⁠아니요⁠. 저는 위에서 줄 잡을게요⁠.⁠” 재이가 전선의 다른 끝을 손에 감았다⁠. “⁠누가 위에서 잡고 있어야 줄이 안 끊겨요⁠.⁠”

차장은 재이를 보았다⁠. 재이의 손에 감긴 전선을 보았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

세찬은 계단을 내려가며 숫자를 셌다⁠. 서른을 넘기자 위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울타리 밖의 웃음도⁠, 차장의 목소리도⁠, 재이가 전선을 감는 소리도⁠. 계단 양옆의 푸른 돌이 세찬의 얼굴을 비췄다⁠. 가슴의 카메라가 세찬의 숨소리를 담았다⁠. 숨이 거칠었다⁠.

“⁠형⁠.⁠” 세찬이 말했다⁠. 카메라에 대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여러분⁠」이 붙지 않았다⁠. “⁠나 지금 내려가고 있어⁠. 다섯 해 늦었지⁠. 미안해⁠. 세 번째 층에서 돌게 나왔을 때 형이 내 어깨 잡았잖아⁠. 괜찮아⁠, 하고⁠. 나는 형 손 뿌리치고 올라갔어⁠.⁠”

계단이 꺾였다⁠. 꺾인 자리에서 휴대전화 화면의 숫자가 멈췄다⁠. 신호가 끊긴 것이었다⁠. 생중계는 위에서 마지막 장면으로 굳었을 것이었다⁠. 맨홀 계단에 주저앉아 떨리는 다리를 누르는 세찬의 얼굴로⁠.

세찬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카메라의 빨간 불은 켜 둔 채였다⁠. 아무에게도 보내지지 않는 녹화였다⁠. 무릎 위의 전선 상자에서 줄을 한 바퀴 더 풀었다⁠. 줄 끝은 위에서 재이가 잡고 있었다⁠. 줄이 팽팽해졌다가 조금 늘어졌다⁠. 재이가 줄을 풀어 주고 있었다⁠.

“⁠재이가 잡고 있대⁠, 형⁠.⁠” 세찬이 일어났다⁠. 다리가 여전히 떨렸다⁠. “⁠나 이번엔 혼자 아니야⁠.⁠”

세찬은 다음 계단을 디뎠다⁠. 서른하나⁠. 숫자를 소리 내어 셌다⁠. 세는 소리가 계단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

팔 층의 휴대전화 배터리가 십 퍼센트로 떨어졌다⁠. 도연은 휴대전화를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앞치마는 다시 허리에 묶여 있었다⁠.

“⁠조사관님⁠, 비켜 주세요⁠.⁠”

“⁠비키면 누르십니다⁠.⁠”

“⁠네⁠.⁠”

경탁은 비키지 않았다⁠. 대신 뒤를 돌아보았다⁠. 하담이 판에 손을 얹은 채 경탁을 보고 있었다⁠. 열흘 동안 돌바닥에 앉아 있던 얼굴이었다⁠. 다섯 해 동안 칠월마다 같은 목소리를 듣던 얼굴이었다⁠.

“⁠조사관님⁠.⁠” 하담이 말했다⁠. “⁠오빠가 아래에 있으면⁠, 조사관님도 보셔야 해요⁠. 모른다고 한 거⁠, 보셔야 해요⁠.⁠”

경탁의 어깨가 내려갔다⁠. 한 걸음 옆으로 비켰다⁠. 비키고 나서도 멀리 가지 않았다⁠. 도연의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도연은 오른편 판에 손을 얹었다⁠. 돌이 차가웠다⁠. 판에 새겨진 큰 손 안에 도연의 손이 다 들어갔다⁠. 손끝이 판의 손가락 끝에 한 마디 모자랐다⁠.

판 둘레의 홈에 빛이 들어왔다⁠. 아주 느렸다⁠. 실을 끌어당기듯 한 가닥씩⁠. 건너편 하담의 판 둘레는 반에서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두 판의 빛이 같은 속도로 올라갔다⁠.

“⁠한참이요⁠.⁠” 하담이 말했다⁠. “⁠손 떼면 처음부터예요⁠.⁠”

“⁠한참이 몇 분입니까⁠?⁠” 경탁이 물었다⁠.

“⁠몰라요⁠. 혼자서 백 번 해 봤는데 둘이서는 처음이에요⁠.⁠” 하담이 판 위의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방탈출은 원래 처음 해 보는 거예요⁠. 아는 방이면 재미없어요⁠.⁠”

경탁이 무언가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신 손목시계를 보았다⁠. 도연은 경탁이 시계를 보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웃음이 났다⁠. 웃음은 금방 손바닥의 무게에 눌렸다⁠.

도연은 숨을 고르며 손바닥에 힘을 주었다⁠. 판이 손을 밀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밀어내는 힘이 점점 커졌다⁠. 팔꿈치가 떨렸다⁠. 어깨가 떨렸다⁠. 빛이 판 둘레의 삼분의 일을 넘었다⁠.

손목이 꺾였다⁠. 손바닥이 판에서 미끄러지려 했다⁠.

옆에서 경탁의 손이 도연의 손목을 잡았다⁠. 판에는 닿지 않게⁠, 손목만⁠. 경탁의 손바닥이 도연의 손목을 받쳐 판 쪽으로 눌렀다⁠. 경탁은 판을 누르지 않았다⁠. 도연의 손이 판에서 떨어지지 않게만 했다⁠.

“⁠조사관님⁠.⁠”

“⁠판은 사장님이 누르십니다⁠. 저는 손목만 잡습니다⁠.⁠” 경탁이 이를 악물었다⁠. “⁠제가 누른 것은 아닙니다⁠.⁠”

빛이 판 둘레를 다 돌았다⁠. 건너편 하담의 판도 같은 순간에 다 찼다⁠. 두 판의 빛이 바닥을 타고 문으로 흘러들었다⁠. 문 한가운데의 커다란 소용돌이가 바깥에서부터 푸르게 물들었다⁠. 한 바퀴⁠, 두 바퀴⁠. 소용돌이가 가운데까지 다 물들자 문이 소리 없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차가운 바람이 올라왔다⁠. 바람에 아무 냄새도 없었다⁠. 이끼 냄새도⁠, 물 냄새도 없었다⁠.

하담이 판에서 손을 뗐다⁠. 열흘 만이었다⁠. 손바닥에 판의 무늬가 붉게 박혀 있었다⁠. 하담은 붉은 손바닥을 펴 본 채로 일어났다⁠. 무릎이 꺾였다⁠. 도연이 하담의 팔을 잡았다⁠. 경탁이 반대편 팔을 잡았다⁠. 셋은 열린 문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짧은 계단 끝에 작은 방이 있었고⁠, 방 한구석에서 은빛이 희미하게 빛났다⁠. 은박 담요였다⁠.

1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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