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317자)

콘크리트

진짜 던전 방탈출 카페 · 류시안

새벽 두 시⁠, 팔 층의 유선 전화가 울렸다⁠. 경탁이 수화기를 들자 차장의 목소리가 계단 위까지 들릴 만큼 크게 새어 나왔다⁠. 처음 듣는 크기였다⁠.

「⁠여 조사관⁠, 연남동 봤어⁠? 돌게가 숲길에서 망원동까지 퍼졌어⁠. 편의점 유리문 셋⁠, 자동차 넷⁠, 사람 하나 발목⁠.⁠」 차장이 숨을 골랐다⁠. 「⁠문 두 개가 열려 있으면 아래 것들이 두 배로 올라와⁠. 하나라도 닫아야 해⁠. 연남동은 사람이 너무 많고 장비가 안 들어가⁠. 열쇠공부터 덮는다⁠. 오늘 새벽 여섯 시⁠.⁠」

“⁠정오라고 하셨습니다⁠.⁠”

「⁠연남동이 열리기 전 숫자였어⁠.⁠」

경탁이 수화기를 도연에게 내밀었다⁠. 도연은 받지 않았다⁠. 경탁이 수화기를 귀에 다시 댔다⁠.

“⁠다섯 시 반까지 올라가겠습니다⁠.⁠”

「⁠금 사장도⁠?⁠」

“⁠금 사장님도요⁠.⁠”

경탁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도연을 보고⁠, 문 앞의 하담을 보았다⁠. 하담은 왼편 손바닥 판에 오른손을 얹고 앉아 있었다⁠. 판 둘레의 홈에 푸른빛이 반쯤 차 있었다⁠. 사람 손이 닿아 있는 동안 빛은 반쯤 찬 채 머물렀다⁠. 오른편 판은 비어 있었다⁠. 열 걸음 떨어진 판 둘레의 홈은 캄캄했다⁠.

“⁠사장님이 오른쪽 누르면 열려요⁠.⁠” 하담이 말했다⁠. 손을 떼지 않은 채였다⁠. “⁠삼 분이면 돼요⁠.⁠”

“⁠안 눌러요⁠.⁠”

“⁠그럼 조사관님이 눌러 주세요⁠.⁠”

“⁠안 누릅니다⁠.⁠” 경탁이 계단 맨 아래 칸에 앉았다⁠. “⁠제가 누르면 아홉 번째 층이 열립니다⁠. 아홉 번째 층의 것이 올라옵니다⁠. 연남동에 사람이 발목을 다쳤습니다⁠. 열쇠공 골목에는 아직 사람이 오백 명 있습니다⁠.⁠”

하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판에 얹은 손을 조금 더 눌렀다⁠. 홈 속의 빛이 미세하게 떨렸다⁠.

*

“⁠하담 씨⁠, 손 떼요⁠. 세 시간 반 남았어요⁠. 지금 올라가야 여섯 시 전에 나가요⁠.⁠”

“⁠사장님 혼자 올라가세요⁠.⁠”

“⁠하담 씨 두고 못 가요⁠.⁠”

“⁠그럼 오른쪽 눌러요⁠.⁠”

도연은 하담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담의 손등에 제 손을 얹었다⁠. 손이 차가웠다⁠. 열흘 동안 돌바닥에 앉아 있던 손이었다⁠.

“⁠하운 씨가 아홉 번째 층에 있으면⁠, 다섯 해 동안 거기 있었던 거예요⁠. 하담 씨도 알잖아요⁠. 지금 가면 하담 씨가 보는 건⁠.⁠”

“⁠알아요⁠.⁠” 하담이 도연의 말을 끊었다⁠.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았다⁠. “⁠제가 보는 거 알아요⁠. 그래서 제가 봐야 해요⁠. 관리국이 다섯 해 동안 아무도 안 봤어요⁠. 모른다고만 했어요⁠. 오빠를 아무도 안 보면 오빠는 계속 모르는 사람이에요⁠.⁠”

경탁이 계단에서 고개를 숙였다⁠. 도연은 하담의 손등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하담도 판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둘의 손이 겹친 채 판 둘레의 빛이 반쯤에서 머물렀다⁠.

“⁠사장님⁠.⁠” 경탁이 일어났다⁠. “⁠사장님 가게입니다⁠. 사장님 전 재산입니다⁠. 대출도 있으시죠⁠. 지금 올라가시면 차장님이 봉인을 정오로 다시 미루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하담 씨 옆에 있겠습니다⁠.⁠”

“⁠조사관님이 하담 씨를 끌고 올라갈 거예요⁠?⁠”

“⁠못 끌고 올라갑니다⁠. 하담 씨가 판을 놓지 않으면요⁠.⁠”

“⁠그럼 조사관님도 갇혀요⁠.⁠”

“⁠압니다⁠.⁠” 경탁이 손전등을 하담에게 비추지 않으려고 바닥으로 내렸다⁠. “⁠다섯 해 전에는 위에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래에 있어 보겠습니다⁠.⁠”

도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신호가 없었다⁠. 화면에 마지막으로 받은 알림이 남아 있었다⁠. 「⁠[대출 이자 안내] 7월 납입일 3일 경과 — 연체 이자가 부과됩니다⁠」 알림 위에 열쇠공의 예약 앱 아이콘이 있었다⁠. 도연은 앱을 열었다⁠. 가게 소개 글이 맨 위에 떠 있었다⁠.

「⁠열쇠공은 마지막 손님이 나올 때까지 불을 끄지 않습니다⁠.⁠」

개업 전날 밤 세 번 고쳐 쓴 문장이었다⁠. 첫 번째는 「⁠손님이 다 나갈 때까지⁠」였고⁠, 두 번째는 「⁠마지막 손님까지 책임집니다⁠」였다⁠. 세 번째에 불을 넣었다⁠. 불이 더 예뻐 보여서였다⁠. 별점에 좋을 것 같아서였다⁠.

*

새벽 세 시⁠, 연남동 숲길은 관리국 조명으로 대낮처럼 밝았다⁠. 재이는 엄마의 편의점 앞에서 빗자루를 쥐고 있었다⁠. 유리문에 금이 간 자리마다 테이프가 엑스 자로 붙어 있었다⁠. 돌게는 빛을 비추면 굳었다⁠. 관리국 직원들이 조명으로 돌게를 굳혀 놓으면 사람들이 빗자루로 쓸어 플라스틱 상자에 담았다⁠. 상자 하나에 보도블록이 열 개쯤 들어갔다⁠. 상자 안에서 보도블록들이 이따금 다리를 꼼지락거렸다⁠.

엄마는 계산대 의자에 앉아 발목에 얼음주머니를 대고 있었다⁠. 돌게가 지나가다 집게로 슬리퍼를 물었다고 했다⁠. 다친 데는 없었고 슬리퍼만 잃었다⁠.

“⁠재이야⁠, 저 상자 우리 가게 앞에 두지 말라고 해⁠.⁠”

“⁠엄마 괜찮아⁠?⁠”

“⁠괜찮아⁠. 근데 편의점 앞에 보도블록 상자가 열 개 있으면 손님이 안 와⁠.⁠” 엄마가 얼음주머니를 고쳐 댔다⁠. “⁠너희 회장님 저기 있다⁠.⁠”

세찬이 맨홀 옆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가슴의 카메라는 꺼져 있었다⁠. 후원사 직원들은 조명을 걷어 차에 싣고 있었다⁠. 송출은 세찬이 맨홀 계단을 내려가지 않은 채 사십 분 만에 끝났다고 했다⁠. 첫 만남도 형도 없었고⁠, 화면에는 돌게를 쓰는 세찬만 나왔다⁠. 후원사 담당자는 차에 오르기 전에 세찬에게 계약 위반을 통보했다⁠.

재이는 세찬에게 가지 않았다⁠. 세찬이 빗자루를 들고 재이에게 왔다⁠. 둘은 편의점 앞에서 보도블록 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았다⁠.

“⁠재이야⁠. 어머님 다치셨어⁠?⁠”

“⁠슬리퍼요⁠.⁠”

“⁠내가 새로 사 드릴게⁠.⁠”

“⁠회장님 지금 빚 사천에 계약 위반이에요⁠.⁠” 재이가 빗자루를 고쳐 쥐었다⁠. “⁠슬리퍼는 제가 사요⁠.⁠”

세찬이 웃으려다 말았다⁠. 숲길 입구에 검은 승합차가 멈추고 차장이 내렸다⁠. 차장은 맨홀을 한 번 내려다보고⁠, 세찬을 한 번 보고⁠, 휴대전화로 시각을 확인했다⁠.

“⁠탁세찬 씨⁠. 연남동은 월요일 정오에 덮어⁠. 장비가 그때 들어와⁠. 그 전까지 이 계단으로 누가 내려가면 그 사람은 돌아올 문이 없을 수도 있어⁠.⁠” 차장이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열쇠공은 여섯 시야⁠.⁠”

재이가 빗자루를 놓았다⁠.

“⁠사장님이 아직 아래 있어요⁠.⁠”

“⁠다섯 시 반까지 올라온다고 했어⁠. 여 조사관이⁠.⁠”

*

새벽 다섯 시⁠, 팔 층의 유선 전화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도연이 받았다⁠.

「⁠금 사장⁠, 지금 어디야⁠?⁠」

“⁠팔 층이요⁠.⁠”

「⁠지금 출발해도 여섯 시 넘어⁠. 여 조사관 말 안 지켰네⁠.⁠」 차장의 목소리 뒤로 엔진 소리가 났다⁠. 펌프차였다⁠. 「⁠삼십 분 기다려 줄게⁠. 여섯 시 반⁠. 그다음은 안 기다려⁠. 금 사장⁠, 하나만 물어볼게⁠. 왜 안 올라와⁠?⁠」

도연은 수화기를 귀에 댄 채 문 앞의 하담을 보았다⁠. 하담은 판에 손을 얹은 채 졸고 있었다⁠. 고개가 꾸벅 떨어졌다가 올라갔다⁠. 잠든 동안에도 손은 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판 둘레의 빛이 반쯤에서 머물렀다⁠.

“⁠차장님⁠, 제 가게 소개 글 보셨어요⁠?⁠”

「⁠봤지⁠. 마지막 손님 나올 때까지 불 안 끈다며⁠.⁠」

“⁠그거 별점 받으려고 쓴 거예요⁠. 근데 손님이 그걸 보고 왔어요⁠.⁠” 도연은 앞치마 끈을 다시 묶었다⁠. 매듭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두 번 만에 묶였다⁠. “⁠안 올라가요⁠. 마지막 손님 아직 안 나왔어요⁠.⁠”

수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엔진 소리만 들렸다⁠. 한참 뒤에 차장이 말했다⁠.

「⁠금 사장⁠. 나는 오늘 처음 해 보는 숫자를 하게 됐어⁠.⁠」

“⁠죄송해요⁠.⁠”

「⁠죄송하다는 말은 내가 해야지⁠.⁠」 차장이 짧게 웃었다⁠. 웃음이 아니었다⁠. 「⁠사람 셋이야⁠. 하나 더 늘리지 마⁠.⁠」

전화가 끊겼다⁠. 경탁이 계단에서 일어나 도연 옆으로 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탁은 하담의 반대편⁠, 오른편 판에서 열 걸음 떨어진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판에 손을 대지 않았다⁠. 판에서 멀리 앉지도 않았다⁠.

도연은 앞치마를 벗어 접었다⁠. 졸던 하담의 머리와 등산 가방 사이에 앞치마를 끼워 넣었다⁠. 하담이 눈을 반쯤 떴다⁠.

“⁠노란색이네요⁠. 레몬 맛 색⁠.⁠”

“⁠가게 유니폼이에요⁠. 제가 골랐어요⁠. 지하라서 밝은 색으로⁠.⁠”

“⁠회장님은요⁠? 회장님은 왜 안 왔어요⁠?⁠”

도연은 잠깐 망설였다⁠. 경탁이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자는 척이었다⁠.

“⁠회장님은 연남동으로 갔어요⁠. 하운 씨한테 먼저 간다고요⁠.⁠”

하담이 눈을 감았다⁠. 감은 눈 밑이 떨렸다⁠. “⁠회장님 랭킹 삼십일 위예요⁠. 혼자서는 이 층까지 못 와요⁠.⁠”

“⁠리뷰만 해서요⁠?⁠”

“⁠리뷰만 해서요⁠.⁠” 하담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열흘 만에 웃는 입이었다⁠. 웃다가 하담은 다시 잠들었다⁠. 손은 판 위에 그대로 있었다⁠.

*

새벽 여섯 시⁠, 홍대 골목은 해가 뜨기 시작해 회색으로 밝았다⁠. 선큰 마당 난간에 사람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아무도 휴대전화를 들지 않았다⁠. 재이는 난간 맨 앞에서 열쇠공의 큰 창을 내려다보았다⁠. 창 안쪽은 불이 켜진 채였다⁠. 형광등 스무 개를 재이의 체크카드로 사서 갈아 끼운 가게였다⁠.

펌프차의 긴 팔이 펴졌다⁠. 팔 끝의 굵은 호스가 창문을 깨고 들어갔다⁠. 유리가 마당으로 쏟아졌다⁠. 호스가 떨더니 회색 콘크리트를 토해 냈다⁠.

콘크리트는 먼저 바닥을 덮었다⁠. 계산대 다리⁠, 「⁠출근 오 분 전⁠」의 사무용 의자 바퀴⁠, 「⁠할머니의 다락⁠」 입구의 흔들의자⁠. 도연이 사흘 밤을 붙여 자던 의자 네 개가 회색 속으로 가라앉았다⁠. 콘크리트가 계산대 높이까지 차올랐다⁠. 계산대 위의 작은 텔레비전이 회색에 잠기기 전에 마지막 자막을 띄웠다⁠. 「⁠홍대 지하 문 봉인 시작 … 안에 세 명⁠」 화면이 꺼졌다⁠.

「⁠지하 서고⁠」 문틈의 푸른빛이 콘크리트에 덮여 한 줄씩 사라졌다⁠. 문 앞에 둔 유선 전화 상자가 회색 속으로 내려앉았다⁠. 상자에 연결된 검은 전선이 콘크리트에 끌려 들어가다 팽팽해졌다⁠.

건물주가 양산을 쓰고 재이 옆에 서 있었다⁠. 양산 손잡이를 쥔 손이 하얬다⁠. 타코집 사장이 펌프차 기사에게 커피를 건네고 나서 마당 계단 맨 위 칸에 주저앉았다⁠. 솜브레로를 벗어 무릎에 얹었다⁠.

창이 회색으로 다 찼다⁠. 형광등 불빛이 콘크리트 너머에서 한동안 희미하게 비치다가⁠, 꺼졌다⁠.

*

팔 층의 유선 전화 상자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났다⁠. 긴 잡음이었다⁠. 잡음이 끊기고 나서 상자는 다시 울리지 않았다⁠. 계단 위 멀리⁠, 첫 층에서 내려오던 희미한 푸른 바람이 멎었다⁠.

경탁이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댔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경탁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끊겼습니다⁠.⁠”

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담의 머리 밑에 접어 둔 앞치마의 주머니에서 젤리 봉지 일곱 장을 조심스럽게 빼내 무릎 위에 겹쳐 놓았다⁠. 가게 열쇠 꾸러미가 허리춤에서 쩔렁거렸다⁠. 열쇠 여덟 개가 이제 열 문이 없었다⁠. 「⁠미로상회 3⁠」만 꼬리표를 달고 다른 열쇠들 사이에서 흔들렸다⁠.

“⁠이제 남은 문은 연남동 하나입니다⁠.⁠” 경탁이 말했다⁠. “⁠월요일 정오까지요⁠.⁠”

하담이 졸던 고개를 들었다⁠. 손은 여전히 판 위에 있었다⁠.

“⁠사장님 가게⁠, 덮였어요⁠?⁠”

“⁠네⁠.⁠”

하담이 판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다른 손을 뻗어 노란 곰 하나를 도연에게 내밀었다⁠. 손바닥에 마지막 넷 가운데 하나가 있었다⁠. 도연은 곰을 받았다⁠. 레몬 맛이었다⁠. 씹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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