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136자)

후원의 통첩

폐위된 황후의 두 번째 간택 · 백해원

옻나무 진은 생각보다 맵지 않았다. 윤서련은 별당 뒤뜰 담 밑에서 꺾어 온 옻나무 가지를 반으로 부러뜨리고, 하얗게 배어 나오는 진을 손가락으로 찍어 양쪽 팔뚝 안쪽에 문질렀다. 닿는 순간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반나절이 지나자 문지른 자리가 붉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고, 밤이 되자 좁쌀 같은 물집이 팔뚝을 덮었다. 가려움이 뼛속에서부터 올라왔다.

“아가씨, 아가씨, 이게 무슨 병이에요? 마마예요? 마마면 저도 옮아요? 저 아직 시집도 못 갔는데요!”

홍매가 물수건을 들고 방 안을 세 바퀴 돌았다. 서련은 이를 악물고 팔을 긁지 않으려고 두 손을 무릎 사이에 끼웠다.

“옮지 않는다. 옻이다.”

“옻이요? 옻은 왜요?”

“궁에 안 가려고.”

“궁에 안 가시려고 팔을 이렇게 만드세요? 차라리 다리를 다치시지.”

“다리를 다치면 가마 타고 가면 된다. 팔이 이러면 아무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의원은 이튿날 아침에 와서 팔을 보고 혀를 찼다. 옻이 오른 것이라 했다. 옮지는 않으나 열흘은 가고, 흉이 질 수도 있다고 했다. 윤정겸은 의원의 말을 듣고 한참을 딸의 팔만 내려다보다가 헛기침도 하지 않고 사랑채로 갔다. 그날 오후 예부에 서찰이 갔다. 윤 판서의 딸이 옻독으로 몸져누워 초간택 날 궐에 들 수 없다는 서찰이었다.

초간택은 사흘 뒤였다. 도성의 규수 예순 명이 그날 궁에 들어가 황태후와 궁 안 여인들의 웃어른들 앞에 섰다가, 서른 명이 남고 서른 명이 돌아온다. 서련은 그날 아침 별당에 누워 팔에 감은 무명천 위로 가려움을 꾹꾹 눌렀다. 지난 생의 그녀는 그날 다홍치마를 입고 궁 마당에 서 있었다.

점심때 궁에서 가마가 왔다. 황태후전의 상궁 둘이 가마 앞에 서 있었다.

“황태후마마께서 이르셨습니다. 윤 판서 댁 따님이 병중이라니, 얼굴이나 한번 보자 하십니다.”

*

궁에 들어서자 냄새가 먼저 왔다. 궁문을 지나고 두 번째 문을 지나자 공기 전체에 침향이 배어 있었다. 기둥에도, 박석에도, 상궁들의 옷자락에도 그 냄새가 스며 있었다. 서련은 가마에서 내리면서 혀끝을 이로 물었다. 아픔이 있어야 냄새가 그녀를 끌고 가지 못했다. 팔의 가려움도 도움이 되었다. 가려움은 지금 이 몸이 스무 살이라는 것을 쉬지 않고 알려 주었다.

황태후전은 지난 생과 같았다. 대청 한가운데 비단 병풍이 펼쳐져 있었고, 병풍 너머에서 마른기침 소리가 났다. 서련이 절을 올리자 병풍 옆으로 상궁 하나가 나와 섰다.

“마마께서 고개를 들라 하십니다.”

서련이 고개를 들었다. 병풍이 반쯤 걷혔다. 황태후는 쉰을 갓 넘긴 나이였는데 귀가 어두워서, 곁에 선 늙은 상궁이 사람들의 말을 큰 소리로 되풀이해 들려주었다.

“윤 판서 딸이라고?”

“예, 마마.”

“예, 마마라고 하옵니다!”

늙은 상궁이 대청이 울리도록 외쳤다. 황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옻이 올랐다고?”

“예, 마마. 담 밑에 옻나무가 있는 줄 모르고 꽃을 꺾다가….”

“담 밑에 옻나무가 있는 줄 모르고 꽃을 꺾다가 옻이 올랐다고 하옵니다!”

“옻나무에 무슨 꽃이 피느냐?”

서련은 입을 다물었다. 늙은 상궁도 입을 다물었다. 대청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 속에서 황태후가 혼자 웃었다. 목 안에서만 웃는 웃음이었다. 서련은 그 웃음을 어디서 들었는지 알았다. 그 아들이 똑같이 웃었다.

“팔 좀 보자.”

상궁이 서련의 소매를 걷었다. 무명천을 풀자 붉게 부푼 팔뚝이 드러났다. 황태후가 몸을 앞으로 기울여 그 팔을 오래 보았다.

“나도 젊을 때 이런 걸 했다. 선황의 간택 때. 나는 한쪽 팔만 했는데, 너는 두 쪽을 다 했구나. 독하다.”

“마마.”

“그런데 나는 결국 들어왔다. 옻은 열흘이면 가라앉아. 간택은 석 달이고.”

황태후가 등을 다시 병풍에 기댔다. 그녀는 한동안 서련을 보지 않고 대청 밖 마당을 보았다. 초간택을 마친 규수들이 아직 마당 한쪽에 줄지어 서 있었다. 그 맨 앞에 붉은 저고리를 입은 진채이가 있었다.

“황제가 후원에서 너를 기다린다. 가 보아라. 그 아이는 제 아비를 닮아서, 버리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다. 갖고 싶은 걸 못 가지는 건 더 못 견디고.”

*

후원 연못에는 나무다리가 놓여 있었다. 붉은 칠이 바래 분홍빛이 된 다리였다. 서련은 그 다리를 알았다. 지난 생에 귀비가 송화 다식을 올리던 날, 황제가 이 다리를 건너왔다.

연휘는 다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이번에는 평복이 아니라 임금의 예복인 곤룡포 차림이었다. 붉은 비단에 금실로 수놓은 용이 가슴과 어깨에서 꿈틀거렸다. 그는 다리 난간에 팔을 걸치고 연못의 잉어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서련이 다리 끝에 서자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팔은 어떤가?”

“가렵습니다, 폐하.”

“옻은 긁으면 번진다. 참아라.”

“참고 있습니다.”

연휘가 고개를 들었다. 맑은 눈이었다. 서련은 그 눈을 정면으로 받았다.

“가까이 오너라.”

서련은 다리 위로 걸어갔다. 나무판이 발밑에서 삐걱거렸다. 연휘와 두 걸음을 남기고 그녀는 멈추었다. 연휘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는 소매를 밀어 올리고 붉게 부푼 자리를 엄지로 천천히 쓸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가려움 위로 그 차가움이 지나가자 서련의 등에 소름이 돋았다.

“어머니께서 선황 간택 때 쓰신 수다. 어머니는 결국 들어오셨지.”

“들었습니다.”

“너도 결국 들어온다.”

“들어가지 않습니다.”

연휘가 그녀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엄지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물집 하나가 터지면서 따끔했다. 서련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진가 딸에게 내 침전의 향 이야기를 했다지.”

“진 아가씨께서 궁에 들어가시면 향이 많을 거라고만 했습니다.”

“내 침전에 무슨 향이 타는지 네가 어찌 아느냐?”

“궁에서 오는 사람마다 그 냄새가 납니다. 장 내관께서는 그 냄새에 재채기를 하시고요.”

연휘가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 내어 웃었다. 연못의 잉어들이 그 소리에 놀라 흩어졌다. 그러나 웃음이 그쳤을 때 그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윤서련. 경저에 사내 옷을 입고 드나드는 규수가 있다고 금군이 아뢰었다. 볼모 세자의 귀뚜라미 판에 돈을 걸었다더군. 「좌상」이 진다는 데 걸었다지.”

서련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금군은 담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좌상」은 정말 졌습니다, 폐하.”

“그래. 덕분에 나도 좌상 집사 하나를 잃었다.”

연휘가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 그리고 소매 안에서 접힌 누런 비단 한 폭을 꺼내 펼쳤다. 임금의 명을 적어 내리는 교지였다. 끝자락에 붉은 옥새는 아직 찍혀 있지 않았다.

“오늘 아침 편전에서 좌상이 아뢰었다. 서북 군량이 늦어진 일을 다시 살펴보니, 호조가 마포에서 손을 놓았던 탓이 크다고. 그러니 호조 판서가 직접 서북으로 가서 군량을 감독해야 한다고. 좌상은 울면서 아뢰더군. 변방 군사들이 굶는다고.”

서련은 교지를 내려다보았다.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호조 판서 윤정겸을 서북 군량 감독으로 보낸다.” 서북 번왕의 땅 한가운데, 정서왕의 군영이 있는 곳이었다.

“서북은 머지않아 시끄러워진다. 번왕이 꺾일 때 그 땅에 있는 호조 판서는 어느 편이었을까? 사람들은 그걸 따지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 본다.”

“폐하께서는 서북을 꺾으실 생각이시군요.”

“나는 아무 생각도 말하지 않았다.”

연휘는 교지를 다시 접어 소매에 넣었다. 그리고 다리 난간에 다시 팔을 걸쳤다. 잉어들이 돌아와 그의 그림자 아래로 모였다.

“재간택은 열닷새 뒤다. 그때까지 단자를 다시 넣어라. 그러면 이 교지에는 옥새가 찍히지 않는다. 네 아비는 도성에서 호조 판서로 늙고, 너는 내 곁에서 늙는다.”

“넣지 않으면요?”

“열엿새째 아침에 옥새를 찍는다.”

서련은 다리 아래 물을 보았다. 연못 바닥에 이끼 낀 돌이 보였다. 지난 생에 그녀는 이 연못을 열한 해 동안 내려다보았다. 바닥의 돌 모양까지 외웠다.

“폐하, 하나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말해라.”

“폐하께서는 왜 꼭 저를 원하십니까? 도성에 규수는 예순입니다. 진 아가씨도 있고요. 쌀길이 필요하시면 아버지를 부르시면 됩니다. 딸까지 원하실 까닭이 없습니다.”

연휘가 대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 다리 위로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렸다. 한참 뒤에 그가 말했다.

“너는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보지 않는다. 매화정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왜지?”

“꿈에서 뵈었습니다.”

“꿈에서 나는 무엇을 했느냐?”

서련은 그를 보았다. 곤룡포의 금실 용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지난 생의 냉궁에는 햇빛이 들지 않았다.

“저를 오래 곁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쓸모가 끝나자 버리셨습니다.”

연휘의 얼굴에 처음으로 무엇인가가 스쳤다. 놀람인지 노여움인지 서련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금방 사라졌다.

“그럼 그 꿈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나는 쓸모가 끝난 것을 오래 두지 않으니. 그러니 쓸모 있게 굴어라, 윤서련.”

*

궐문을 나서자 해가 기울고 있었다. 가마 대신 걸어 나가겠다고 하자 상궁들은 말리지 않았다. 문 밖 느티나무 아래에 나귀 한 마리와 그 나귀에 기대 선 문하온이 있었다. 등의 상처가 조금 아물어 이제는 엎드리지 않고 설 수 있었다.

“얼굴이 우는 얼굴은 아니시군요.”

“우는 얼굴이었으면 어쩌시려고요?”

“나귀를 타시게 하고 저는 걸으려고 했습니다. 우는 사람은 걷게 하면 안 됩니다. 걷다가 더 웁니다.”

서련은 나귀 고삐를 잡고 걸었다. 하온이 옆에서 걸었다. 몇 걸음 가다가 하온이 그녀의 팔을 보았다. 무명천 끝으로 붉은 물집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긁으셨습니까?”

“폐하께서 긁으셨습니다.”

하온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갓 그늘 아래에서 그의 턱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재간택까지 열닷새. 단자를 다시 넣지 않으면 아버지를 서북으로 보내신답니다. 교지는 벌써 써 두셨습니다. 옥새만 남았어요.”

하온이 다시 걸었다. 둘은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저잣거리를 지날 때 국밥 냄새가 나자 하온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열닷새면 서북까지 매가 갔다 올 수 있습니다. 세자 저하의 매가 게으르지 않다면요.”

“게으르면요?”

“그럼 제가 매 대신 날아야지요. 말은 못 타도 날 줄은 압니다. 오늘 처음 해 보는 거라 잘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서련은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웃었다. 웃자 팔의 가려움이 잠깐 잊혔다. 그러나 궁에서 묻어 온 침향 냄새는 옷자락에서 쉽게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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