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5,111자)

들어가면 이렇게 됩니다

폐위된 황후의 두 번째 간택 · 백해원

진채이는 곽득수가 떠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곤장 서른 대를 맞는 장형을 받고 남쪽 섬으로 귀양을 가는 사람은 새벽에 성문을 나간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그 시각에 딸을 사당에 붙잡아 두고 조상에게 절을 시켰다. 아버지는 집안에 액이 끼었으니 씻어 내야 한다고 했다. 채이는 절을 하면서 성문 쪽에서 나졸들의 발소리가 나는지 귀를 기울였지만, 사당 안에는 향 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곽득수는 채이를 업어 키운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소실이었을 때, 정실부인이 데려온 아이들이 채이를 서녀라고 놀리며 연못에 밀어 넣은 적이 있었다. 그때 연못에 뛰어들어 그녀를 건져 올린 사람이 곽득수였다. 그는 젖은 아이를 등에 업고 행랑채까지 걸어가면서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다. 등이 넓고 땀 냄새가 났다. 채이는 그 등에서 울다가 잠이 들었다.

정실부인이 죽고 어머니가 안방을 차지한 뒤로 채이는 적녀가 되었다. 그러나 도성 규수들은 지금도 그녀의 등 뒤에서 그 말을 했다. 소실 딸, 서녀. 황후의 관을 쓰면 그 말은 사라진다. 황후의 어머니가 누구였는지 따지는 사람은 없다.

그 등이 지금은 곤장 서른 대에 찢어져 남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 등을 꺾은 사람이 오늘 그녀를 만나자고 했다.

절을 마치고 사당을 나서는데 아버지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진관오는 사당 섬돌 위에 서서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이번에도 소매에 눈물은 묻어나지 않았다.

“득수는 우리 집을 위해 간 거다. 너는 그걸 잊지 마라.”

“아버지를 위해 간 거지요.”

진관오의 손이 소매에서 내려왔다. 처진 눈이 딸을 내려다보았다.

“윤가 딸이 너를 보자고 했다지. 가거라. 가서 그 아이가 무엇을 아는지 알아 오너라. 마포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제가 알아 오면, 아버지는 그걸로 또 누구를 대신 보내실 건데요?”

“채이야.”

“득수 아저씨 등은 서른 대였어요. 아버지 녹봉은 석 달이고요.”

진관오는 대답하지 않고 섬돌을 내려갔다. 채이는 멀어지는 아버지의 등을 보았다. 살집이 좋아 둥글고, 평생 누구를 한 번도 업어 본 적이 없는 등이었다.

*

청연사는 도성 북쪽 산자락에 있었다. 간택을 앞둔 규수들이 몰래 와서 기도를 올리는 절이라, 봄이면 산길에 가마가 줄을 섰다. 채이는 별채 마루에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진달래가 지고 연둣빛 새잎이 산을 덮고 있었다. 별채 처마 끝의 풍경이 바람에 한 번씩 울었다.

윤서련은 약속한 시각에 정확히 왔다. 쪽빛 치마에 흰 저고리, 머리에는 비녀 대신 붉은 댕기를 맸다. 채이는 그것이 이상했다. 판서 댁 딸이 비녀 하나 없이 산에 오다니.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진 아가씨.”

“윤 아가씨가 불렀는데 안 올 수 있나요? 우리 집 집사를 귀양 보낸 분인데. 무서워서라도 와야지요.”

서련은 그 말에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채이는 그것이 더 미웠다. 사과를 하든 변명을 하든 무엇이라도 해야 할 얼굴인데, 윤서련은 그저 차를 따랐다. 찻잔을 드는 손목이 낮고 느렸다. 채이는 그런 손목을 어디서 본 적이 있었다. 선황의 장례에서 황태후가 제주를 따르던 손목이었다.

별채 마당에서는 두 시녀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윤가의 홍매가 보자기를 풀어 송화 다식을 꺼내자, 채이의 시녀 옥분이 질세라 흑임자 다식을 꺼냈다. 홍매가 자기 다식은 꿀을 세 번 걸렀다고 하자 옥분은 자기 다식은 깨를 네 번 볶았다고 했다. 홍매가 다식판이 대감마님 할머님 때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하자, 옥분은 자기 집 다식판은 그보다 한 대가 더 오래되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결국 서로의 다식을 하나씩 먹어 보고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제 것이 낫네요.”

“제 것이 낫지요.”

채이는 그 소리에 웃을 뻔했다. 서련도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두 사람이 같은 것에 웃을 뻔했다는 것을 채이는 알아차렸고, 그것이 또 싫었다.

*

“곽 집사 일은 미안하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서련이 먼저 말했다. 채이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안 하시는 게 낫겠네요. 하셔도 안 믿을 테니까.”

“그 사람은 아가씨 아버님 대신 맞았습니다. 그걸 아가씨도 아시지요.”

“알아요. 그래서 더 미워요.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아가씨가요.”

채이는 자기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들었다. 높아지게 두었다. 남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게 그녀의 버릇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서녀는 연못가에 가지 말라고 하면 연못가에 갔고, 서녀는 책을 읽지 말라고 하면 밤새 읽었다.

“무슨 말을 하러 오셨어요? 간택에서 빠져 달라고요? 저는 안 빠져요.”

“빠지지 마십시오.”

채이가 눈을 깜박였다.

“저는 간택에 나가지 않습니다. 제가 빠지면 아가씨가 황후가 되십니다. 그건 거의 정해진 일입니다. 다만 들어가시기 전에 들으셔야 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엇을요?”

서련은 찻잔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찻물의 온기가 손바닥으로 번지는 동안 그녀는 한참 말을 고르는 얼굴을 했다. 채이는 그 얼굴을 지켜보았다. 거짓말을 지어내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미 아는 것 중에서 무엇을 뺄지 고르는 얼굴이었다.

“들어가면 이렇게 됩니다.”

서련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느렸다.

“폐하께서는 서북을 꺾으려 하십니다. 서북을 꺾으려면 쌀길이 필요하고, 쌀길을 가진 집이 필요합니다. 우리 집이 안 들어가면 그 쌀길은 아가씨 집이 대신 쥐려 할 겁니다. 마포 창고가 그 시작이었지요. 처음 몇 해는 폐하께서 아가씨를 아끼실 겁니다. 아가씨 집이 쓸모가 있으니까요.”

“그다음은요?”

“서북이 꺾이고 나면 아가씨 집이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집이 됩니다. 폐하께서는 큰 집을 오래 견디지 못하십니다. 그때 아가씨가 아이를 가지시면, 그 아이는 진가의 피를 받은 황자가 됩니다. 폐하께서 그 아이를 원하실지는 아가씨가 생각해 보십시오.”

채이의 손이 찻잔 옆에서 굳었다. 풍경이 울었다. 마당에서 다식 다툼을 하던 홍매와 옥분도 어느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이를 가지시면, 침전에서 피우는 침향을 의심하십시오. 폐하께서 내리시는 향이라도요. 폐하께서 내리시는 향이라면 더욱이요.”

“지금 폐하를 시해하려는 사람처럼 말하시네요.”

“폐하를 아는 사람처럼 말하는 겁니다.”

“아가씨가 폐하를 어떻게 알아요? 매화정에서 한 번 뵈었다면서요.”

서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채이는 그 침묵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웃음이 입에서 먼저 나오고 눈은 뒤늦게 따라왔다.

“알겠어요. 아가씨는 그 자리를 탐하시는 거예요. 겉으로는 안 나간다 하시면서 나 같은 사람을 겁줘서 빠지게 하려는 거지요. 그럼 남는 게 누구예요? 아가씨지요.”

“제가 그 자리를 탐했다면 아버지 단자를 찢지 않았을 겁니다.”

“단자를 찢은 규수는 폐하 눈에 더 띄지요. 매화정까지 오셨다면서요. 다른 집은 아무도 그런 일이 없었어요. 아가씨는 정말 영리하세요.”

서련이 처음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채이는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서련이 다시 눈을 들었을 때, 그 눈에는 진 사람의 기색이 없었다. 딱하다는 기색이 있었다. 채이는 그 눈이 견딜 수 없었다. 서녀라고 놀리던 아이들이 연못에 밀어 넣기 직전에 짓던 눈과는 달랐지만, 그녀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은 같았다.

“제 말을 믿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억만 해 두십시오. 송화 다식은 드시지 마십시오. 궁 후원 연못가에서 누가 권하더라도요.”

“송화 다식이요?”

채이는 마당의 홍매가 들고 있는 다식 접시를 보았다. 노란 송화 다식이었다. 그녀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아가씨 시녀가 지금 들고 있는 그거요?”

“예. 그거요. 저도 이제 안 먹습니다.”

*

공양 시간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들렸다. 늙은 스님 하나가 별채로 산나물 공양 두 상을 들고 왔다. 상 위에 데친 두릅과 고사리와 이름 모를 쌉쌀한 잎이 놓여 있었다. 스님은 두 규수를 번갈아 보더니 합장했다.

“간택 앞둔 아가씨들이 한 상에 앉으시는 건 처음 봅니다. 대개는 서로 다른 날 오시지요.”

“스님, 이 나물은 무엇입니까?”

채이가 물었다. 잎 하나를 집어 먹었는데 혀가 오그라들 만큼 썼다.

“씀바귀입니다. 봄 씀바귀는 독을 뺍니다. 사람 마음에 든 독도 뺀다고들 하지요.”

채이와 서련은 동시에 씀바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스님이 허허 웃으며 물러갔다. 채이는 그 웃음을 등 뒤로 들으며 일어섰다.

“윤 아가씨, 저는 들어갈 거예요. 황후가 될 거예요. 그리고 아가씨 말이 맞는지 볼 거예요. 틀리면 아가씨를 찾아가서 송화 다식을 한 접시 드릴게요.”

“맞으면요?”

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치마를 걷어 쥐고 별채를 나섰다. 옥분이 흑임자 다식을 허둥지둥 보자기에 싸서 따라왔다.

*

산문 앞 느티나무 아래에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었다. 나귀 등에 남문 밖 서생이라는 사내가 엎드려 있었다. 등에 무명천을 칭칭 감아서 앉지 못하고 배를 대고 엎드린 꼴이었다. 그는 채이를 보더니 엎드린 채로 고개만 들어 인사했다.

“진 아가씨시군요. 아버님 시가 아주 훌륭했습니다. 제가 세 군데를 고쳐 드려서요.”

채이는 그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어서 대꾸하지 않았다. 나귀가 콧김을 내뿜었다.

산길 아래쪽에 가마 한 채가 서 있었다. 궁의 가마는 아니었지만 가마꾼들의 걸음새가 궁 사람들 같았다. 가마 옆에 장복수 내관이 서 있었다. 황실이 청연사에 내리는 봄 시주를 들고 왔다고 했다. 채이는 그것이 핑계라는 것을 알았다. 내관은 그녀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 아가씨, 산이 가팔랐지요.”

“예, 내관.”

장 내관이 가마 문을 열어 주는 척하며 그녀 곁으로 가까이 섰다. 그에게서 희미하게 향 냄새가 났다. 채이는 방금 들은 말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윤 아가씨를 만나셨다고요.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습니까?”

채이는 산 위를 돌아보았다. 별채 처마 끝이 새잎 사이로 보였다. 그 처마 밑에서 낮고 느린 목소리로 그녀의 앞날을 말하던 여자가 아직 앉아 있을 것이었다.

곽득수의 등이 떠올랐다. 넓고 땀 냄새가 나던 등, 지금은 찢어져서 남쪽 섬으로 가고 있는 등이었다.

“윤 아가씨는 무엇을 아는 것 같습니다, 내관.”

“무엇을요?”

“궁 안의 일을요. 살아 본 사람처럼 압니다. 폐하 침전에서 피우는 향까지요.”

장 내관의 얼굴이 굳었다. 채이는 그 얼굴을 처음 보았다. 늘 웃음을 달고 다니던 황제의 그림자가, 그 순간만은 웃는 것을 잊고 있었다.

7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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