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5,509자)
열 대를 맞고 치는 북
폐위된 황후의 두 번째 간택 · 백해원
마포 나루의 밤은 갯내가 짙었다. 썰물이 빠져나간 갯벌에서 비릿한 김이 올라왔고, 창고 처마마다 매달린 등불이 안개에 번져 동그란 얼룩처럼 보였다. 윤서련은 오라비의 도포 위에 검은 쓰개를 덮어쓰고 창고 뒤편 갈대숲에 엎드려 있었다. 갈대 밑동이 젖어서 무릎이 차가웠다.
“열쇠 깎는 값은 비녀 값에 얹었습니다.”
옆에 엎드린 문하온이 속삭였다. 그의 손바닥에 갓 깎은 쇠 열쇠 하나가 놓여 있었다. 덕순 어멈의 국밥집 옆에서 풀무질을 하는 늙은 대장장이가 밀랍 자국을 보고 두 시간 만에 깎아 냈다.
“어멈이 비녀를 담보로 잡고 계신데, 거기에 빚을 더 얹으셨다고요.”
“어멈 말로는 이제 그 비녀가 금비녀만 하답니다.”
갈대숲 끝에서 백도윤이 엎드린 채 헛구역질을 했다. 창고까지 오려면 마포 샛강을 나룻배로 건너야 했는데, 그 짧은 물길에서 도윤은 두 번 토했다. 멀미 약은 배를 타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배에서 내린 뒤에야 알았다.
“도윤, 괜찮으냐?”
“괜찮습니다. 땅이 아직 흔들립니다.”
“땅은 안 흔들린다.”
“제 쪽 땅은 흔들립니다.”
창고는 셋이었고, 하온이 들은 대로라면 진가 집사가 쓰는 것은 가장 안쪽, 지붕에 이끼가 낀 창고였다. 그 앞에 사내 둘이 등불을 들고 서 있었고, 나루 쪽에는 짐배 두 척이 줄에 묶여 출렁거렸다. 배를 띄우기로 한 자정까지는 한 시간쯤 남아 있었다.
도윤이 일어섰다. 일어서는 순간 흔들리던 땅이 멈춘 듯 그의 걸음이 곧아졌다. 그는 갈대숲을 돌아 창고 옆으로 가서 돌멩이 하나를 나루 쪽으로 던졌다. 짐배 옆에서 물소리가 크게 났다. 사내 둘이 등불을 들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하온이 열쇠를 자물통에 넣었다. 녹슨 자물통은 열쇠를 반쯤 받아들이고 멈추었다. 하온이 손목을 비틀었다. 쇳소리가 났고, 자물통이 벌어졌다.
*
창고 안은 쌀겨 냄새로 가득했다. 서련이 쓰개를 내리고 등잔에 불을 붙이자 어둠 속에서 가마니 더미가 천장까지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가마니마다 나무 패가 새끼줄로 매여 있었다. 서련은 가까운 가마니 하나의 패를 들어 등잔에 비추었다. 패 한가운데에 붉은 인두 자국이 찍혀 있었다. 호조의 낙인이었다. 서북으로 보내는 군량에만 찍는 낙인이었다.
“이게 삼천 석입니까?”
“더 됩니다. 늦게 보낸 게 아니라 아예 안 보낸 겁니다.”
서련은 패 하나를 새끼줄째 끊어 소매에 넣었다. 하온이 가장 아래쪽 가마니 하나를 어깨에 메려다 그 무게에 무릎이 꺾였다. 서생의 어깨가 버틸 무게가 아니었다.
“아가씨, 쌀 한 가마가 사람 하나보다 무겁습니다. 저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때 창고 문이 활짝 열렸다. 횃불 셋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맨 앞에 선 사람은 키가 작고 목이 굵은 사내였다. 진가 연회에서 좌상이 두 번 불렀다는 집사 곽득수였다. 그의 허리띠에 열쇠 셋이 달려 있었다.
“이게 누구신가. 윤 판서 댁 아가씨 아니시오? 연회에서 꽃 보러 오셨다더니, 밤에는 쌀 보러 오셨소?”
“진가 창고에 호조 낙인 쌀이 있는 것을 보러 왔습니다.”
“이 쌀은 진가가 산 쌀이오. 낙인은 호조에서 잘못 찍은 거고.”
“서북 군량에만 찍는 낙인을 잘못 찍었습니까?”
곽득수가 웃었다. 그 웃음이 끝나기 전에 그의 뒤에서 사내 둘이 몽둥이를 들었다. 하온이 쌀가마를 내려놓고 서련 앞으로 나섰다. 맨손이었다. 서련은 그 등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서생께서는 비키시지요.”
“아가씨, 저도 지금 비키고 싶습니다. 다리가 안 움직여서 서 있는 겁니다.”
몽둥이가 올라갔을 때 창고 문 쪽에서 둔한 소리가 났다. 사내 하나가 옆으로 쓰러졌다. 백도윤이었다. 그는 몽둥이를 빼앗아 두 번째 사내의 팔을 쳤고, 곽득수가 품에서 단도를 꺼내자 그 손목을 잡아 꺾었다. 단도가 쌀가마 위에 떨어졌다. 도윤은 곽득수를 쌀가마 더미에 밀어붙이고 서련을 돌아보았다.
“아가씨, 하나 메고 가십시오. 저는 이 사람을 잠깐 붙잡고 있겠습니다.”
“도윤, 너 땅이 흔들린다며.”
“싸울 때는 안 흔들립니다.”
하온이 이를 악물고 쌀가마를 다시 어깨에 올렸다. 이번에는 무릎이 꺾이지 않았다. 서련은 바닥에 떨어진 단도를 발로 차서 쌀가마 사이로 밀어 넣고 문을 나섰다. 곽득수가 도윤의 팔 아래에서 소리쳤다.
“그 쌀 들고 가 봐야 아무도 안 믿소! 좌상 대감 말씀 한마디면 낙인 찍힌 쌀이 열 가마든 백 가마든 다 윤가 쌀이 되는 거요!”
*
궐문 왼쪽 처마 밑에 북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등문고였다. 소가죽을 씌운 큰 북인데, 가죽이 오래되어 누렇게 바랬고 가장자리의 쇠못은 녹이 슬어 있었다. 누구든 억울한 일이 있으면 이 북을 칠 수 있었다. 다만 치기 전에 곤장 열 대를 맞아야 했다. 열 대를 맞고도 일어서는 사람의 말만 들어 준다는 것이 선황 때부터 내려온 법이었다.
새벽 안개가 걷히기 전, 문하온이 그 북 앞에 섰다. 옆에 쌀가마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서련은 사람들 틈에 섞여 그를 보고 있었다. 궐문 앞에는 새벽 장을 보러 가던 사람들과 조회에 드는 관원들의 하인들이 어느새 모여들어 있었다.
“제가 치겠습니다.”
어젯밤 나루에서 돌아오는 길에 하온이 그렇게 말했다. 서련이 자기가 치겠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옮겨 쓴 상소입니다. 제가 뒤집어야 셈이 맞습니다. 그리고 아가씨가 열 대를 맞으면 그 뒤에 하실 말씀을 못 하십니다. 저는 맞고도 말이 나옵니다. 입이 제일 튼튼하거든요.”
궐문을 지키는 나졸이 하온을 형틀에 엎드리게 했다. 곤장이 올라갔다가 떨어졌다. 물 먹은 나무가 살을 치는 소리가 안개 속에 둔하게 울렸다. 하온의 몸이 형틀 위에서 튀었다.
“하나.”
하온이 스스로 셌다.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또렷했다.
“둘. 둘째 대가 첫째 대보다 힘이 없습니다. 나으리, 아침을 거르셨습니까?”
구경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곤장을 든 나졸의 얼굴이 붉어졌고, 세 번째 대는 더 세게 떨어졌다. 하온이 신음을 삼켰다.
“셋. 이제 좀 성의가 있으십니다.”
넷째 대와 다섯째 대 사이에 서련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여섯째 대에서 하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곱째 대에서 그는 형틀을 쥔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가 다시 쥐었다. 붓을 쥐던 손이었다. 여덟째 대에서 사람들의 웃음이 그쳤다.
“열.”
하온이 형틀에서 내려왔다. 한 번 무릎이 꺾였다가 다시 섰다. 그는 북채를 집어 들었다. 북채가 그의 손에서 떨렸다. 그는 두 손으로 북채를 쥐고 등문고를 쳤다. 낡은 소가죽이 둥, 하고 울었다. 한 번 더 쳤다. 궐문 처마의 참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
궐문이 열리고 나온 사람은 장복수 내관이었다. 그는 북 소리가 그치기도 전에 나왔다. 처음부터 문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걸음이 서두르지 않았다.
“등문고를 친 자가 누구냐?”
“남문 밖 서생 문하온입니다.”
장 내관이 하온을 보았다. 그 눈이 하온의 등에 번지는 피를 보고, 그 옆의 쌀가마를 보고, 마지막으로 사람들 틈의 서련을 찾아 한 번 스쳤다.
“서생, 그대는 윤 판서를 탄핵한 상소를 직접 옮겨 쓴 사람이 아닌가?”
구경꾼들이 웅성거렸다. 장 내관은 그 웅성거림을 기다렸다는 듯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 손으로 쓴 상소를 제 손으로 뒤집겠다고 북을 쳤다면, 그대는 둘 중 하나다. 처음에 거짓을 썼거나, 지금 거짓을 말하거나.”
“둘 다 아닙니다, 내관. 저는 받은 대로 옮겼을 뿐입니다. 옮긴 사람은 오탈자를 압니다.”
하온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며칠 전 밤 별당 들창으로 건너왔던 그 초안이었다. 획 끝이 하나같이 왼쪽으로 꺾여 있었다.
“이건 좌상 대감께서 직접 쓰신 초안입니다. 저는 옮겨 쓴 사본을 돌려 드리고 원본은 남겨 두었습니다. 서생 버릇이지요. 원본에 마포 나루라는 이름이 한 번 나옵니다. 변방 군사가 굶주린다는 상소에 나루 이름이 왜 필요한지 저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마포의 진가 창고에서 이 쌀을 메고 나왔습니다.”
서련이 사람들 틈에서 걸어 나와 쌀가마의 나무 패를 들어 올렸다. 붉은 낙인이 아침 햇빛에 드러났다. 구경꾼들 사이에서 누가 크게 말했다.
“호조 낙인이다! 서북 군량이네!”
장 내관이 패를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의 코끝이 붉어졌고, 쌀겨 먼지에 그는 재채기를 한 번 했다.
“내관께서는 향에만 재채기를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하온이 말했다. 등에서 피가 흘러 도포 허리께까지 젖어 있었는데도 입은 그대로였다. 장 내관은 그를 내려다보며 사모를 고쳐 썼다.
“그대의 입은 오래 살겠군. 몸이 그만큼 따라갈지는 모르겠다만.”
장 내관은 쌀가마와 초안을 거두게 하고 궐문 안으로 돌아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가 서련을 한 번 더 보았다. 이번에는 그녀의 키나 허리나 손을 재는 눈이 아니었다. 무엇을 얼마나 아는지 재는 눈이었다.
*
판결은 그날 오후에 내려왔다. 진가 집사 곽득수가 군량을 빼돌려 사사로이 팔려 했다는 죄를 혼자 뒤집어썼다. 좌상 진관오는 집사를 잘못 부린 죄로 녹봉 석 달을 깎이는 데서 그쳤다. 윤정겸의 대명은 풀렸지만, 군량 관리에 소홀했다 하여 그 역시 녹봉 한 달을 깎였다.
“이긴 거냐, 진 거냐?”
윤정겸이 관복을 다시 입으며 딸에게 물었다. 그는 반쯤 기뻐하고 반쯤 겁에 질려 있었다. 딸이 무엇을 했는지 다는 몰랐지만, 무엇인가를 했다는 것은 알았다.
“좌상 대감은 집사 하나를 잃으셨고, 아버지는 녹봉 한 달을 잃으셨습니다.”
“그럼 비긴 거구나.”
“아니요. 폐하께서 무릎 꿇은 아버지를 못 얻으셨습니다.”
그날 저녁 서련은 별당 툇마루에 하온을 엎드리게 하고 그의 등에 약을 발랐다. 홍매가 등잔을 들고 섰다가 하온의 등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찢어진 살 위에 엉긴 피가 검붉었다. 서련은 무명천을 끓인 물에 적셔 피를 한 겹씩 불려 냈다. 천이 닿을 때마다 하온의 등이 굳었다가 풀렸고, 그의 숨이 툇마루 나무에 부딪혀 작게 울렸다. 손바닥 밑으로 그의 등이 뜨거웠다.
“아가씨, 손이 차십니다.”
“열이 나서 그렇습니다. 서생 등이 뜨거운 겁니다.”
“그럼 좀 오래 대고 계셔도 되겠습니다.”
서련은 대꾸하지 않고 약을 더 발랐다. 하온은 눈을 감았다. 한참 뒤 그가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좌상 대감이 올가을 과거 시험을 주관하는 시관입니다. 저는 아마 떨어질 겁니다.”
서련의 손이 멈추었다. 그녀는 그것을 셈하지 못했다. 지난 생의 하온은 진가의 상소를 옮겨 쓰는 서생이었고, 그래서 진가 시관 아래에서 붙었다.
“비석은요?”
“한 해 늦게 세우지요. 어머니는 기다리실 겁니다. 살아 계실 때도 늘 기다리셨으니까.”
대문 쪽이 소란해진 것은 그때였다. 장복수 내관이 다시 와 있었다. 이번에는 상자도 예부 낭관도 없이 혼자였다. 그는 사랑채로 가지 않고 별당 앞마당까지 들어와 섰다. 등잔 불빛 속에서 서련이 하온의 등에서 손을 떼는 것을 그는 보았다.
“아가씨께 폐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장 내관은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
“오늘 저녁 편전에서 폐하께서 윤 판서 댁 따님의 이름을 물으셨습니다. 서련이라 아뢰었더니, 폐하께서 그 이름을 두 번 소리 내어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서련이는 단자를 내지 않아도 된다. 내가 직접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