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5,371자)

방세는 비녀로

폐위된 황후의 두 번째 간택 · 백해원

남문 밖 장터는 아침부터 비린내가 짙었다. 강에서 밤새 건져 올린 붕어와 메기가 소쿠리째 길가에 나앉아 있었고, 국밥집 가마솥에서 오르는 김이 젖은 짚 냄새와 섞여 골목 끝까지 밀려갔다. 윤서련은 그 냄새 속을 사내 옷차림으로 걸었다. 오라비가 열여섯에 입던 옥색 도포를 꺼내 소매를 두 번 접었고, 갓은 아버지 사랑채 시렁에서 몰래 내렸다.

“아가씨, 걸음이요.”

뒤따르던 홍매가 속삭였다.

“걸음이 왜?”

“사내들은 그렇게 치맛자락 밟을까 봐 발끝으로 안 걸어요. 그리고 아가씨라고 부르면 안 되지요. 도련님. 도련님, 걸음이요.”

서련은 발뒤꿈치를 땅에 대고 걸어 보았다. 열한 해 동안 궁 마당에 깔린 넓적한 돌 위를 미끄러지듯 걷는 법만 익힌 다리라서, 뒤꿈치로 땅을 찍을 때마다 무릎이 어색하게 굽었다. 그 옆에서 호위 무사 백도윤이 소매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했다. 기침이 아니라 웃음이었다. 도윤은 어깨가 문짝만 하고 말수가 적은 스물여덟 살 사내였는데, 지난 생에는 의금부로 끌려가는 윤가 식솔들 앞을 칼 한 자루로 막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도윤, 웃었느냐?”

“아닙니다, 도련님. 생선 냄새가 맵습니다.”

“생선 냄새가 왜 매워?”

“메기가 성질이 매운 놈이라서요.”

홍매가 먼저 터지고, 도윤이 따라 터졌다. 서련은 둘을 노려보았지만, 그 노려보는 얼굴도 오래가지 못했다.

*

필사방은 장터 뒤 골목의 세 번째 집이었다. 홍매가 어제 알아 온 대로 대문 위에 「책 베껴 드림」이라는 나무패가 비뚤게 걸려 있었고, 그 옆 담장에 붙은 쪽문 안이 셋방이었다. 쪽문 앞에 이르기도 전에 안에서 여자의 고함이 넘어왔다.

“석 달이야, 석 달! 문 서방, 오늘은 내가 이불을 던질 거라고 어제 말했지?”

쪽문 너머로 무명 이불 한 채가 날아와 골목 바닥에 떨어졌다. 이어서 베개 하나, 그리고 금이 간 요강 하나가 굴러 나왔다. 도윤이 반사적으로 서련 앞을 막았고, 요강은 그의 발등에 부딪혀 멈추었다.

서련은 도윤의 어깨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작은 마당 건너 툇마루에 젊은 사내 하나가 앉아 있었다. 무릎에 판자를 올리고 그 위에 종이를 펴 놓은 채, 날아가는 이불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붓을 움직이고 있었다. 마르고 얼굴이 길었으며, 도포 깃이 닳아서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어멈, 그 이불은 지난달에도 던지셨습니다. 이불도 이제 혼자 날아서 돌아올 줄 압니다.”

“입만 살아서!”

“입이 살아 있어야 품삯을 받아 방세를 드리지요. 입이 죽으면 어멈은 시체한테 방세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건 더 어렵습니다.”

국밥집 안주인이라는 그 여자, 덕순 어멈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툇마루로 다가갔다. 사내는 그제야 붓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서련은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문하온이었다. 지난 생에 그는 임금의 잘못과 신하의 허물을 따지는 관청 사간원의 정언이었다. 임금이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는 편전 한가운데서 탄핵 상소를 소리 내어 읽던 그 얼굴보다, 지금의 얼굴은 열 살이 젊었다. 그때 그는 서른넷이었고, 목소리가 맑아서 상소의 문장 하나하나가 편전 기둥에 부딪혀 울렸다. 황후 윤씨가 서북 번왕과 몰래 서신을 주고받았다는 문장이었다. 서련은 그 문장을 지금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욀 수 있었다.

지금의 문하온은 스물넷이고, 방세 석 달이 밀려 있었다.

*

“문하온 서생이십니까?”

서련이 마당에 들어서자 하온이 그녀를 보았다. 위에서 아래로, 갓에서 신발까지 천천히 훑는 눈이었다. 그 눈이 서련의 귀 옆에서 한 번 멈추었다.

“사내 옷을 입으셨으면 갓끈은 턱 밑에서 매십시오. 귀 옆에서 고를 짓는 건 기방 앞에서 기웃거리는 한량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그리고 도련님은 목에 울대가 없으십니다.”

홍매가 얼른 자기 목을 손으로 가렸다. 왜 자기 목을 가리는지는 홍매도 몰랐다.

“알아보셨으면 더 말을 돌릴 필요가 없겠군요.”

서련은 갓끈을 풀어 턱 밑에서 다시 맸다. 하온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제 서생이 되시지요.”

덕순 어멈이 입을 벌렸다. 하온은 웃지 않았다. 그는 붓을 필통에 꽂고 판자 위의 종이를 뒤집어 엎었다. 서련이 무엇을 쓰던 중인지 보지 못하게 하려는 손이었다.

“양반가 아가씨가 서생을 들인다는 건 둘 중 하나입니다. 연서를 대신 써 줄 사람이 필요하거나, 남의 글씨를 흉내 내 줄 사람이 필요하거나. 첫째라면 저는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쓸모가 없고, 둘째라면 그런 일 하는 놈은 목이 먼저 날아갑니다. 어느 쪽이든 돌아가십시오.”

“둘째입니다.”

하온의 손이 판자 위에서 멈추었다.

서련은 툇마루 앞까지 걸어갔다. 마당 흙이 봄비에 아직 젖어 있어서 오라비의 낡은 신발 밑창으로 차가운 물기가 스몄다.

“서생께서 쓰신 글씨는 그 글씨의 주인이 봐도 제 것인 줄 압니다. 필사방 주인은 원본과 서생의 사본을 바꿔 팔아 차액을 챙기지요. 서생께서는 그걸 아시면서 모른 척하시고요. 품삯을 한 푼이라도 더 받으시려고.”

“누가 그럽디까?”

“제가 그럽니다.”

하온이 서련을 오래 보았다. 그동안 덕순 어멈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슬그머니 이불을 주우러 나갔다. 골목에서 그녀가 이불을 털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는 지금 저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사시려는 겁니까?”

“둘 다요.”

“솔직하셔서 좋습니다. 그럼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하온이 툇마루에서 일어났다. 서련보다 머리 하나가 컸고, 일어서자 그의 도포에서 묵은 먹 냄새와 콩기름 냄새가 났다. 밤에 등잔을 켜고 글씨를 쓰는 사람의 냄새였다.

“저는 올가을 과거를 봅니다. 두 번 떨어졌고 세 번째는 붙을 겁니다. 붙어서 관복을 입고, 그 관복을 입은 채로 어머니 무덤에 가서 비석을 세울 겁니다. 그 전에 남의 글씨를 흉내 내다 걸리면 비석은커녕 제 무덤에 풀도 안 납니다. 아가씨가 어느 댁 따님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아가씨의 장기판에 말로 올라갈 생각이 없습니다.”

서련은 그 말에서 한 단어를 붙잡았다. 장기판. 지난 생에 황제 연휘가 즐겨 쓰던 말이었다. 사람은 다 말이고, 판은 하나라고 했다.

“말이 되기 싫으시면 판을 같이 보시면 됩니다.”

“판이요?”

“올가을 과거는 서생께서 붙으십니다. 저는 그걸 압니다. 그런데 붙은 뒤 열 해 동안 서생께서 누구의 말이 되는지도 압니다. 그 사람이 서생을 다 쓰고 나서 어디에 버리는지도요.”

하온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잠깐 빠져나갔다. 그 자리에 무언가 다른 것이 들어오려다가, 그는 곧 다시 비웃음을 끌어다 덮었다.

“아가씨, 무당이십니까? 점을 치시면 저쪽 장터 끝에 눈먼 판수가 있습니다. 거기가 복채가 쌉니다.”

“복채는 제가 드리지요.”

*

골목 쪽에서 덕순 어멈이 이불을 안고 돌아왔다. 그녀는 이불을 툇마루에 던져 놓고 허리에 손을 얹었다.

“두 분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요, 문 서방 방세는 석 달에 이자까지 해서 엽전 아홉 꿰미예요. 그거 없으면 오늘 해 지기 전에 짐 싸.”

서련은 소매 속의 주머니를 만졌다. 나올 때 가진 엽전은 두 꿰미가 전부였다. 그녀는 잠깐 생각하다가 손을 갓 밑으로 넣었다. 상투처럼 틀어 올린 머리를 고정하느라 꽂아 둔 은비녀가 손끝에 걸렸다.

“아가씨, 그건….”

홍매가 서련의 소매를 잡았다. 서련은 홍매의 손을 가만히 떼어 냈다.

비녀를 빼자 틀어 올린 머리가 반쯤 흘러내렸다. 갓 밑으로 검은 머리채가 어깨에 닿았다. 덕순 어멈이 눈을 크게 떴고, 그다음에는 하온보다 더 오래 서련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이건 은입니다. 무게로 따져도 열 꿰미는 넘을 겁니다. 남는 건 서생의 다음 달 방세로 하십시오.”

덕순 어멈이 비녀를 받아 이로 끝을 깨물어 보았다. 그러고는 끝이 휜 데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끝이 휘었네.”

“그래서 아무도 탐내지 않을 겁니다. 제가 찾으러 오기도 쉽고요.”

“찾으러 오신다고요?”

“예. 서생께서 제 일을 끝내시면, 그때 비녀 값을 치르고 찾아가겠습니다. 그때까지 어멈께서 맡아 두십시오.”

하온이 그 말을 듣고 서련을 보았다. 이번에는 웃음도 비웃음도 없는 얼굴이었다.

“제가 아가씨 일을 하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압니다. 그래서 비녀를 어멈께 맡긴 겁니다. 서생이 아니라.”

덕순 어멈이 비녀를 앞치마 주머니에 깊숙이 넣고 툇마루의 이불을 다시 안았다. 이불은 이번에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멈은 방문을 닫으면서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문 서방, 저 아가씨 놓치면 내가 너 내쫓는다.”

*

필사방 쪽문으로 나오려는데 필사방 주인이 대문 앞에서 하온을 불렀다. 배가 둥근 중년 사내였고, 손가락마다 먹이 배어 있었다.

“문 서방, 좌상 댁 집사가 또 왔다 갔네. 그 상소 초안을 깨끗이 옮겨 달라고. 글씨값은 지난번처럼 반으로 하자더군.”

“좌상 댁은 글씨값을 깎습니다. 글씨는 반만 쓰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반쪽 상소가 올라가면 좌상 대감께서 반만 꾸중을 들으실 겁니다.”

필사방 주인이 투덜거리며 들어갔다. 서련은 걸음을 멈추었다. 좌상은 진관오였다. 지난 생에 귀비가 된 진채이의 아버지였다. 그 집이 벌써 이 서생에게 상소를 맡기고 있었다.

“좌상 댁 일을 자주 하십니까?”

“아가씨 일보다는 자주 합니다. 그 댁은 비녀 대신 엽전을 줍니다. 반만.”

서련은 쪽문을 넘었다. 골목에서 도윤이 요강을 들고 서 있었다. 아까 발등에 맞은 그 요강을 어디에 둘지 몰라 줄곧 들고 있었다.

“도윤, 그건 내려놓아라.”

“주인 댁에 돌려줘야 하지 않습니까?”

“금 간 요강은 돌려주는 게 아니다.”

도윤이 요강을 담장 밑에 공손히 내려놓았다. 홍매는 서련의 흘러내린 머리를 갓 안으로 다시 쓸어 넣으려고 애썼지만, 비녀가 없으니 머리는 자꾸 미끄러져 내려왔다.

“아가씨, 마님 비녀를요. 그걸 그냥.”

“그냥 아니다. 맡겼다.”

“대감마님이 아시면….”

“아버지는 비녀가 어디 있는지 모르신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한 번도 묻지 않으셨다.”

홍매가 입을 다물었다. 장터의 비린내가 다시 몰려왔다. 서련은 큰길 쪽으로 걸었다. 이번에는 발뒤꿈치를 땅에 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등 뒤에서 발소리가 따라왔다. 급하게 걷는 발소리였고, 닳은 신발 밑창이 흙을 끄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서련이 돌아보기 전에 그 목소리가 먼저 닿았다.

“아가씨.”

하온이 장터 입구에 서 있었다. 붓을 쥐던 손에 먹이 아직 묻어 있었고, 숨이 조금 가빴다. 그는 서련 앞에서 멈추어 서서 한동안 말을 고르는 얼굴을 했다. 독설을 고를 때와는 다른 얼굴이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도성에 서생은 수천입니다. 글씨 잘 쓰는 놈도 수백이고요. 그런데 왜 하필 저입니까?”

서련은 그를 보았다. 열 해 뒤 편전에서 그녀의 죄목을 읽던 목소리가, 지금은 장터 소음에 섞여 조금 떨리고 있었다.

“서생께서 제 글씨를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될 테니까요.”

“저는 아가씨 글씨를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보셔야지요.”

2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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