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6,087자)

단자를 찢는 손

폐위된 황후의 두 번째 간택 · 백해원

폐위된 황후를 가두는 냉궁의 화로에는 침향이 타고 있었다. 겨울이 깊어 문풍지마다 성에가 앉았는데, 화로 하나만은 누가 애써 숯을 갈아 넣었는지 붉게 살아 있었고, 그 위에서 검은 나뭇조각이 달고 맵싸한 연기를 천장으로 밀어 올렸다. 윤서련은 그 냄새를 열한 해 동안 맡았다. 황후의 침전에도, 정월 제사의 사당에도, 딸을 낳던 밤의 산실에도 이 향이 탔다.

“마마, 때가 되었습니다.”

장복수 내관이 소반을 받쳐 들고 무릎을 꿇었다. 흰 사발 하나가 소반 가운데 놓여 있었다. 사발 안의 물은 식어서 김이 오르지 않았다. 서련은 사발보다 장 내관의 손을 먼저 보았다. 열한 해 전 침향 상자를 들고 친정 대문을 넘던 손이었다.

“은설이는.”

“공주마마는 무탈하십니다.”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장 내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더 숙였다. 그의 코끝이 붉었다. 향 냄새를 맡으면 재채기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라, 지금도 숨을 멈추고 있는 게 보였다. 서련은 그 모습이 우스워서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사람은 죽기 직전에도 우스운 것을 본다.

“폐하께서 전하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황후는 끝까지 윤씨였다, 하셨습니다.”

서련은 사발을 들었다. 손이 떨리지 않아서 스스로 놀랐다. 아버지는 서북으로 귀양을 가다 길에서 죽었고, 오라비들은 죄인을 다스리는 의금부의 마당에서 죽었다. 윤씨 집안이 쥐고 있던 서북 군량길은 이제 황제의 것이었고, 서북 번왕은 지난가을에 무너졌다. 쓸모가 끝난 것이 버려지는 순서를 서련은 궁에서 수도 없이 보았다. 자기 차례가 오리라는 것도 알았다.

물은 썼고, 뒤로 단맛이 남았다. 목구멍을 지나간 것이 배 속에서 뜨거워지기 시작했을 때 서련은 화로를 보았다. 침향 조각 하나가 다 타서 하얀 재로 무너지고 있었다.

*

“아가씨, 아가씨!”

누가 어깨를 흔들었다. 서련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고, 그 숨에 침향이 아니라 먹 냄새와 덜 핀 매화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눈앞에 둥근 얼굴 하나가 있었다. 볼에 주근깨가 박힌 그 얼굴은 서련이 입궁할 때 따라 들어왔다가 삼 년 만에 궁 우물에 빠져 죽은 시녀 홍매였다. 지금의 홍매는 스물둘이고, 볼이 터질 듯 통통했다.

서련은 이불을 걷고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마디가 매끈했다. 황후가 되고 나서 붓을 너무 오래 쥐어 생긴 굳은살이 가운뎃손가락에 없었다. 별당 들창 너머로 마당의 매화나무가 보였는데, 가지마다 꽃망울이 콩알만 하게 맺혀 있을 뿐 아직 하나도 벌어지지 않았다.

“지금이 몇 년이냐?”

“예?”

“연호를 대라.”

홍매가 입을 반쯤 벌렸다가 닫았다. “영희 삼 년이옵지요. 아가씨, 열이 나십니까?”

영희 3년 봄이었다. 서련은 이불 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영희 3년 봄이면 간택령이 내린 해였다. 그녀가 간택 단자를 내고, 초간택과 재간택과 삼간택을 차례로 넘어 황후가 된 해였다.

“간택령은 언제 내렸느냐?”

“사흘 전에요. 그래서 대감마님께서 아침부터 사랑채에서 아가씨 단자를 쓰고 계십니다. 아가씨 태어난 시를 물으셔서 제가 사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맞지요? 맞을 거예요. 마님께서 생전에 늘 우리 서련이는 해가 중천에 오기 전에 나왔다고….”

서련은 홍매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일어났다.

“홍매야, 너는 물러가 있거라.”

홍매가 눈을 둥글게 떴다. 서련은 자기 목소리를 들었다. 낮고 느리고, 끝을 내리누르는 말투였다. 열한 해 동안 궁 안의 여인들을 다스리던 목소리가 스무 살 처녀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아가씨, 혹시 꿈에 대비마마 귀신이라도 보셨습니까?”

“비켜라.”

“신은요? 아가씨, 신!”

*

사랑채 대청에 오르자 아버지 윤정겸이 보였다. 호조 판서의 관복을 벗고 도포만 걸친 채 경상 앞에 앉아 있었는데, 붓끝을 벼루에 몇 번이고 다듬으며 종이 위에 한 글자씩 눌러 쓰고 있었다. 붉은 테를 두른 처녀단자였다. 딸의 이름과 나이와 태어난 시, 아비와 할아비와 외할아비의 이름과 벼슬을 적어 예부에 내는 종이였다. 아버지가 그 종이를 쓰던 아침을 서련은 기억했다. 그때 그녀는 별당에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땋고 있었다.

“아버지.”

윤정겸이 고개를 들고 헛기침을 했다. 딸이 맨발로 대청을 밟고 선 것을 보고는 헛기침을 한 번 더 했다.

“규수가 버선도 안 신고 이게 무슨 꼴이냐? 마침 잘 왔다. 외조부 함자를 쓰려는데 한씨 집안 항렬자가 기억이 안 나서….”

서련은 경상 위의 단자를 집어 들었다. 먹이 덜 말라서 손끝에 검게 묻었다. 아버지가 막을 새도 없이, 서련은 종이를 가로로 한 번 찢고 겹쳐서 다시 찢었다. 종이 찢어지는 소리가 사랑채 안에 길게 퍼졌다.

윤정겸의 입이 벌어졌다. 그가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상투가 앞으로 기울었고, 상투에 꽂았던 동곳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굴러갔다.

“너,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단자는 넣지 않습니다.”

“간택령이다! 열여섯에서 스물하나까지 양반가 규수는 다 단자를 낸다. 딸을 숨긴 가장은 죄를 받아. 내가 죄인이 되기를 바라느냐?”

“단자를 넣으면 집안이 죽습니다.”

“무슨 소리냐, 대체.”

서련은 찢은 종이를 경상 위에 내려놓았다. 무슨 말로 이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지 그녀는 따져 보았다. 지난 생에서 왔다고 하면 아버지는 의원을 부를 것이고, 무당을 부를 것이고, 그 둘이 다 실패하면 딸을 별당에 가둘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가 알아들을 말만 골랐다.

“아버지, 서북 군량길은 어머니 집안에서 온 것이지요. 서북 번왕의 군대가 먹는 곡식은 우리 집 배와 우리 집 수레로 갑니다. 폐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가 아니라 그 길입니다.”

“그게 어때서? 황후의 친정이 되면 그 길은 더 넓어진다.”

“넓어진 길은 결국 폐하의 것이 됩니다. 길을 다 가져가시면, 그다음에 우리 집은 쓸모가 없어집니다.”

윤정겸이 딸을 한참 보았다. 그의 눈에 처음으로 화 말고 다른 것이 스쳤다. 서련은 그것이 두려움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바닥의 동곳을 주워 상투에 다시 꽂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다만, 폐하께서는 아직 젊으시다. 젊은 임금에게는 기댈 처가가 필요하다. 우리가 그 처가가 되는 거다.”

“아버지.”

“홍매야! 종이를 새로 가져오너라. 붉은 테 두른 것으로.”

서련은 아버지의 등 뒤로 대청 기둥을 보았다. 거기에는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쓰던 은비녀가 걸려 있던 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 비녀는 지금 그녀의 머리에 꽂혀 있었다. 끝이 살짝 구부러진 비녀였다. 어머니가 시집오던 해에 곳간 열쇠를 잃어버린 아버지 대신 그 비녀로 자물쇠를 땄다가 끝이 휘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비녀를 바로 펴지 않았다. 휜 데가 있어야 내 것인 줄 안다고 했다.

“새 종이를 가져오셔도 저는 또 찢습니다.”

“그럼 또 쓰지.”

“그럼 또 찢지요.”

부녀가 서로를 노려보는 동안 홍매가 종이 한 묶음을 안고 대청 끝에 서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묶음을 아버지에게 줘야 할지 아가씨에게 줘야 할지 몰라서, 그녀는 결국 종이를 자기 치마폭에 감추었다.

*

오후에 손님이 왔다. 대문 쪽이 소란해지더니 청지기가 허리를 접은 채 뛰어 들어왔다. 궁에서 사람이 왔다고 했다. 윤정겸은 도포를 벗고 관복을 다시 꿰어 입느라 소매에 팔을 두 번이나 잘못 넣었다.

서련은 별당에 있으라는 말을 듣지 않고 대청 병풍 뒤에 섰다. 비단 병풍은 학과 소나무를 수놓은 것이었는데, 실이 낡아 학의 다리 하나가 풀려 있었다. 그 틈으로 마당이 보였다.

장복수 내관이 들어오고 있었다. 지난 생의 냉궁에서 본 얼굴보다 열한 해 젊었고, 그래서 눈가에 주름이 없었다. 그러나 걸음은 같았다. 땅에 발을 대지 않는 것처럼 미끄러지는 걸음이었다. 그의 뒤로 예부 낭관 하나가 붓통을 끼고 따랐고, 그 뒤에서 어린 환관 둘이 옻칠한 상자를 맞들고 왔다. 상자 뚜껑에 금박으로 구름무늬가 찍혀 있었다.

서련은 그 상자를 알았다. 뚜껑을 열면 냄새가 무엇일지도 알았다.

“윤 대감, 경하드립니다.”

장 내관이 허리를 반쯤 굽혔다. 공손하고 느린 말투였다.

“폐하께서 이 댁의 봄을 염려하시어 향을 내리셨습니다. 남쪽 바다 건너에서 들어온 침향입니다. 궁 밖으로 나가는 것은 올봄에 이 상자 하나뿐이지요.”

윤정겸이 두 손으로 상자를 받으려 할 때, 서련이 병풍 뒤에서 걸어 나왔다. 아버지가 헛기침을 크게 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내관께서 오셨군요.”

장 내관이 서련을 보았다. 아주 짧은 동안, 그의 눈이 그녀를 위아래로 쟀다. 키와 낯빛과 허리, 그리고 손. 궁에서 사람을 고르는 사람의 눈이었다.

“윤 대감 댁 아가씨시군요. 단자는 다 쓰셨습니까? 예부에서는 이레 안에 받아야 합니다.”

“단자는 없습니다.”

예부 낭관이 붓통을 떨어뜨릴 뻔했다. 장 내관은 웃었다. 입꼬리만 올라가는 웃음이었다.

“아가씨께서 농을 하십니다. 없는 단자는 있는 죄가 됩니다. 대감께서 잘 아시겠지요.”

“농이 아닙니다.”

서련은 아버지 손에서 상자를 받아 뚜껑을 열었다. 검은 나뭇조각들이 비단 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냄새가 올라왔다. 달고 맵싸한 연기의 냄새, 아직 태우지 않았는데도 코 안쪽을 찌르는 냄새였다. 서련의 귀에 문풍지 떠는 소리가 들렸고, 손바닥에 식은 사발의 감촉이 돌아왔다. 목구멍 안쪽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이를 물고 그 뜨거움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장 내관이 코를 찡그렸다. 그리고 참지 못하고 재채기를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세 번째 재채기에 그가 쓴 관모인 사모가 비뚤어졌고, 어린 환관 하나가 고개를 숙여 웃음을 참았다.

서련은 상자를 들고 대청 끝으로 걸어갔다. 처마 밑에 빗물을 받아 두는 큰 항아리가 있었다. 지난밤에 내린 봄비가 가득 고여 있었다. 그녀는 상자를 기울였다. 침향 조각들이 하나씩 미끄러져 물속으로 떨어졌다. 검은 나무는 무거워서 뜨지 않고 바로 가라앉았다.

“서련아!”

윤정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예부 낭관은 붓을 꺼내 무언가를 적으려다가, 장 내관이 손을 들자 멈추었다.

장 내관은 재채기를 그치고 비뚤어진 사모를 바로 썼다. 그는 항아리 쪽으로 다가와 물속을 내려다보았다. 물 위에 기름 같은 무늬가 얇게 번지고 있었다.

“침향은 물에 가라앉아야 진짜입니다. 아가씨께서 귀한 향을 시험해 주셨군요.”

“가져가셔도 됩니다. 건져서.”

“폐하께서는 젖은 향도 말려서 쓰십니다.”

장 내관이 몸을 돌려 윤정겸에게 다시 허리를 굽혔다. 그 동안 그는 서련을 보지 않았다.

“대감, 폐하께서 한 가지 물으셨습니다. 이 댁 매화는 언제 피느냐고요.”

윤정겸은 대답하지 못했다. 장 내관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마당을 가로질러 나갔다. 어린 환관 둘이 빈 상자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예부 낭관만 한 번 돌아보았는데, 그 얼굴이 딱하다는 표정이었는지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문이 닫히자 윤정겸이 딸의 팔을 잡았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아팠다.

“네가 이 집을 망치려고 작정을 했구나.”

“망하지 않게 하려고 작정했습니다.”

“폐하의 향을 빗물에 버렸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느냐?”

“압니다. 그래서 버렸습니다.”

아버지가 팔을 놓았다. 그는 항아리 쪽을 한 번 보고, 딸을 한 번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사랑채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안에서 붓을 벼루에 탁탁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는 단자를 다시 쓰고 있었다.

*

해가 지고 별당에 불을 켤 무렵, 서련은 홍매를 불렀다. 홍매는 낮에 치마폭에 감추었던 종이 묶음을 아직도 들고 있었다.

“그건 왜 아직 들고 있느냐?”

“대감마님께서 달라고 하시면 아가씨가 찢으실 거고, 아가씨 드리면 대감마님께서 저를 찢으실 거라서요.”

서련은 웃었다. 이번 생에 처음 웃는 웃음이었다. 웃고 나니 목이 덜 뜨거웠다.

“홍매야, 내일 아침 남문 밖에 다녀오너라. 남문 밖 장터 뒤에 책을 베껴 주고 품삯을 받는 필사방이 있다. 그 근처 셋방 어딘가에 문하온이라는 서생이 산다. 어디 사는지만 알아 오면 된다.”

“서생이요? 아가씨가 서생은 왜요?”

“사람을 하나 들여야겠다.”

홍매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종이 묶음을 꼭 끌어안았다. 서련은 들창을 열었다. 밤바람이 들어오면서 마당 쪽에서 희미한 냄새가 실려 왔다. 빗물 항아리에 가라앉은 침향이 밤새 물에 우러나는 냄새였다.

열 해 뒤에 그녀를 탄핵하는 상소를 쓸 사람의 이름을, 서련은 입속으로 한 번 더 불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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