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5,695자)

메우는 갱차

엘프 왕국에 파견된 9급 공무원 · 엄선재

소율은 이 손을 잡았다⁠. 마르고 깨끗한 손이었다⁠.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물었다⁠.

“⁠갱차 몇 대 쓰실 거예요⁠?⁠”

표재곤이 잡힌 손을 내려다봤다가 웃었다⁠.

“⁠하루 마흔 대요⁠. 들어갈 땐 흙 싣고⁠, 나올 땐 빈 걸로⁠.⁠”

“⁠엘프들이 셀 거예요⁠. 들어간 거하고 나온 거⁠.⁠”

“⁠세라고 하세요⁠. 숫자는 정직하니까⁠.⁠”

표재곤이 손을 뺐다⁠. 반석호는 이 악수를 찍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었다가 내렸다⁠.

*

월요일 아침 여섯 시⁠, 첫 갱차가 문을 지나왔다⁠.

갱차는 쇠로 만든 작은 수레였다⁠. 레일 위를 구르는 바퀴 넷에 짐칸 하나⁠, 짐칸 위에 회색 방수포가 덮여 있었다⁠. 열 대씩 쇠줄로 이어 끌었다⁠. 방수포를 걷으면 태백에서 퍼 온 회색 흙과 자갈이 짐칸 가득 실려 있었다⁠. 첫 열 대가 곁굴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철문 앞의 엘프 궁수 하나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다른 궁수가 이 옆에서 같은 수를 접었다⁠. 둘이 서로 손가락을 맞춰 보니 열이었다⁠.

한 시간 뒤 빈 갱차 열 대가 철문 밖으로 나왔다⁠. 방수포가 덮여 있었다⁠. 궁수들이 다시 손가락을 접어 열을 셌다⁠. 궁수 하나가 방수포 귀퉁이를 들춰 봤다⁠. 짐칸 바닥에 흙먼지만 남아 있었다⁠. 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첫 행렬이 들어가기 전에 회사 작업자들이 곁굴 서른 걸음째의 콘크리트 벽을 착암기로 깼다⁠. 엘프 궁수들이 철문 앞에서 이 소리를 들었다⁠. 메우려면 굴을 지나가야 했고⁠, 지나가려면 벽을 깨야 했다⁠. 벽 너머로 레일이 그대로 이어져 있었다⁠. 표재곤은 이 레일을 보고도 아무 설명을 하지 않았고⁠, 엘드린의 궁수들도 묻지 않았다⁠. 이들은 갱차 수만 세라는 명을 받았다⁠.

이것이 하루에 네 번이었다⁠. 들어간 갱차 마흔⁠, 나온 갱차 마흔⁠. 엘드린의 궁수들은 하루가 끝나면 손가락으로 센 수를 엘드린에게 보고했다⁠. 수는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소율은 바깥뜰 동굴 입구 앞 풀밭에 앉아 이걸 엿새 동안 봤다⁠.

월요일에 무단결근이 시작됐다⁠. 화요일에 본부 인사과에서 문자가 왔다⁠. 「⁠무단결근 2일⁠. 소명 기회 부여⁠.⁠」 수요일에는 과장이 전화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숨만 쉬다 끊었다⁠. 목요일에는 반석호가 본부에서 「⁠업무 배제 예정 통지⁠」를 받았다⁠. 반석호는 이 통지를 사진으로 찍어 사무실 벽 엘프 사진들 사이에 붙였다⁠.

“⁠기록용⁠.⁠”

리엘은 날마다 해 뜰 때 와서 해 질 때 갔다⁠. 소율 옆에 앉아 같이 갱차를 셌다⁠. 셀 것이 없을 때는 소율에게 엘프어 단어를 가르쳤고 소율에게서 한국어 단어를 배웠다⁠. 리엘이 제일 좋아한 한국어는 ‘⁠대충⁠’이었다⁠. 엘프어에는 그런 말이 없다고 했다⁠.

“⁠모든 것을 정확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의 말입니까⁠?⁠”

“⁠비슷해요⁠.⁠”

“⁠아름다운 말입니다⁠. 그러나 공문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공문에 그게 나오면 사람 잘려요⁠.⁠”

수요일 해 질 녘에는 리엘의 동행으로 쓰러진 나무에 갔다⁠. 시월은 말뚝 넷 사이 이끼 위에 앉아 있었다⁠. 손목 끈이 뿌리에 이어진 채였다⁠. 아침마다 이끼에 이슬이 맺히는데 이게 날마다 조금씩 차가워진다고 했다⁠.

“⁠굴은 얼마나 메웠어요⁠?⁠”

“⁠하루 마흔 대씩 들어가요⁠.⁠”

“⁠마흔 대면 엿새에 반은 차겠네⁠.⁠” 시월이 손가락으로 흙바닥에 굴 모양을 그렸다⁠.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긴 선이었다⁠. “⁠근데 공무원⁠, 들어간 거 말고 나오는 거 봐요⁠. 우리 현장에서는 반장님이 나오는 차 소리만 듣고도 알았어⁠. 빈 차는 레일 위에서 통통 튀어요⁠. 실린 차는 울고⁠.⁠”

소율은 이 말을 수첩에 적지 않았다⁠. 귀에 넣었다⁠.

돌아서는 소율의 등 뒤에서 시월이 말했다⁠.

“⁠우리 엄마한테 전화 한 통만 해 줘요⁠. 나 출장 길어진다고⁠. 공무원이 하면 믿을 거야⁠.⁠”

*

목요일 밤에 비가 왔다⁠.

컨테이너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사무실 안을 꽉 채웠다⁠. 반석호는 숙소 컨테이너에서 코를 골았다⁠. 소율은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반석호의 사진 벽을 보고 있었다⁠. 문이 두 번 울렸다⁠.

리엘이 젖은 채 서 있었다⁠. 은회색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었고⁠, 녹색 웃옷이 어깨부터 검게 젖어 있었다⁠. 해가 진 뒤에 엘프가 바깥뜰을 건너온 것은 처음이었다⁠.

“⁠들어와요⁠. 감기 걸려요⁠. 엘프도 감기 걸려요⁠?⁠”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춥기는 합니다⁠.⁠”

소율은 전기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컵라면은 없었다⁠. 커피 믹스를 탔다⁠. 리엘이 두 손으로 컵을 감쌌다⁠. 원로들처럼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한 모금 마셨다⁠. 빗물이 리엘의 머리카락 끝에서 책상 위로 떨어졌다⁠. 수액 냄새가 났다⁠. 리엘에게서는 늘 이 냄새가 났다⁠.

리엘이 컵을 내려놓았다⁠. 허리를 반듯이 폈다⁠. 첫날 소율 앞에서 인사할 때처럼⁠.

“⁠본인은 주무관님에 대하여 각별한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소율이 리엘을 봤다⁠. 리엘은 소율을 보지 않고 책상 모서리를 보고 있었다⁠. 귀 끝이 붉었다⁠.

“⁠이 말을 엘프어로 하려고 하였으나 형 앞에서처럼 입이 굳었습니다⁠. 그래서 공문으로 하였습니다⁠. 회신은 편하실 때 주시기 바랍니다⁠. 엘프 시간으로 하셔도 됩니다⁠.⁠”

소율은 웃음이 터졌다⁠. 터진 웃음이 잘 그치지 않았다⁠. 리엘이 당황해 고개를 들었다⁠. 소율은 웃음을 그치고 리엘의 젖은 웃옷 앞섶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인간 시간으로 회신할게요⁠.⁠”

리엘의 손은 차가웠다⁠. 소율의 목덜미에 닿았을 때 차가웠고⁠, 소율의 손이 이 손등을 덮자 천천히 데워졌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빨라졌다⁠. 젖은 녹색 웃옷이 의자 등받이에 걸쳐졌다⁠. 리엘의 숨에서 커피 믹스의 단내와 수액 냄새가 섞여 났다⁠. 컨테이너 바닥은 차가웠고⁠, 이 위에 반석호가 막사에서 덮고 돌아온 엘프 망토가 깔렸다⁠. 리엘이 무언가를 엘프어로 말했다⁠. 이번에는 입이 굳지 않았다⁠. 소율은 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옮겨 달라고 하지 않았다⁠.

새벽 네 시에 빗소리가 그쳤다⁠. 리엘은 소율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잠들어 있었다⁠. 엘프도 잠을 잔다는 것을 소율은 이날 처음 알았다⁠.

*

토요일 오후 세 번째 빈 갱차 행렬이 철문을 나올 때⁠, 소율은 이 소리를 들었다⁠.

끼익⁠.

레일 위 바퀴가 우는 소리였다⁠. 들어갈 때 흙을 가득 실은 갱차들은 그렇게 울었다⁠. 무게가 바퀴를 레일에 짓누르면 쇠와 쇠가 그런 소리를 냈다⁠. 빈 갱차는 그렇게 울지 않았다⁠. 사흘 전 시월이 흙바닥에 굴을 그리며 말한 대로⁠, 빈 차는 레일 위에서 가볍게 튀었다⁠.

나오는 갱차가 울고 있었다⁠.

소율은 일어섰다⁠. 나오는 갱차 행렬 옆으로 걸었다⁠. 짐칸 아래 스프링이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방수포를 걷지 않고 손바닥으로 짐칸 옆면을 짚었다⁠. 따뜻했다⁠. 오후 햇볕 때문이 아니었다⁠. 갱차는 방금 굴 속에서 나왔다⁠. 이 온기는 안에서 올라왔다⁠. 숲 바닥에 손을 댔을 때 사람 등을 만진 것 같던 이 온기였다⁠. 방수포 틈에서 냄새가 새어 나왔다⁠. 회색 흙의 마른 냄새가 아니었다⁠. 깊은 데서 막 퍼 올린 흙의 비린내였다⁠.

“⁠세워 주세요⁠!⁠”

갱차를 끄는 작업자가 소율을 봤다⁠. 멈추지 않았다⁠. 소율은 갱차 앞 레일 위로 올라섰다⁠. 갱차가 소율의 무릎 앞에서 덜컥 섰다⁠. 뒤따르던 갱차들이 줄줄이 부딪쳤다⁠. 철문 앞 궁수들이 활을 들었다⁠. 철문 안에서 보안팀장이 뛰어나왔다⁠.

소율은 방수포를 걷었다⁠.

짐칸 위쪽에 회색 흙이 얇게 깔려 있었다⁠. 손으로 이 흙을 걷어 냈다⁠. 이 밑은 검붉은 흙이었다⁠. 이 사이로 주먹만 한 돌들이 박혀 있었다⁠. 흐린 주황빛이 감돌았다⁠. 오후 햇빛 아래서도 이 빛이 보였다⁠. 소율은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바닥보다 따뜻했다⁠.

“⁠온석이네요⁠.⁠”

표재곤은 철문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흰 안전모를 손에 들고 있었다⁠.

“⁠메우려고 굴을 고르다 보면 흙이 좀 나옵니다⁠. 그 흙에 섞여 나온 거죠⁠. 버리는 겁니다⁠.⁠”

“⁠버리는 걸 왜 문 너머로 가져가요⁠? 메우는 흙은 들어오고⁠, 나오는 갱차는 비어야죠⁠. 전무님이 그러셨잖아요⁠. 나올 땐 빈 걸로⁠.⁠”

“⁠주무관님⁠, 버릴 데가 문 너머밖에 없어요⁠. 엘프 숲에 버리면 또 나무 죽였다고 하실 거잖아요⁠.⁠”

소율은 돌을 든 채 철문 앞 궁수들을 돌아봤다⁠. 궁수들이 엘프어로 서로 무언가를 말했다⁠. 들어간 수와 나온 수는 맞았다⁠. 이들은 이것만 세라는 명을 받았다⁠.

동굴 입구 바위 위에 엘드린이 서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몰랐다⁠. 소율의 손에 든 주황빛 돌을 봤다⁠. 짐칸 속 검붉은 흙을 봤다⁠. 소율이 엘드린을 올려다봤다⁠. 이제 엘드린도 숲의 뼈가 문 너머로 실려 나가는 것을 봤다⁠.

엘드린이 엘프어로 궁수들에게 한 마디를 했다⁠. 리엘이 소율 옆에서 이 말을 옮기다 멈췄다⁠. 리엘의 얼굴이 하얘졌다⁠.

“⁠뭐래요⁠?⁠”

“⁠보내라⁠, 라고 하셨습니다⁠.⁠”

궁수들이 활을 내렸다⁠. 작업자가 소율을 레일에서 비켜 세우고 갱차를 다시 끌었다⁠. 끼익⁠. 갱차들이 울면서 푸른 빛의 문 속으로 하나씩 잠겨 들어갔다⁠. 소율은 손에 든 돌 하나만 남겼다⁠. 엘드린은 바위에서 내려와 숲 쪽으로 걸어갔다⁠.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리엘이 이 등을 보며 엘프어로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소율이 옮겨 달라고 했다⁠.

“⁠전하께서는 인간이 지키지 못하기를 바라신다고 했습니다⁠. 첫서리에⁠.⁠”

*

일요일 오전 열 시⁠, 문을 지나 낯선 사람 다섯이 왔다⁠.

정장에 등산화 차림이었다⁠. 맨 앞의 남자는 쉰 후반⁠, 은테 안경에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겼다⁠. 목에 건 출입증에 「⁠정부 합동 점검단 단장⁠」이라고 찍혀 있었다⁠. 뒤로 한 사람은 태블릿을 들었고⁠, 한 사람은 측정 장비 가방을 멨다⁠. 표재곤이 동굴 입구에서 이들을 맞았다⁠. 단장과 표재곤이 악수했다⁠. 오래 아는 사이의 악수였다⁠.

단장은 출장소 컨테이너를 들여다보지도 않고 바깥뜰 한가운데 섰다⁠. 은껍질나무 숲을 한참 올려다봤다⁠.

“⁠여기구먼⁠. 사진으로만 보다가⁠.⁠”

반석호가 사무실에서 뛰어나왔다⁠. 단장에게 허리를 숙였다⁠.

“⁠주실바렌 대사 대리 반석호입니다⁠.⁠”

“⁠업무 배제 통지 받으셨죠⁠, 반 소장님⁠?⁠” 단장이 반석호를 보지 않고 말했다⁠. “⁠오늘부로 현지 대응은 점검단이 합니다⁠. 엘프 쪽 연락도⁠.⁠” 단장이 숲 쪽으로 턱을 들었다⁠. “⁠아⁠, 사진 잘 찍으신다고 들었는데⁠. 우리 점검단 단체 사진 하나 찍어 주세요⁠. 저 나무들 배경으로⁠. 보고서에 들어갑니다⁠.⁠”

반석호가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켰다⁠. 그러고는 도로 껐다⁠.

“⁠단장님⁠, 저 지금 업무 배제라서요⁠.⁠”

단장이 그제야 반석호를 봤다⁠. 반석호는 휴대폰을 조끼 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채웠다⁠. 하나 남은 단추가 배 위에서 버텼다⁠.

단장의 일행 하나가 측정 장비 가방을 열었다⁠. 소율이 어제 남겨 둔 주황빛 돌이 출장소 계단 위에 놓여 있었다⁠. 단장이 이것을 집어 들었다⁠. 손바닥 위에서 굴려 봤다⁠. 안경 너머 눈이 가늘어졌다⁠.

“⁠이게 그 온석이고⁠. 따뜻하네⁠. 전지 하나에 이거 손톱만큼이면 된다면서요⁠, 표 전무⁠.⁠”

“⁠네⁠, 단장님⁠.⁠”

“⁠국가 전략 자원이야⁠, 이건⁠.⁠” 단장이 돌을 일행에게 건넸다⁠. 일행이 이것을 비닐봉지에 넣고 봉했다⁠. “⁠엘프하고 잘 풀어야지⁠. 싸우면 안 되고⁠. 근데 이게 이 밑에 있다는 건 나라가 알아야 하는 거고⁠.⁠”

단장이 그제야 소율을 봤다⁠. 위아래로 한 번⁠.

“⁠마소율 씨죠⁠?⁠”

“⁠네⁠.⁠”

“⁠무단결근 엿새⁠. 징계 위원회 불참⁠. 상급자 지시 불이행⁠. 기업 공사 현장 무단 접근 세 건⁠.⁠” 단장이 손가락을 하나씩 접지 않고 한 번에 말했다⁠. “⁠오늘부로 직위 해제입니다⁠. 엘프 쪽하고 무슨 약속을 했든 마소율 씨는 이제 대한민국을 대리할 수 없어요⁠. 내일 아침 첫 갱차로 나가세요⁠.⁠”

반석호가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리엘이 소율 뒤에 서 있었다⁠. 표재곤은 단장 반 걸음 뒤에서 흰 안전모를 손에 든 채 서 있었다⁠.

소율은 출장소 계단 위⁠, 돌이 놓여 있던 자리를 봤다⁠. 이 자리에 주황빛이 남긴 따뜻한 얼룩이 아직 남아 있었다⁠.

“⁠안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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