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5,351자)

최종 면접

8조 해킹한 정찰총국 막내 해커 · 금나율

2026년 11월 27일 금요일 아침⁠, 선양⁠. 리명길이 사무실 문을 열자 염상혁이 명길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명길의 모니터에 에릭의 대화창이 떠 있었고⁠, 월요일 밤 2차 면접의 마지막 줄이 맨 위로 올라와 있었다⁠.

「⁠창문은 이번 주에 신문지를 새로 끼웠어요⁠.⁠」

“⁠막내⁠, 앉아라⁠. 아니⁠, 서 있어라⁠. 거기 서서 대답해라⁠.⁠”

상혁은 해바라기씨 봉지를 들고 있지 않았다⁠. 빈손이 책상 모서리를 쥐고 있었다⁠.

“⁠월요일에 나는 류 사장네 가 있었다⁠. 칠보산 동쪽 송이 때문에⁠. 그사이 네가 이걸 썼다⁠. 남조선 회사 기숙사 창문에 네가 신문지를 어떻게 끼우냐⁠?⁠”

“⁠재하가 기숙사 창문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맞장구를 쳤습니다⁠.⁠”

“⁠지난번에도 맞장구라고 했다⁠.⁠” 상혁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툭 쳤다⁠. “⁠맞장구도 세 번이면 노래다⁠. 너 지금 저쪽이랑 노래를 부르고 있다⁠.⁠”

명길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가 자리의 조장은 아직 출근 전이었다⁠. 칸막이 안에서 금철이 평양과 통화하는 낮은 목소리가 났다⁠.

“⁠오늘 밤 최종 면접 끝나면 사장님께 다 말한다⁠. 다니엘 계정⁠, 신문지⁠, 반룡이 용 이름이라던 거짓말까지⁠.⁠” 상혁의 목소리가 떨렸다⁠. “⁠막내⁠, 나는 12월 23일에 우리 딸 처음 안는다⁠. 네 노래 때문에 그날이 날아가면 안 된다⁠. 알겠니⁠?⁠”

“⁠알겠습니다⁠.⁠”

“⁠알겠다는 말 말고⁠.⁠”

“⁠선배님 따님 백일이 날아가는 일은 없게 하겠습니다⁠.⁠”

상혁이 명길을 한참 올려다보다가 일어섰다⁠. 의자를 밀어 주는 손길이 거칠었다⁠. 상혁은 자기 자리로 가서 서랍을 열고 갓난아기 사진을 꺼내 모니터 옆에 세웠다⁠. 오늘은 사진을 숨기지 않을 모양이었다⁠.

*

점심에 명길은 탕비실 구석에서 은정에게 보낼 답장을 썼다⁠. 손 크림을 실어 갈 다음 송이 트럭 편이었다⁠. 편지는 금철이 먼저 읽고⁠, 단둥에서 누가 한 번 더 읽고⁠, 평양에서 또 누가 읽을 것이었다⁠. 명길은 읽는 사람이 셋이라는 것을 알고 썼다⁠.

「⁠은정아⁠, 손 크림은 사장님이 두 개 넣어 주신다⁠. 하나는 어머니 것이니 네가 어머니 손에 직접 발라 드려라⁠. 아까워서 안 바르시면 네가 바르는 척하고 어머니 손등에 덜어라⁠. 강의실이 추우면 장갑 손가락 끝을 잘라서 끼워라⁠. 오빠는 김책 다닐 때 그렇게 했다⁠. 기숙사 창문이 안 닫혀서 겨울마다 신문지를 끼웠는데⁠, 신문지는 세 번 접어야 바람이 덜 들어온다⁠. 사장님 댁 따님한테도 알려 줘라⁠. 오빠는 송이를 잘 팔고 있다⁠.⁠」

마지막 문장을 쓰고 명길은 볼펜을 오래 쥐고 있었다⁠. 송이를 잘 판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거짓이 아니어서 더 무거웠다⁠.

정수기에서 물이 데워지는 소리가 났다⁠. 명길은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고⁠, 풀칠하지 않은 채 금철의 책상에 올려 두었다⁠. 금철이 어차피 뜯을 봉투였다⁠.

칸막이 안에서 금철이 봉투를 들어 보였다⁠.

“⁠풀은 왜 안 붙였니⁠?⁠”

“⁠사장님이 뜯으실 때 찢어지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금철이 봉투를 들여다보다가 서랍에 넣었다⁠. “⁠막내⁠, 오늘 밤 과제 파일은 상혁이가 맡는다⁠. 너는 얼굴만 맡아라⁠.⁠”

“⁠과제가 제일 중요하지 않습니까⁠?⁠”

“⁠오늘은 얼굴이 제일 중요하다⁠.⁠”

명길은 금철의 말을 다시 곱씹으며 칸막이를 나왔다⁠. 다니엘 때는 과제가 전부였다⁠. 오늘은 과제가 곁가지였다⁠.

*

오후 다섯 시⁠, 명길은 금철의 양복을 입고 탕비실 거울 앞에 섰다⁠. 소매를 두 번 접어 올려도 손목이 보이지 않았다⁠. 바지는 허리띠 구멍을 새로 뚫어서 겨우 고정했다⁠. 상혁이 문간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보았다⁠.

“⁠막내⁠, 너 싱가포르 대표가 아니라 싱가포르 대표 아들 같다⁠.⁠”

“⁠사장님이 크면 대표처럼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사장님은 평양 시간으로 말씀하신다⁠. 여기는 선양이다⁠.⁠”

넥타이가 문제였다⁠. 명길은 넥타이를 세 번 맸고 세 번 다 매듭이 비뚤어졌다⁠. 김책을 졸업하던 날 한 번 매 본 것이 전부였다⁠. 네 번째로 넥타이를 풀었을 때 조장이 탕비실에 들어왔다⁠.

조장은 아무 말 없이 명길의 넥타이를 받아 들었다⁠. 명길의 목에 넥타이를 두르고⁠, 손가락 두 개로 매듭을 만들고⁠, 매듭을 목 쪽으로 밀어 올렸다⁠. 손놀림이 빨랐다⁠. 날마다 누군가의 넥타이를 매어 준 손이었다⁠. 조장이 매듭을 한 번 더 바로잡고 손을 뗐다⁠.

“⁠목을 너무 조이면 거짓말이 늦다⁠.⁠”

조장은 한마디만 남기고 탕비실을 나갔다⁠. 상혁이 입을 벌렸다⁠.

“⁠조장 동지가 오늘 첫 말씀을 너한테 하셨다⁠.⁠”

명길은 거울 속 매듭을 보았다⁠. 조장의 손에서 담배 냄새가 아니라 분유 냄새가 났다는 것을⁠, 명길은 거울을 보다가 알아차렸다⁠. 조장에게도 누군가 있었다⁠. 조장은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

평양 시간 여덟 시 오십 분⁠. 명길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조장이 처음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모니터 위에 작은 카메라가 달려 있었고⁠, 등 뒤의 벽에는 상혁이 붙인 싱가포르 사무실 사진이 있었다⁠. 카메라에는 사진만 보였다⁠. 송이 상자와 평양 시간 시계는 화면 밖이었다⁠.

사진은 상혁이 오후 내내 고른 것이었다⁠. 통유리 창 너머로 배 모양 지붕을 얹은 호텔 건물이 보이는 사무실이었다⁠. 상혁은 사진을 붙이고 세 걸음 물러나 감탄했다⁠.

“⁠어떠니⁠? 대표 사무실 같지⁠?⁠”

“⁠선배님⁠, 창밖에 저 호텔이 보이는 사무실이면 한 달 월세가 송이 백 상자입니다⁠.⁠”

“⁠그러니까 대표지⁠.⁠”

“⁠우리 회사는 서른 상자를 채우려는 회사입니다⁠.⁠”

상혁이 사진을 노려보다가 한 장을 더 뽑아 와서 덧붙였다⁠. 이번에는 창밖에 나무만 보이는 사무실이었다⁠. 두 장이 이어 붙자 창밖의 호텔 옆에 갑자기 숲이 생겼다⁠. 명길은 더 말하지 않았다⁠. 카메라 화면에서는 이음매가 명길의 어깨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상혁은 카메라 옆에 앉아 노트북 한 대를 무릎에 얹었다⁠. 면접이 끝나면 보낼 과제 파일이 상혁의 노트북에 들어 있었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명길은 묻지 않았다⁠. 다니엘 때도 묻지 않았다⁠.

금철은 카메라 뒤⁠, 창가 블라인드 앞에 섰다⁠. 평양 보고 날도 아닌데 군복을 입고 있었다⁠. 팔짱을 꼈다⁠. 블라인드 사이로 선양의 밤 불빛과 방송탑의 붉은 등이 보였다⁠.

“⁠막내⁠.⁠” 금철이 낮게 불렀다⁠. “⁠누가 나오든 끊지 마라⁠.⁠”

“⁠예⁠.⁠”

여덟 시 오십구 분⁠, 화면에 「⁠윤재하 님이 대기실에 입장했습니다⁠」가 떴다⁠. 명길은 입장 단추를 눌렀다⁠.

화면이 열렸다⁠.

곱슬머리도⁠, 후드티도 아니었다⁠. 턱선에서 자른 단발에 흰머리 몇 가닥이 섞여 있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여자가 흰 벽 앞에 앉아 있었다⁠. 서류철 속 사진과 같은 얼굴이었다⁠. 사진과 다른 것은 하나였다⁠. 화면 속 여자는 웃고 있지 않았지만⁠, 웃지 않으려고 입술에 힘을 주고 있었다⁠.

상혁이 무릎 위의 노트북을 덮었다⁠. 덮는 소리가 컸다⁠. 상혁이 종이에 큼직하게 써서 카메라 밖에서 흔들었다⁠. 「⁠끊어⁠」⁠. 종이를 쥔 손이 떨려서 글자가 접혔다 펴졌다 했다⁠. 명길은 종이를 보지 않으려고 화면 속 안경테에 눈을 붙였다⁠.

금철이 손바닥을 들어 상혁을 멈췄다⁠.

“⁠에릭 림 씨⁠, 반갑습니다⁠.⁠” 여자가 먼저 말했다⁠. 남쪽 말투였는데⁠, 끝이 조금 단단했다⁠. “⁠저는 윤재하가 아닙니다⁠. 가람엑스 보안팀장 김옥화입니다⁠.⁠”

명길은 입을 열었다⁠. 영어로 준비한 인사말이 혀끝에 있었다⁠. 나오지 않았다⁠.

“⁠재하 씨는⁠…⁠… 어디 계십니까⁠? 저희는 재하 씨와 면접을 보기로 했습니다⁠.⁠”

“⁠재하 씨는 집에 있습니다⁠. 강아지 콩이하고요⁠.⁠” 옥화가 안경을 고쳐 썼다⁠. “⁠제가 대신 왔습니다⁠. 예시 답안에 반룡산을 넣은 사람이 저입니다⁠. 기숙사 3층 끝방 창문에 신문지를 세 번 접어서 경첩 쪽부터 끼우라고 가르친 사람도 저입니다⁠.⁠”

카메라 밖에서 상혁이 숨을 들이켰다⁠. 명길은 상혁을 보지 않았다⁠. 화면만 보았다⁠.

“⁠선생님이⁠…⁠… 한창범 교원 선생님의 선생님이십니까⁠?⁠”

“⁠창범이요⁠?⁠” 옥화의 눈썹이 올라갔다⁠. “⁠맨 앞줄에서 졸던 아이입니다⁠. 졸면서 손전등은 꼭 입에 물고 있었어요⁠. 침이 손전등을 타고 흘러서 칠판 불빛이 번쩍거렸습니다⁠.⁠”

명길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서른 갓 넘은 교원이 분필을 내려놓고 이름은 묻지 말라고 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맨 앞줄에서 침을 흘리던 스무 살이 같은 얼굴이었다⁠.

“⁠지금은 안 조십니다⁠.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이 있으면 분필을 던지십니다⁠.⁠”

“⁠제가 던지는 걸 보고 배웠습니다⁠.⁠”

카메라 옆에서 상혁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상혁이 종이에 다시 썼다⁠. 「⁠웃지 마⁠」⁠. 명길은 웃음을 삼켰다⁠. 블라인드 앞의 금철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옆에 다른 분들이 계신 것 압니다⁠. 그래도 말하겠습니다⁠.⁠” 옥화가 화면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 “⁠선양에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있습니다⁠. 서탑에서 골목 세 개입니다⁠. 문은 아침 아홉 시에 엽니다⁠. 오늘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길이 있다는 것만 알아 두십시오⁠.⁠”

명길의 손이 책상 아래에서 금철의 양복 바지를 쥐었다⁠. 소매 끝이 손등을 덮었다⁠. 블라인드 앞에서 금철은 움직이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화면 속 옥화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

명길은 자기 목소리를 들었다⁠. 망고 아버지의 말투가 아니었다⁠. 김책 실습실에서 교원에게 손을 들던 목소리였다⁠.

“⁠제 어머니는 무릎이 나쁩니다⁠. 계단이 많은 날은 동생 팔을 잡고 다니십니다⁠. 동생은 올해 대학에 갔습니다⁠. 강의실에 석탄이 늦게 들어와서 장갑을 끼고 필기를 합니다⁠.⁠”

옥화의 입술에서 힘이 빠졌다⁠. 화면 속에서 옥화가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제 어머니는 작년 겨울에 장마당 앞 얼음길에서 넘어지셔서 눈썹 위를 꿰맸습니다⁠. 저는 이틀 전에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열다섯 해 동안 어머니를 못 보셨습니까⁠?⁠”

“⁠못 봤습니다⁠.⁠”

“⁠그럼 저도 그렇게 됩니까⁠?⁠”

옥화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 속 흰 벽에 옥화의 그림자가 작게 흔들렸다⁠.

“⁠그건 제가 약속 못 합니다⁠.⁠” 옥화가 천천히 말했다⁠. “⁠하나는 약속합니다⁠. 문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제가 끝까지 봅니다⁠.⁠”

“⁠선생님 어머니는 누가 봅니까⁠?⁠”

옥화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명길은 자기가 무엇을 물었는지 알았고⁠, 묻고 나서야 방금 한 물음이 자기 어머니에게 하는 물음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카메라 밖에서 상혁이 일어섰다⁠. 노트북 전원 줄을 잡아당기려는 손을 금철이 이번에는 붙잡았다⁠.

“⁠사장님⁠, 끝난 겁니다⁠! 저쪽이 다 알았습니다⁠!⁠”

“⁠알게 하려고 한 거다⁠.⁠”

상혁의 손목을 쥔 채 금철이 말했다⁠.

“⁠두어라⁠. 내가 할 말이 있다⁠.⁠”

금철이 블라인드 앞에서 걸어 나왔다⁠. 군화가 바닥을 두 번 울렸다⁠. 금철은 명길의 의자 등받이를 잡고 옆으로 밀었다⁠. 바퀴 달린 의자가 명길을 태운 채 카메라 밖으로 굴러 나갔다⁠. 명길은 송이 상자에 어깨를 부딪쳤다⁠. 상자 위의 귤 봉지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금철이 카메라 앞에 섰다가⁠, 허리를 숙여 화면 속 얼굴과 눈높이를 맞췄다⁠. 군복 왼쪽 가슴의 붉은 배지가 화면 가득 들어갔다⁠.

화면 속에서 옥화의 손이 안경테로 올라갔다가 멈췄다⁠.

금철이 입을 열었다⁠. 평양에 보고하는 날의 목소리보다 낮았다⁠.

“⁠옥화 동무⁠, 열다섯 해 만이오⁠.⁠”

9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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