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5,421자)

미끼 노트북

8조 해킹한 정찰총국 막내 해커 · 금나율

2026년 11월 23일 월요일 아침 여덟 시⁠, 서울 강남⁠. 김옥화가 19층 끝 회의실 문을 열었을 때 탁자 위에 재하의 노트북이 두 대 있었다⁠. 하나는 진짜였고 하나는 가짜였다⁠. 두 대 다 뚜껑에 하얀 몰티즈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스티커의 왼쪽 귀가 똑같이 들떠 있었다⁠.

“⁠팀장님⁠, 콩이가 둘이에요⁠.⁠”

윤재하가 문간에서 두 노트북을 번갈아 보았다⁠. 국정원 기술 요원이 밤새 재하의 노트북을 흉내 내어 꾸민 것이었다⁠. 바탕 화면도⁠, 폴더 이름도⁠, 바탕 화면 구석에 저장해 둔 「⁠콩이_미용_전후⁠.jpg⁠」도 같았다⁠. 다른 것은 속이었다⁠. 가짜 노트북은 회사의 어떤 지갑에도⁠, 어떤 서버에도 이어져 있지 않았다⁠. 최종 과제 파일이 오면 이 노트북이 받고⁠, 국정원이 지켜본다⁠. 옥화가 들은 설명은 거기까지였고⁠, 옥화도 거기까지만 알면 되었다⁠.

“⁠콩이 사진은 왜 복사했어요⁠? 그건 제 개인 사진인데요⁠.⁠”

차승규가 붕어빵 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재하 씨⁠, 저쪽은 재하 씨 바탕 화면까지 압니다⁠. 콩이가 없으면 바로 압니다⁠.⁠”

“⁠콩이 미용 전후 사진까지요⁠?⁠”

“⁠미용 후가 특히 유명해요⁠.⁠”

재하가 진짜 노트북을 품에 안았다⁠. 옥화는 가짜 노트북의 뚜껑을 덮었다⁠. 들뜬 스티커 귀가 손가락에 걸리지 않게 조심했다⁠.

*

열 시⁠, 회의실에 한 사람이 더 들어왔다⁠. 짧은 단발에 회색 코트를 입은 여자였다⁠. 미국 연방수사국 FBI에서 온 연락관 레이철 문이었다⁠. 한국계였고⁠, 우리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했다⁠.

“⁠김 팀장님⁠, 반갑습니다⁠. 바이낸스 사건 맡고 있습니다⁠. 바이비트 사건도 맡았습니다⁠. 같은 사람들입니다⁠.⁠”

레이철이 태블릿을 열었다⁠. 화면에는 바이낸스에서 빠져나간 돈이 어디로 흘렀는지 그린 그림이 있었다⁠. 점과 선이 거미줄처럼 번져 나갔고⁠, 몇몇 점이 빨갛게 칠해져 있었다⁠. 묶어 둔 돈이었다⁠. 나머지 점은 아직 회색이었다⁠.

“⁠이 회색 점들이 지금도 움직입니다⁠. 이더리움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저쪽이 가람엑스로 다시 오면⁠, 우리는 회색 점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오면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오면⁠.⁠” 레이철이 태블릿을 옥화에게 돌렸다⁠. “⁠팀장님⁠, 저쪽이 미끼 노트북에 들어오면 바로 막지 마십시오⁠. 조금 기다려 주십시오⁠. 어디로 가는지 봐야 합니다⁠.⁠”

옥화는 태블릿을 밀었다⁠.

“⁠미끼 노트북은 기다려도 됩니다⁠. 이용자 지갑은 일 초도 안 기다립니다⁠.⁠”

“⁠진짜 지갑에 닿기 전에 막을 수 있습니다⁠.⁠”

“⁠바이낸스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레이철이 입술을 다물었다⁠. 승규가 붕어빵 꼬리를 떼어 먹으며 끼어들었다⁠.

“⁠두 분 다 맞아요⁠. 그러니까 미끼는 미끼대로 두고⁠, 진짜는 진짜대로 잠급니다⁠. 레이철 씨⁠, 붕어빵 드세요⁠. 꼬리에 팥이 없는 게 아니라 원래 그래요⁠.⁠”

레이철이 붕어빵을 받아 들고 꼬리부터 먹었다⁠. 팥이 없어서 눈썹을 올렸다⁠.

“⁠팀장님⁠, 제 우리말이 이상하면 말씀해 주십시오⁠. 부모님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세탁소를 하셨습니다⁠. 저는 우리말을 세탁소 손님들하고 사극에서 배웠습니다⁠.⁠”

“⁠사극이요⁠?⁠”

“⁠네⁠. 그래서 가끔 ‘⁠그리하겠사옵니다⁠’가 나옵니다⁠. 지난주 국정원 회의에서 한 번 나왔습니다⁠.⁠”

승규가 붕어빵을 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왔어요⁠. 저희 과장님이 ‘⁠윤허하노라⁠’ 하셨어요⁠.⁠”

옥화는 웃음을 참으려고 태블릿 화면을 다시 보았다⁠. 회색 점 하나가 깜박이며 자리를 옮겼다⁠. 저 점 하나하나가 누군가 거래소에 맡겨 둔 돈이었다⁠. 바이낸스는 이용자의 피해를 회사 돈으로 채우겠다고 했다⁠. 가람엑스에는 채울 돈이 그만큼 없었다⁠.

*

밤 아홉 시⁠, 2차 면접 채팅이 열렸다⁠. 이번에는 에릭이 처음부터 끝까지 느낌표를 쓰지 않았다⁠. 질문은 짧았고 말끝은 조용했고⁠, 문장 사이의 쉼이 길었다⁠. 옥화는 답을 치면서 화면 너머의 손을 떠올렸다⁠. 사흘 전 사 초 만에 날아온 느낌표 두 개는 없었다⁠.

마지막에 에릭이 보냈다⁠.

「⁠재하 씨⁠, 최종 면접은 이번 주 금요일 밤 아홉 시예요⁠. 화상으로 하고⁠, 저희 대표님이 직접 들어오세요⁠. 대표님이 간단한 과제를 하나 드릴 거예요⁠. 부담 갖지 마세요⁠.⁠」

조금 뒤에 한 줄이 더 왔다⁠.

「⁠창문은 이번 주에 신문지를 새로 끼웠어요⁠.⁠」

승규가 붕어빵을 씹다가 멈췄다⁠. 옥화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무실 안에서 신문지를 끼울 사람은 없었다⁠. 아이는 지금 혼자 앉아 있었다⁠. 옆자리가 비어 있다는 표시였다⁠.

“⁠팀장님⁠, 이 줄도 녹화에 다 들어갑니다⁠.⁠” 승규가 맞은편 신참의 화면을 턱으로 가리켰다⁠. “⁠위에서 신문지가 무슨 암호냐고 물으면 뭐라고 할까요⁠?⁠”

“⁠창문이 고장 났다고 하십시오⁠.⁠”

“⁠그게 암호보다 더 암호 같은데요⁠.⁠”

“⁠고장 난 창문은 김책에 하나밖에 없습니다⁠. 위에서 김책 기숙사에 사람을 보내 확인하실 수는 없을 겁니다⁠.⁠”

신참이 녹화 화면에 메모를 적다가 볼펜을 멈췄다⁠. 「⁠신문지 — 창문 고장⁠」⁠. 승규가 메모를 들여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옥화는 재하의 말투로 답했다⁠. 「⁠좋아요⁠…⁠… 금요일에 뵐게요⁠.⁠」

채팅창이 닫히자 재하가 문을 벌컥 열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팀장님⁠, 화상이요⁠? 그럼 제 얼굴이 나가요⁠?⁠”

“⁠재하 씨 얼굴은 안 나갑니다⁠.⁠”

“⁠진짜요⁠? 저 얼굴 나가면 북한에 얼굴 팔려요⁠. 저 아직 연애도 못 했어요⁠.⁠”

“⁠북한은 재하 씨 연애에 관심 없습니다⁠.⁠”

“⁠그게 더 슬퍼요⁠.⁠”

*

11월 24일 화요일 오후⁠, 대표실에서 강도원이 투자 설명회 연습을 하고 있었다⁠. 홍보팀장이 노트북으로 화면을 넘겼고⁠, 강도원은 거울 앞에서 손짓을 했다⁠.

“⁠가람엑스는 바이낸스 사태에도 보안 이상 무⁠…⁠… 아니다⁠, 이상 없음⁠…⁠… 홍보팀장님⁠, ‘⁠이상 무⁠’가 군대 말 같지 않아요⁠?⁠”

“⁠대표님이 이상 무로 하자고 하셨습니다⁠.⁠”

“⁠제가요⁠?⁠”

옥화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강도원은 거울에서 돌아서지 않고 거울 속의 옥화를 보았다⁠.

“⁠팀장님⁠, 로비에 외국 사람 왔다면서요⁠. 그분은 누구예요⁠?⁠”

“⁠FBI 연락관입니다⁠.⁠”

강도원이 그제야 돌아섰다⁠. 넥타이가 반쯤 돌아가 있었다⁠.

“⁠국정원에 FBI까지요⁠? 설명회가 이틀 남았어요⁠. 투자사 사람들이 로비에서 FBI 출입증을 보면 어떡해요⁠?⁠”

“⁠출입증에는 회사 이름이 안 들어갑니다⁠. 레이철 문이라고만 씁니다⁠.⁠”

“⁠그래도 외국 사람이잖아요⁠.⁠”

“⁠투자사에도 외국 사람 옵니다⁠.⁠”

강도원이 넥타이를 바로 매며 숨을 길게 쉬었다⁠. “⁠팀장님⁠, 약속은 26일이에요⁠. 27일 아침에 계정 닫는 거예요⁠.⁠”

“⁠최종 면접이 27일 밤입니다⁠.⁠”

강도원의 손이 넥타이 매듭에서 멈췄다⁠.

“⁠그럼 하루가 모자라네요⁠.⁠”

“⁠하루만 더 주십시오⁠.⁠”

“⁠설명회 잘 끝나면요⁠.⁠” 강도원이 다시 거울을 보았다⁠. “⁠잘 끝나면 토요일 아침까지⁠. 망하면 목요일 밤에 닫아요⁠.⁠”

홍보팀장이 노트북 화면을 넘겼다⁠. 다음 장에 큰 글자로 「⁠보안 이상 무⁠」가 떠 있었다⁠.

*

11월 25일 수요일 오후⁠, 옥화는 비상계단 층계참에서 연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중개인 김 선생은 신호가 다섯 번 가고 나서야 받았다⁠. 뒤에서 기차 소리가 났다⁠.

“⁠선생님⁠, 사진 잘 받았습니다⁠.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어머니 왼쪽 눈썹 위에 흉터가 있었습니다⁠. 언제 생긴 겁니까⁠?⁠”

“⁠작년 겨울에 장마당 앞 얼음길에서 넘어지셨답니다⁠. 꿰맸어요⁠. 팀장님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옥화는 층계참 난간을 잡았다⁠. 차가운 쇠가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다른 일은 없습니까⁠?⁠”

김 선생이 잠깐 말이 없었다⁠. 기차 소리가 멀어졌다⁠.

“⁠팀장님⁠, 이건 사진값에 안 들어가는 얘긴데요⁠. 이달 초에 어머님 댁에 보위부 사람이 한 번 다녀갔답니다⁠. 별말은 없었고⁠, 집 안을 둘러보고 갔답니다⁠. 바이낸스 일 터지고 나서 국경이 다 시끄러워요⁠. 당분간은 돈 넣는 걸 좀 쉬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쉬면 어머니는 겨울을 어떻게 납니까⁠?⁠”

“⁠그건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번 달 것은 보내겠습니다⁠. 수수료는 말씀하신 대로 드리겠습니다⁠.⁠”

“⁠팀장님⁠…⁠…⁠.⁠”

“⁠보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옥화는 층계참에 한참 서 있었다⁠. 위층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우는 냄새가 내려왔다⁠. 재하가 배 선임을 엿들으려고 기침을 참던 자리였다⁠. 옥화는 휴대전화를 열어 어머니 사진을 다시 보았다⁠. 종이 위 날짜는 11월 14일이었고⁠, 보위부 사람이 다녀간 것은 이달 초였다⁠. 어머니는 보위부가 다녀간 집 앞에서⁠, 열흘 뒤에⁠, 반룡산 단풍이 다 졌다고 썼다⁠.

*

11월 25일 수요일 밤 열한 시⁠, 19층 끝 회의실에 옥화와 승규만 남았다⁠. 가짜 노트북은 꺼져 있었다⁠. 승규는 이번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옥화는 승규가 빈손으로 앉아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팀장님⁠, 금요일 일을 정해야 합니다⁠. 화상 면접에 재하 씨 대신 우리 요원이 나갑니다⁠. 비슷한 나이⁠, 곱슬머리⁠, 후드티⁠. 과제 파일만 받으면 끝입니다⁠. 아이는 선양에 그대로 둡니다⁠. 신문지 이야기는 계속하시고요⁠. 길게 봅시다⁠.⁠”

“⁠제 얼굴로 나가겠습니다⁠.⁠”

승규가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뗐다⁠.

“⁠팀장님 얼굴은 저쪽 서류에 있습니다⁠. 보나 마나 있어요⁠. 화면에 팀장님 얼굴이 뜨는 순간 저쪽은 다 압니다⁠. 재하 씨 계정이며 미끼 노트북이며 신문지까지 전부 끝이에요⁠.⁠”

“⁠끝나야 합니다⁠.⁠”

“⁠왜요⁠?⁠”

“⁠숨어서 말을 거는 동안 아이는 고를 게 없습니다⁠. 제가 누군지 알고⁠, 제가 무엇을 내밀 수 있는지 알아야 고릅니다⁠.⁠”

“⁠무엇을 내미실 건데요⁠?⁠”

옥화는 수첩을 펼쳤다⁠. 선양의 대한민국 총영사관 주소가 적혀 있었다⁠. 주소 밑에 옥화가 손으로 그린 지도가 있었다⁠. 서탑에서 총영사관까지 골목 세 개⁠.

“⁠나올 길입니다⁠.⁠”

승규가 수첩을 보다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팀장님⁠, 그 아이가 총영사관 문 앞까지 오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아세요⁠? 공안이 문 앞에 서 있어요⁠. 아이 사무실 사람들이 뒤에 붙어요⁠. 들어와도 문제고⁠, 못 들어와도 문제예요⁠. 그리고 그 아이가 나오는 순간 평양에 남은 가족은요⁠?⁠”

“⁠압니다⁠.⁠”

“⁠아시면서요⁠.⁠”

“⁠열다섯 해 전에 제가 그 길로 왔습니다⁠. 제 어머니는 아직 함흥에 있습니다⁠.⁠” 옥화는 수첩을 덮지 않았다⁠. “⁠차 선생님은 그 아이를 선양에 두고 줄을 길게 보시겠다고 했습니다⁠. 줄 끝에 사람이 매달려 있습니다⁠. 제가 이 줄을 잡은 사람입니다⁠. 잡은 사람이 먼저 놓을지 말지 물어봐야 합니다⁠.⁠”

“⁠아이가 싫다고 하면요⁠?⁠”

“⁠그럼 신문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차 선생님 뜻대로⁠.⁠”

승규가 오래 말이 없었다⁠.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다가⁠, 주머니에서 껌 한 통을 꺼냈다⁠. 결국 먹을 것을 찾았다⁠.

“⁠레이철 씨는 반대할 겁니다⁠. 저도 반대고요⁠. 위에도 보고해야 합니다⁠.⁠”

“⁠보고하십시오⁠. 금요일 밤 아홉 시에 제가 이 의자에 앉아 있겠습니다⁠.⁠”

승규가 껌 종이를 벗기며 웃었다⁠. 웃음이 짧았다⁠.

“⁠열다섯 해 전 조건이 다섯 개였는데요⁠. 이번이 몇 번째예요⁠?⁠”

“⁠두 번째입니다⁠.⁠”

옥화는 가짜 노트북의 뚜껑을 열었다⁠. 꺼진 화면에 옥화의 얼굴이 비쳤다⁠. 턱선에서 자른 단발에 흰머리 몇 가닥⁠, 검은 뿔테 안경⁠. 옥화는 안경을 벗어 셔츠 자락에 닦았다가⁠, 다시 썼다⁠. 금요일 밤 아이가 볼 얼굴이었다⁠.

8화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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